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껍데기 조언

아이루다 2014. 8. 4. 08:11

 
사람은 누구나,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삶을 살아 가는 중에 어떤 어려움과 고난을 맞닥뜨리게 된다. 물론 반대로 편함과 운이 좋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늘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우리의 감정은 늘 변화한다. 즐겁다가 슬프다가 화를 내다가 행복해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의 변화는 모두 우리 자신과 그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적, 상황적, 진행적 요소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이런 생각도 한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행복하기 보다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많은 것 같다고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난 왜 더 행복하지 못하지?'
 
우리가 이런 감정을 느낄 땐, 매우 복합적인 상황이다.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우리가 보통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이 다 갖춰졌는데도 그렇게 느낀다. 또 다른 이는 대충 이야기만 들어도 그 삶이 불행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너무 뻔한 상황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럴 때 남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뭔가 자신을 치유해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책을 사서 본다. 그러면 그 안에 자신의 문제점을 말해주거나 그것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의 위로를 얻은 후 현재의 불행을 견디고 미래를 준비하거나 혹은 현재를 과감히 벗어날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것 보다 좀 더 나아가면,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의 근원에 대한 깊은 생각과 함께 좀 더 본질적인 영역으로 다가간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시간을 생각하면서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얼마나 진지하게 그것에 다가갔느냐에 따라 달렸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떤 공통의 문제점을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치유를 위해 얻는 모든 정보들에서 빠져있는 한 가지, 현실이란 녀석이다.
 
많은 책에서 우리가 힘들게 세상을 사는 이유에 대해서 말할 때, 욕망과 욕심을 이야기 한다. 비교 행복을 버리라고 하고 그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라고 한다.
 
이것은 100% 옳은 이야기이다. 행복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이렇게 되어야 옳다.
 
능력이 안되어 마음에 품은 욕망과 욕심을 채울 수 없다면 그것을 버려야 한다. 또한 역시나 능력이 안되어서 남과 비교해서 늘 좋지 않은 결론이 난다면 최대한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안보고 안 듣는 것이 유일하니 SNS 같은 것들은 안 하는 것이 좋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 '사무엘 잭슨' 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돈을 충분히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물론 이 말을 그가 정말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설득력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오래된 오우헨리 단편집에도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가 부자인 할아버지에게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할아버지는 마차를 돈으로 빌려서 그 남자가 역까지 갈 때까지 시간을 최대한 벌어주어 남자가 그 사이 옆에 앉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 역시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쓰인 수 많은 이야기에서 빼먹는 단어 하나가 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능력' 이다. 그리고 능력은 생략되어서는 안될 중요한 본질이다.
 
우리 인류는 현대에 들어와 보편적 인간의 권리와 인간 본연의 존엄성에 대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혁명과 그 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인간은 모두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권에 대한 인식은 세계 역사상 지금 시대가 가장 발달된 상태이다.
 
이것은 참 좋은 것이고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사고 방식 하에 놓이면서 착각하는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평등한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운에 의해 능력이 결정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달되는 성격으로 인해 그 다음의 운도 결정이 되어 버린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적은 노력으로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벌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 역시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에 재수가 없는 사람들은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엉뚱한 길을 가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말 그대로 확률의 문제이다. 사실적으로 말해서 머리가 좋은 사람이 머리가 나쁜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은 확실히 높다. 또한 육체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질수록 더 나은 경제적 환경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우리가 부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타고난 모든 것이 개인의 의지가 아닌 운이라는 점이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느냐는 태어나는 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빠를 결정할 능력이 없다. 또한 태어나서 성격이 형성되는 시기 역시도 우리는 거의 무아지경 상태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실제로 의식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는 20대가 넘어서이고 이땐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된 상태이다.
 
그래서 그 시기쯤 어떤 문제점을 느꼈을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앞에서 말한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다른 시야로 세상을 보는 일이다.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행복은 능력을 욕망으로 나눈 것이고 욕망이 적을수록 능력이 강할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능력이 안되면 욕망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 먹는다고 해서 좀처럼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엔 그 프레임을 깨고 세상을 다르게 보고 살아가려고 치면 도대체 어울리고 정 붙이고 살아갈만한 것이 없다. 다른 이들과의 대화는 막히고 결국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불행이다.
 
어떤 책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원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돈이 많으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고 거기에 더해서 아예 일도 안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언뜻 들으면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우리가 돈을 원하는 것이 정말로 놀고 싶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물론 세상을 좀 덜 살아 본 젊은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이들은 이런 사치도 없다. 그들은 단지 좀 덜 걱정하고 살고 싶은 것이다. 매일 매일 돈 걱정과 언제나 남아 있는 노후 걱정 좀 덜하고 살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을 사교육에 내몰지 말라는 소리도 많이 한다.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아주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과연 아이를 뛰어난 인재로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것일까? 물론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은 능력이 되기에 비싼 학원을 보내고 고액의 과외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는 혹시나 자신의 아이가 뒤쳐지지 않을까? 아니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정말로 노후의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돈의 노예가 되듯 살아가고 아이가 뒤쳐질까 바 끝없이 학원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과연 단지 욕망이라고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간 세상은 평등하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능력에 따른 서열화는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시장 원리로만 접근하게 되면 당연히 그런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들에 대한 재분배를 해야만 어떤 의미에서 어느 정도까지의 평등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대로 방치했을 땐, 결국 능력이 있는 자들은 더 많이 얻어가고 반대로 능력이 없는 자들은 덜 얻어가면서 누군가 교수 타이틀을 달고 마음을 치유하는 목적으로 쓴 책이나 누군가 방송에 나와 그럴듯하게 위로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매일매일을 버텨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힐링' , '인문학의 부재', '행복의 본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등의 그럴듯한 문구로 포장되어서 또 다른 능력자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준다.
 
특별한 사람이나 특이한 성격이 아니라면 돈이 많은 것이 돈이 적은 것보다 행복하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이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거나 특이한 성격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겠는가?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을 결심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이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거대해진 욕망에서 사로 잡혀서 산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숨겨진 문제는 욕망이 아닌 두려움인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가난해져서 폐지 줍고 살까 봐 두렵고, 노후에 아무도 없이 독고사 할까 봐 두렵고, 갑자기 큰 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조차 없어서 그냥 죽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욕망을 버리는 일은 쉬우나 두려움을 버리는 일은 정말로 어렵다. 욕망은 그나마 안보고 안 들으면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 줄지는 않는다.
 
두려움을 버리는 방법의 유일한 길은 바로 삶에 대한 다른 시선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로 고도의 정신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우리 일반인들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영역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평생 두려움에 사로 잡혀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큰 욕심을 가진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은 가진 능력보다 조금 더 원한다. 어쩌면 이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고기 집에 가서 남들보다 10g이라도 더 먹고 싶은 욕심, 그것이 우리의 작고 한 없이 어리석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욕망이다. 그래도 이것은 좀 버리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두려움은 다르다. 우리가 가진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는 사회 시스템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벌판에서 자면서 주변의 포식자들에게 끝없는 위협을 당할 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사방의 적을 막아 줄 동굴인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은 개인적 관점에서 용기를 내라고 소리 지르지만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바로 동굴이다. 동굴이야 말고 최고의 해결책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함께 동굴을 찾고 이동해야 하는 합의를 필요로 하기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어떤 이들은 그 벌판에서 버티고 서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질적으로 비겁하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 도망치는 존재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의 조상은 작고 비겁했기에 살아남아서 진화해온 것이다.
 
그나마 우리가 용기를 가질 땐, 뒤에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는 동굴이 있을 때이다. 겁쟁이 동내 개도 자기 주인 옆에서, 자기 집에서 두 배는 용기 있어 진다.
 
지금 자신의 불행을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된다. 우리를 그럴 듯 하게 설득하는 수 많은 소리들은 모두 그냥 껍데기 조언일 뿐이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전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동굴을 찾는 것이지 용기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복지' 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개인적인 관점으로 가져갈수록, 또한 많은 이들이 그것을 해결하는 조언으로 욕망을 버리라고 말을 할 수록 우리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선택 가능한 행복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고 욕망을 줄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크게 회자되어 우리 사회에 반향이 된다. 그리고 마치 그것은 우리들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된다.
 
용기를 내게 해주려면 도망칠 동굴을 마련해주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면 걱정과 두려움을 없애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이들이 용감해지고 많은 이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 사람들이 TV에 빠지고, 게임에 빠지고, 스마트 폰에 빠지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만큼 싸고 반복적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래되면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돈이 많이 안 들기에 큰 문제는 없다. 누가 해외여행을 안가고 싶어하며 누가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승마를 하며 천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는 취미 생활을 안하고 싶어 하겠는가. 못할 상황이니 못하고 그것이 반복되니 이젠 밖에 나가기도 귀찮아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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