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경쟁과 행복

아이루다 2014. 7. 5. 09:02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는 본질적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그 후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은 과연 어떤 종류의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또한 거기에서 각 개인들은 어떤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이 이어진다.

 

첫 번째 의문은 일단 통계적으로 가늠하여 크게 분류는 가능하겠지만 어떤 행복들은 너무도 독특해서 파악하기도 힘들고 실제로 파악했다고 해도 그것을 우리 인간의 보편 타당한 행복론인지 검증하기조차 힘들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서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하다.

 

하지만 두 번째 의문은 그 자신에 대한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파악해 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실제로 안다고 해도 그 행복을 추구하는 자신과 실제로 그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능력과 행운은 늘 함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파악도 힘들고 거기에 더해서 겨우 얻어낸 행복조차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행복의 종류를 보편적 시선에서 보면 간단히 맛있는 음식, 숙면이 가능한 잠자리, 아프지 않은 몸, 분위기 좋은 자리의 모임, 친한 친구와의 만남, 연인과의 데이트, 사랑하는 이와의 섹스,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을 접한 경외감,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의 즐거움, 집중해서 하고 있는 게임, 편하게 보고 있는 TV 시청, 재미난 영화를 보는 시간, 낯선 장소로의 여행, 남을 돕는 시간, 원하던 제품을 산 후 처음 쓸 때의 기분 등등이 있다.

 

이것들은 꽤나 많아서 다 적기가 힘든데 아무튼 보통 사람이라면 이 중 하나 이상은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적힌 행복의 종류나 혹은 적히지 않은 행복의 종류 중 몇 가지를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을 때, 정말로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과 거기에 더해서 과연 행복이라고 쳐도 그 행복함의 순간이 얼마나 지속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걱정이 생긴다.

 

예를 들어 맛있는 식사는 많은 이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행복이다. 하지만 이 행복은 배가 부름으로써 더 이상 즐길 수 없는 행복이 된다. 그래서 일정 시간을 기다린 후 다시 시도해야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즐긴다고 표현하는 대부분의 먹거리는 몸에 부담을 주어 살을 찌게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결국 먹는 것을 절제를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런 식으로 거의 모든 행복은 유효기간이 있으며 더 안 좋은 행복의 경우엔 반복될 경우 지겨움을 느끼고 무뎌져서 결국 그 행복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두 연인이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에 대한 행복 중 일부도 이런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무 익숙해진 연인들은 처음 만남에서 느꼈던 설렘을 서서히 잃어버린 후 자신도 모르게 권태기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또한 행복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바로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물론 먹을 것을 먹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만 값 비싼 음식은 아무나 먹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그나마 돈을 벌면 해결이 되는 문제이지만 운동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이 축구를 즐기거나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만나 사랑을 하고 싶어도 안 되는 이들이 많다.

 

거기에 더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꽤나 주관적이고 훈련에 의한 경우도 많아서 어린 시절에 행복하게 보내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이며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은 후 자신에 몸에 맞지 않는 남의 행복을 따라 해서 억지로 입고 사는 듯한 행복으로 인해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이 대한민국이란 땅에서는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우는 행복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경쟁에서 이기는 행복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천연자원도 없고 땅도 좁아서 결국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힘은 인적 자원 밖에 없다고 배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키워야 함을 강요 받고 또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즉 이 말은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생명체 본질적 행복 중 하나이다. 자연계에서 경쟁은 생존과 종족 보존에 대한 문제이며 결국 승리자와 패배자가 갈리고 승리자는 후대로 자신의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우리 인간도 이런 자연계의 일부로써 경쟁을 하고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그 모든 과정을 되풀이 한다. 그리고 이길 경우 큰 행복감과 거기에 합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질 경우 불행함을 느끼면서 거기에 따른 포기해야 할 것들이 생겨난다. 아니 실제로는 승리하고 패배했다는 사실보다도 그 후 일어나는 가질 수 있는 것과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한 예측으로 인해 우리는 행복과 불행을 가르게 된다.

 

아무튼 승리는 행복을 가져오고 패배는 불행을 불러온다. 이것은 매우 보편적인 우리 인간의 본질적 행복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매우 그 종류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 유난히 이 승부를 통해 얻는 행복에 매우 집착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조가 경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승자에겐 커다란 보상을 반대로 패배자에겐 국물도 없게끔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위 층으로 갈수록 힘든 경쟁의 시간을 이겨낸 이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고 그들은 그런 힘든 과정을 통해 얻은 자신의 가치와 재산을 쉽게 남들에게 나누어 주면 안된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회 구조를 경직화 시키는데 크게 한 몫 한다.

 

이 경쟁을 통한 행복 추구는 이제 그 경쟁의 결과를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다시 갈라지게 되는데 스포츠 경기라면 경쟁은 이기고 지는 것으로 결과를 내고 공부라면 성적과 그것으로 인해 나눌 수 있는 순위로 경쟁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 이기고 성적을 1등을 하더라도 그것들은 관념적일 것일 뿐 손에 실제로 주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것은 이기는 것은 기분이 좋지만 이긴다고 해서 먹을 것이 나오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경쟁의 결과를 단 하나의 가치로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돈' 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1등을 하면 상금을 주고 성적을 1등을 받아 좋은 대학에 가고 또한 사회에 진출하게 될 때 우리는 높은 월급이란 보상을 받게 된다. 이 연결 고리는 경쟁 -> 승리 -> 돈 -> 행복으로 이어지고 반대로는 경쟁 -> 패배 -> 가난함 -> 불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다른 행복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맛있는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 앞에 한 근에 수십 만원 하는 소고기를 먹는 사람이나 겨우 천 원어치 콩나물을 사다가 무침을 먹는 사람이나 맛이 있다고 느끼면 둘 모두 비슷한 행복감을 얻는다. 즉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돈으로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돈이 매우 중요한 행복도 있긴 하지만.

 

그렇지만 경쟁은 철저하게 결과적인 행복을 만들어 낸다. 즉 결국 돈이 생긴다는 최종 목표가 있어야만 그 치열한 경쟁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 우리가 가진 경쟁의 본능인 생존하고 후대를 남기는 본능조차도 뛰어 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대부분은 생존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계에서는 수컷이 10% 정도만 후대를 남긴다고 하는데 우리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거의 100% 후대를 남길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계에서 가지고 있는 본능적 생존 경쟁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더해서 그 생존의 질과 후대를 남기는 것의 질을 따지기 시작한다. 즉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무한한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질을 따지기 시작하면 그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우리는 경쟁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되어 버리게 된다. 결국 이런 우리의 삶의 패턴은 오직 경쟁을 통해서만 행복을 얻으려고 하고 거기에 더해서 경쟁을 했다면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하고 또한 그에 합당한 이득을 반드시 취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것은 다시 거꾸로 적용되어서 이득이 없는 승리는 무의미하게 되고 승리가 없는 경쟁은 쓸데없는 짓이 되며 결국 돈이 되지 않는 우리의 거의 모든 행동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짓이 되어 버리게 되었다. 반대로 결론적으로 승리를 하여 돈이 된다면 그 과정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태도들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린 승자에 대한 무한한 칭송과 패자에 대한 무관심이 매우 일상화 되어 스포츠 경기에서는 1등이나 금메달를 딴 선수만 기억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만 남게 된다. 이런 승자 독식 구조는 이제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자리잡고는 우리들을 모두 끝없이 경쟁시켜 정말로 작은 일들조차도 경쟁으로 느끼고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도록 만든다.

 

식당에 가서도 온 순서대로 주문을 받지 않으면 이것은 패자가 되고 결국 그것은 종업원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되니 참을 수 없는 모욕감으로 받아 들인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이 경쟁의 사회에 충분히 물들었기 때문에 도대체 경쟁이 없는 삶을 상상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다른 차량이 자신을 추월하면 경쟁에서 진 것 같아서 기분 나빠하고 타인이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되는가 싶으면 또한 경쟁에서 자신이 진 것 같아서 참아내기가 힘들어 한다. 즉 질투와 시기 혹은 부러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불행을 부르는 단어들이다.

 

심지어 토론회를 하면 서로 의견을 제시하고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이기고 지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상대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그것이 통해서 상대가 얼굴이 붉어지면 이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들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을지 가늠조차 안된다.

 

처음에 분명히 경쟁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이젠 경쟁이 우리를 끝없이 불행으로 이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작은 경쟁에서 이긴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남들보다 조금 싸게 산 제품, 옆집 아이보다 조금 더 공부 잘하는 내 아이, 동남아로 여행을 간 친구보다 유럽으로 여행을 간 자신.. 우리는 결국 끝없이 우리가 하는 비슷한 일들을 줄을 세워 순위를 정하는 법을 만들고 전혀 비교할 필요가 없는 일들 조차도 비교함으로써 승부를 결정 짓는다. 그리고 그 기반엔 모두 돈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슬픈 일은 우리는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불행을 느끼는데 더 민감하다는 점이다. 즉 행복함은 잠시 스쳐 지나가지만 불행은 한번 느끼면 좀처럼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승자와 패자를 나눌 때 50:50 이라고 해도 결국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한 사람이 더 많게 된다.

 

경쟁의 또 하나 나쁜 점은 바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없앤다는 점이다. 누구도 경쟁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 그런데 여유는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좋은 방법 중 하나란 점이 문제이다.

 

여유가 없는 삶은 결국 팍팍한 것이 되고 이로 인해서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날이 선 감정적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에게 작은 상처를 주고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상황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사회 전체의 행복도가 낮아지게 된다.

 

아마도 유럽 지역을 제대로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우리가 무엇이 다른지 느꼈을 것이다. 물론 생활 수준이 더 높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들의 진정한 능력은 바로 '여유'이다. 그리고 그 여유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소위 말하는 선진국을 만들어 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계속 경쟁을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는 결코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현재보다도 더 불행하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린 그 경쟁을 통해 물질적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는 있겠지만 그 역시도 한계점은 명확할 수 밖에 없다. 경쟁을 위한 경쟁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이 그렇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란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그 경쟁자야 말로 그 어떤 경쟁자보다 강하며 이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