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준비하는 삶

아이루다 2014. 7. 19. 10:10

 
아무것도 모르고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하는 신생아 시기를 지난 인간은 서서히 기어 다닐 준비를 한다. 그리고 점점 빠르게 기던 어느 날 비록 의자를 잡고 섰지만 우뚝 두발로 직립보행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린다. 이 후 아이는 걷고 뛰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저 잘 먹고 잘자고 잘 놀면 되는,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시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곧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유치원에 갈 준비를 어린이 집에서 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유치원에서 한다. 중학교 들어갈 준비를 초등학교와 학원을 반복하면서 하고, 고등학교 들어갈 준비를 중학교와 학원에서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련 된 과정의 최종 목적지가 되는 대학교를 앞에 두고선 지금까지의 준비와는 사뭇 차원이 다른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바로 수험생이라는 제 삼의 존재가 된다.
 
일단 수험생이 된 사람은 공부를 하는 것 이외의 거의 모든 인간적인 활동에 있어서 예외를 허가 받는다. 또한 공부에 방해되는 그 모든 것은 가족의 배려를 통해 없어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어린이 집에서 시작되어 10년 넘게 해 온 준비의 최종 결론이 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대로 준비해서 치러내지 못하면 지난 15년의 시간은 무의미해지며 남은 수십 년의 삶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힘들지만 이 시기도 지나간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잠시간의 해방감이 있지만 우리는 이제부터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 대학이 중간 평가였다면 취업은 이제 최종 평가가 된다. 그나마 중간 평가를 잘 준비해서 온 사람들은 최종 평가에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지만 그들의 경쟁자는 중간 평가에서 자신들보다 떨어진 결과를 받은 이들이 아니다.
 
그들의 경쟁자는 바로 옆자리에서 그 자신만큼 중간 평가를 잘 준비해서 치룬 사람들이다.
 
취업 준비는 대학생 준비를 하는 시기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그나마 대학교는 순수하게 공부를 하면 되었지만 취업은 이제 자신을 노동시장에서 매우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교과서와 참고서를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하고는 다르다.
 
아무튼 그것도 어떤 식으로든 준비가 된다. 중간 평가를 잘 받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반대로 못 받은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한다.
 
대학 졸업을 하고 최종 평가를 치른 후 직장을 가진 이들은 이젠 좀 다른 성격의 준비를 해야 한다. 바로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결혼이 이 모든 준비의 마지막 목표는 아니지만 취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또 이 결혼이다. 특히나 남자보다는 여자의 입자에서 든든한 경제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나머지 삶을 결정짓는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엔 대학교까지 준비해서 취업까지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잘 맞지 않는 배우자나 혹은 신뢰가 없는 배우자를 얻어서 삶을 피폐하게 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반대로 인생 한방 역전처럼 어떤 삶을 살았던 간에 배우자 하나 잘 만나서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사람도 존재한다.
 
아무튼 이렇게 중요한 결혼을 하려면 바로 돈이 필요하다. 그나마 직장은 준비해뒀으니 배우자가 될 이를 만나서 같이 살 집과 기타 등등 모든 비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부터는 노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준비할 시간은 너무 짧은데 기대치 수준은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에서 남자는 많은 힘든 상황을 겪는데, 바로 그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돈 벌 시간을 너무 적게 주는 반면, 받을 수 있는 돈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 준비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타고난 이들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의 머리가 똑똑하게 태어나서 그 많은 중간과정에서의 준비에서 늘 승자 쪽에 설 수 있었음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는 왜 자신은 부자 집에 태어나지 못했는지를 한탄하기도 한다.
 
똑똑한 머리를 타고나는 운명은 당연하고 돈 많은 부자 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운명은 불평등하다고 느낀다.
 
아무튼 이 준비 역시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결혼과 함께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리고는 곧 아이를 낳아 키울 준비를 한다. 지금까지 준비도 피를 말렸는데 양육 역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할 준비이다.
 
그리고 열심히 그 자신이 수십 년간 준비해 온 과정을 반복할 아이를 낳아서 어린이 집에 보내고,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보낸다. 아마도 이 아이는 그 부모가 밟아 온 삶을 반복하면서 또 그 자신을 반복할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할 것이다.
 
힘들었지만 대충 아이를 키우고 나면 결혼을 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자신이 부자 집에서 태어나지 못해 결혼 준비에 힘들었던 것을 자녀에게 반복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이가 크는 동안 열심히 돈을 번다. 또한 여기에 더해서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돈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니 취업 후 이어지는 모든 과정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어떤 면에서 그 외 나머지는 사치에 가깝다.
 
이렇게 열심히 돈을 준비하면서 살고 나면 비로소 중 장년 층이 되어 은퇴를 해야 할 시기가 된다. 그리고 사회는 늙고 몸 값이 비싼 사람은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대충 그나마 돈을 조금이라도 더 얹어줄 때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만약 그 동안 운이 좋았다면 충분히 은퇴 자금을 마련하고 자녀를 결혼시킬 자금도 넉넉하여 정말로 은퇴 후 은퇴한 삶을 즐기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니 은퇴 후엔 다시 또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이젠 자영업을 준비한다.
 
하지만 자영업은 그 동안의 준비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야말로 진정한 진검 승부의 시대.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거나 서투르면 금새 어렵게 마련한 사업자금 밑천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그 자신의 나머지 삶은 언제라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래도 어디에서 온 자신감이지 몰라도 자신이 열심히 하면 잘할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의 실패를 분석하고 잘 될 것 같은 사업 아이템을 열심히 검색한다. 그리고는 결국엔 닭 집을 차린다.
 
닭 집이 성공하냐 않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어느 날 그 닭 집마저도 운영하기 힘들 정도로 늙게 되어 진정한 의미의 은퇴를 하고 나면 이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첫 번째 은퇴 후 바로 은퇴 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좀 더 일찍, 돈이 부족해서 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좀 나중에 온다. 시기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이젠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봐야 할 시기가 오는 것이다.
 
문제는 60년 이상의 삶을 살아왔고 그 시기에 20년의 교육을 받으며 30년의 사회 생활을 하면서 수 많은 인간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준비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왜 사는지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으니 여기에서 갑자기 준비하면서 살던 삶의 패턴이 마지막 벽을 만나게 된다. 이젠 더 이상 준비할 것이 없다. 즉 삶의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지금까지의 대답은 모두 준비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한가지로 답이 되곤 했는데, 늙어보니 이제 준비해야 할 것은 죽음밖에 없다. 그런데 이 죽음은 도저히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해야 하니 상조를 가입하고 회비를 납부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진정한 의미의 준비는 아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고 준비해 왔다면 노후에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지만 인생은 가정법이 통하지 않는 단 방향이다. 즉 한 번 살고 나면 다시는 반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었다고 자평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삶이 너무도 아쉬워서 후회의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몰라도 우리는 단 한 번 사는 삶이기에 다른 삶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만족을 해도 그것은 단지 그 삶만을 살아봤기 때문에 그렇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물론 그것 역시도 아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에 딱히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오늘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또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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