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가치 부재의 시대

아이루다 2014. 9. 6. 09:49

 
지난 글에서 문명의 발달과 함께, 만들어진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것들은 신념, 종교, 충성, 정의, 신뢰, 사랑, 우정, 배려 등으로 불렸고, 이 모든 가치들은 바로 우리 인간 스스로가 만든 사회의 안정성과 미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우리 인간은 모두 이기적 성향을 타고 태어나기에, 모여서 살게 되면 끝없이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이런 가치들을 통해 타인과 어울려 사는 법과 힘을 뭉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제대로 문명도 꽃 피워보지 못하고 멸망했을 것이다.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성공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속 중이다. 그런데 이제 과거에 비해 비교도 안될 만큼 안정적인 사회가 되어가면서부터 조금 미묘한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사실상 충분히 안정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요즘은 신뢰에 근거한 이웃보다 돈을 받고 일하는 경찰이 더 우리의 안전을 지켜준다. 그래서 우리는 딱히 이웃과 어울려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웃과 잘 맞으면 좋지만 만약 성격이 좀 안 맞으면 꽤나 피곤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현상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지금껏 인간답게 살게 해준 가치들을 딱히 지키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어도 군대라는 조직으로 통해 국방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신념이나 정의에 대한 명확한 태도가 없어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런 가치들을 '전통적 가치' 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요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가졌던 원래의 전통적 가치로는 만족 하지 못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회 정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살겠는가?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있지만.
 
이것을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이젠 우리 공동체를 지켜준 가치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것에 흥미를 잃고 있다. 그리고 이젠 좀 더 개인적인 가치, 즉 자신의 행복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원래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가치를 찾아야 살 수 있는 존재이다. 이것은 정말로 중요한 사실인데, 결국 가치가 바로 우리 존재 하나 하나가 이 세상에 살아있어야 할 필요성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심한 비난은 아마도 '가치 없는 놈', '쓸모 없는 녀석' 등의 말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우리 인간은 전통적 가치에 대한 가치성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이젠 다른 그들만의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점은 분명히 먹고 살만한 시대가 오고 난 후이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1940년도쯤 정말로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은 배우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딘' 이였으며, 그는 '이유 없는 반항' 이란 영화를 통해 그 당시 젊은이들의 방황하는 삶을 대표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은 미국의 전통 가치가 부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런 류의 영화들은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라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당시 미국은 미국의 오래된 전통적 가치를 지지하는 부모 세대와 그 가치를 공감하지 못하지만 또한 자신만의 가치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아주 잘생기고 멋진 남자 배우 한 명이 영화에 출연해서 마치 '너희들의 그런 반항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라는 식의 멋진 장면을 보여줬다면 이것은 그 젊은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그들을 유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사회는 그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그것을 감지한 어떤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이다.
 
그 후 현재 미국은 당시 제임스 딘에 열광했던 젊은이들이 이미 노인이 되어 있다. 즉, 이 말은 그들 사회는 이젠 전통적 가치를 한 번쯤 부정했던 세대가 다름 세대를 키우고 또한 그 다음 세대를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다가치 시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또한 그 가치를 부정한 후에 나중에라도 많은 이들이 왜 전통적 가치가 중요한지를 스스로 느끼고 잊었던 가치를 다시 찾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이젠 좀 더 견고하고 유동성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도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 이런 시기가 찾아 왔었다. 그때 우리는 그런 세대를 'X 세대' 라고 불렀고 그들의 중심엔 '서태지' 라는 가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도 1990년도에 들어서서 군부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 사회가 시작되면서, 물질적 풍요로움이 급격히 팽창하던 시기에 젊은이들은 그 전 세대가 가졌던 가치들에 대해 그다지 동조하지 않았다. 특히나 그들이 부정했던 가치들은 공동체의 삶을 위해 개인들이 지켜야 할 가치들이었다. 그것은 애국, 신념, 정의와 같은 것이었으며, 이것을 대체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개인의 '행복' 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시점에서 1990년도에 청소년기를 보낸 젊은이들이 지금쯤 어린 아이의 아빠나 엄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마도 그 전 세대가 받아들인 방식과는 다르게 세상의 가치들을 받아 들였기 때문에, 이들이 아이들에게 가치를 가르치는 방식은 이전 세대와는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한, 두 세대가 지나고 나면 우리 역시도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가치들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방향에서만 본 현재와 미래 예측이다.
 
여기에서 만약 전통 가치가 부정당한 후, 새로운 자신만의 가치를 제대로 찾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실제로 가치를 찾는 일은 쉬울 것 같지만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를 느끼는 그 어떤 것을 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것은 가치화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신뢰나 정의, 사랑, 우정이 쉽게 가치화 되는 이유는 우리들 모두가 그것의 가치를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의 다리를 바라보는데 가치를 느끼거나, 개미를 괴롭히는 일에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타인의 공감은커녕 비난을 받을 처지에 놓이기에 그것을 숨기거나 혹은 포기하게 된다.
 
우연히 자신이 추구한 가치가 사회적 입장에 잘 어울리면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심각한 분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공부를 하는데 가치를 느끼거나, 사람을 살리는데 가치를 느끼거나, 높은 산을 오르는데 가치를 느끼게 되면 나름 인정 받은 삶을 살 수 있지만 반대로 욕을 하는데 가치를 느끼거나, 도박을 하는데 가치를 느끼면 다른 이들에게 심한 비난을 받게 되는 원리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치를 느끼는 것은, 타고난 성향과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성격으로 인해 결정되기 쉬우므로 개인이 어떻게 의지적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기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는 점이 실질적인 문제가 된다. 그것이 물론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서 사회에서 인정 받는 가치를 추구하려고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임엔 분명하다.
 
거기에 사회적으로 점점 더 돈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다른 가치들의 실제적 가치들은 의도하지 않게 하락하고 말았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닌 돈을 많이 버는 의사, 법과 정의를 실현하는 검사가 아닌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검사, 학문적 탐구를 위한 연구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버는 교수 등이 그런 대표적인 예가 된다.
 
돈이 가치를 높여가는 사회는 당연히 다른 가치가 빛을 잃는다. 노래를 사랑하는 가수는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것이 행복해야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무능력자로 비난 받는다. 더 쉬운 예를 찾자면, 자연을 찾아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캠핑과 같은 행위도 고급 장비을 갖춘 이들이 참여하면서 그 순수한 목적을 잃어버리고 결국 원래 그들이 원했던 것들 중 일부만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돈의 가치가 치솟는 사회에서 다른 가치를 찾는 일은 더욱 힘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영향은 이제 아주 나쁜 방향으로 전개된다. 결국 대체할만한 가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서 매우 큰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상대적 가치 부재에 따른 열등감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감을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그 자신의 자존감도 크게 상처 받는다.
 
이런 식으로 자존감과 존재감이 무너진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그 모습을 들어내는데 가장 큰 두 가지는 바로 패배자와 반항아의 모습이다. 말을 순화해서 하긴 했는데, 실제로 패배자는 거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산다. 그들은 자신 스스로 그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기에 모든 의사 결정을 외부에서 들어오는 데로 한다. 그리고 반항아의 경우엔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들어낸다.
 
하지만 이 적대감 역시도 직접적 관계에서는 제대로 들어내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가 숨을 수 있는 익명의 공간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아마도 오래 전 인간의 사회에서도 이런 류의 사람들은 늘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엔 그 숫자가 대폭 증가되었고 또한 그들의 모습이 숨겨져 있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그들은 이젠 인터넷을 통해 그 자신들의 강한 사회적 불만을 폭력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악플을 달다가 고소를 당해 잡힌 사람들의 모습은 늘 한결같이 평범하다. 그들의 현실은 가치를 찾지 못해서 자존감과 존재감이 거의 무너진 이들이 태반이다. 소위 막말로 해서 '찌질함' 의 대명사인 셈이다. 물론 가끔 그렇지 않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 모습 역시도 강한 적개심과 폭력적 성향이 매우 강하게 들어난다. 그리고 그 둘의 모습은 외적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정신 세계는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인터넷은 이들을 위로해준다. 이들은 어떤 정해진 공간에 모여서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제임스 딘이나 서태지와 같은 위로를 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사이버 공간이 만들어 지고 그 안에서 모여서 서로가 그리 패배자가 아니라고 각자 위로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커뮤니티가 바로 '일베' 라고 불리는 사이트이다.
 
문제는 이들의 삐뚤어진 성향을 우리나라 자칭 보수들이 이용하게 되면서부터 심각해졌다. 그리고 이젠 이들은 보수층에 의해 '애국' 이라는 가치를 가슴에 새기게 된다. 그리고 북한의 손아귀에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그 나름대로의 신념도 갖게 되었다. 가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들이 드디어 가치를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단지 요즘 젊은 세대만 있는 것이 아니란 증거는 노인들의 사회적 모임인 '... 동지회, ...연합회 ,.. 모임' 등의 오프라인 단체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들은 인터넷을 다룰 능력이 안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이라는 능력을 이용해서 역시나 애국과 반공의 신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말과 행동은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일으키고 있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이들 역시도 대한민국 사회의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들이 믿은 전통적 가치라는 것이 단지 안정적인 사회가 되었다는 이유로 가치성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이라는 가치가 너무 압도적으로 높이 평가되면서 우리가 도대체 다른 가치들을 찾아서 그것을 통해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젠 돈이 안되면 그 모든 행동의 의미를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돈을 버는 목적이 가장 우선시 되는 직업도 우리는 돈 이외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젠 누구도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선생이 되겠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선생님은 이젠 평생 안정적인 직업이며, 1등 신부감으로 꼽히는 직업이 되었다.
 
또한 돈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그리 큰 문제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즉, 우리는 죄를 지어서라도 돈을 벌 수 있다면 죄를 짓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조사에 의하면 10억을 준다면 감방에 가겠다는 고등학생의 비율이 47%가 나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 우리가 얼마나 돈의 가치에 매몰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이런 심각한 가치 붕괴가 일어난 대한민국 사회는 다른 외국의 사례에 비해서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그들도 비록 사회가 풍요로워지는 시대에 우리와 같은 시기를 겪었지만, 문제는 그들은 단지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충돌이었다면, 우리는 그것에 더해서 돈의 지배력 상승이라는 커다란 난제를 하나 더 끼워 넣은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문제를 정말로 심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요즘 사회를 다가치 사회라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요즘 대한민국 사회처럼 획일화된 가치가 지배했던 시대는 없었다. 아마도 비교 가능하다면 생존이 최고의 가치였던 과거 동굴에서 살던 우리의 먼 조상들의 시대나 될까?
 
그리고 이 획일화된 가치는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고 또한 그 가치들이 점차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 풍요의 시대에서 다른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까지를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닌, 우리들 스스로 하나 하나가 해내고 있는 역할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게 얼마나 어리석고 엄청난 자해를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망가진 사회를 더욱 망가뜨려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삶을 똑똑하게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우리는 이젠 이것을 스스로 해결해낼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가 이런 흐름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커다란 충격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리 소중히 여기는 돈에 대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점차 그것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1997년 외환위기였던 IMF를 벗어났다고 우리 스스로 자부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IMF 통해 정말로 커다란 것을 잃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던 가치들이었다. 그리고 돈의 가치는 그 사건 이후로 수직 상승 중이다.
 
미래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그리 밝지는 않다는 점은 확실한 사실이다.
 

 

'인간·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륜 이야기  (0) 2014.09.10
인간의 지능  (0) 2014.09.07
환경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0) 2014.08.24
게이 이야기  (0) 2014.08.06
정보 전달법  (0) 201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