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경쟁과 공정함

아이루다 2014. 7. 27. 08:09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이것은 비난이 아니다. 그냥 사람이 원래 그렇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효율성, 현명함, 똑똑함 등의 단어로 표현하지만 실제로 그런 말들은 적용하는 대부분의 행동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 얼마나 잘해냈느냐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그런 본질을 가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원하는 사람은 많으나 원하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경제의 원리와 완전히 일치한다. 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공급에 대해서 많은 수요가 있으니 우리는 결국 언제나 경쟁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경쟁하지 않고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모든 이의 욕망을 늘 100% 채워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망은 그 한계를 가늠하기가 어렵고 거기에 설령 그렇게 100%채워진 욕망이 이루어진다면 경쟁심을 잃은 우리는 아마도 시든 꽃처럼 서서히 메말라 버릴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의 삶에 대한 본질적 태도는 경쟁이라고 정의 했다면 이젠 다음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과연 경쟁은 우리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이다. 욕망을 달성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시작된 경쟁이란 활동을 할 때 과연 우리는 어떤 상태가 될까?
 
가장 첫 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쟁은 고통을 유발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어떤 자격을 따기 위해 시험공부를 할 때, 누군가와 보이지 않는 진급 경쟁을 할 때, 우리는 소위 말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직장 같은 경우 일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경쟁의 우위에 서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반대로 누군가 자신을 책망하면 미래에 닥칠 자신에 대한 불운함에 대해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더욱 압박을 심하게 받게 된다.
 
그래서 경쟁이 심화된 사회엔 자살자가 많다. 하지만 또한 경쟁이 심화된 사회엔 이렇게 낙오되었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쳐다보지 않는다. 아니, 더 심하게 그 자신이 낙오되어 죽게 될까 봐 더욱 더 자신을 채찍질 하게 된다. 즉 더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의 긍정적 효과는 이 경쟁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보다 나은 존재로써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놀고 싶고 자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고 힘들지만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는 우리의 모습은 당장의 편함만을 추구하다가 미래에 닥칠 어려움을 대비하지 못하는 존재들 보다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경쟁이 가진 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진 장점을 더욱 더 높게 평가하여 결국 경쟁을 우리가 살아가가야 할 태도로써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다. 즉, 우리는 경쟁을 그리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 경쟁이 현재 우리를 만들어줬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경쟁이 공평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적어도 육체적, 지능적으로 타고난 대로 어쩔 수 없는 능력 차이에 의해 경쟁에서 밀렸다면 인정하기가 쉽지만 그것이 상대의 비겁하고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해서 발생했다면 우리는 쉽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쉬운 예로 시장에 가서 수박을 살 때,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익고 크기가 큰 수박을 고를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라고 보면 된다.
 
어떤 이는 수박을 오랫동안 사서 먹었기 때문에 대충 모양이나 색만 가지고도 그 수박의 품질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이는 두드려보고 만져보고 들어보고 난 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라면 그냥 한번 주인장에서 '맛있는 것으로 주세요' 라고 한마디 하고 말 것이다.
 
이 단순한 경쟁에서 누가 가장 맛있는 수박을 고를지는 모르겠다. 엉뚱한 경험을 우기는 사람들도 있고 수 없이 테스트 했으나 결국 실패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확실한 것은 수박을 잘라서 안을 맛보고 사는 것일 것이나 요즘은 시장에서도 그런 행동은 잘 하지 않는다. 이미 칼이 한번 들어간 수박은 상품으로써 완전히 가치를 잃기 때문에 그런데, 누가 잘라서 맛보고 사가지 않는 수박을 사겠는가?
 
아무튼 이것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낼 수는 없지만 그나마 가장 근접한 답은 바로 최대한 집요하게 따지고 확실하게 결정하면 그나마 낫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수박을 고른 후, 만약 그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해도 다음에 더 조심해서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약 수박 장사가 그 자신의 오래된 노하우로 정말로 맛있는 수박을 따로 빼놨다가 자신의 단골에게만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양한 형태로 경쟁을 했던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그것을 받아드리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따지거나 아예 그 집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태도는 다시 수박 장사를 공정한 경쟁의 주관자로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 불공정한 거래를 통해 자신의 단골만을 위하던 장사꾼은 이제는 그런 짓을 하면 그 바닥에서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최대한 조심해서 하든지 아니면 그 짓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면 이 장사꾼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이 수박 장사의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 사회 전체 이야기로 확대가 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바로 이 수박 장사들과 같은 존재들의 농간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정말로 심하게 불공정한 경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불공정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중 첫 번째는 바로 수박 장사가 자신의 단골들에게만 따로 좋은 수박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런 짓을 한 수박 장사에 대해 그 집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불공정함에 대해서 따지든 아니면 그 집을 다시는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의 대부분의 움직임은 그 자신도 그 집의 단골이 되고 싶어한다. 혹은 따져봐야 자신만 더 힘들 수 있느니(따지는 것도 경쟁의 일부이다) 그냥 모른 척 하고 넘어간다. 물론 마음 한 구석은 조금 찜찜하지만 그 집에서가 아닌 다른 집에서 수박을 사려면 적어도 10분은 더 걸어야 하니 그 힘듦과 공정함의 문제 중 결국 힘듦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그 자신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태도는 결국 수박 장사를 좀 더 배 불리고 그가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데 있어서 일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도 된다.
 
이것이 실제로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의 이런 태도의 가장 근본적인 인식에는 바로 인간은 어느 면에서는 선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것은 그 어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자신을 단골이라고 정의해준 수박 장사가 한 말에 대한 믿음과 그가 비록 좋은 수박을 따로 팔지만 그 외 그냥 파는 수박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선의에 대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수박 장사를 기본적으로 나쁜 인간이라고 인식한다면 우리는 보통 그가 하는 말을 모두 의심하고 제대로 판단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가 맛이 좋을 것이라고 권하는 수박은 절대로 사지 않고 적어도 그 자신이 두드려 보고 만져본 후 결정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수박 장사에게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실제로 인간은 선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악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선보다는 악하기가 쉽다. 그것에 대한 증거는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선함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받아 왔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우리가 만약 악하기보다 선하기 쉽다면 왜 오래 전부터 우리 인간들은 선함에 대한 종교적, 사회적 가르침을 받았을까?
 
그래서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우리 인간을 선하게 보는 태도로부터 조금 물러날 필요가 있다. 즉, 그냥 선의를 믿는 것보다는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니 그 정도 선에서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신의 이득을 최대한 이루려고 노력함으로써 결국엔 장사꾼의 의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현명하다. 그녀들은 보통 그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자신이 손해 보는 짓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문제점은 보통 그것이 자신의 생활 반경에 머문다는 것이다. 즉,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는 좀처럼 확대되지 못한다.
 
그래서 쇼핑몰에서 산 제품을 꼼꼼히 살피고, 시장에서 마트에서 상품을 살 때 남자보다 훨씬 까다롭게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불공정함이나 다양한 곳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수 많은 문제점에 대해서는 거의 인식도 하지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혹은 그녀 자신들이 단골이 되길 바라기도 한다. 그러면 남들보다 더 이득을 얻게 되니까. 이것은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는 행동 중 가장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우이다. 즉, 불공정함을 더욱 심화 시키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이런 불공정함에 마주했을 때 취하는 행동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 자신도 그런 불공정함에 대한 이득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
두 번째는 그냥 못 본 척 하는 것.
세 번째는 그 문제를 따지고 따져서 바로 잡도록 노력 하는 것.
네 번째는 그 불공정한 환경에서 빠져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
 
여기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다수가 어떤 선택을 선호하느냐가 바로 그 사회의 건강함과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암담한 경향이 있다. 많은 이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선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경쟁은 인간이 가진 본질적 요소 중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경쟁을 피하지 않고 어떤 관점에서는 장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 심화된 경쟁이 아니라면 이것은 우리 전체를 위해 옳다.
 
하지만 과도하게 강요되는 경쟁은 수 많은 문제점을 일으켜 그 만큼의 탈락자를 만들어 내면서 우리 사회를 매우 불안하고 침전되게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불공정함까지 심각하게 존재하는 사회라면 이것은 거의 최악의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수박은 언제나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고 믿어지고, 그래서 사람들은 수박을 사려고 힘들게 줄을 서고 있고, 수박 장사는 자신이 단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좋은 수박을 팔고, 이것을 아는 이들은 어떻게든 수박 장사에게 잘 보여서 단골이 되려고 하고, 그래서 수박 장사에게 단골 문제를 따지는 이들에게 왜 따지냐고 대신 싸워주고, 그런 꼴 당하기 싫은 이들은 그냥 묵묵히 줄만 서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스마트 폰만 바라 보기에 그 모든 광경을 보지 못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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