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의도한 자와 의도된 자.

아이루다 2014. 6. 28. 18:38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오래 전 방영했었던 MBC 서프라이즈의 재방송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이야기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었던 TV 퀴즈쇼 조작 방송에 대한 내용이 소개 되었다. 예전에 개봉된 영화 중 '퀴즈 쇼' 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사건을 근거로 만들어진 영화일 것이다.

 

아무튼 첫 번째 이야기에서 서프라이즈는 이런 설명을 한다. TV는 진실만을 말한다고 믿었던 많은 이들에게 TV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충격을 안겨 준 첫 번째 사례라고 말이다. 뭐 물론 요즘 현대인들 중에서는 TV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 당시 수준만큼은 아닐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 역시도 TV에 대한 신뢰는 꽤나 막강한 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의 관심을 끈 내용은 TV의 거짓말이 아닌 실제로 그 방송 조작에 가담했었던 사람들이 했던 변명과 그 후 상황 전개이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 방송을 진행 했었던 담당자는 처음엔 부정하다가 결정적 증가가 나타나자 결국 자신이 조작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조작을 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래서 그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가난한 청년이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는 과정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동과 행복을 느꼈고 아이들은 꿈을 키울 수 있었으며 그 당사자는 큰 돈을 벌었고 방송국 역시 시청률이 올라 덕을 보았다. 여기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리고 꼭 이 변명이 통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구체적인 피해자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결국 퀴즈 쇼는 폐지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에 관련된 방송국 사람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퀴즈 쇼에 대한 내용 말고 얼마 전 보았던 미드 하우스의 한 장면에서 이런 내용이 다뤄진다. 어떤 청년이 돈이 아까워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로 병원에 왔는데 가벼운 감기임에도 불구하고 하우스는 그 청년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말해주면서 처방을 내리지 않을 테니 빨리 가서 보험에 가입하고 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심각한 얼굴로 병원을 나가는데 언뜻 보면 하우스의 배려가 괜찮아 보인다. 아무튼 돈이 아까워서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가 실제로 큰 병이 나게 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모두 민간 보험이다)

 

그런데 그런 하우스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옛 애인 스페이시가 하우스에게 한 마디 한다. 사람의 머리 꼭대기에 서서 가지고 노는 못된 인간성은 여전하다고 말이다.

 

실제로 미드 하우스에서 주인공 닥터 하우스는 전편에 걸쳐서 아주 많은 거짓말과 조작질을 한다. 때로는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이기적인 이유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속이기, 조작을 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성격으로 묘사된다.

 

여기까지 소개된 두 개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목적을 위해 상대를 속이는 행동이고 그 행동으로 인해 관련된 많은 이들이 좋은 결과가 있기 때문에 이 조작은 물론 도덕적 잣대를 대면 잘못된 행동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확하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기가 어렵다는 공통 요소이다.

 

실제로 살아가다 보면 선의의 거짓말이란 것이 있다. 조작도 일종의 거짓말이니 선의의 조작질이란 말도 비슷할 것이다. 어떤 좋은 목적을 위해 조작을 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닌 것인가?

 

물론 퀴즈 쇼의 조작과 하우스의 조작은 입장이 다르다. 퀴즈 쇼의 조작은 명백히 회사와 그것에 관련된 이들의 이득을 목표로 했고 반면에 하우스의 조작은 하우스의 개인적 이득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 환자가 나중에 닥치게 될 의료적 문제를 환자를 속임으로써 미리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우스를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하더라도 사람을 속이고 그 사람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관점에서 두 사건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방송 관계자들이 퀴즈 쇼에서 영웅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감정을 움직인 것이나 하우스가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상대로 거짓말로 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로 하여금 의료 보험에 가입하도록 유도한 것이나 모두 스스로 인격체를 가진 인간을 누군가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은 같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타인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되면 그것을 노예, 세뇌 등의 좋지 않는 의미로 표현한다. 즉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는 인격을 가진 고유 개체로써 인정받아야 하고 그로 인해서 누군가 다른 이의 자유 의지를 뺏는 거의 모든 행위를 범죄로 가정한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자유를 뺏는 것은 제외하겠지만.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을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은 아주 많다. 그 중 가장 오래된 방법은 바로 힘과 폭력을 써서 하는 방법이다. 또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면 그것을 미끼 삼아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돈을 주고 시키는 방법도 있으며 감동을 주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 이외에도 타인의 삶을 바라보게 하여 그 삶을 따라 가도록 만드는 방법도 있고 종교나 사상을 교육시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지만 결국 종교와 사상이 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게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가 사는 삶 자체가 모두 타인을 어떻게 하면 나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할 것인가에 대한 총괄적인 의도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폭력과 같은 구체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과거 문명화가 덜 된 시대엔 분명히 폭력은 사람을 의도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지만 폭력이 범죄로 처벌 받는 현 시대엔 국부적으로야 분명 아직도 폭력은 남아 있지만 이젠 합법적인 방식으로만 사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히 쉽지 않다. 폭력은 분명히 고통이 오고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기에 쉽지만 그 외의 다른 것을 통해 사람을 제어하기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인생 전체에 있어서 이것을 성공하는 비율이 높은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높은 비율로 삶이 구분된다.

 

이런 원리로 인해서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부류가 있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들의 의도대로 움직여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숫자는 반씩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 두 부류 중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은 소수이고 이들을 지배계층, 기득권 등의 용어로 칭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도 당연한데 지배 계층이란 말 자체가 바로 지배한다는, 즉 어떤 의도를 가지고 상대를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은 단순하고 쉽다. 그것은 바로 그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이득을 얻고 욕망을 채우고 하고픈 일을 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에는 바로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기본 환경이 동작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의도로 합법적인 범주 안에서 어떤 이득을 위해 사람을 움직이려고 노력한 그 모든 생각과 행동은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생존과 연관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퀴즈 쇼에서 한 조작과 하우스의 거짓말은 모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하나 있다. 우리 인간은 법을 정해서 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법적인 것이 모든 것의 만능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두 사건을 다시 바라보면 이젠 좀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그런 조작을 통해 누가 어떤 이득을 얻었고 또한 그로 인해 누가 어떤 손해를 입었는지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퀴즈 쇼 담당자는 자신들이 저지른 짓이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분명하게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첫 번째는 그 퀴즈 쇼에 참석한 다른 이들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쇼에 나와서 들러리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득을 볼 기회를 놓쳤다. 두 번째는 그 방송사에게 시청률을 뺏긴 다른 방송사들이다. 그들은 명확하게 얼마를 손해 봤는지 계산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타 방송사에게 채널을 뺏긴다는 것은 바로 방송사의 손해를 의미한다.

 

그리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것이 영원히 안 밝혀졌으면 상관없으나 결국 들통이 나서 많은 이들에게 불신감과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퀴즈 쇼의 조작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도덕적으로 크게 치명상을 입고 마지막 영웅은 결국 대학교수 직에서 잘렸다고 한다.

 

반면 하우스에서는 이런 정황은 없다. 물론 하우스가 보험사 대리인으로써 보험을 많이 들게 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위와 동일하겠지만 그는 그런 의도는 없었다. 차라리 이런 경우는 더 잘된 경우라고 보는 것이 낫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머리 꼭대기에서 가지고 노는 것은 절대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소수의 지배 계급은 끝없이 피 지배 계급을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들은 타고난 능력을 이용해서 결국 피 지배 계급이 자신들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사실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게 치밀하고 은밀하게 그것을 해낸다. 물론 그렇지 못한 지배 계급에 속한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은 조작질에서 조차도 사람들은 그것을 각종 편견에 사로잡혀서 그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다.

 

결국 이 상황은 늘 지배 계급의 이득으로 환산된다. 그들은 끝없이 무엇인가를 의도해서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세상을 이끈다. 그리고 다수의 피 지배 계급은 과거 힘에 억눌려 억지로 노예 생활을 하던 시절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젠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옆에 있는 누군가와 견해가 맞지 않아서 싸울 때 그것을 의도한 자들은 조용하게 어디선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하고 살아간다.

 

왠지 슬퍼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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