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거울을 바라보아야 할 사람들

아이루다 2014. 4. 30. 07:36

 

몇 해전인가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도가 좀 있는 미국 배우인 덴젤 워싱턴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였는데,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고 내용만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이 영화에서 덴젤 워싱턴은 항공기 조종사 분을 연기 했는데, 역시나 영어로 한 대사로 인해 연기를 잘 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고 머리 속의 기억을 뒤져서 영화 스토리만 간략하게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이 영화는 어떤 문제로 인해 운항 중이던 여객기의 좌우 날개에 붙어 있는 고도 조절 장치가 운항 중 고장이 나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게 된 상태를 맞은 조종사의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말하기 싶은 주제가 아니다. 그저 그 속에 있는 아주 작은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에서 진짜 중요한 사건은 바로 그 조종사가 알콜 중독이었고, 그 사고가 발생한 날 역시도 술에 취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생긴 여객기를 조종사는 매우 놀라운 방법으로 해결해서 착륙을 시킨다. 그것은 바로 비행기를 뒤집는 것이었다.

 

이 비행기의 고도 조절장치가 고장이 나서 고도를 낮출 수가 없는 상태가 되자 비행기를 뒤집어서 거꾸로 동작이 되도록 한 것이다. 결국 그는 그 놀라운 기지를 통해 최소한의 피해를 남기고 비행기를 착륙시킨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여자 스튜어디스가 목숨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승객의 목숨을 살린 그는 착륙 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 조종사로써 언론과 사람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는다.

 

이 후 이 비행기의 문제점을 조사하던 사람들은(미국은 이런 시스템이 아주 잘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마이클 클라이튼이 쓴 에어프레임이란 소설에 아주 잘 나와 있다) 쓰레기 통에서 작은 술병 두 개를 발견하고는 이 술병을 누가 마셨는지를 조사한다.

 

그리고 과거 전력이 있던 덴젤 워싱턴은 그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조종사가 마신 것이 탄로나게 되면 영웅은 고사하고 조종사 자격증까지 취소되게 생긴 그는 전적으로 이것을 부인하고 변호사를 통해 적극 해명하려고 한다. 물론 술을 마신 것과 정비 불량으로 사고가 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제대로 착륙시킨 그의 기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그를 변호하던 변호사는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처한 동일한 상황을 다른 베테랑 조종사들에게 시뮬레이션 시켰을 때 그들 모두 비행기를 추락시켰다. 당신이 한 일은 정말로 대단하고 수 백 명의 목숨을 건진 진정한 영웅이다."

 

그렇지만 조사 위원회는 비행 중 술을 마시거나 혹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비행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절대로 끈을 놓지 않는다. 여기에서 잘 착륙이 되었다는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정에서 규정을 어겼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위기에 몰린 덴젤 워싱턴은 이 술병을 결국 죽은 스튜어디스가 마신 것으로 몰아간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덴젤 워싱턴은 자신이 마신 술을 죽은 동료에게 뒤집어 씌우고 그 여자를 불명예스럽게 만든 것에 많은 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재판에서 모든 것을 밝히고 스스로 감옥에 간다.

 

이 영화는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웅에서 알콜 중독자로 추락을 하여 감옥에 가게 되는 한 사람의 양심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잘 그려낸 나 자신에게는 나름 수작이었던 작품이다. 그런 상황에서 양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도 그렇고 또한 그렇게 이미 영웅이 된 인물을 조사하는 조사관들의 어떤 의미에서의 공사를 정확히 구분해 내는 냉정함이 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온정주의' 라고 한다. 타인의 잘못된 행동이나 관행을 그냥 묵인하고 넘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온정주의로 불리면 안 된다. 그것은 단지 자신이 옳지 않을 것을 지적하게 되었을 때 그 대상이 되는 사람과 불편해지는 게 싫은 자기 이기주의로부터 나오는 결과일 뿐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가 가진 문제점 하나는 '안전 불감증'이다. 좋은 말로 하면 긍정적 사고 방식이다. 그 어떤 일을 해도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거기에 이것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속도에 대한 집착과 비용 절감을 효율이라고 믿는 우리들 자신의 생각이다.

 

또 하나 더 하자면 '결과 중심' 사고 방식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그 어떤 중간 과정의 문제가 있더라도 최종 결과인 목적지에 도착하면 된다는 뜻이다. 아마도 앞에 소개한 영화에서 우리나라라면 이미 영웅이 된 사람을 딱히 조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미 결과론적으로 너무도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인데 술에 취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심지어는 설령 조사관들이 그의 그날 행적을 밝혀서 그를 사법적으로 고발했다고 해도 아마 'XX 사고기 영웅 구하기' 모금이나 서명 운동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세가지 우리의 민 낯이 모여서 우리 사회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니 사회가 전체적으로 불합리함과 말도 안 되는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도처에 널려 있게 된다. 그리고 최근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가 결국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의 분노는 그 배의 선장과 그 위로 해당 선박이 소속된 비리로 온통 도배된 오너 일가 그리고 그 밑바닥을 모두 보인 무능한 정부 관계자를 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에 하나 더 더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단지 많은 수가 그 책임을 나눠 갖기 때문에 작아 보일 뿐 우리 모두가 그 사건의 가해자이다. 남들과 불편하게 되어 나에게 손해가 될까 바, 빨리 대충 하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모습이, 어떤 과정이든 상관없이 만족한 결과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합해진 후 무능한 사람들이 책임자로 있는 상황과 합쳐져서 결국 이런 커다란 슬픔이 다가오게 된다.

 

많은 이들이 선장을 욕하는데 실제로 선장은 욕을 먹어야 맞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서 왜 그런 사람이 그런 대형 선박의 선장 직위를 수행하게 된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책임자들은 과연 그 자리를 수행할 능력이 되기 때문에 다들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그나마 돌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런 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문제가 들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과연 이 나라에서 어떤 커다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것을 제때 수습하고 제대로 해결해 낼 능력을 가진 이가 그런 자리에 있을만한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막말로 이 순간 일본처럼 지진이나 원전 사고가 나면 우리는 정말로 지옥을 보게 될 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도 포함이 된다. 또한 그 밑에 포진하고 있는 다수의 장관과 각 단체들의 수장들까지 정말로 그 능력이 그 직급을 수행할 수 있기에 그 자리에 있는지가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자리에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개개인이 투표를 해서 뽑은 결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배의 선장과 그 배를 소유한 오너 일가의 부정부패에 대해 짜증은 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그렇게 해도 지금껏 아무 문제가 없었던 이유에 바로 내 자신 역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들을 관리 감독할 정부 기관의 무능력에 내가 뽑은 한 표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현 정부에 표를 던졌느냐 않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도 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남들의 불의를 보고 넘겼으며 결국 해봐야 투표나 하면서 스스로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그 사건의 간접적 사주자임을 부정할 순 없다. 그리고 이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죄이다.

 

능력이 안 되는 선장이 그 자리에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수단으로 돈을 번 비리로 가득 찬 해운사 오너 일가가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은 상태로 잘 살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관리 당국의 담당자와 그를 지휘할 책임이 있는 기관의 수장들 그리고 그 모두를 임명한 대통령까지, 이 모든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들과 나머지 간접적으로 손을 거든 국민들까지 모두 이번 인재의 살인자이다.

 

생명을 살리겠다는 믿음으로 의사가 되기 보다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의대를 가는 학생들과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들, 법을 수호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대를 가는 것이 아니고 역시나 부자가 되고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기에 그 길을 가는 학생들과 역시나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들, 미래의 주역을 잘 키우기 위해 선생님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결혼할 때 우대 받는 직업이란 이유로 선생님이 되고, 국민에게 봉사하려는 마음 보다는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는 이유로 공무원 시험을 보고 있다.

 

그리고 정의롭고 도덕적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우리를 잘살게 해달라고 표를 몰아주는 국민들까지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모두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을 더 살아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라고 대꾸해 준다. 그리고 나중에 이런 사고가 나면 울어준다.

 

예언을 하나 해 보겠다.

 

많은 이들이 오늘도 이 슬픈 사고에 대해 애도를 하고 분향을 하면서 슬픔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나가게 될 것이다. 악마 같은 인간이 되어 버린 선장과 선원들을 국민 정서를 고려해 아주 강력한 처벌을 빠르게 받게 될 것이고 그 오너 일가도 수 많은 조사와 사법 처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상납했던 권력자들 가운데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는 검사들은 조사를 멈출 것이다. 일명 꼬리 자르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은 그들의 죄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결국 스스로를 용서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가 되면 또 그들을 추모하는 모임이 열릴 것이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혀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이 사회의 모든 가치인 돈을 위한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 갈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나와 관련이 없으면 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또 날 것이다.

 

우리 자신들은 모두 그 선장과 같다. 그는 잘못된 사람이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왜 그가 그 자리에 있었지 따지려면 그 회사 사장을 조사해야 하고 또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업가가 멀쩡하게 사업을 하고 있었는지를 따지려면 경찰과 검사들에게 따져야 한다. 또한 그들이 왜 그런 쓰레기 기업을 사전에 조사해서 없애지 못했는지 따지려면 그들을 임명한 임명권자들인 각 자리에 있는 장관들과 조직의 수장들에게 따져야 한다.

 

그리고 또한 그들 장관들과 조직의 수장들에게 따지려면 그들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따져야 한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바로 우리가 뽑았으니 결국 모든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따져야 한다. 그러니 선장 욕하려면 일단 거울을 보고 우리 자신부터 욕해야 옳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1년간 자살을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의 수가 거의 5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몇 해전 400명이 넘었고 매년 늘어나고 있으나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다) 숫자로만 따지만 이번 사건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숫자의 어린 생명들이 그 목숨을 우연한 사고도 아닌 스스로 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이런 통계 치와 그들이 왜 자살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겠는가? 물론 이들이 모여서 하루 한날 동시에 자살을 했다면 커다란 이슈가 되겠지만 아무튼 단지 하루 만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그 스스로 택한 죽음이라는 점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지식에는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자살은 모두 그들 자신만이 가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나는 이들 자살자들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간접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그들의 죽음엔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유죄가 함께 한다. 단지 이것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을 뿐, 누가 이들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한 경쟁과 결과 중심 사고 방식,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이 사회에서 이번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닌 필연적 과정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이미 이런 사고를 그 동안 숱하게 겪어 왔다. 단지 그 모든 사건에서 우린 서로를 위로하고 자원 봉사를 하며 성금을 걷는 아주 따뜻한 국민성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면 모두 다시 일상적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돈을 벌기 위해 의대와 법대를 가고 안정적 삶을 위해 선생님이 되고 공무원이 되라고 할 것이다. 그런 가치관을 주입 받고 자란 아이들은 역시나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탈락자들은 우리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자신의 목숨을 버릴 것이고 가끔 신문 지상의 한 꼭지로 보도될 것이다.

 

가능하면 우리나라에 대한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실제로 내 개인적으로는 포기를 한 셈이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시대이다.

 

하기야 나 자신도 죄인인데 이런 글을 쓸 자격도 없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글을 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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