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선수와 감독

아이루다 2014. 6. 27. 14:26

 

최근 월드컵이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축구에 관심이 없고 또 TV 볼 기회도 없어서 한 차례의 경기도 보지는 못했지만 포탈 사이트에 접속할 때 마다 자연스럽게 기사를 접하게 되어서 경기 결과를 알게 된다.

 

뭐 다른 나라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태생이 한국인이라서 우리나라 경기 결과를 주로 보게 되는데 아무튼 오늘 아침 경기로 우리는 최종 탈락이 된 모양이다. 그리고 과거 2002년 4강에 들어갔었던 기억을 하는 많은 이들은 이번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과 태도에 대해서 크게 실망을 한 듯 하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게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은 그야말로 민족적 축제였었다. 그 후로 대표팀에서 뛰었던 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했었고 각자 자신이 뻗어가 삶의 여정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박지성 선수는 영국에서 나름 크게 성공을 했으며 안정환과 이영표는 요즘 중계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아마도 이번 월드컵에 나간 유일한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은 홍명보 감독이 아닌가 싶다. 물론 현역 선수는 아니지만 그는 12년만에 선수에서 감독으로 자리를 바꿔 브라질로 갔다. 하지만 결과가 결과이니만큼 한동안 많은 욕을 먹을 듯 하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 시절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 태도 그리고 후방 수비를 지휘하는 모습까지 해서 참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한국 축구 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선수였다. 특히 보통은 공격수만 기억에 남는 현실에서 후방 수비수로써 그만큼의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싶다. 그는 일종의 한국의 전설이 되는 것이다.

 

한국 축구 계의 전설이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차범근 감독을 꼽을 것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엄청난 노력과 실력으로 지금도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해주는, 아마도 위성 중계가 좀 더 빨리 보급되었다면 그는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1998년 월드컵인가에서 대회가 치러지는 중에 국가대표 감독에서 경질된 것으로 기억난다. 그 역시 최고의 선수였지만 감독으로서는 큰 좌절을 맛본 것이다. 홍명보 감독의 경우엔 이제 겨우 시작 지점이기에 벌써 어떤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첫 단추가 조금 어긋나게 끼워진 느낌이다. 물론 감독의 기본 자질 이외에 그는 다른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올라 있는 상황인데 이 부분은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흔히 스포츠 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훌륭한 선수가 명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실제로 각종 사례를 통해서 보면 꽤나 그럴듯한 말이다. 역대로 명 감독이라 칭해진 세계 각국의 스포츠 경기 감독이나 국내의 각종 리그 감독들 역시도 현역 시절 엄청난 실력을 보였지만 감독으로써는 크게 두각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반면에 선수 때는 그다지 크게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감독으로써는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어떤 스포츠나 그것을 매우 잘한다는 것은 남다른 실력과 경기에서 이기는 것에 대한 맥을 제대로 집고 있다는 뜻일 텐데 왜 감독으로써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솔직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 쉬워서 질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아무튼 그 이유는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다 라고 할 수 있겠다. 감독의 성공 여부를 말하는데 왜 사람 타령인가 싶겠지만 이 문제는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풀린다.

 

뛰어난 선수는 보통 뛰어난 조건을 타고 난다. 물론 어떤 선수들은 엄청난 노력에 의해서 자신의 타고난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 그 초인적인 의지 자체도 타고난 것 중 하나라고 봐야 한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다.

 

아무튼 이렇게 타고난 능력은 선수일 때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해주지만 그로 인해 그가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이 생긴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인데 마치 머리가 매우 좋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수학 공식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납득하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

 

뛰어난 사람들은 그 자신이 하면 되기에 어떻게 해야 그것을 해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뛰면 빠르고 던지면 정확히 위치로 가고 공부를 하면 그냥 이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더 빨리 뛰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정확히 던질지, 어떻게 해야 그것을 이해하고 또 까먹지 않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되는데 왜 고민을 하겠는가? 누구도 걸을 때 걷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걸으면 잘 걸어지는데 왜 고민을 하는가? 하지만 다리를 심하게 다쳐 걷기가 힘든 사람은 고민을 해야 한다. 안되니까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민하지 않고 크게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그 자신에게 쓰일 땐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타인에게 알려주거나 가르칠 땐 전달 불가능한 정보가 된다. 그냥 했더니 돼서 했는데 어떻게 못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해야 된다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은 마이클 조던에게 점프를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하지만 선수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상관없지만 감독이 되면 다르다. 이젠 자신이 가진 정보를 자신의 소속 팀 선수에게 전달해줘야 한다. 그렇지만 선수들 개개인은 모두 타고난 능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그래서 결국 모두에게 맞는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거기에 더해서 감독은 이젠 지휘를 해야 한다. 공을 차는 것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전술은 전혀 연관된 능력이 아니다.

 

이것을 삼국지 같은 소설을 배경으로 좀 더 극적으로 설명하면 관우나 조자룡은 적장을 만나서 아주 쉽게 상대를 제압할 능력은 되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해서 제갈량이 하고 있는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특히 스포츠는 신체적 능력이 극대화되어야만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이기에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각종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수 배치와 그에 따른 효과적인 운영을 해야 하는 감독으로써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축구를 오래 하여 축구라는 스포츠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국제적인 경기를 많이 치뤄 풍부한 경험이 쌓은 선수는 경험이 부족한 다른 선수에 비해서 좀 더 많은 이해와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실제로 이것은 감독으로써 능력을 크게 좌지우지 하지 못한다.

 

인간은 그 자신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노력하여 얻는 것이어야 평범함을 가진 이들에게 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 타고난 능력으로 인해 그것을 쉽게 얻었다면 어떻게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실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노력해서 얻은 사람이라도 해서 또 명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이런 이들은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경우가 많아서 타인에게도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선수 시절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한 차범근 감독이 국가 대표 선수들에게 자신이 했던 훈련량을 소화하라고 요구했다가 선수들에게 엄청난 원망을 들었다는 뒷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차범근 감독은 물론 엄청난 노력파 선수였다. 여기에서 차범근 감독의 치명적 실수는 자신이 소화한 그 훈련량을 견디는 인내력은 그 만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견고함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그것을 이겨낼 의지가 있으니 선수들이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것은 의지 박약한 것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가 고통을 참아내고 목표를 향해 나가는 힘은 그의 고유의 능력이다. 그것은 어쩌면 타고난 순발력과 타고난 달리기 실력만큼 중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을 타인들이 가졌을 것이라고 가정하게 되면 출발부터 심하게 삐걱거리기 시작하게 된다.

 

밑바닥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왜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고 그 밑바닥에 있는지를 이해하기 힘들다.

 

또 다른 예로 요즘 40~50대는 왜 20대 청년들이 취업을 하지 않고 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그들이 노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20대가 겪고 있는 것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왜 20대들에 자신이 크게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들을 스스로 얻지 못하냐고 되묻는다.

 

사람은 경험이 많아야 고개가 숙여지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에서 성공하는 대부분의 이들은 상위급 능력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당연히 부족하고 모자란 능력을 가진 이들의 문제를 이해하기는 무척 힘들다.

 

이로 인해서 사회 정책은 잘못 조준이 된다. 우리 사회는 탈락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고 탈락을 시킨 후 아주 작은 것을 공짜로 주면서 연명시키는 정책을 편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탈락자를 줄여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세상은 지금 축구라는 하나의 스포츠 경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모든 현상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단지 감독이 좀 더 많고 선수가 좀 더 많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이 우리의 문제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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