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당신은 필요한 사람입니다

아이루다 2014. 8. 14. 16:02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런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하나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를 가게 되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노래 중 하나인데, 가사 내용을 들어보면 꽤나 좋다.
 
특히 정서적으로 힘들고 많이 지친 이들에게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불러주는 이런 류의 노래는 그들의 손이 향하는 당사자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가사를 조금은 바꾸고 싶다. 좀 더 현실적인 언어로.
 
내가 개사를 하고싶은 부분은 바로 '사랑 받기 위해' 라는 부분인데, 이것을 '사랑 받을 가능성을 가지고' 라고 바꾸고 싶다. 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만약 신이 있어서 정말로 인간들 모두를 사랑한다면 더 이상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할 필요는 없고, 단지 신이 혹시라도 없다면 그것을 대비해야 할 때 필요한 것이리라.
 
혹시나 신이 없다고 해도 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진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의 부분이지 사랑에 대한 부분은 아니다. 왜냐하면 꼭 신이 사랑해주지 않아도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는 보통 신의 사랑보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더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사랑 받게 되는지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쉽게 갖출 조건은 바로 외모, 지적 능력, 신체적 능력, 탁월한 친화술 정도일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뛰어난 외모는 그 당사자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여자가 좀 더 크겠지만 남자 역시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요즘 같이 방송이 발달한 시대엔 외모의 능력은 대단한 영향을 발휘한다.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가진 이들도 스포츠 스타로써 성공하게 된다면 다수의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이 역시도 프로 스포츠가 많이 벌어지는 요즘 시대를 생각해보면 금새 이해가 간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이들은 비록 외모와 신체적은 운동 능력을 가진 이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다른 이들의 경외심을 받거나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사랑을 받는다는 측면에서는 약하지만 그래도 사람에 따라서 아인슈타인처럼 대중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탁월한 친화력을 가진 이들은 앞에 세 경우에 비해 능력이라기보다는 성격에 가까워서 분명히 그 범위는 좁게 나타난다. 하지만 단지 팬의 입장에서 자신의 우상을 사랑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이 받는 사랑은 훨씬 현실적이다. 그래서 숫자는 적어도 깊이는 깊을 수 있다.
 
이런 특징을 가진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투자에 비해서 커다란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이들은 전체 인간들 중에 0.1%도 채 안 된다. 실제로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는 먼산 바라보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일반인들 중에서 다른 이의 사랑을 받을 수는 가장 범용적인 원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단 자신의 이득을 최대한 포기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이들과 관계를 맺을 때, 이득을 조금이라도 더 얻는 사람에게 끌린다. 물론 예외는 분명히 있지만 보통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니 본인이 특별할 다른 능력이 없고 타인의 사랑도 받고 싶다면 일단 많이 양보해야 한다.
 
물론 양보를 하면 그것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하는 것을 계속하면 꾸준히 그 당사자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리고 언제간 모든 것을 다 양보하게 되면 어떤 경우엔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여 앞에 언급된 특별한 사람들만큼이나 커다란 사랑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반대로 자신의 이득을 챙기면 챙길수록 사랑을 해주는 사람들은 줄어든다. 그리고 극도의 이기심을 발휘하게 되면 주변엔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여기에서 머리가 좋은 이들은 이득을 챙기면서도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감정이 변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그들에게 어떤 이득을 얻었을 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그것의 쉬운 예가 남녀를 소개시켜 주는 일이나 직장을 소개시켜 줄 때 같이 어떤 기회나 정보를 전달해주는 행동을 하면 된다. 나에게 소용없는 기회나 정보가 어떤 다른 이들에게는 커다란 기회이거나 중요한 정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산 능력이 뛰어난 이들은 이것을 참 잘한다.
 
아무튼 여기까지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실망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나진 못했어도, 태어난 모든 이들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것보다 먼저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으면 이것은 거의 절망에 가까운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는 적어도 그 자신이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필요한 존재 이길 바란다. 그것은 인류 전체이거나, 나라, 사회, 직장 그리고 적어도 가족에게 만큼이라도 필요한 존재이고 싶어한다.
 
물론 살아가다 보면 도대체 왜 저런 존재가 세상을 살아가는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각종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술을 마시고 온갖 난동을 피우고, 도박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고, 여자나 남자 문제에 지저분하게 얽혀서 삶을 낭비하고, 온갖 데에서 진상 짓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차라리 없는 존재만 못한 이들도 과연 필요한 존재들인가?
 
당연히 필요한 존재이다.
 
선한 자는 악당이 있기에 선한 자로 인정 받는다. 누구나 선하면 누가 선하다는 말을 쓰겠는가? 폭력적인 사람들이 있기에 비폭력적인 사람이 존재하고 도박이나 여자에 빠져 인생을 막 사는 존재들이 있기에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돋보인다.
 
가게엔 진상 손님이 있기에 보통 손님이 친절한 대접을 받게 된다. 또한 가게 주인 중에서 불친절하고 진상 주인이 있기에 손님들은 서비스가 좋고 친절한 가게를 선호한다. 과연 나쁜 쪽이 있다면 좋은 쪽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세상에서 살인과 강도와 같은 급이 높은 범죄가 사라지게 되면 도둑질을 하는 이들이 가장 악랄한 악당이 된다. 요즘 같은 시대엔 워낙 흉악한 범죄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냥 집을 털어가는 좀도둑은 상대적으로 착해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가치 기준은 상대적이며 누구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절대적으로 선한 이도, 절대적을 악한 이도 없다. 선한 자가 많아지면 선함에 대한 판단 기준점이 높아져서 결국 선한 이들의 숫자는 그대로 유지된다. 반대로 악한 이들이 많아져도 악한 이들에 대한 판단 기준점이 더욱 험악해져서 제대로 나쁜 놈들만이 나쁜 놈들로 판단된다.
 
이런 상황이니 그 존재가 나쁘든, 좋든 그 필요성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혹시 회사에 진상 동료나 정말로 또라이 같은 상사가 있다면 그 사람으로 인해 엄청 힘들겠지만 또한 그 사람들로 인해 다른 이들이 같은 의견을 내고 그 사람을 적으로 삼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동료애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서 다른 평범한 이들이 착하고 괜찮다는 평가를 받들 수도 있다.

 

인간만이 그런 것도 아니다. 벌레도 새도 말도 소도 개도 다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도 필요하고 곰팡이도 필요하다. 이 지구상에 그리고 더욱 확대되어서 이 우주에 불필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세상은 그렇게 많은 것들이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흔한 역할로 인해 그 존재가 없어졌을 때 미치는 파장이 무척 작다는 점이다. 정말로 악랄한 악당이 사라진 세상이나 성자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선한 이들의 죽음은 세상에 큰 울림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죽음은 거의 아무런 표가 안 난다.
 
여기에서 누군가의 부재가 가져오는 울림은 바로 그 존재가 얼마나 필요했느냐에 문제가 아니라, 그 존재가 얼마나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냐 이기 때문이다. 그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울림의 진폭은 커지게 되고 반대로 그 존재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환희의 진동을 얻는다.
 
평범한 우리 대부분의 필요성은 쉽게 대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진실이 있다. 이것은 바닷가 모래알 하나하나 역시도 모두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지만 그 모래알이 너무 많다는 것 때문에 모래 한 알이 파도에 쓸려 내려가도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실망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 평범한 이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느냐와 또한 얼마나 많이 필요한 사람이냐는 삶에 있어서 모두 곁가지 문제일 뿐이라는 점 때문이다. 정말로 우리 자신을 위해 중요한 것은 사랑 받거나 필요해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동안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것이 진정한 그 존재에 대한 행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에 나타난 많은 성인들이 모두 같은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공자님도 그리고 그 후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현자들은 하나 같이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것이 시대와 위치에 따라  '자비'로 '사랑'으로 '인'으로 '도'로 표현되었을 뿐, 그 본질은 같다.
 
물론 이런 분들의 삶은 보통 사람들은 흉내내기도 힘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사랑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매우 적다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의 가장 큰 문제란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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