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콩나물 행복

아이루다 2014. 5. 29. 20:55

 

나는 요리를 하는 남자이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먹고 사는 정도의 요리는 한다. 물론 김치 같은 고급 요리법은 빼고. 김치 담그는 법은 나중에 꼭 배워보고 싶지만 아직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내가 요리를 하는 종류의 음식은 기껏해야 10가지 종류. 물론 어떤 요리법들은 보고 그때 그때 흉내를 내는 경우도 있어서 그것까지 합치면 꽤나 되기도 할 것이고 스파게티나 국수 요리도 조금 할 줄 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맛깔스럽고 폼 나는 요리들은 아니고 그냥 먹을만한 수준이다. 남자라서 그런지 성격인지 모양 예쁘게 하고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것은 영 잼병이다. 대신 속도는 빠르다.

 

아무튼 이런 나의 스스로 요리 하는 습관 때문에 나는 자주 동네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그리고 이 생활이 꽤 오래 되어서 이젠 시장의 어느 가게가 신선하고 싼 채소를 팔고 또 어느 가게에서 국물 맛을 낼 좋은 멸치를 파는지도 대충은 안다.

 

그리고 또한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 얼굴과 성격도 대충 알고 있다. 아마도 그분들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장 보는 남자는 그리 흔하지 않고 또한 내 외모가 좀 눈에 띄긴 한다. 좋은 방향은 아니지만 ㅎㅎ;;

 

개인적으로 나에게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요리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콩나물 무침을 꼽는다. 일단 재료가 무척 싸고 (천원 값이면 한끼를 맛있게 무침과 국으로 먹기에 충분하다) 맛도 참 좋다. 내 요리의 주요 고객이 되는 유진의 의견도 이 콩나물 무침을 매우 높게 쳐준다.

 

콩나물은 가격도 싼데다가 요리법도 매우 쉽다. 깨끗이 씻어서 찬물에서부터 끓여서 비린 냄새가 가시고 구수한 냄새가 올라올 때까지 삶다가 꺼내서 무치면 된다. 무치는데 들어가는 양념은 참기름, 소금, 깨, 파, 고추 가루, 마늘 다진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잘 무쳐진 콩나물은 참기름의 고소한 맛과 소금의 짠맛 그리고 마늘이 주는 비린 맛을 잡아주는 힘이 합쳐져서 먹기에 좋은 음식이 된다.

 

나는 가끔 콩나물을 살 때 야채 가게 분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가격이라고 해야 겨우 천원 밖에 안 하는 이 음식 재료는 살 때마다 감당이 힘들만큼 많이 집어 주신다. 도대체 저렇게 많이 담아주면 가게는 얼마가 남을까 하는 마음으로 천원을 건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천원을 드릴 수는 없다.

 

콩나물 무침을 할 때 자연스럽게 같이 하게 되는 요리는 바로 콩나물 국이다. 이것은 무침보다 더 쉽다. 들어가는 재료도 더 적고 이미 콩나물을 삶았다면 국은 그냥 자동으로 된다. 소금, 파, 마늘, 고춧가루 만 넣으면 그냥 된다. 만약 여기에서 좀 심심하다 싶으면 양파 자른 것과 북어포를 잘라서 넣으면 바로 북어 국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유진이가 북어 국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 먹을 때나 그렇게 먹는다. 아무튼 콩나물 천 원어치로 나는 맛난 반찬 하나와 국을 하나 끓인다. 이 얼마나 경제적인가.

 

그런데 가격이 싸다는 것 때문인지 어느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 콩나물 국이 국으로, 콩나물 무침이 반찬으로 나오는 경우는 참 드물다. 단지 한식을 파는 식당에서는 가끔 콩나물 무침이 반찬으로 나오기도 하고 제육볶음과 같이 국물이 없는 요리를 시키면 콩나물 국이 그냥 딸려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나오는 반찬은 참 맛이 없다. 맹맹한 국, 맹맹한 무침.

 

예전부터 주부의 쪼달린 삶은 보통 콩나물 가격을 깎는다는 말로 표현되곤 했다. 즉 정말로 싸고 많이 주는 콩나물 가격마저도 깎아야 하는 우리 서민들의 삶이나 혹은 그러게 악착스럽게 아끼면서 살아 오신 부모님 세대의 절약 정신을 뜻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콩나물 가격을 깎는 것은 참 그렇다. 현재도 콩나물 천 원어치를 통해 내가 얻는 맛의 즐거움은 고기반찬 부럽지 않다. 그렇지만 요즘은 내가 만든 반찬 말고 외부에서 콩나물 무침을 정말 맛있게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여기엔 아마도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콩나물 무침은 바로 해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소금 간을 하기에 무침을 조금만 오래 두어서 콩나물에서 물이 다 빠져서 그 통통한 살에서 느껴지는 아삭거리는 식감이 사라져서 만족감이 많이 줄어든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기도 좀 그렇고 또 이런 싼 음식 재료로 남에게 대접을 했을 때 그리 만족감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 맛이 주는 진정한 느낌을 그 재료가 가진 가격에 대입시켜서 맛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짓. 싼 재료를 쓰면 맛이 없고 비싼 재료를 쓰면 맛이 있다고 느끼는 음식에 대한 플라시보 효과.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이 가진 5가지 감각기관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고 가끔은 놀랍도록 종합적인 평가를 하여 최종 받아들이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음식도 이런 것 중 하나인데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이 모두 필요한 것이 바로 음식 맛 평가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맛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참 다양한 의견을 보인다. 모양이 예뻐야 맛있고 냄새가 좋아야 맛있고 식감이 좋아야 맛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이런 감각으로 오는 것들을 종합해서 평가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다른 정보를 하나 추가로 더할 때 나타난다. 그런 것들에는 재료의 희귀성, 독창성, 요리법의 어려움, 조리에 걸리는 시간, 실 재료의 가격, 요리사의 알려진 실력, 가게의 유명함, 손님의 숫자, 누구와 함께 먹느냐, 공짜로 먹느냐 등등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고 해도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특히 이중에서 우리가 크게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가게의 유명함과 재료의 가격을 알고 있을 때 일어난다. 그래서 비싼 것이니 맛있고 유명한 집이니 맛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유명한 맛 집에 가서 먹을 때 만족했던 적은 별로 없다. 단지 사람이 많고 복잡거리며 그로 인해 서빙이 엉망이고 음식도 좀 대충 만든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왜 그런 집들이 그리 손님이 많은지가 궁금하지만 사람들은 꽤나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좀 놀랐던 기억도 난다.

 

음식의 맛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 미각에서 판단하는 맛과 씹을 때 이를 통해 느껴지는 식감이라고 불리는 촉각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판단이 옳은 것이 아닐까?

 

아무튼 내 의견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재료의 가격이 비싸고, 요리를 하는 요리사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고, 손님이 많다고 해서 음식이 맛있는 것은 절대로 아닌 것은 맞다. 적어도 이런 조건은 내가 정의한 맛의 조건과 비교해서 중요도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는 비싸고 유명한 집이면 맛있다는 공식이 제법 마련되어 있나 보다.

 

이것은 일종의 몹시 잘못된 껍데기 평가 기준이다. 그리고 이런 사례는 비단 음식에 대한 것만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우리나라와 같이 겉모습에 많은 가치를 두는 사회는 더욱 심각하게 이런 현상이 심화되어 있다.

 

귀하고 비싼 재료로 정성을 다해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음식도 맛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물론 노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서 칭찬은 해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맛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제품의 가치를 결정하거나 지위가 실력을 보장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 방식이다. 또한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어른도 아니며 나이가 적다고 해서 마냥 어린애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좀 많이 궁금한 점은 우린 왜 이렇게 본질적인 면을 마냥 무시하고 겉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굴복하며 또한 거기에 그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감싸는 것일까? 에 대한 답이다.

 

아마도 나는 그것의 가장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소양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본다. 맛을 느낄 미각, 좋은 소리를 구별할 청각, 예쁜 것과 색을 볼 줄 아는 시각, 각종 향기를 구별할 수 있는 후각 등등,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구별 가능한 것은 너무 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구별 불가능한 것들을 문화나 고급 제품이란 이름으로 구분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좀 슬픈 일이고 이런 우리들의 우스운 태도로 인해서 콩나물 무침은 해먹지 않으면 얻어먹기 힘든 음식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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