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흔즈음에

아이루다 2014. 5. 24. 07:04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광석이 형의 노래 중 '서른즈음에' 라는 명곡이 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 품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라고 시작되는 이 노래는 20대의 뜨거운 청춘을 보내고 30대라는 나이가 주는 무언의 압박을 참으로 좋은 가사로 그리고 듣기 좋은 멜로디로 거기에 김광석이란 가수가 가진 감정으로 너무도 마음에 와 닫게 읊조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를 40대가 된 내가 들어보면 왠지 이젠 그 30대쯤의 압박이 40대로 옮겨온 듯 하다. 만약 광석이 형이 살았다면 이 글의 제목처럼 마흔즈음에 라고 한 곡 만들어보지 않았을까? 불현듯 공동경비구역 JSA 나왔던 송광호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광석이는 왜 그리 일찍 갔다디?"

 

30대의 슬픔은 어쩌면 존재로써의 평범함 그리고 꿈이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그래서 실컷 놀고 난 후 이젠 그동안 내가 놀다가 집에 오면 늘 차려져 있던 밥상이 더 이상 공짜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40대으 슬픔은 그 밥상을 나를 위해서만이 아닌 나를 둘러싼 많은 이들을 위해 스스로 차려 대접을 해야 하는 것과 현실이 다가오다 못해 그 존재를 무겁게 짓눌러 살아가게 되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만약 마흔즈음에 라는 노래가 진짜 나오게 된다면 지나간 청춘을 아쉬워하고 사랑이 떠남을 애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닌, 삶의 진정한 무게를 표현하는 가사가 어울릴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마흔즈음은 정말 말 그대로 외통수에 걸린 상태였다. 그 당시 나는 먹고 사는 직장 일에서부터 개인적으로 겪은 슬픈 일과 이제 겨우 인생이란 여정의 반에 왔을 뿐인데 이미 지쳐서 헉헉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답답함과 불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현실의 안정도 미래의 희망도 그리고 그나마 있었던 가능성마저도 서서히 사라져 이젠 20대에 품었던 어설픈 꿈과 30대에 가졌던 호기도 모두 현실을 인정하고 버려야만 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몸은 예전 같지 않게 무겁고 그나마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즐거움마저도 게으름과 더 이상 뭔가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때문에 방향성을 잃었고 그 동안 내 스스로 옥죄고 살아왔던 생활 패턴은 나에게 아주 단순한 사는 행복조차도 허용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데 나는 오래된 나의 아집으로 인해 그것을 부정하고 거부하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나는 결국 생각에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생각은 내가 조금 잘하는 영역인지라 현실의 판을 벌려놓고 하나하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 표현처럼 나는 그리 체계적이지는 못했고 그냥 그 당시 나의 얼굴을 어두웠고 나의 삶은 회색 빛이었다.

 

그 때 나를 가장 고민스럽게 만든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바로 먹고 사는 경제적 문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나는 그리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때문에 벌이가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삶이 뿌리 채 흔들렸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당시 좀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하고 있기도 했다. 일을 하고 사는 것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고민꺼리는 바로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한 갈증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TV를 보면서, 게임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맛난 것을 먹으면서, 쇼핑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나를 늘 다그치고 나를 바쁘게 만들어야 스스로 만족하는 게으른자의 노력형 인간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이 성향의 조합은 가장 좋지 않은 것 같다. 게으른 사람이 머리 속에는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게 되면 삶은 정말로 힘들어진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스스로 만족을 못하게 되면서 삶이 늘 피폐하게 느껴진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의지력도 약한 편이다.

 

그 덕분에 나는 생각은 많고 머리엔 늘 뭔가 묵직하게 들어있지만 삶은 뭔가 구체적인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뜬금없는 5개년 계획을 세웠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아니지만 내가 앞으로 5년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갈지에 대한 목표를 세웠다. 아니 실제로 무엇을 위해가 아닌 어떤 구체적인 달성 목표를 세웠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리라.

 

그 중 가장 큰 일은 내 은퇴자금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5년간 열심히 벌어서 5년 후 은퇴를 하고 시골에 가서 살 수 있을만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 다행히 그 나이까지 그리 낭비 없이 살아와서 가지고 있는 자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40대 중반에 은퇴를 하게 되면 꽤나 오랜 시간을 수입 없이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 된다. 따라서 나에겐 정말 작고 작은 씀씀이를 통해 그 시간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했다.

 

두 번째 내가 달성할 목표는 바로 시골에 집을 짓는 일이었다. 은퇴 후 내 삶을 정착시키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지금 하고 있는 별보기 취미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 별보기를 시작할 땐 정말 어린 시절 초등학교 다닐 때 시장에서 산 2만원짜리 싸구려 망원경으로 어딘가를 본 어렴픗한 추억에서 시작했기에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한 때 천문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고 젊은 시절 어딘가를 놀러 갔다가 정말로 별이 쏟아지는 어떤 밤을 보낸 나의 개인적인 기억이 이 취미를 나에게 의미있게 만들 여지를 열어 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취미에 대해 알아보면서 나는 그 장비를 구입하는 돈 때문에 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대충만 알아봐도 수 백을 넘는 가격. 취미 생활에 그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은 그 동안 내가 살아온 개똥철학과는 정말로 잘 맞지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많이 절실했었나 보다. 지금은 추억처럼 과거를 회상할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아무튼 내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인 일단 지르고 본다 에 의해서 나는 과감하게 투자를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은 망원경을 사서 여러 가지를 보는 생활을 몇 년 하다가 나중에 사진을 찍는 편인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단 사진을 찍을 준비부터 했다.

 

8인치 반사 망원경, 망원경은 비교도 안될 비싼 가격의 가대, 하나에 수십 만원 하는 아이피스, 사진을 찍기 위한 DSLR 카메라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가이딩 시스템을 위한 가이드 망원경, 전용 카메라, 노트북, 배터리까지 하니 정말로 많은 돈이 들었다.

 

거기에 장비의 무게와 멀리 빛 공해가 없는 곳까지 밤에 나가야 하는 힘듦을 극복해야 하고 그것 조차도 달이 밝거나 날이 조금이라도 흐리면 할 수 없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까지.. 정말로 취미 생활 중 극한의 위험을 즐기는 취미를 제외한다면 돈 많이 드는 것과 관련되어 힘든 정도까지, 이것이 과연 취미인가에 대한 회의를 만들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별 사진 찍기 취미이다.

 

거기에 장비를 다루는 서투름과 장비 자체의 문제들로 인해서 그 먼 거리를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허탕을 치고 오는 날도 많았고 취미 생활을 위해 가입한 카페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나의 눈을 높여주어서 도저히 내가 찍는 사진에 대한 만족을 할 수 없게 해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그래도 꾸준한 노력을 한 끝에 강원도 수피령에서 찍은 첫 안드로메다는 정말로 감격스럽게 나의 자랑스러운 1호 작품이 되었고 그 후로 나는 오리온, 프레이야데스, 말머리 성운까지 국민 대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성운들을 담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보면 그 사진의 허접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때 나에겐 희망이라고 이름 지어진 사진들이었다.

 

힘들었지만 별사 진 찍는 취미를 포함한 나의 나머지 계획들은 운 좋게 생각보다 잘 진행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행복하지 못했고 여전히 방황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내가 세운 그 계획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해서 인간은 행복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읽던 책에서 어떤 작은 영감을 받고 그 후로 블로그 글을 쓰는 네 번째 해야 할 일을 찾아 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쓰는 그 자체의 즐거움도 있지만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객관화 시켜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매우 크다. 나를 그리고 인간을 객관화 시켜 볼 수 있는 노력은 내 글을 좀 철학적으로 만들긴 했지만 실제로 내 글은 철학이기 보다는 나 자신의 대한 고찰과 반성문의 역할이 크다.

 

그래서 내가 글 속에서 분석하고 비난하는 그 대상은 바로 남이 아닌 나이며 이 블로그에 적힌 모든 글은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나는 비겁하고 나는 어리석고 나는 자기 합리화에 능하며 나는 감정의 노예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놀랍지 않은가? 그런 나를 인정하니 편해진다. 내가 생각하던 나를 현실의 나로 끌어내리고 나니 나는 더 이상 어깨에 힘을 줄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지금도 어깨에 어느 정도의 힘이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그 줄어들어 이젠 안 써도 되는 힘은 나를 많이 편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되고 나니 그 동안 해야 할 일이라서 했던 일들이 이젠 행복으로 둔갑되어서 나에게 다가온다.

 

시골에 지은 작은 집에 오는 행복, 밤 하늘에 너무도 아름다운 성운을 찍는 행복,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을 매일 하는 행복, 명상을 해보겠다고 동네 앞산에 올라 혼자 눈을 감고 흉내를 내는 행복 등등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판단으로 나는 아직도 제대로 된 행복을 느끼진 못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어깨에 힘을 더 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더 현실의 나를 인정해야 한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점은 누군가에게 있는 인생의 전성기란 것이 나에겐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요즘 살아가는 매일 매일이 내 삶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다른 이들의 전성기에 비해서 턱 없이 낮고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삶 자체가 바닥에 깔린 내 특성상 그것이라도 정말로 소중한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다행인 점은 지금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주고 있는 나의 배우자는 정말로 행복하게 살아갈 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곁에 머물면서 그 행복을 복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내 성격적 특성으로 인해 나는 아무리 행복해져도 일반인의 행복 수준도 가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매일 매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 좋다.

 

처음 세운 5개년 계획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고 그 사이 몇 가지 변화는 생겼지만 큰 틀에서는 계획대로 나름 잘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새로운 5개년 계획을 세울 생각이다. 그런데 아마도 첫 계획보다는 훨씬 단순하고 달성해야 할 목표의 종류도 줄 것이다.

 

이 다음 5개년 목표가 끝날 무렵 나는 정말로 은퇴를 할 생각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시골에 와서 살 생각은 아니며 아마도 일년의 반 정도는 이곳에서 나머지는 서울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는 아마도 쉬흔즈음에 라는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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