인간·사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안한다.

아이루다 2014. 9. 16. 14:06

 
인간은 보통 게으른 존재이다. 타고난 부지런함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게으르다. 우리는 타고난 본능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힘쓰는 것보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우리가 노는 것이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 놀든, 자신이 만족스럽다면 그 안에서 행복해 한다. 여기에서 논다는 것은 꼭 춤추거나 게임을 하는 등의 놀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노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 이외의 모든 행동을 뜻한다.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놀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꽤 된다. 그런데 이들의 원래 목적 역시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 후, 놀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노는 법을 잊어 먹었다. 그래서 놀 시간이 주어져도 놀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편한 것이지,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는 것에서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기에, 일하는 것이 노는 것이며 행복한 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따르는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 그다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우리 인간의 특징으로 인해서, 우린 가능하면 주어진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놀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해야 할 일을 혹시라도 안 해도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안 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핑계거리가 있으면 최대한 이것을 활용한다. 또한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머리 속에서는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데 최선을 다한다. 물론 이것은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직장을 잡고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지만 좋은 직장은 그리 많지 않기에 경쟁이 치열하다. 또한 어떤 직장은 정말로 힘든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까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자신의 판단에 좋지 않은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는 명확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거나 혹은 그만한 가치를 못 느낀다면 누구도 그것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 양식이다. 그런데 과거엔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남자의 경우엔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해서 한 집안의 가장이 되는 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평범한 삶으로 간주 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능력에 따라 힘들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취직을 하고 일을 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마치 낙오자처럼 취급되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다.
 
요즘 시대에 젊은 이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할 바엔 그냥 노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 지고 있다. 일명 취직 포기자라고 하고, 점점 그 숫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취직 포기자라서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늘어나면 실업률은 낮아지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과거에 쏟아졌던 낙오자의 비난은 어느 정도 공감된 우리 사회의 문제를 기반으로 하여 많이 줄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태도는 바로 그 당사자들이 일을 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한 적당한 이유가 되어 주고 있다. 즉 이들에게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괜찮은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왜 정신력이 그 모양인지', '너는 꿈이 없느냐고 비판하든지',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느냐고 비난하든지' 라고 하지 말고 그 사람들이 그런 핑계를 댈 수 없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실제로 왜 일을 하지 않느냐면, 일을 해도 도대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힘들면 힘든 대로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직장은 힘든 사람이 더 돈을 못 버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누가 더 힘들면서 덜 돈을 받는 일을 하려고 할 것인가?
 
일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핑계거리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대고 있는 핑계를 해결해 줄 방법 없다.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없애 주어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최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부모는 그것에 상관없이 아이를 끝없이 공부시키기 위해 학원과 학교 안에 아이를 꽉 묶어 두려고 하지만, 이로 인해서 아이는 공부가 자신이 해야 하는 책임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로 인식한다.
 
그리고 부모는 학원비를 대주고, 과외를 시켜주며, 학교에 보낸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바로 부모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고 싶은가?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정말로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부모가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부모는 TV를 보고, 술 먹고 놀면서 아이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면, 아이는 마음 속으로 핑계를 만든다. 부모가 그렇게 사는데 왜 자신만 힘들게 공부라는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불만을 갖게 된다.
 
부모가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면, 아이 역시도 그렇게 산다. 반대로 부모가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면, 아이들도 같이 따라서 한다. 왜 스승이 '바담 풍' 이라고 발음은 하면서 제자들에게는 '바람 풍' 이라고 발음 하도록 강요하는가?
 
하지만 부모들 중에서 솔선수범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만 존재한다. 그런데도 아이가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대다수의 부모들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조용하겠다 싶으면 스마트 폰을 손에 쥐어 주면서 게임이나 하라고 시키면서도, 아이가 정서적으로 잘 크길 바란다. 이것은 물론 우연히 아이의 타고난 성정에 의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평균적으로 이렇게 자란 아이는 정서적인 불균형을 보일 수 밖에 없다.
 
회사에서 직원들끼리 모여서 다른 이들을 험담하고 뒷담화를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핑계거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자기 합리화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나 기타 회사 내에서 평판을 떨어뜨릴지도 모르는 일들을 당한 것에 대해서, 그것과 관계된 반대 편에 서 있는 이들에 대해서 막무가내 식 비난을 퍼 붇는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의견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면서 어떤 문제가 바로 자신의 실수나 능력 부족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상대의 문제로 일어난 것이라는 결론을 맺게 만들어 준다. 즉 이 과정이 바로 자신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실수 했던 것에 대한 정당성을 위한 핑계거리를 생산하고 있는 현장인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숨겨진 불편한 진실에서도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거의 극한으로 치닫는 경쟁 사회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경쟁에서 탈락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게 죽지 말라고 한다. 물론 그것 조차도 별 신경 안 쓰긴 한다.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들에게 그럴만한 핑계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성적을 비관하거나,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우리는 이들에게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냐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들에게 자살 할만한 핑계를 주고 있는 셈이다. 그 정도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그 고통이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런 것은 핑계의 수준을 벗어나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다.
 
우리는 현재, 청년 실업률 증가, 출산률 저하, 자살률 증가, 극악스러운 범죄률 증가, 개인 이기주의 팽배, 각종 왕따 문제 증가 등의 심각한 사회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는 모두 적당한 핑계거리가 존재하고 있다. 일자리가 좋지 않아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사회라서, 극한의 경쟁 사회라서, 사회에 불만이 많아서, 나도 살기 힘드니까,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등의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물론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기에, 어떤 상황에 놓였어도 핑계를 대지 않고 꿋꿋히 해나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핑계를 대는 이들을 보고는, 당신들은 왜 저렇게 살지 못하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비난을 하는 당사자들 역시도 자신이 현재의 상황이 아닌 다른 상황에 놓였다면 정말로 지금처럼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되돌아 봐야 한다.

 

그래서 운이 나빠 취직을 해야 할 시기에 몸이 아파서 놓쳤다면, 어느 날 교통 사고가 나서 정상적인 몸이 되지 못했다면, 회사에서 짤려 실업자가 된 후 놀게 되었다면, 이런 모든 상황을 스스로 다 극복해 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 끊은 헬스장 3개월 치 이용권은 비록 자신의 돈을 들여서 구입했지만, 아침마다 그곳에 가지 않을 작은 이유만 있어도 빼먹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또한 비싼 대학 등록금을 주고 다니는 학교도 어떤 강의가 휴강이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것을 따지기 보다는 신나게 받아 들인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힘든 것을 피하고 편하게 놀고 싶은 욕구는 우리들 본성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 어떤 모범적인 사회라도 핑계 앞에서는 답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이 이유라고 말하고 있는 핑계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여 줄 수 있다면 이들 중 많은 이들을 정상적인 범위 안으로 끌어 드릴 수 있다.
 
그래서 결국엔 이런 심각한 사회 문제 대한 사회 구성원 스스로의 깊은 반성과 협의가 없다면 아마도 이 문제는 영구히 심각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불행해지고, 불안해질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바라진 않겠지만, 우리가 이미 마음 속에 품은 탐욕은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힘을 잃었다. 아니 우리는 이젠 이것을 중단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이 멈추는 순간 도태될 것이라고 믿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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