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사랑이 깨지는 이유

아이루다 2014. 7. 14. 11:16

 
16세기 영국에서 세익스피어란 작가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후 벌써 50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은 슬픔과 기쁨이 함께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 이야기에 오랫동안 귀를 기울려 왔다.
 
그것은 어떤 땐 백마 탄 왕자가 다가와 해주는 달콤한 키스처럼 느껴지고 또 다른 시기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또는 금지된 사랑의 이루어질 수 없는 절망처럼 우리의 곁을 머물듯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래서 혹자는 사랑은 기쁨의 원천이며 또한 아픔의 근원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꿈꾸던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의 환희와 또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받을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랑의 성공여부에 대해서 어떤 경험이 있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다. 원래 사랑은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정말 궁금한 것은 왜 이토록 진실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랑이 이루어진 후에 변하고 망가져버리는 것인가에 대해서이다. 그것은 원래 사랑이 아니 였기 때문일까?
 
과거 얼마 전 우리나라에는 '사랑이 왜 변하니' 라는 문구가 꽤나 유명세를 타고 회자된 적이 있다. 그냥 듣기엔 왜 사랑이 변할까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러니까 정확히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은 변하면 안 되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뜻으로 느껴지며, 그로 인해서 사랑이 변했다면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질책으로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늘 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애절한 사랑도 불꽃처럼 타오르던 사랑도 남부럽지 않는 사랑도 목숨과도 바꿀 만큼 중요한 사랑도 한쪽에서만 바라보는 짝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모두 변한다. 그리고 변한다고 해서 원래 변하기 전 사랑이 사랑이 아니였다고 단정짓기도 힘들다.
 
아마도 백설공주도 잠자는 숲 속의 미녀도 콩쥐도 심청이도 모두 사랑이 이루어진 후의 삶을 다루지 않았기에 우리가 그것을 행복한 결말이라고 상상하듯 그런 마음 따뜻한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것이 또 사랑이다. 동화는 사랑이 이루어진 후 바로 끝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을 품어보자.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 본질인가.. 아니면 변하는 것이 본질인가. 이 질문은 사랑의 절대성을 믿는 분들에게는 다소 불경한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사랑은 변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쯤 의문을 가져볼 만 하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서는 사랑을 하는 주체에 대해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즉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고 결국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것을 해내는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은 사랑을 사람으로만 바꾸어도 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이 본질인가.. 아니며 변하는 것이 본질인가.
 
단지 자음 하나가 바뀌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다소 쉬워졌다고 느껴진다. 사람은 변하지 않지만 변하는 것이 본질이다. 이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챈 이는 아마도 인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생각을 해본 이들일 것이다. 사람은 짧은 시간 내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하려고 노력해도 잘 안되고 변한 것으로 보여도 자기 기만이나 연극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조금씩 변화 시킨다. 그런데 우린 그것을 변화되었다고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변해왔기 때문에 그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그래서 어린 시절로부터 늙어 죽을 나이가 될 때까지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너무도 단순하게 낼 수 있는 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랑을 주체적으로 실현하는 당사자가 변하니까 당연히 사랑은 변하는 것이 본질이다. 사랑 역시도 급격한 변화는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사랑이 왜 변하니' 라고 되묻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아마도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랑의 기간이 인생 전체로 보면 짧은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을 경험하는 시기는 운이 좋아야 몇 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을 유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지금 이 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일반적 상황을 다루기에 이 정도라고 정의한다.
 
아무튼 사랑은 변하는 것이란 가정을 하고 나서 하나 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변한다는 것은 바로 그 자체를 망가뜨리는 행동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즉, 사랑이 변한다는 것이 사랑이 깨진다는 뜻과 동일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답 역시도 사랑대신 사람을 넣어보면 쉽게 나온다. 사람이 변한다고 해서 사람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즉 1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른 생각과 다른 가치관과 다른 외모를 가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10년 전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른 존재는 아닌 것이다. 조금 변한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망가졌거나 깨졌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물론 사상과 종교의 관점에서의 변화는 변절이나 배신이란 용어를 이용해 비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각자의 입장일 뿐 그 자체로 사람이 깨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왜 결국 깨지고 망가져서 그 사랑을 믿은 이들에게 불행한 결말을 보여주고 말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본질적 측면에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하면 행복해 할까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 왜 사랑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까? 그 이유를 중요 순서대로 나열하기란 어렵지만 이유를 나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랑은 집중하기에 행복하다.
사랑은 상대를 그리고 당사자를 서로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기 때문에 행복하다.
사랑은 그 자신과 늘 같이 시간을 보내 줄 상대가 있어서 행복하다.
사랑은 상대를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 자신 이외의 다른 존재를 자신과 일체화 시킬 수 있기에 행복하다.
사랑은 본능에서 요구하는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기에 행복하다.
사랑은 그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비슷하게 느껴 공감을 해줄 수 있기에 행복하다.
 
물론 이 나열한 이유들 이외에도 참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것들을 그리 따지진 말자.
 
자, 이제 사랑이 변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자. 
 
변한 사랑은 집중력이 떨어져서 서로 각자의 삶에 조금씩 더 집중하게 된다.
변한 사랑은 점점 더 우선 순위에서 멀어져서 어떤 경우엔 친구보다도 못한 순위로 느껴지게 된다.
변한 사랑은 늘 같이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다.
변한 사랑은 일체화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
변한 사랑은 익숙해진 성적 만족으로 인해 그리 욕구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변한 사랑은 이제 서로 다른 곳을 바라 보는 것 같다.
 
여기에서 육체적 관점을 제외한 나머지를 한번 보자.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나머지 다섯개 중 하나는 다른 것들의 원천적 이유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선 순위의 문제이다.
 
사랑의 가장 큰 기쁨은 자신이 상대에게 그리고 상대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순위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든 판단의 기준점에서 상대가 우선시 되고 반대로 상대 역시도 그 자신이 최고의 우선 순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시간이 나든, 갈등이 생기든, 어떤 시간을 보낼 때 모두 자신이 만족할만한 결론이 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여름 여행을 가고 싶을 때, 상대가 자신이 아닌 가족과 함께 간다고 할 때나 재미난 영화가 개봉되어서 보고 싶을 때 상대가 자신이 아닌 친구와 먼저 본다고 했다면 이때 우리는 사랑이 변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물론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우선 순위가 있다. 그것은 바로 먹고 사는 일. 물론 어떤 이들은 먹고 사는 일 마저도 사랑보다 더 낮은 순위에 둘 수 있지만 보통 능력이 부족한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먹고 사는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이젠 나머지 시간에 대한 우선권을 보장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것은 회식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가는 워크샵일 수 있고 가족 모임이나 친구 모임일 수 있는 것들과 경쟁이 된다. 친구가 많을수록 가족 관계가 좋을수록 회사의 모임이 잦을수록 경쟁은 심하게 일어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강한 욕망을 느끼기에(이 욕망은 육체적인 것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느낄 행복 전체에 대한 바램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런 경쟁에서 꽤나 쉬운 결정을 하고 그것의 결론은 바로 자신의 연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변한 사랑은 이 결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결국 그것을 인해 연인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있어서 많은 핑계를 만들어 준다. 물론 이 핑계는 핑계가 아닌 진짜일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우선 순위란 정말로 쉽게 결정 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게으름과 인간적 도리, 미래에 대한 투자 등의 이유 역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이 행복하지 않는 자리에 가고 싶어하겠는가? 많은 것들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선택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의 가치관에 따라 입장이 많이 다르다. 누군가는 그것을 꼭 해야 할 인간적 도리로 느끼고 다른 이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의견차이로 인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왜 저 사람은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가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그것은 바로 상대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자신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믿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모든 사랑이 행복한 이유를 의심하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 즉 신뢰를 잃어버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신뢰는 인간 관계의 기본이며 사랑도 인간 관계 중 하나이기에 이것은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처음엔 작은 차이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 가졌던 욕망이 줄어들면서 반대로 이런 단점들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작은 틈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결국 사랑을 하는 연인은 자신들이 함께하는 시간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욱 집착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사랑을 진짜로 변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고는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사랑의 최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간단한 해결책을 말해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흔히 어떤 문제에 마주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바로 무시이다.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불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것은 누구나 하는 행동 양식이다.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든가 사용 중인 휴대폰이 가끔 꺼질 때 우리는 이것이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작은 문제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큰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그래서 큰 문제가 벌어지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바로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사랑은 절대로 변하게 되어 있다. 사람이 변하니까 사랑도 변한다. 그러니까 사랑이 변하니 조심을 해야 한다. 우리가 육체가 늙으니 운동을 해서 그것을 최대한 늦춰야 하는 것과 같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사랑 역시도 변할 것이란 예상을 하게 되면 우리는 조심을 하게 된다. 즉 몸을 위해 건강할 때 운동을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결국 사랑을 조심하고 소중하게 다루게 끔 한다. 이 태도는 사랑을 최대한 변하지 않도록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덧붙여서 변하는 사랑을 대비한 다음 대책을 세워야 한다. 미래의 계획, 같이할 수 있는 취미생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많은 대화와 공감, 인생의 가치 기준에 대한 마음 바꿈,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기 등등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노력은 꽤나 많다.
 
단지 이것들의 문제는 모두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고 사람들은 생각을 하기 싫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신의 믿는 사랑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 많은 연인들은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고 당장은 그 자체로 너무도 좋고 행복하기에 고민을 할 여지조차도 없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렇게 아름답던 외모는 시간이 변하면 늙어가고 그렇게 새롭고 즐거웠던 상대는 점점 익숙해지고 뻔해진다. 거기에 그나마 사랑을 유지시켜주는 육체적 관계 역시도 반복된 패턴을 가지면서 점점 더 의무감으로 변해간다.
 
이것은 모든 연인들이 90%이상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다. 물론 그 자신이 10%에 속했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렇다면 그 자신이 시간이 지나도 늘 한결같은 사람인지 되물어봐야 한다. 거기에 더해서 상대가 그런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한결같음은 좋은 것이지만 한결같음은 지겨움을 훨씬 더 빨리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랑이 변할 것이란 예측과 그것을 통해 얻어진 두려움은 우리를 긴장시켜서 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늘 무지개 빛일 수만은 없다. 어둠이 와야 밝은 해가 뜨고 추운 겨울이 지나야 따뜻한 봄이 오는 것이다. 우리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 반대 편을 통해서 의미가 있어진다.
 
그래서 변화는 한결같음을 의미 있게 하고 반대로 한결같음은 변화를 의미 있게 해준다. 그래서 이 둘을 모두 잘 지켜내야만 그 모든 것의 가치가 유지된다.
 
결국 이래서 사랑은 지키기가 어렵다. 많은 연인들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지만 그 중에서 그 사랑이 변화를 잘 관리하고 유지하고 그래서 사랑이 변했지만 또 다른 의미의 사랑이 되는 것으로 가치 있어지게 만들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못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살고 참고 산다. 물론 그것도 인생이니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 단지 조금만 노력하면 노부부가 되어 두 손을 꼭 잡고 거닐 수 있는데도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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