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두 개의 자아

아이루다 2014. 8. 11. 18:40

 
인간은 보통 스스로 꽤나 확고한 단 하나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평생을 살아간다. 물론 어떤 이들은 늘 혼란스럽고 스스로 결정하기 힘든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두 개의 자아를 가진 해리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두 개 이상의 자아는 정신병으로 취급이 된다. 그것은 한 몸에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다른 이들에게 어떤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면 하나의 자아라고 믿고 있는 존재가 우리 전부를 대변하는 상황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인지하기도 힘든 그 어떤 존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걸음을 걸을 때 귀로 음악을 듣고, 눈으로는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또한 피부로는 바람을 느끼고 머리 속으로는 내일 있을 데이트를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다 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어떤 존재는 우리가 걸을 때 제대로 걷게 해주고, 우리가 말을 할 때 혀와 입 모양을 알아서 움직여주어 정확한 음절을 발음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빛이 반사되어 오는 파장이 눈으로 도착해서 뇌로 전달될 때 우리가 인지할 틈도 없이 이미 사물의 모습을 각각 분리시켜 준다.
 
이것뿐이 아니다. 실제로 자신을 조금만 유심히 관찰해보면,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행동은 바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존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존재를 '무의식'이라고 부르고, 원래 자신이라고 알려진 부분을 '의식'이라고 칭한다. 하는 역할로 보면 의식은 무의식에 비해 너무 작은 영역을 담당하지만 무의식은 스스로 인식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의식'만이 자신을 정의하는 모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보통 '자아', '자신' 이라고 말할 땐 의식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다. '나는 학생이다' 라는 말을 할 때, 이것은 두 개의 관점이 있다. 하나는 이 말이 전달될 때 사용되는 공기 진동의 의미와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진동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이다. 보통 소리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귀를 통해 인식한다. 하지만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한글을 알아야만 한다. 한국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 진동은 그냥 소음일 뿐이다.
 
여기에서 무의식은 소리를, 의식은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소리보다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니 당연히 의식이 무의식보다 중요하고 그래서 나를 대표하는 후보로써 더 높게 평가된다.
 
초당 인간에게 전달되는 외부 정보는 약 천백 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우리가 의식하는 정보는 약 40개 정도 된다. 그럼에 불구하고 우리는 40개를 뺀 나머지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바로 무의식이 알아서 모두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의식보다 의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개로 나뉜 자아를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알기 위해서는 생물의 진화적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듯 하다.
 
곤충을 보면 그들이 우리가 믿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는 힘들다. 그들은 매우 본능적으로 산다. 그렇다면 그들보다 좀 더 발달된 개체들은 어떨까? 인간의 지능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침팬지나 범고래와 같은 동물들은 매우 발달된 사회 시스템과 사냥 기술을 가지고 있고 도구도 사용하며 장난도 친다.
 
이들에게도 의식은 존재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자신이 침팬지나 범고래가 돼보지 않는 이상 알아낼 방법은 없다. 단지 여기에서 유추 가능한 것은 진화적 관점에서 봤을 때, 고등 동물로 발전할수록 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령 인간만이 유일하게 의식을 가졌다고 해도, 우리가 지구상 동물 중 지적 능력으로는 최고로 발전된 것이니 적어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의식과 의식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무의식은 보통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위험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응대를 하며 그래서 당장 현재만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언제든 그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아무리 안전한 사회라고 해도 우리가 생명을 잃을 가능성은 늘 존재하는 것이다.
 
무의식은 그래서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끝없는 정보처리를 해야 한다. 이것을 만약 의식적으로 하다간 우리는 머리가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감시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걷고, 말하고, 자고, 먹는 모든 과정은 생존에 관련된 문제이다. 또한 이것들을 위해서 우리는 정말로 많은 것을 자동으로 해낸다. 그리고 이 자동화 시스템이 바로 무의식의 역할로 가능해진다.
 
의식은 반대로 매우 느린 의사 결정과정이다. 대신 의식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우리가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한 방법을 찾는데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의식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미래의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나가는 방향성을 세울 수 있다.
 
이것을 간단히 말하면, 무의식은 현재를 생존하게 해주고, 의식은 미래의 생존가능성을 높여준다고 설명할 수 있다.
 
진화적 관점에서 어떤 동물들은 어느 정도의 미래지향적 삶을 살긴 한다. 겨울이 되기 전 떠나는 철새나 겨울을 대비해 도토리를 감추는 다람쥐의 행동은 그것이 의식인지 본능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보다 더 하등 동물에 비해서는 훨씬 계획적이긴 하다. 즉, 진화된 생명체일수록 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이 말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중에서 무의식이 먼저 발달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역시도 과거의 우리 조상에 비해서 의식이 훨씬 더 발달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바로 수 만년 전에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전에 우리 인간은 동물의 삶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으며 주로 무의식적인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식은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있어서 꽤나 최근에 나타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식은 목표를 가질 수 있게 해주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엄청나게 높여줬고, 그로 인해서 우리 인간은 장기적 생존이란 큰 난제를 해결해 낼 수 있었다.
 
이렇듯 의식은 비록 느린 의사결정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이득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날아오는 돌을 피하는 것은 무의식이 관장하지만 계속 날아 오는 돌을 막을 담을 쌓는 것은 의식이 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담을 쌓아둠으로써 거의 영구히 날아 오는 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낸다.
 
또한 이런 의식의 발달은 우리에게 무의식이 더 자주 활동하는 것을 막고 의식적 행동을 좀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즉 늘 사방에 적이 있는 환경보다 담이 있고 경찰이 있는 환경에서 우리는 좀 더 안전하게 의식적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아마도 이것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을 때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자기인식' 이며 현재는 철학이라는 하나의 분야로써 발전해 온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은 무의식이 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의식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군가 자신에 대해 어떤 질문을 가지는 자체가 바로 의식 활동의 결과이니, 당연히 그 답을 내는 것도 의식적인 결과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말은 '나는 누군가' 를 물었을 때, 그 답을 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의식에 의한 결과라는 뜻이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의식을 자신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무의식과 의식의 관련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쉽게 구구단을 외우는 과정으로 보자.
 
일단 우리가 구구단을 외우려면 열심히 반복적으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우리는 몇 곱하기 몇에 대한 답을 생각할 필요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즉 무의식적은 대답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듯 의식은 정보를 얻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무의식은 우리가 유전적으로 타고난 선천적 정보 이외에 의식이 반복적으로 주입시킨 정보를 이용해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은 매우 훌륭한 동반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직 의식의 범주에서만 인정한다. 그 이유는 보통 우리는 무의식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엔 무의식에 의해 결정된 내용 조차도 그것을 의식이 결정했다고 믿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의지도 아닌데 뭔가 이루어 진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말에는 우리가 이성을 잃었을 때 표현하는 말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의식이 주도권을 잃고 무의식이 우리를 주도할 때 나타난다. 또한 잠을 잘 때는 완전히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무의식적 행동조차도 의식을 통해 해설하는데 매우 익숙해져 있다. 뭔가 피부가 따끔하면 바로 손바닥으로 그 부위를 내려치는데 거기까지는 완전히 무의식이다. 단지 치고 나서 우리는 그곳에 모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모기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내려친 동작과 모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려친 동작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의식의 착각에 비해서 무의식은 인식되지는 않지만 딱히 설명될 이유도 없으니 그냥 그대로 존재한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어떤 우리가 한 행동을 잘못 해석하는 것은 오직 의식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바로 우리를 거대한 착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의식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무의식이 한 행동을 분석하고 행동하려니 뭔가 삐뚤어진 듯한 느낌이 나는 것이다. 분명히 자신에 대해 이런 저런 정의를 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보니 자신이 믿는 그런 것은 전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흔하다.
 
실제로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 이런 착각을 많이 한다. 정말 자신이 행복한 것과 누군가 그것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알려준 것 사이에서 우리는 혼란을 느낀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자신이 행복한 것이지 남이 알려준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행복은 무의식적이며 남이 알려준 행복은 그저 정보일 뿐인 의식적인 것이다. 행복한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 그냥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착각으로 인해서 우리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잘못 설계해서 결국 후회스러운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의식이 무의식을 잘못 해석해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무의식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많이 진척되지 못했다. 우리가 무의식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0년의 역사도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흥미롭게 연구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자신이라고 믿는 의식의 존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 역시도 좀 더 안전해지고 좀 더 편안한 환경에 놓일 수록 무의식적인 삶으로 되돌아 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자극에 대한 반응을 하는 동물처럼 사는 삶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의식은 느리고 비용이 비싼 활동이다. 그것은 에너지도 많이 쓰며 따라서 오래 의식적인 활동을 하면 몹시 피곤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의식적 활동은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즉, 이것은 가능하면 우리는 무의식적 삶을 선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말했듯 의식은 미래를, 무의식은 현재를 담당한다고 했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무의식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아마도 인류의 미래는 아주 소수의 의식의 자아가 발달된 사람들과 다수의 무의식적인 자아로 살지만 자신은 의식적으로 믿는 사람들로 나뉘어서 발달될 듯 하다. 어떤 쪽이 더 나은 삶인지는 가늠할 수 없다. 단지 착각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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