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인간 분류 - 4편. 그외의 사람들

아이루다 2014. 7. 12. 16:58

 
지난 세 편의 글을 통해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분류를 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인간은 더욱 더 그런 편이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 분류에 모든 사람들이 속하는 것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오늘은 그 분류에 속하지 않은 예외가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이것을 예외사항이라고 해도 좋고 소수 계층이라고 해도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분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세 개의 계층에 속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과는 아주 다른 종류의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사람의 특징을 규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조금 색다르게 조합된 것뿐이다. 이제부터 천천히 그 특이한 조합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일단 첫 번째 부류는 바로 남을 이용할 만큼 똑똑하지는 못하지만 타고난 환경이 매우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환경은 주로 돈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부모가 대 그룹 회장이라든가 혹은 가지고 있는 빌딩이 수십 채 되는 일명 알 부자집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그리 똑똑하지는 못한 자식일 경우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혹은 나름 똑똑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기에 노력을 하지 않아서 결국엔 비슷한 결론이 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거나 다양한 인간을 만나서 간접적인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그냥 타고난 대로 자신의 주변 상황에 만족하고 그 안에서만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그럴 기회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타인의 어려움이나 타인들이 경험하는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하게 낮게 된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기에 왕따가 되거나 다른 이들에게 잊혀지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가끔 있다. 다른 말로 존재감이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누구나 그것을 원하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즉 돈이 많기 때문에 그 돈이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꼬이게 된다. 물론 여기에서 당사자는 공감능력 부족으로 인해 사람에 대해 잘못 판단하여 많은 손해를 입기도 하고 심지어 배신을 당하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손해는 그리 크지 않다. 여기에서 괜히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회사를 운영하거나 이상한 곳에 투자만 하지 않는다면 물려 받은 재산으로 평생을 호의호식하고 살다가 죽을 때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가지고 있는 돈을 불리고 싶다고 해도 돈을 조금 써서 자신보다 훨씬 똑똑한 자산 관리사에게 맡기면 알아서 재산을 불려주기 때문에 평생 그런 골치 아픈 문제로 고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잘 먹고 잘 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만족되는 것은 아니니 분명히 다른 성취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끝없는 욕구나 혹은 비싼 차나 명품 그리고 비싼 와인을 즐기는 등의 특별한 취미 등에 유달리 집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돈으로 그 모든 것이 만족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극이 없는 삶으로 인해서 두뇌 발달이 촉진되지 않아 평생을 중학교 수준의 정신 상태로 보내는 경우도 발생한다.
 
두 번째 부류는 능력이 적당히 좋게 태어났으나 타고난 환경이 평범한 이들이다. 같은 수준의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좀 더 좋은 교육과 기회를 통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그런 행운이 있는 이들은 그리 흔하지 않다. 반대로 아주 취약한 환경에 태어났다고 해도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힘들지만 자수성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조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불안함과 기복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엔 이득을 어떤 경우엔 손해를 보는 경우가 계속해서 반복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것은 거의 이득을 보기엔 타고난 능력이 부족하고 또한 늘 손해만 보는 어리석음만 가득 찬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손해보다는 이득을 얻는 경우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이득을 좋아하기 보다는 손해를 기분 나빠하는 일이 더 많아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계층의 사람들도 그 손해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따라서 두 분류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손해에 민감하여 평소 정말로 열심히 이득을 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지만 결국엔 손해를 보면서 불행함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손해를 바라보면서 슬퍼하긴 하지만 최대한 그것을 받아 들이려고 하며 최대한 현실에 순응하려고 하는 부류이다.
 
두 부류로 나누었다고 해도 이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물로 그 밑의 이용만 당하고 사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좀 더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동경하는 이용하고 사는 사람들은 따라가지 못해서 일반적으로 행복보다는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당사들의 불행은 결국 이들의 삶의 방향을 강요하게 되는데, 바로 자신은 어쩔 수 없었더라도 자신들의 자녀만큼은 자신 이상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그래서 소득대비 교육비에 투자하는 비중에 매우 높고 그럼으로 인해 현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믿고 살아가게 된다.
 
또한 실제로 가진 능력에 비해서 큰 욕망을 지닌 이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벗어나 상위 계층으로 가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면서 평생 그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이들은 치열하게 살고 열심히 살아가게 된다. 또한 그런 배경으로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자신이 유리한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에 목소리가 가장 크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이들이 마치 우리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이 그런 희생과 그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그들의 욕망을 잘 이용해서 더욱 더 많은 이득을 챙겨가게 된다. 중하위층이나 최하위층에 속한 이용 당하는 사람들은 가진 것도 적고 쥐꼬리만한 복지 혜택이라도 얻지만 이들은 그런 행운 조차도 없어서 결국 평생을 걸쳐 불안함과 싸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복지 혜택을 바라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이것은 마치 아주 예쁜 얼굴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지만 적당히 예쁘고 몇 개의 단점이 있는 얼굴의 주인과 같다. 보통 성형수술은 이런 상태에 놓은 사람들이 주로 한다.  아주 예쁘거나 원래 못생긴 사람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만족하거나 포기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은 사람들은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수술해주고 돈을 버는 사람은 바로 상위 층에 속한 의사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당사자를 무척 힘들게 한다. 그래서 이들 중 아주 특별한 해결책을 찾는 이들은 아예 욕망을 자극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 전원 생활을 하기도 하고 귀농을 하여 농사꾼이 되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부류는 바로 종교와 같은 강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현시대에는 신념이라고 하면 거의 종교적 믿음이 다일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 공산주의와 같은 체제에 대한 신념을 가진 이들은 드물기 때문이다.
 
종교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언뜻 보기엔 타인들과 좀 분리된 사고방식과 패턴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보이는 얼굴엔 그것이 위선이든 아니든 미소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류는 실제로 존재하는 부류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가상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이들 역시도 모두 지금까지 설명한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단지 이들의 경우엔 다른 사람들이 없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일단 종교가 가진 도덕심이다.
 
앞의 글에서도 도덕심이 얼마나 사람을 다르게 하는지에 대해서 말했기 때문에 딱히 더 도덕적 양심의 중요성을 설명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모든 종교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믿는 신이 말한 도덕심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신이 정한 도덕적 기준에 맞춰서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끝없는 자기 합리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오랜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만들 수 있는 자기 합리화 논리를 종교를 통해서는 고해성사와 같은 행동 하나로도 마련할 수 있다.
 
이것은 그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앞에서 말했듯 너무 쉽게 자신을 용서하거나 인정해버리게 되면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질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정신적인 발달이 둔화되고 결국엔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모든 체계가 성장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비록 중학교 수준의 정신세계는 벗어났다고 쳐도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좀 더 높은 정신세계엔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문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무튼 이들은 그 자신들이 일반적 인간의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착각을 통해 가상의 부류를 만들어서 그들끼리를 따로 묶는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대한 착각의 시작이 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자기 부정의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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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해서 총 네 편에 걸친 인간 분류의 글을 마친다. 네 편의 글을 통해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부류가 나눠졌으나 간단히 정리하면 우리 인간의 부류는 능력, 환경, 욕망, 양심 이 네 개의 조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욕망을 능력을 통해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행복하고 싶다면 능력과 욕망을 동일하게 맞춰야 한다. 혹시 욕망이 큰데 능력이 부족하다면 노력을 하고 노력을 해도 잘 안 된다면 능력이 안 되는 것이니 욕망을 낮추면 된다. 하지만 욕망을 낮추는 것도 능력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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