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복수에 대한 이야기

아이루다 2014. 6. 24. 07:06


어린 시절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한 편이 있다. 그 소설의 제목은 '몽테 크리스토 백작' 이었고 다른 출판사에서는 '암굴왕' 이란 제목으로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설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나폴레옹이 실권한 시기에 한 남자에게 닥친 불행한 운명을 다뤘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미래를 잃고 모든 희망마저 잃은 상태로 외딴 섬에 만들어진 지옥과 같은 감옥에 가둬진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거기에서 탈출을 꿈꾸는 파리스 신부를 만나 그를 통해 새로운 삶을 얻는다. 그리고 수년 후 그는 억만장자의 부자가 되어 파리로 돌아오고 거기에서 자신에게 지옥을 만들어 준 세 명의 배신자를 향해 멋진 복수를 하고 떠나간다.


이 소설은 아마도 내가 읽은 첫번째로 접한 제대로 된 복수를 주제로 한 소설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서 복수만큼 사람을 끌어 당기는 흡입력을 가진 주제도 어디 또 있으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누군가의 나쁜 의도로 당한 주인공이 수 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인간들에게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과정은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우리들 본성으로써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과거 중국 무협에 흔히 등장하는 사부를 죽인 상대와 대결하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 수 없이 고된 훈련을 거쳐 결국 상대를 무너뜨리는 전형적인 스토리 들이 그랬고 예전에 점하나 찍고 다른 이가 되어 복수를 했던 어떤 막장 드라마의 내용이 그랬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1차원적인 입장으로 본 시선 말고 복수는 좀 더 복잡하고 어두운 또 다른 입장에서 다뤄지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복수의 정당성과 거기에 더해서 복수를 모두 한 후 목표를 잃은 존재의 미래에 대한 부분이다.

 
보통 개인의 복수는 두 가지 형태로 시작된다. 하나는 인간 사회에서 정당한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경우인데 앞에서 말한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이런 경우이다. 이 때 그 자신이 처리하지 않고서는 공권력이나 사회 정의 실현을 통해서는 절대로 원하는 복수를 해낼 수 없기에 개인의 입장에서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복수 유형의 두 번째 경우는 비록 그것이 사회 정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절차와 결과가 전혀 납득되지 않아서 개인의 복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경우 중 하나는 심증은 명확한데 물증이 없는 경우도 포함된다.


예전에 봤던 '모범시민' 이란 영화에서 이런 복수극이 나왔었는데 여기에서 주인공은 전혀 인정할 수 없는 법원의 판결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 스스로 범인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 이 영화의 중요한 스토리이다. 거기에 더해서 그런 판결을 의도한 변호사까지도 나름 의미 있는 복수를 한다.


복수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은 보통 나쁜 짓을 한 사람도 문제지만 그것을 사적인 감정으로 복수를 하려는 의도로 인해 복수를 하려는 당사자들 조차도 경찰의 추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해서 이 복수의 결과가 복수를 집행하는 당사자에게 결국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 내용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아픔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과거의 복수극은 보통 나쁜 짓을 한 사람과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서 복수를 성공한 후 복수 과정에서 얻은 여자와 떠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희망적인 결말은 그리 흔하지는 않다. 보통 복수는 그로 인해 복수를 한 주체자 역시도 파괴되며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아픔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때 흔히 등장하는 복수를 하려는 이를 포기시키려고 설득하는 논리가 바로 복수를 한 후 당신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복수의 흔하고 쉬운 반대어는 용서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역시 복수는 그 자신을 갉아먹는 암과 같은 것이라고 하고 그래서 그 복수의 상대를 향해 칼날을 가는 것이 바로 그 자신을 찌를 수 있는 칼날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복수의 반대인 용서를 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이 말은 틀림이 없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복수의 가장 기저 원인에는 바로 '분노' 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분노는 매우 흔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분노는 인간을 망가뜨리거나 심하면 파멸시키는 감정이다. 그래서 우린 어려서부터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들이 분노를 조절하는 힘은 바로 이성이다. 이성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화가 난다고 상대를 때리면 우린 그게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지식으로 혹은 경험으로 안다. 강한 분노를 느껴도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참아낸다. 하지만 어떤 분노는 참아낼 수 없다. 소중한 이를 잃고 난 후 느끼는 분노는 정말로 쉽게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밝은 입장에서 다룬 복수극들은 뛰어난 지략을 통해 상대를 농락하기도 하고 강한 무력이나 힘을 이용해서 강제적으로 성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복수에 대한 사람들의 끌림을 이용하기 위해 대부분의 액션 영화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복수의 구도를 만들어 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보통 주인공의 소중한 주변 인물을 초반에 죽이는 짓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사람들의 감정은 참 묘해서 소중한 딸을 잃은 부모에게 있어서 목숨 값은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그 복수 과정에서 죽어가는 수 많은 다른 목숨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련이 없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아이의 아빠였을 텐데 그렇다.


복수는 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우면서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강력한 마약과 같은 단어이다. 비록 그 감정의 근원이 분노이고 거기에 더해서 정말로 개인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복수극은 우리를 분노에 대해 공감하게 만들어 슬프게 하며 감동 시키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준다. 어쩌면 분노가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깊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로 내가 소중한 것을 누군가 나쁜 의도로 그것을 망가뜨렸다면 나는 그것을 사법적 처벌에 맞길 것인지 혹은 설령 내가 그런 결정을 했더라고 그 상대가 내가 만족할 만큼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을 때 그것을 내 스스로 감당해낼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 복수는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그렇다. 상대를 찌른 칼은 나를 찌를 수도 있기 때문이란 것을 지식을 통해 이성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 자신이 느낀 강한 분노, 소중한 이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나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설령 그 끝이 나 자신의 죽음이란 것을 알고 있더라도 두려워할지언정 내가 원하는 복수를 해 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스스로 던진 질문이다.

 

여기엔 계산적인 나의 이성과 순수한 분노의 싸움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과연 여기에서 이성적인 것의 승리가 정말로 나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아직 유보적이다. 지금까지의 나에겐 이런 이성의 승리는 단지 나의 나약하고 비겁한 숨겨진 겁쟁이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즉 이성을 통해 나는 나를 합리화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아직도 미정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까지는 단 한 번도 이런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도 스스로 늘 바라보는 성향으로 인해서 내가 그 어떤 분노를 느끼더라도 스스로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것으로 인해 순수하게 감정이 주는 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점은 조금 아쉽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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