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좌절과 인간의 발달

아이루다 2014. 5. 7. 10:01

 

사람의 성격은 참 다양한 듯 하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전체 큰 골격은 비슷한데 세부 생김새는 다른 우리들의 외모처럼 그러한 특징으로 보여진다. 즉 우리는 큰 그림에서는 단순하게 몇 가지 특징을 가진 성격으로써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각 개인별 환경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세부적 패턴으로 갈라지게 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만약 이 세부적 패턴을 분석해서 뭔가 의미 있는 해석을 하려 하면 너무도 많은 요소가 있어서 거의 불가능하며 대부분은 큰 외골격만을 보고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다양해 보이는 성격이 이렇게 큰 그림을 통해 보면 제법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는 편이다.

 

오늘 글에서는 전혀 전문가의 관점은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사람들의 성격을 기반으로 각 나이별로 사람들이 어떤 경험과 환경적 요소를 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성격적 특징을 써 내려가 보도록 하겠다. 이론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는 점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되는 후천적 성격 발달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꼽자면 아무래도 0~10세 정도의 나이 때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모든 행동에 대한 기준점을 정해지고 교육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좌절'이다.

 

좌절이란 단어는 그리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나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좌절에 대한 경험은 정말로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싶다.

 

어린 아이들의 시기에 인간은 지식과 판단력 부족으로 인해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다. 또한 주변 사물이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한 이해가 턱 없이 모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 삶에서 첫 번째 좌절을 경험할 중요한 이유로써 작동한다.

 

자기 중심적 사고방식의 첫 번째는 바로 신생아 시절에 자신에게 독점적으로 작용하는 부모의 관심에서 시작된다. 가장 어리고 가장 약한 시기에 부모는 당연히 다른 자식이 있다고 해도 이 새로 태어난 존재로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 때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을(그 당시는 부모) 독점하는 존재로써 살아간다.

 

하지만 이 시기는 보통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형제가 있고 동생이 태어나거나 혹은 어린이 집에 가면 이젠 자신은 그들 중 하나 일 뿐 선생님이나 장난감등을 독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셈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아이들은 그때 울거나 땡깡을 부려서 자신의 좌절을 부정하고자 하지만 이것은 서서히 극복이 되어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들의 독점적 관심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아이들도 있다.

 

외모가 뛰어나게 예쁘거나 집안에 돈이 많거나 확연하게 영특한 아이들은 다른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서도 관심과 집중을 받게 되기에 좌절을 그리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경험해야 할 좌절의 시기를 뛰어 넘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이것은 그리 좋지 않은 나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은 결국 나중에 또 다른 그런 아이들과 만나게 된다. 즉 뛰어난 존재들은 또 따른 뛰어난 존재들이 모이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든다.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좋은 대학교와 좋은 직장에서 경쟁하게 되고 외모가 뛰어난 아이들이나 신체적으로 탁월한 존재들은 또 그들만의 세계에서 경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뒤늦게 좌절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좌절은 어떤 의미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반면 판단력과 자아 의식이 생겨난 성인의 경우 이런 종류의 좌절은 분노를 일으켜 그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보통 겉은 멀쩡한 능력 있고 멋진 훈남/훈녀이지만 실제로 가정 내에서는 폭언과 폭력을 쓰면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는 특징을 보인다. 사회에서 받은 좌절의 분노를 자신의 제어 안에 있는 가정에서 풀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잘 생각해보면 유아기를 잘못 보내서 자아가 그 시기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은 익혔으나 실제로 그 자아는 10세 이전의 시기에서 멈춘 것이다. 단지 어린 아이의 땡깡이 근력의 힘과 언어 구사 능력이 가능해져서 폭력이나 폭언으로 나타날 뿐이다.

 

물론 성인이 된 시기에도 좌절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그 잘난 무리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승리자의 그룹으로 실제로 이들은 그렇게 오만한 자아를 가지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미 부모는 탁월한 부자이고 그 자신의 능력도 충분하다면 누가 이 존재들에게 대항하려고 하겠는가? 보이는 사람 족족 그 존재들에게 눈에 보이는 칭송을 하게 될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들 존재는 보통 사람들과 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들의 인식엔 자신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일반인 사이의 갭을 만들어 둔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상상 속의 차이가 아닌 실제적인 차이로 나타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그들이 일반인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할 시기가 되면 그땐 어김없이 유아적인 모습을 들어내고 만다. 단지 그 유아적 모습이 그 많은 돈과 능력을 인해서 보통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들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얘기하면서 부러워하기도 한다.

 

인간의 나이로 십대가 되면 본격적인 자아 성장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관계, 즉 친구 사귀는 문제가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사회성에 대한 욕구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는 자신의 평판과 친한 친구가 얼마나 많으냐에 목숨을 걸기도 하기에 반대로 또 왕따에 대한 심각성도 대두되는 것이다.

 

또한 하고픈 일은 많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해서 제어 받는 삶에 대한 불만이나 사람 관계성에 대한 서툰 판단과 행동들이 겹치면서 이 시기는 일명 언제라도 폭발 할 수 있는 시기로써 존재한다. 그래서 이때 잘못하면 꽤나 크게 틀어지는 삶일 살아 갈수도 있고 심지어는 복구 불가능한 길을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의 특징으로 인해 이 시기를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할 일을 했느냐에 따라 그 후 미래가 결정되는 경향이 크므로 인간의 경제적 삶으로써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된다. 10대 이전의 시기는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성격 형성의 시대라고 하면 이 10대의 시기는 인간 사회에서 얼마나 풍요롭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20대가 된 인간은 보통 어떤 기준에서 그 자신만의 꿈을 갖게 된다. 10대의 꿈은 터무니 없고 환상 속에서나 이루어질 법한 것이라면 20대의 꿈은 이젠 좀 구체적으로 변한다. 왜냐하면 일단 자신의 선택한 길이 어느 정도 고정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10대보다는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더욱 열정적으로 되어진다.

 

여기에 더해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경제적 역할도 할 수 있게 되고 성인으로써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자유도 주어지기에 더욱 능동적인 삶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의 반대 효과로 인해서 기존 사회가 가진 견고한 벽을 절실하게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즉 아무리 높이 뛰어도 결국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신에게 고정된 학벌 - 졸업한 학과, 대학교 간판 - 등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결정지어버리게 되는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이때 우리는 두 번째 좌절을 경험할 준비를 시작한다.

 

30대는 이제 본격적인 두 번째 좌절을 경험하는 시기가 된다. 20대때 가졌던 열정이나 꿈도 이젠 이루어지기 힘든 것들이란 점을 인식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출발점이 다른 이들과 경쟁해서 이겨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노력과 능력보다도 실제로 사회적, 경제적 성공이란 목표엔 어찌할 수 없는 운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됨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과정 중에서 30대는 가장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나이이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갖게 되지만 존재로써의 좌절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다가오는 숙명처럼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젠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10대의 꿈이나 20대의 열정은 앞으로 길게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이란 자산을 통해 그 자신의 현실적 상황을 무시할 수 있는 희망적 미래를 바라보았다면 이제 30대는 그것들이 능력과 환경과 그 동안 쌓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다면 그리고 거기에 더해 더욱 무서운 '운'이 따라주지 못하면 절대로 얻지 못한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게 된다. 거기에 그나마 하나의 희망이었던 남은 시간 마저도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후로 이어지는 40대의 삶은 본격적으로 좌절 극복 과정으로써 존재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영유아기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이기도 하다. 즉 다시 한번 우리는 좌절을 극복하여 우리 자신의 삶의 전체적인 가치를 재정의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40대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이젠 그 남은 거의 모든 삶의 과정이 결정되어 진다. 여기에서 좌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이 중 첫 번째는 바로 좌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안정적이고 현명해지고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들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좌절을 받아 들이는 두 번째 태도는 바로 좌절을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다. 이런 태도로써 좌절을 받아들인 사람들 역시 첫 번째 경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부드럽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그것이 부드러운 것이 아닌 유순해 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것은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서 포기하는 것으로써, 결국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환경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태도가 된다. 거기에 노예가 된 이들 중 어떤 이들은 포기를 한 자신에 대한 합리화를 위해 노예가 된 시스템을 찬양하는 것으로 발전해 나간다.

 

세 번째는 좌절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이겨냄의 의미가 아닌 자존감이나 혹은 자존심에 의한 무조건적인 반발심이며 이로 인해 더욱 불안해지고 고집스러워지며 부정적으로 변한다. 이 부류 역시 많지는 않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고약해지는 특성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좌절이란 말이 좋지 않은 의미로 인식되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여 그 누구도 벌거벗은 채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우리 자신이 지금까지 하지 못한 것들이 정말로 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못했음을 그리고 운이 없어서 이루어내지 못한 일에서도 운조차 능력임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하지만 첫 번째에 속한 소수의 어떤 이들은 그 자신을 되돌아 보고 이루지 못한 일이나 욕심만 내고 있었던 것들이 실제로는 그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님을 인정하고 천천히 털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또한 어떤 상황이든 그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게 여기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 살기 보다는 가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책에서나 나올 법한 삶은 정말로 생각보다 정말 힘들다. 우리의 욕망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매일 보는 TV에 의해, 신문이나 잡지들의 광고에 의해, 박사라고 나와서 떠드는 사람들에 의해 끝없이 자극이 되며 그로 인해 우리 자신은 현재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현재보다 더 풍족한 삶을 누려야 한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런 욕망은 실제로 경제적 능력이 더 높아진다고 해서 충족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욕망의 끝은 바로 우리가 10대에 20대때 본 바로 좌절을 경험할 필요가 없는 이들의 삶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우리는 그 어떤 종류의 좌절도 경험하기를 너무도 싫어한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과연 좌절을 경험하고 그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삶과 어떤 운으로 인해서 좌절을 경험할 필요가 없어서 그 정신적 나이가 유아기에 머물러 평생을 살아가는 삶 중에서 후자를 택할 반드시 그러할 이유가 있을까?

 

정말로 우리 자신이 이성과 지식을 가지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적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가 동물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인 유아 수준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그리 원한다는 것이 앞뒤가 좀 안 맞는다. 단지 문제는 유아기적 좌절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고 40대의 또 다른 기회 역시도 날려버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늘도 TV를 시청하면서 스마트 폰의 세계에 빠짐으로써 좌절을 정면으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일종의 좌절을 대처하는 두 번째 방식인 포기의 전략을 쓰는 것이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어떤 삶의 형태라도 행복하다면 그것을 비난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모두 그 자신의 삶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그 어떤 기회들을 단지 현재가 행복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미래의 더욱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유감스러운 것이다.

 

특히 경험을 할만큼 한 40대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한계를 바라볼 엄두를 못내고 포기하거나 부정을 하게 되면 이젠 사회를 이끌어야 할 어른이 된 이 사람들이 이젠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을 갖게 된다. 그것은 바로 비겁하거나 혹은 고약한 모습을 뜻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 수록 보수화 된다고 말한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면서.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건 완전한 거짓말이다. 사람의 보수화는 단지 자신의 가지고 싶었으나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만족을 외면하는 비겁함이나 불만족에 대한 증오심의 표출일 뿐이다.

 

자신의 비겁함을 합리화 해야 하기에 자신의 결국 굴복한 시스템의 찬양자가 되고, 내가 가지지 못했으니 너도 갖지 못해야 한다고 믿으며, 내가 그렇게 힘들게 가졌으니까 너는 절대로 쉽게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바로 '보수' 라는 이름으로 한껏 치장된다. 그래서 나누기 보다는 이미 가진 것들을 더욱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두려움에 떨면서 다음 세대를 살아 가려는 젊은이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라고 말해준다.

 

결국 이 현상이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떻게 이렇게 변해가는지 그리고 왜 젊은 사람들은 정의와 용기를 말하는데 나이를 더 먹어서 더 현명해져야 응당한 보통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준다.

 

아직 나 자신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50대를 넘어서 이후 나이는 바로 이 40대의 연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갈등이 심했고 또한 힘들었던 것만큼 40대에 결정된 개개인의 성격은 이젠 도대체 되돌릴 수 없는 고착화 된 특징이 되어 버린 후 나머지 삶을 완전히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전체적인 과정을 보면 계속 반복해서 언급된 '좌절' 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좌절 그 자체가 아닌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이지만.

 

삶을 현명하게 사는 방법은 자신이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깔끔하게 포기하면서 반대로 자신이 조금이라도 잘하고 이룬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반대로 이러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는 이루진 못하여 어찌해 운이 좋아 얻은 것들을 그 자신의 능력으로 환산해서 그것에 평생 연연해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조차도 못한 이들은 평생 자신이 얻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그로 인해 사회에 대한 끝없는 적개심을 보여준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마음의 태도란 말인가. 왜 한 번 뿐이 삶을 이런 어리석은 태도로 연연하면서 살아가서 결국 그 자신을 망치고 우리 전체를 망쳐가고 있다는 말인가.

 

나이가 비겁함으로 환산되는 요즘 시대는 정말로 나 자신부터도 많은 반성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바로 좌절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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