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환경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아이루다 2014. 8. 24. 07:30

 
가끔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인터넷 어디선가 글을 읽다 보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과 자신의 정신 세계를 분리할 수 있으며 또한 실제로도 그렇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 똑바르다면 어떠한 환경에 노출이 되든지 자신은 늘 원래 살던 생각이나 행동 그대로 변함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은 단지 드라마일 뿐이며,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는 것 역시도 단순히 여가 생활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들이 그것을 접한 사람의 성격 자제를 바꾸거나, 그것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한 수준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포르노를 보면 성 범죄율이 높아진다고 우기는 것이나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폭력을 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믿음 역시도 그다지 근거 없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행동을 변화 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영향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런 환경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도 무리다. 실제로 우리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서양이라고 칭해지고 인종적으로는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개방이 되었다. 그 당시 그들은 우리에 비해 확실하게 발달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 또한 다양한 눈동자 색과 동양인에 비해 훨씬 큰 키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 후 100년이 지났고 우리나라의 미인과 미남의 조건은 바로 얼마나 서양의 그것과 비슷해졌느냐를 따지고 있다.
 
우리는 현재 바비 인형이 예쁘다고 느낀다.
 
하지만 100년 전 이 땅을 살던 우리의 조상이 바비 인형을 보면 무슨 도깨비인줄 알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절대적이라고 믿는 미인과 미남의 기준이 개방이라는 커다란 환경 변화에 의해서 국민 전체가 바뀌게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영향을 0%라고 말하는 것도 거짓이고 그런 영향이 100% 라고 말하는 것도 거짓이다. 우리는 분명히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것은 개인별로 큰 편차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가끔 어떤 미친 사람들은 영화에 나오는 살인 장면을 흉내 내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인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그 사람은 원래 살인을 원했고 우연히 영화가 그것을 하는데 도움을 준 셈이라고 생각한다. 이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칼을 생각하면 된다.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지만 사람이 즐기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데도 쓰인다. 어떤 살인자가 칼을 써서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칼이 사람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는 것이 웃기다. 누군가는 음식을 하고 누군가를 사람을 찌른다. 그것은 말 그대로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어떤 것들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에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어떤 것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영향은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영향이 나쁜 쪽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떤 것들은 절대 누군가에게 제공되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어떤 것으로부터로 받게 될 영향력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영향의 정도는 얼마나 오래 그것에 노출되었느냐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포르노에 장시간 노출된 사람은 여자에 대한 편협적인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은밀한고 감춰진 것일수록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한정되어서 우리는 심하게 왜곡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미국에서 만들어 진 영화를 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예전부터 소련, 아랍, 베트남 요즘은 북한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미국의 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은 정의로운 존재로, 나머지 적으로 나오는 나라의 사람들은 비겁하고 비열한 악당으로 묘사된다. 이 인식은 비록 아주 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내린 비처럼 우리를 적셨다.
 
예를 들어 지금 아랍에서 만든 영화 한편을 본다고 치자. 거기엔 아랍 영웅이 나오고 미군은 모두 비겁하고 비열한 놈들이며, 주인공은 수많은 난관을 뚫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을 다수 사상시키는 영화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단지 즐기면서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설령 이런 영화가 나왔다고 해도 우리는 그 영화를 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 흥행이 되지 않을 뻔한 영화를 어떤 유통 회사가 수입해서 배급하겠는가?
 
이런 면을 걱정하는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웃음거리에 대해서도 진지한 걱정을 한다. 하지만 이런 걱정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그냥 즐기면 되지 왜 그렇게 진지하느냐라고 대꾸해준다. 또한 그런 것들은 그냥 웃고 넘긴 후 잊어 버리게 되므로 나에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 영화, 게임, 드라마와 같이 그저 즐기면 되는 것들이 가진 내용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대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들 말처럼 그들 모두는 단지 즐기기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일단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하루 종일 빨간 화면만을 눈으로 바라본 후 다른 곳을 바라 보았다면 우리의 눈은 한 동안 새로운 대상의 색을 인식하기 어렵다. 심한 소음에 오랫동안 노출 된 후도 비슷하다. 후각이나 촉각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감각 적응 현상이라고 한다.
 
우리의 정신 세계도 이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특정한 한 가지 생각이나 사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우리는 점점 그것을 자신도 모르게 믿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은 그것을 계속 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바로 광고의 세계이다.
 
영화에서도 미국 만세, 게임에서도 미국 만세, 드라마에서도 미국 만세라는 말만 지속적으로 들으면 언젠가 미국의 단점을 다룬 다른 것을 보는 순간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그 영화 속에서 미국을 지키고자 싸운, 아니 세계를 지키고자 싸운 미국 출신의 영웅을 그리 봐 왔는데 그런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어색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기독교 인들은 검은 피부를 가진 예수를 불편해 한다. 그 동안 예수의 역할은 주로 하얀 피부를 가진 이들이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인종 차별주의자이다. 우리는 분명히 아프리카 계 미국인과 다른 나라 동양인에 비해서 흰 피부를 가진 서양인을 우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명확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동양인이 미국에서 받는 대우를 두고서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난한다.
 
인간인 근본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받는 동물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과 미국에서 미국인 가정에서 자란 한국인은 완전히 다른 가치관과 문화적 특정을 보인다.
 
이것은 우리가 환경에 완전히 종속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우리가 그리 좋아하는 한국 음식 대다수에 대해서 외국인들은 거의 입도 못 댄다. 또한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다. 물론 워낙 식성이 좋은 이들은 가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지만 조금만 입이 까다로워도 즐길 수 있는 음식의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어떤 문화권에서 자랐는지에 따른 순수한 교육이 결과이다. 그리고 그 교육은 바로 우리의 환경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나 자신이 즐기는 그 많은 것으로부터 그리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고 믿는 것이다. 즐기는 것은 그저 즐기고 말 뿐이라면서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를 가진 이들이 갖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들 본인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에 별 불만이 없겠지만, 종교적 자유라는 인간 본질적 권리에 대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종교는 반드시 성인이 된 후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인간은 어릴수록 환경의 영향을 훨씬 더 쉽게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절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에 노출이 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떼밀려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종교를 가진 부모들은 모태 신앙이나 혹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자녀들을 종교에 접하게 하고 있지만 이것은 종교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만 정상적일 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의미로 아이에 대한 정신적 폭력에 가깝다. 어린 시절 특정 종교와 사상에 노출된 아이는 거의 대부분 그것으로부터 평생을 갇혀 살게 된다.
 
아마도 종교를 가진 부모는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평가하겠지만 그 종교가 공산주의 사상이나 폭력에 대한 확고한 신념 혹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부르는 터무니 없는 종교 등으로 변경시킨다고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 매우 끔찍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나타난다. 우리는 보통 성인이 되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되는데, 어떤 직업에 오래 종사하게 되면 그 직업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이 바뀐다.
 
보험을 오래 한 사람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잠재적 고객으로 여긴다. 일명 네트워크 사업이라고 불리는 다단계 역시도 마찬가지다. 모텔과 같은 곳에서 오래 일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다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보게 된다.
 
또한 불공정한 형태의 영업을 오래 한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끝없이 틈새를 찾는 것이 버릇이 된다. 내가 가진 직업 역시도 비슷한데, 이 직업은 논리와 효율성을 극대화 시켜야 하는 직종이다. 그리고 주변에 나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모두 비슷하게 현실의 삶에서도 논리와 효율에 심하게 집착을 하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현실의 행복은 논리와 효율성은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이라도 사람들은 행복을 충분히 느낀다. 어떤 면에서 논리와 효율을 찾다간 거꾸로 불행해진다. 여행을 갈 때 가장 빠른 길을 찾고, 가장 싸고 좋은 펜션을 찾고, 남들보다 더 좋은 장소를 찾는 데서만 행복을 느끼다간 얼마 되지 않아서 망한다. 조금이라도 길이 막하면 기분이 상하고, 그렇게 고른 펜션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분이 상한다. 그래서 결국 여행 전체를 망치고 만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랫동안 이것을 버리려고 노력했지만 정말로 쉽지 않다.
 
이런 모습은 돈 많은 고객을 상대하는 고급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나다. 오랜 시간 그런 환경에 노출되면 그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에 상관없이 거기에 물들게 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물들지 못하면 거기에서 버티질 못한다.
 
엄청나게 독한 사람이라면 직업과 자신의 삶을 분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그렇게 독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환경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믿는 자유의지란 정말로 책에서나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든 인간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고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의 영향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그냥 남들이 받아 들이듯 편하게 받아 들이는 순간 우리는 가랑비에 젖듯 젖고, 일단 젖기 시작하여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결코 쉽지 않으니 가능하면 자신의 환경을 최대한 좋은 쪽으로 선택해 두는 것이 좋다. 또한 하나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형태로 계속 환경을 변화시켜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한 가지에 빠져 드는 것을 막아 준다.
 
아마도 이것에 대한 현실적 문제점은 앞에서 말했듯 사람들의 무인식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경계되고 조심스럽지 않게 반복되는 삶은 어느새 우리를 바꿔놓고 만다. 단지 그 변화가 아주 크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매우 천천히 벌어지기 때문에 주변이나 본인이 잘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여기에서 무턱대고 변화를 거부하자는 말은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벌어지는 변화가 과거에 우리의 부모 세대에게 지적했던 그 문제를 결국 고스란히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여느 시대를 막론하고 청소년은 문제였으며 기성세대는 기득권으로 불렸다.

 

시집살이를 심하게 한 며느리는 어느 날 자신이 자신의 며느리에게 자신이 당했던 시집살이를 시키고 있음을 느끼고 깜짝 놀랠 수 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자신이 젊은 시절 부당하다고 느꼈던 그 모든 것을 어른이 되어 반복한다면 그것은 한번쯤 의심하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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