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아주 단순한 경제 이야기

아이루다 2014. 6. 5. 07:18

 

어떤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이 마을엔 작지만 잡화점도 있고 슈퍼도 있고 미용실도 있고 빵집도 있다. 또한 늘 좋은 고기를 팔지만은 못해도 작은 정육점도 있고 노래방도 하나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놀기도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위에 나열된 가게와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다. 또한 자동차를 고치거나 작은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객이 되었으며 만나는 곳에 내 가게이면 그가 고객이고 그의 가게이면 내가 고객이 된다.

 

딱히 경쟁할 필요가 없는 거의 고유의 독과점 형태를 가지고 있는 문제는 있지만 서로 양심껏 적당한 이득을 취하고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번 돈을 쓰면서 살아가기에 이 마을은 그럭저럭 모두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커다란 변화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커다랗고 다양한 것을 취급하는 큰 가게가 하나 생겨난 것이다. 이 커다란 가게는 야채도 팔고 고기도 팔고 과자도 팔고 음료수도 팔았다. 또한 주문 식으로 먹는 음식점도 있었으며 카센터도 하나 있어서 차를 고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쌌다.

 

사람들은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점차로 싼 가격의 장점으로 인해 어제 갔던 김씨 슈퍼를 안가고 새로 생긴 큰 가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씨 역시 늘 자신의 가게를 찾던 박씨가 자신의 가게가 아닌 새로 생긴 큰 가게에서 과자를 샀다는 것을 안 후로는 그 역시도 박씨 집에서 고기를 사지 않고 큰 가게에서 고기를 사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기도 신선하고 가격도 쌌다.

 

김씨는 왜 그 동안 그리 좋지 않은 고기를 비싸게 박씨 가게에서 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요즘은 손님도 많이 줄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기에 싼 가격이 더욱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점점 더 흐르자 사람들은 예전처럼 서로의 가게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마을의 모든 이들은 하루하루 다르게 점점 매출을 줄어갔고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파는 큰 가게를 더욱 더 많이 찾게 되었다. 물론 돈이 부족해서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래도 10원이라도 더 싸게 사는 게 어디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그 큰 가게는 최근에 회원 카드를 발급해주면서 산 금액의 일정량을 적립해 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느꼈다. 수입이 거의 0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버티는 사람들은 그 큰 가게가 취급하지 않는 것을 파는 사람들인데 그들 역시도 마을 주민 대부분이 수입이 거의 줄어서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진 것이다.

 

마을 전체가 급속도로 경제적인 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큰 가게는 점원 모집을 시작했다. 돈이 궁한 마을 사람들은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버는 작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해 살아갔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가난해졌고 또한 많은 노동과 적은 임금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비라는 것은 일종의 행복을 얻는 행위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밥을 먹고 집을 구하고 여행을 가고 필요한 제품을 사는 것과 같은 돈이 거래에 필요해서 이지만, 좀 더 깊게 살펴보면 모두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작고 큰 고민들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돈을 쓰면서 싸게 샀다고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건 싸게 산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싸게 사서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얻었다는 만족감에 행복해져서 좋은 것이다. 우린 어떤 제품을 살 때 가격을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살 때 돈의 액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돈을 지불하고 얻은 만족감이다.

 

그래서 우린 소비 생활 중에서 지불한 돈 만큼 행복을 얻었다면 보통, 지불한 돈보다 훨씬 큰 행복을 얻었다면 만족, 지불한 돈에 비해서 만족감이 많이 떨어진다면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돈에 대한 태도는 그 어떤 소비라도 모두 그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게 된다는 커다란 기본 원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런 태도로 인해서 우리는 누가 어떤 일에 얼마만큼의 돈을 쓴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비난하고 옹호하고 공감하고 이해를 못할지는 몰라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직접 말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번 돈으로 그가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일인데 어떻게 말리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쓰고 싶은 데로 돈을 쓰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무한한 자유로움은 분명하게 잠재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잠재적 문제점에 대한 예시가 앞에서 말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작지만 큰 변화로 표현되었다.

 

그 마을 사람들 모두 어느 가게에서 돈을 쓰느냐는 개인별 자유이다. 하지만 그 자유가 몇 가지 이유로 인해 획일화된 흐름을 나타냈을 때 (모두 조금이라도 더 싼 큰 가게를 가게 될 때) 마을 전체 경제가 망가지는 결과를 빚어내게 된다.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또한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구나 대형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거나 동네 시장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예가 되었던 그런 작은 마을에 비해 워낙 거대한 시장이라서 크게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결국 서울 곳곳에 생겨난 대형 마트는 불편하고 불친절하고 카드 결제도 잘 안 되는 재래시장을 거의 붕괴 시켰다.

 

그렇다면 제래 시장에서 일하던 분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보면 그들은 내가 다니는 회사가 만든 자동차, 간장, 컴퓨터, 의자, 장롱의 잠재적 소비자였고 내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나 빵집의 잠재적 손님들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들은 이런 것들을 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졌고 어디선가 100만원 안팎의 작은 월급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국가는 절약이 매우 좋은 것이고 저축도 매우 좋은 것이라며 이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지독히 구두쇠가 되어 절약하고 저축만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말 그대로 내수가 죽어 버리는 것이다.

 

돈은 흥청망청 써도 안되지만 너무 안 써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것을 조절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소비 패턴은 대부분이 대기업 중심이며 또한 대형 브랜드화 된 제품들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이 대형화되고 브랜드화 된 체인점들은 모두 앞에서 말한 마을에 생긴 커다란 가게이다. 그리고 이 가게에서 얻은 이득은 모두 그 가게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즉, 이 이야기는 바로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이 생겨나는 원리를 말해주고 있다. 고만고만한 가게가 100개 있는 마을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99명의 고객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 내가 쓴 만원이 내일 나에게 다시 그대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1개의 커다란 가게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쓴 돈은 다시는 내 호주머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것은 영원히 밖으로, 즉 이 가게의 주인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장 그 자신이 물건을 살 때 이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 자신이 옆 사람 가게에서 물건을 사줘야 그 사람이 그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의 물건을 사주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그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는 보이지 않는 질서의 힘을 말이다.

 

규모가 작은 마을일 경우엔 이것이 꽤나 명료하게 들어나지만 그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점점 더 이런 인과 관계는 희미해지고 거기에 더해서 사람의 유동성이 높아질수록 더욱 더 불확실해져 간다.

 

우리 사회는 분명하게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많이 이동하는 쪽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비록 서울이라는 대도시 밀집 현상은 조금 줄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단지 서울 인구가 경기도로 분산되어서 그럴 뿐 아직도 대한민국엔 서울과 경기도 인구가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된다.

 

그래서 당연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자신이 행복을 위해 어떤 것을 소비하느냐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앞에서 말한 인과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소비활동에서 결정의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품질, 가격, 제품 신뢰, 기능성, 구매 편의성 등이지 우리 전체 사회의 돌고 돌아야 할 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어쩌면 그런 인과 관계를 따지는 것이야 말로 참 웃기는 짓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과도하게 불필요한 소비가 자국 내에서 맴돌지 않고 외국 회사에서 만든 제품으로 빠져나가는 경우 우리는 결국 전체가 조금씩 더 가난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외국 회사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번 돈을 쓰지 않는 이상 말이다.

 

열 달 동안 월급을 모으고 또 모아서 원하는 비싼 명품 브랜드 제품을 샀다고 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소비를 한 셈이지만 그가 열 달 동안 쓰지 않고 모은 돈은 원래 그 사람 주변의 가게, 식당, 영화관에서 쓰여야 할 돈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 돈이 다시 그 사람이 일하는 회사의 제품을 사는데 쓰이거나 그 사람이 일하는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이 낸 돈으로 사용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소비는 그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것처럼 우리 전체를 조금씩 가난하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소비를 무조건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런 소비를 할 때, 그 자신이 선택한 소비의 기준점이 결국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이다. 거대한 공룡기업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제품을 팔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모두 소수의 거대한 자본력을 가진 존재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우리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은 손을 믿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단 시장의 공정함과 비대칭화 된 경쟁력이 어느 정도 잡혀야 한다.

 

현시대는 승자 독식의 시대. 우리가 매일매일 하는 소비는 과연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있을까?

 

 

'인간·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도한 자와 의도된 자.  (0) 2014.06.28
인과응보, 사필귀정  (0) 2014.06.14
거울을 바라보아야 할 사람들  (0) 2014.04.30
그 시작은 정의이다.  (0) 2014.04.21
우주의 중심에 서서  (0) 2014.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