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화 '해무' 감상문

아이루다 2014. 8. 27. 20:58

 
제목이 꽤나 직설적이다.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명백한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을 테니 혹시나 영화를 볼 계획이 있는 분이 볼까 봐 신경 써서 제목을 정했다. 보실 분은 절대로 글을 읽지 않길 바란다.
 
3일간의 휴가 마지막 날, 근처 CGV에서 12시 40분에 상영하는 영화 '해무' 를 보았다. 포스터만 봐도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 스물 스물 일어나는 이 영화는 김윤석이란 배우와 비록 감독은 아니지만 제작자로써 참가한 봉준호 감독의 이름만으로 내가 영화관에 가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물론 최근 설국열차로 인해서 봉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인의 추억을 연출한 그를 높게 평가한다.
 
내가 영화 자체를 본지가 벌써 1년이 다 되가는 듯 하다. 마지막 본 영화가 변호인이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영화 '해무'는 한 척의 고기배에 탄 몇 명의 선원과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돈벌이, 중국으로부터 오는 조선족 밀항을 돕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주절주절 줄거리 소개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고 이 영화에 대한 아주 일반적인 평가를 하나 소개해 보겠다.
 
이 평가는 영화를 보고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젊은 두 여자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나온 평가이고, 나는 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우리나라 관람객 중 많은 분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을 찾았다.
 
영화를 본 한 여자는 이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친구들이 보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봤는데 도대체 왜 이 영화를 찍었고 또한 상영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왜 죽는지 이해도 안가는 데 많은 사람들이 죽고, 영화 전개 역시도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것 투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말을 하면서 이 영화를 본 것이 매우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명확하게 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여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숨겨진 잔인함을 보여주려는 영화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참 재미있게 들렸는데, 마치 그 말은 어디선가 그녀가 읽은 듯한 기사를 그대로 말해주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전혀 공감 없는 기사 외워서 말해주는 것을 옆에서 들을 때 꽤나 재미난 구석이 있다.
 
아마도 영화를 본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첫 번째 여자와 비슷한 관람평을 할 것이다. 또한 소수의 어떤 분들은 두 번째 영화평과 같은 의견을 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젠 나의 관람평을 써 보겠다.
 
해무의 초반 전개는 생활에 찌들린 선장과 선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일단 무겁게 시작한다. 물론 약간의 유머 코드가 있어서 아주 가끔 웃기긴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중반에 해무가 바다를 온통 채우고 어떤 우연한 사고가 겹치면서 밀항하는 사람들 모두 한꺼번에 죽은 순간부터 완전히 변신을 한다.
 
그리고 그 후로 벌어지는 선장의 판단과 이후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선원들간의 갈등이 겹치면서 결국 파국의 결말을 보여주고 끝난다. 그래도 감독이 좀 미안했는지 마지막 장면엔 6년 후란 자막과 함께 누구의 아이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끝을 낸다.
 
지금 기억해보면, 나는 아마도 중간쯤부터 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슬며시 느껴졌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나 혼자의 상상이긴 하지만 어차피 감상평이니 적어보도록 하겠다.
 
아마도 그것은 선장인 김윤석의 역할로 인해 가장 잘 들어나는데,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집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영화 속에서 선장은 당연히 선장으로써 배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이면서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다. 물론 이렇게 쓰면 꽤나 멋들어진 결말 같지만 실제로 영화 속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그건 모비딕을 잡으로 다니는 선장과 같은 광기였다.
 
거기에 나오는 선원들 중, 선장에 충성을 다하는 것에 집착하는 갑판장과 어떤 여자든 상관없이 무조건 섹스에 집착하는 선원, 선과 악에 대한 아무런 판단 없이 돈에 집착하는 선원 그리고 우연히 만난 조선족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여자에 집착하는 선원이 나온다. 내가 배우들 이름을 잘 몰라서 선원으로 표현했는데, 김윤석 외에 이름을 아는 사람은 기관장으로 나온 문성근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성근은 죽은 자들에게 집착했다. 아니 양심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각자의 인물은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지키거나 얻기 위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한다. 선장은 배를 지키기 위해서, 여자만 보면 벗기려 다는 선원과 그로부터 조선족 여인을 숨기려고 노력하는 또 다른 선원, 사고로 죽은 조선족들의 유품에 집착하면서 경찰에 알리겠다는 소리를 하다가 선장에게 죽은 기관장은 죽은 자의 유품을 모으다가 죽는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돈에 집착하는 선원은 문성근이 숨겨둔 돈을 찾아서 챙긴다.
 
이 영화는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꽤나 불쾌한 영화이다. 여기에서 조선족 여인을 좋아하는 가장 나이 어린 선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우리가 인간적 가치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전혀 보여지지가 않는다. 그날 그 배위엔 오직 각자가 가진 광적인 집착에 대한 이야기만이 보여 진다.
 
비록 사고지만 수 십 명이 한꺼번에 죽는 사건과 그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도 매우 불유쾌하다. 실제로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서 토막을 내어 바다에 버리는 광경은 결코 쉽게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불만인 점은 바로 감독이 집착에 대한 주제에 대해 너무 집착한 듯 전체 이야기 흐름과 개연성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한 전개로 인해서 흠을 잡히기 충분했다.
 
이미 이야기 자체가 기분 나쁜데 영화 완성도도 떨어지니 사람들 중 누가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을 하겠는가? 겨우 해봐야 또 한 여자의 말처럼 인간 본성의 악랄함을 표현했다는 것과 같은 뻔하고 뻔한 평가를 내릴 것이 뻔하지 않는가?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것이 있을 때, 그것이 비록 정말로 쥐꼬리만한 이유라고 해도 존재하면 그것을 핑계 대고 전체를 욕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손으로 달을 가리킬 때 손을 보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달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리키는 손톱에 낀 때를 보고 욕한다.
 
그래서 영화 '해무' 는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욕을 먹을 것이다. 그 영화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관객에게 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부족한 완성도는 결국 비난의 틈을 만들어 주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제목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해무' 이다. 말 그대로 바다 안개. 나는 배를 많이 타보지는 못했지만 바다 안개가 끼었을 때 배 안에서 느껴질 그 느낌을 상상한다. 그것은 아마도 수 십 킬로미터를 짙은 안개 속을 뚫고 운전대를 잡고 있었었던 나의 과거 경험에 비해서 절대로 덜하지 않은 공포를 가져올 듯 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어둠이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 것도 그 이유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목이 해무인데도 해무에 대한 공포심이 별로 들어나지 않는다. 분명히 이 모든 사건은 해무가 끼면서 시작되지만 해무는 이 영화에서 너무 그 역할이 약하다. 기껏해야 영화 후반부에 다른 배와 부딪혀서 가라앉게 만드는 정도랄까?
 
그것을 제목으로 정했다면 좀 더 강한 의미를 가졌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축축하고 소름 끼치는 어떤 느낌 이길 바랬다. 그래서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이런 장면을 넣고 싶다.
 
밤에 흔들리는 백열등 아래 모인 선원들 술자리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선원이 가장 어리고 미숙한 선원에게 자기가 만났던 해무에 대한 기분 나쁜 공포를 추억하는 장면 말이다. 그리고 그 후로 이 선원은 해무가 끼는 날엔 미칠듯한 공포를 느낀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라면 문성근이 그 대사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가 나중에 갑자기 미친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개연성이 훨씬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해무가 끼기 시작한 바다에서 선원들은 지난 밤에 들었던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공포에 사로 잡혔다면 이후 벌어지는 그들의 광기 어린 집착과 행동은 정말로 많은 힘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성근은 유품에 대한 집착이 아닌 해무로부터 온 공포에 대한 집착이었어야 했다. 그래야 전체적인 집착이 잘 맞아 떨어지고 더해서 영화도 많이 전개가 부드러웠을지 모른다.
 
물론 이 영화에서 매우 마음에 드는 장면도 있다. 그것은 한 바탕 피의 회오리가 지나간 후 구석에 숨어있다가 문성근을 죽음을 목격한 막내 선원과 조선족 여자가 바로 그 자리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이다. 인간이 공포와 절망에 빠질 때 과연 우리가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매우 교과서적인 장면이었다. 물론 이 감독이 이런 장면을 처음 선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것은 꽤나 좋은 일이다.
 
요즘 한국 영화들이 꽤나 많이 개봉 중이다. 군도, 해적, 명량, 해무까지 꽤나 굵직굵직한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이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들 중 나머지 세 개와 해무는 영 다른 작품이다. 이 영화는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 만든다. 비록 표현의 서투름과 개연성 부족 더해서 장면 연출 능력까지 떨어져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가장 영화다운 영화이긴 하다.
 
너무 흠만 잡은 것 같아서 뒤늦게 칭찬을 하자면, 배우들 연기는 꽤나 괜찮았고 특히 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낸 배인지 모를 이 고기배의 모습은 정말로 존재 자체가 기분 나빴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을 쓰자면 선장 역으로 나오는 김윤석씨의 연기가 조금 미흡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선장은 그 배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심하게 미친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그리 그렇게 심하게 미친 사람이기보다는 살기 위해서 매우 현실적인 계산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마지막에 배를 살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때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참 미묘한 부분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광기가 좀 더 강하게 터져 나와서 스크린 전체를 지배했다면 정말로 많은 단점이 감춰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그 정도 광기 연기는 최민식씨 정도나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왜군으로 무찌르러 가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몇 년에 한 편 정도이지만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이런 류의 작품이 개봉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 스스로 매우 따뜻하고 착한 존재라고 믿고 싶어한다. 우리는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가 안전한 공간에 머무르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그 밝고 아름다운 세상의 지하에 어디선가에는 프레온 가스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죽음이 있고 그것을 힘겹게 토막 내서 치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가 믿는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영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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