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감정기복

아이루다 2014. 7. 31. 09:32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을 했을 때,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표현은 보통 그리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바로 다음 행동에 대한 예측이 힘들다는 뜻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사람이 별 일 아닌 것에도 감정이 쉽게 변화하여 그 사람에 대한 응대 매뉴얼을 만들기 힘들다는 뜻도 된다.
 
우리는 그래서 보통은 감정적으로 일관성 있는 사람을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선호하고, 또한 그런 일관성 있는 성격 중에서도 좀 더 친절하고 착하고 화를 안내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거나 늘 화난 듯 보이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불편하고 그래서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과 같이 있는 기대 행복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 일종의 탐색적을 한다. 뭐 대놓고 돋보기를 꺼내 들고 상대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눈에 보이지 않고 또한 의식적이지도 않을 수 있는 상대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수집하여 자신이 선호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피해야 할 사람인지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  이 과정은 개인의 성격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꺼리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사람과 친해지는 반면, 싫어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일수록 이 과정은 좀 더 오래 진행된다. 그래서 성격 좋은 사람들은 보통 싫어하는 것이 적다.

 

그리고 이 과정은 상대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할수록 또한 만난 후에라도 파악하기가 어려울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높아진다. 이것은 바로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여 나타나는 현상인데, 결국 정보 부족으로 인해서 그 상대에 대한 자신의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확실한 매뉴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상태는 만남을 지속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다. 즉 우리는 처음엔 서로 어느 정도 긴장 상태로 만나지만 한 번, 두 번 만남이 반복되고 거기에 더해서 어떤 공동 관심사나 혹은 여행과 같은 행동을 같이 하면서 그 사람이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확인된 벽의 실체가 확실해질수록 둘의 관계는 점점 더 편해진다. 즉, 이것은 서로가 적당히 편할 수 있는 영역을 공동으로 만듦으로써 만날 때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덜어주기 때문에 우리는 훨씬 편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좀처럼 이런 공동 영역을 만들어 내기가 힘들다. 특히나 제목처럼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일 경우, 꽤나 오래 만나서 이제는 제법 제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한계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땐, 그 공동의 공간을 감당하기 힘들만큼 상대가 너무 크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마치 그 사람을 만날 때 마다 처음으로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야기시킨다. 대체로는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 가능하지만 그 격렬한 감정적 반응으로 인해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갑자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할 여지도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한 것이다.
 
그것은 갑자기 어디로 감정이 튀어서 화를 내거나 슬퍼할지 모르니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보통 사람을 처음 만나서 어색하고 불편할 때 받는 느낌인데, 이것을 매번 만날 때마다 반복해야 한다면 누가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을 선호하겠는가? 우리는 보통 이런 경우를 경험하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인간 관계의 범위를 점점 더 좁히게 해서 결국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주변에 남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어린 아이들의 감정기복은 무척 심하다. 울고, 웃고, 화내고, 짜증내고.. 하루 종일 따지면 아이의 감정은 5분도 채 유지되지 못하고 끝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힘들다. 물론 아이는 어느 정도 감당할만한 수준의 존재이기에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조절할 수는 있다.
 
그랬던 어린 아이들은 이젠 단체가 모여서 사회 생활을 경험하면서 점점 더 감정을 최대한 출렁이지 않게 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감정기복이 심할 경우 자신에 주변에서 친구들이 하나씩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며, 자신이 한 번이라도 더 웃어야 주변에서 자신을 좋아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렇다. 거기에 더해서 늘 웃었다가는 뒤통수 맞을 수도 있다는 것도 배운다.
 
이런 인간의 변화는 인간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는 그 자신에게 있어서 매우 좋은 변화이다. 앞에서 말했듯 사람들은 감정적 일관성과 거기에 더해서 웃는 얼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평생 단 한번의 화도 안내고 늘 웃고 산다고 치면, 사람들은 그를 가장 좋아할까?
 
이것은 갑자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과 우리가 나중에 만들 수 있는 로봇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로봇은 아직 우리 인류에게는 미완성의 기술이지만 아마도 100년 내로 각 가정에 어느 정도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로봇 한 대 정도는 놔두고 살 것이다. 그리고 그 로봇이 인간의 얼굴을 가졌다면 아마도 늘 웃고 절대로 화도 안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로봇이 웃지 않고 화를 낸다면 우리는 그 로봇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그 로봇이 감정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AS 센터에 가서 고쳐서 다시 웃고 화를 안내는 로봇으로 바꿔 올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계속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좋은 장점이 된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인간관계를 통해 자신이 뭔가 이루고 싶은 일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 거리감을 느껴지지 않는가?
 
아니 단지 느낌보다는 어떤 면에서 정말로 목적 중심의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사람이 인간 관계를 많이 맺어서 대 놓고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머리 속에는 남들과 잘 지내 놓으면 언젠간 남들과는 다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가움을 느낀다. 잘 웃고 친절하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 모든 것이 타인에 대한 남다른 무관심이 깔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다. 그리고 각 감정의 다른 감정의 원천이 된다. 기쁨은 슬픔의 원천이며, 슬픔은 기쁨의 원천이다. 즐거움을 깨는 것은 분노가 되고, 분노를 없애면 즐거움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한 감정만을 가질 수는 없다. 매일 쉬는 백수는 쉰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가질 수 없듯이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한쪽 감정만을 늘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행을 못 느끼는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없듯이 인간은 늘 즐겁게만 살수는 없다. 물론 아주 오랜 훈련을 통해 완전히 다른 정신 세계로 간 사람은 이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보면 늘 한쪽 단면의 감정을 보여주는 이들이 꽤나 된다. 늘 웃고 있거나 늘 불만에 가득해 보이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이들 중에서는 정말로 늘 행복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도 꽤나 될 것이다. 영업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 아니라면 딱히 일부러 늘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닐 테니.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도(없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살겠지만) 다른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거기엔 슬픔도 분노도 즐거움도 기쁨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감정이 요동치지 않아도 타인들의 이야기에 의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현실적 상황에서 우리가 늘 웃고 살 수 있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공감 능력 부족으로 보인다. 물론 슬픈 이야기를 들었을 때 슬퍼하고, 분노를 자아내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노하겠지만 그것은 일종의 자동적인 반응일 뿐, 거기엔 우리가 의도하고 원하는 깊은 공감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늘 웃고 있는 가면을 뒤집어 쓴듯한 사람들에게서 냉정하다고 느끼는 감정 이상의 차가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나보다 훨씬 잘 웃고 친절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국엔 그 사람들의 본질적인 특징이 바로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남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어떤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으며 뭔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화를 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사랑은 미움을 낳고 미움은 사랑을 부르기도 하는데, 무관심은 그냥 무관심으로 끝난다. 즉 무관심은 아무런 감정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관심 상태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대할 땐, 화난 얼굴 보다는 웃는 얼굴로 대해야 이득이란 것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감정기복이 심할 경우 자신에게 불행하다는 것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비해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자제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서 분노를 마구 표출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삶을 판단할 때, 성공보다는 실패로 간주되기 쉽다.
 
아무튼 우리는 그래서 대충 봐서는 모두들 좋은 사람들로 느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무관심이란 본질을 보기가 힘들다. 누군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을 때, 그것은 그 사람이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란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파악해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인지하고 알아내지는 못하지만 공감능력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어떤 이유로 인해 그렇게 되든지, 아니면 스스로 감정을 닫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좋은 사람들이라고 느꼈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마치 어린 학창 시절에 못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어떤 불쌍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도 그냥 외면하고 살아와야 했던 우리들의 비겁함이 그 후 나이를 먹은 후 그런 자신에 대한 합리화에 의해서 스스로 치유되고 난 후 만들어진 인지 불가능한 두꺼운 갑옷의 존재를 어쩌지 못하고 그렇게 평생을 착각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듯 보인다.
 
우리 인간은 다른 어떤 위대한 인간의 용기 있는 행동을 들으면서 우리 인간이 그런 존재라고 믿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우리들 자신은 매우 비겁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떳떳하게 사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 만들어 놓은 멋진 합리화의 논리 덕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위해 비겁하게 사는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인정해준다.

 

비겁하면 그냥 비겁하게 살면 되는데, 보도 들은 것은 있어서 비겁하다는 말을 듣기는 싫어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비겁하지만 그것을 마치 어떤 조건에 의해서 비겁해진 것 마냥 이유를 만들고 이론을 만들며 그래서 결국엔 합리화에 성공하며 그런 비슷하게 합리화 한 다른 이들을 보면서 서로가 한 행동이 인간의 보편적인 것이라는 위로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비슷한 많은 우리의 행동이 바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깊이를 거의 막아버린 셈이 된다. 즉, 우리는 이런 합리화를 통해 자신만의 두꺼운 갑옷을 만들어 낸 후 그 안에 숨겨진 자신의 어떤 의미에서 끔찍한 본질을 보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느꼈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나는 확실히 인간이 가진 진정한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맞다. 그 모든 것은 우리 정신을 둘러싼 두꺼운 갑옷을 통해 나오고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왜곡된 결과는 깨진 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도대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길이 없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기복이 심한 것은 어쩌면 우리의 가장 솔직한 모습일 것이다. 어린 아이의 모습처럼 그것은 꾸미지 않고 조작되지 않은 순수한 반응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에는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숨겨 놓은 나의 비밀이 모두 들어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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