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외로움에 대해 돌아보기

아이루다 2014. 5. 30. 09:15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당연하게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연찮게 내 주변에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이 셋이나 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런 사람들이 꽤 되는 듯 하다.

 

나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다. 그래서 외로움을 타는 것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이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외로움이 가진 의미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외로움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하지만 이 두 개는 실제로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해 같이 외로움이란 용어로 설명되곤 한다.

 

외로움의 첫 번째 모습은 내가 느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뭔가 할 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즉 쉽게 말하면 심심함을 느끼는 상태이다. 다른 말로 하면 즐겁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거리가 잠시 부재중인 상태를 말한다.

 

우리 인간은 끝없는 자극의 세계에 살고 있다. 친구를 만나는 것이나 술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TV, 소설을 보거나 모두 마찬가지다. 그 모든 것은 외부의 자극이며 그 자극을 즐기느냐 즐기지 못하느냐는 그 자극의 종류와 그 자극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관계로부터 결정된다.

 

그런데 이 관계가 잘못되어 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피하게 되고 결국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시간이 오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픈 일을 찾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런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도 해야 하고 집에 와서도 집안일도 해야 하며 친구도 보고 영화도 보고 TV도 보고 스마트 폰도 보고 게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현대 사회에서 크게 이슈가 되는 제품이나 개념들은 모두 이것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마트 폰, 각종 SNS 등등 모두 사람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에 대한 공학 기술적 해답이다.

 

두 번째 외로움의 종류는 첫 번째 것보다는 좀 더 절실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생존과 관련된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사는 늙은 분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이 두 번째 외로움의 가장 정확한 예를 보여준다.

 

우리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무리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이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남게 된 것의 의미는 바로 우리를 노리는 맹수나 혹은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죽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이런 외로움을 최대한 기피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가정을 꾸리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오늘은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중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 외로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예전 글에서 두 번째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했었다)

 

우리는 왜 심심함 혹은 즐겁지 않는 상태를 그리 못 견뎌 하고 외롭다는 말을 할까?

 

어제 읽은 신문 기사 중 페이스 북에 자신의 사생활을 더 많이 노출하는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더 느낀다는 통계 조사에 대한 꼭지가 있었다. 뭐 이것을 따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외로움이 바로 오늘 말하려고 하는 주제인 외로움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외로움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심심함 혹은 재미 없음 그리고 조금 심각해진다면 행복의 부재 상태를 의미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상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이 말이 좀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지만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보통 어떤 걱정거리들을 머리 속에 담아 두고 산다. 그것은 집안일일수도 있고 자신의 미래일수로 있고 직장의 불안함 일수도 있고 배우자의 문제점일수도 있고 몸에 느껴지는 이상한 병적 징후일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보통 뭔가 재미난 시간을 보낼 땐 모두 까먹고 그것들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대부분 많은 걱정거리들이 딱히 시간을 내어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니 이것은 꽤나 괜찮은 태도라고 보여진다.

 

문제는 어떤 이유로 인해서 재미난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발생한다. 그 동안 미뤄뒀던 많은 문제들이 모두 한꺼번에 몰려오고 개중에서 스스로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일들도 있다. 즉 단순히 잊고 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뭔가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것을 말한다.

 

그런 것들에는 건강에 대한 문제, 직장을 옮기거나 더 나은 연봉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결혼할 상대를 만나야 하는 것, 자녀를 가져야 하는 것, 자격증을 따거나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것 등의 꼭 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 해야 좋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런 해야 할 일들을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일단 접어두자. 그것은 이런 걱정거리들을 없애는 해결책이기에 일단은 지나간다.

 

이것은 바로 그런 생각을 하는 그 시점에 있어서 스스로 지난 시간을 제대로 뭔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과 또한 힘들게 미래에 이런 것들을 해야 하는 압박감이 동시에 찾아오게 된다. 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고 그러니 미래엔 더 힘들게 해야 할 것 같은 것이다.

 

이것뿐이겠는가?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행운을 얻은 친구에 대한 기억, 열심히 사는 친구의 모습, 진급을 하는 직장 동료, 남자 잘 만나 팔자 핀 친구 등등 수 많은 여러 가지 일들 역시도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감정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것을 싸잡아서 표현하면 바로 현실의 자신을 인식하는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고, 이것은 그 당사자를 매우 우울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서 그 우울함이 더욱 심화되는 상태로 발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자신의 상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통은 어떤 식으로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다른 말로 하면 뭔가 집중할 꺼리를 찾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가장 최적의 해결책이기도 하다. 집중할 거리를 찾았는데 그것으로 인해 기분까지 좋아지면 어느새 우울함이 금새 날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것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즉 다른 집중할 거리도 못 찾고 그래서 즐겁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그때 그것을 외롭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이 자주 오는 사람일수록 점점 더 심하게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많이 맺어서 그런 시간이 오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SNS에 목매는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한다.

 

SNS를 이용하는 사람 역시도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현실에서의 삶이 주가 되고 SNS는 그 행복을 조금 더 높이려는 사람과 SNS에서 행복이 주가 되고 현실이 부가 되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서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보통 외로움의 먹이가 되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형태의 외로움은 해결 방법이 없다. 앞에서 말했듯 어떤 형태의 다른 즐거움 대상을 찾아서 잊어야 하는데 그럴 상황이었다면 외로움을 호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바로 혼자 놀기에 능숙한 성격을 의미한다. 그것이 그리 좋지 않는 형태의 취미라고 해도 아무튼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들은 실제로 다른 이들과의 만남을 가끔은 꽤나 귀찮아 한다. 집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데 타인들과 만나서 노는 것이 그리 탐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미래에 어떤 손해가 올지 모르니 일단은 어울린다.

 

반대로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혼자서 놀기를 잘 못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도 동호회에 들어서 사람들과 만나고 캠핑을 가도 누군가도 꼭 함께 가려고 한다. 혼자서는 아무리 좋다고 하는 것을 해봐야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늘 사람의 존재가 필요한데 문제는 그 누가 어떤 사람에게 24시간 356일 붙어 지내주겠는가? 따라서 결혼을 해도 외롭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초반엔 안 그럴지 모르지만 아이가 조금이라도 커서 자신의 삶을 주장하게 되면 또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나 역시 이런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으로써 나의 해결책은 바로 그런 시간이 오면 나를 괴롭히는 수 많은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즉 제대로 걱정하고 제대로 고민하면 뭔가 미래의 행동이 나오고 그럼으로써 나는 조금씩 해결 가능한 걱정거리들을 없애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욱 좋은 점은 이젠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스스로 즐기게 되는 상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의 가장 좋은 점은 자극의 대상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태반이 바로 아주 다양한 종류의 외부자극에 대해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이다. 즉 이들 역시도 외부자극이 사라지게 되면 어떤 형태로 반응할지는 모른다. 물론 인류 문명이 존재하는 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외부자극 없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목표점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을 제대로 익히기란 정말로 힘들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꾸준한 노력과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어떤 형태의 삶이든 그것은 꽤나 버릇과 익숙함으로 결정된다. 구성원이 많은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 시간도 없고 차라리 좀 혼자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자유는 얻었지만 반대로 매일매일 부대끼면서 자연스럽게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포기한 것이 된다.

 

그리고 사회는 점점 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것이 자의이든 어쩔 수 없었든 상관없이 이 현상은 이 사회에서 점점 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란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이 나이를 더 먹어갈수록 외로움은 단지 심심함이 아닌 두 번째 의미를 갖는 생존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혹시나 지금 이순간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왜 자신이 외로움을 느끼는지 좀 깊은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그것이 결국 병의 원인을 아는 과정이고,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우리가 외로움 중에 느끼는 자신에 대한 걱정이나 다른 고민들은 거의 무의미한 경우가 태반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 바라보고 살면 해결되는 것이 반이고 욕심만 조금 줄여도 금새 없어질 고민도 많다. 어쩔 수 없는 건강과 경제적 한계점에 대한 것들은 그렇다고 쳐도 실제로 사람들의 많은 고민과 걱정은 거의 모두 없앨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외로움을 치료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기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맨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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