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는 작은 힌트

아이루다 2014. 8. 2. 07:57

 

늘 따뜻한 적도 부근엔 겨울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덥다' 라는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한번도 추위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춥다' 라는 말을 쓸 일이 없으니 그것을 표현할 단어가 불필요하고 당연히 '덥다' 라는 말도 없어야 정상이다.

 

덥다 와 춥다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마치 여름과 겨울의 차이와 같다. 그런데 이 둘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같이 사라진다. 둘은 반대 지점에 서 있지만 둘은 한 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어떤 상태나 모습을 보고 그것에 적절한 단어를 지정한 후 그 대상을 지칭하는 방식에 익숙해있다. 그래서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은 적절히 지칭하는 어휘가 있다.

 

맑은 날은 구름이 없이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이다. 흐린 날은 낮게 깔린 구름으로 인해 파란 하늘이 좀처럼 보기 힘든 날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흐린 날이 없다면 맑은 날도 없다. 반대로 맑은 날이 없다면 흐린 날도 없다.

 

초록색 바탕의 칠판에 그어지는 하얀 백묵이 지나가는 자리는 글자나 그림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이 그 선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둘의 색이 서로 대비되기 때문이다. 만약 흰 바탕에 흰 색 분필을 쓰거나 초록 색 바탕에 초록색 분필을 썼다면 아무도 그것을 알아 볼 수가 없다.

 

밤은 낮이 있기에 밤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리고 낮 역시도 밤이 있기에 낮이 된다. 이것은 어둠이 빛을 통해 이름을 얻은 것과 같다. 빛 역시도 어둠이 있기에 빛이 될 수 있었다.

 

빛은 어둠의 부재 상태이며, 어둠은 빛의 부재 상태이다.

 

이런 놀라운 진실이 단지 여기에 몇 줄 소개된 것들뿐이랴. 세상 모든 것은 모두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가 있기에 미래가 있고, 병이 있기에 건강이 있다. 싸움이 있기에 평화가 있고, 지는 이가 있기에 이기는 이가 있다. 꼴등이 있기에 일등이 있고, 정상이 있기에 골짜기가 있다.

 

돌이 부서지면 모래가 되고, 모래가 모여서 압력에 눌리면 돌이 된다.

 

이렇게 모두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는 논리와 개념을 이용해 이것들을 모두 분리 시킨다. 빛과 어둠을 분리 시키고, 돌과 모래를 분리시킨다. 병과 건강은 완전히 다른 것이고 싸움과 평화 역시도 극단적으로 평화의 편을 든다.

 

그리고 결국엔 유일하게 아무런 짝이 없는 오직 스스로 존재하는 신을 만들었지만 그 신을 통해 아무리 우리를 구원받으려고 해도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악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엔 '악마'를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이 있으니 악마가 있고 악마가 있으니 신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그 둘은 각각 지옥과 천국이 되었으며 선과 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선이 없는 악은 존재할 수 없고 악이 없는 선 역시도 존재할 수 없다.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가장 큰 것이 있다면 반드시 가장 작은 것이 있어야 한다. 우주가 가장 큰 것이라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가장 작은 것이 있어야 하고 우주가 무한대의 크기라면 그 가장 작은 것 역시 무한대의 작은 것일 것이다.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고 끝이 있어야 시작이 존재하며, 만남이 있어야 이별이 있고 이별이 있어야 만남이 의미 있다.

 

이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하나도 없어진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로 표현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언어 습관이다. 실제로 이것들은 모두 한꺼번에 표현되어야 한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싫어한다. 만약 이 둘이 만나지 못했다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만나서 서로 알게 되었기에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당연히 싫어하게도 된다. 이것이 바로 관계이다.

 

사랑하는 사람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것은 미움을 함께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미움이 사랑의 반대이며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움이 생겨나면 사랑을 의심한다. 그렇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미움이 생겨나고 미움이 생겨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미움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이 없어지고 이젠 무관심의 시간이 시작된다.

 

슬픔이 없는 세상에 기쁨은 존재할 수 없다. 고통이 있기에 환희가 있고 환희가 있기에 고통이 있다. 불행함이 있기 때문에 행복을 느끼고 행복이 있기에 불행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슬픔보다는 기쁨을, 고통 보다는 환희를, 불행함보다는 행복을 원한다.

 

하지만 슬픔과 고통과 불행함이 사라진 세상엔 기쁨과 환희와 행복 역시도 사라진다.

 

노동을 해야 휴식의 즐거움을 느낀다. 휴식만을 하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며 노동만을 하는 사람 역시도 죽은 상태가 된다.

 

이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사실을 말한다. 우리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삶이란 것 자체 역시도 죽음이 있기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존재할 수 없다. 삶이 없다면 죽음 역시도 존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살기를 원하고 죽음을 피하려고 한다. 태어남이 우리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우리의 끝이다. 시작이 없는 끝은 존재할 수 없고 끝이 없는 시작 역시도 존재할 수 없다.

 

죽음은 바로 우리가 그리 소중히 여기는 삶을 시작하게 해준 소중한 존재이다.

 

외부에 쌓은 성벽이 두꺼울수록 쳐들어오는 적을 방어하기는 쉬우나 밖으로 나가기는 어려워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외부에 쌓은 벽들은 외부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기는 하지만 그 안에 갖힌 자신은 한없이 외로워진다.

 

장점은 단점을 단점을 장점을 있게 만들고, 열등감은 우월감을 우월감은 열등감을 있게 해준다.

 

단점을 없애려면 장점을 없애고, 열등감을 없애려면 우월감을 없애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장점을 자랑스럽게 여길수록 자신이 가진 단점이 초라해 보인다. 우리가 자신이 가진 우월감을 높게 평가할수록 그 자신이 가진 열등감의 깊이는 그만큼이나 깊어진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고,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오래 올라가면 오래 추락한다.

 

기대가 있으니 실망을 하고 실망이 있으니 기대를 하게 된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자꾸 실망한다면 그것은 바로 기대를 했기 때문이며, 헛된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얼마나 잘 못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삶과 죽음은 하나인데 왜 우리는 이것을 분리하여 하나는 좋은 것, 다른 하나는 나쁜 것이라고 정의했을까?

 

여자가 없는 세상에 남자는 존재할 수 없고, 남자가 없는 세상에 여자가 존재할 수 없는데도 우리는 왜 이것을 나누어서 차별을 할까?

 

가난한 자가 있어야 부자가 있는데, 부자는 왜 가난한 자를 멸시할까? 어리석은 자가 있으야 똑똑한 자가 있는데 똑똑한 자는 왜 어리석은 자를 비웃을까?

 

이 답을 아는 자는 세상에 대한 다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이 몹시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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