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보험을 든 스님

아이루다 2014. 4. 24. 06:49

 

몇 해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어떤 신문의 기사에서 요즘은 노후를 걱정하는 스님들이 늘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력이 영 안 좋아진 탓인지 그 기사의 전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고 아무튼 요즘 누구나 안정적인 노후를 걱정하는 것이 대세라는 의미로 쓰여진 기사였던 듯 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스님의 삶을 살아 본 것도 아닌 탓에 그분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아는 지식 내에서는 아무튼 소속된 절이 있다면 그 절에서 어떤 경로든 간에 돈을 벌거나 신도들의 시주 혹은 자체 농사를 지어서 일단 가장 큰 문제인 먹거리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잠이야 절이라는 공간이 있으니 상관없고.

 

아무튼 먹고 살 수 있으니 또 그렇게 자신의 도를 닦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상황을 좀 냉정하게 말하면 그분들은 일은 하지 않고 사는 분들이다. 단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놀고 백수로 지낸다는 뜻은 아니기에 보통 일을 하지 않는 성인의 의미와는 다를 뿐이다. 뭐 이런 경우는 전업주부 역시도 마찬가지 개념이다.

 

많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나 자신의 밑바닥과 또 그것을 인지함으로써 내 미래의 삶을 계획하고 현실적 판단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스스로 가진 미련하고 어리석은 착각들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함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살려고 하는 그 모든 것의 단 한가지 목적은 바로 '마음의 평화', 즉 다른 말로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행복한 삶이다.

 

이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인지하든 못하든 간에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좀 이질적으로 보이는 스님들의 삶 조차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에서 사람마다 많은 차이를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는 커다란 문제 하나는 바로 먹고 살아가는 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계에 관한 일이다. 그리고 결국 이것을 통해 우리들 자신들에게 수 많은 문제가 파생되어 진다. 가치관이나 삶의 목표, 추구 방향, 속도, 태도까지 모두 이 생계와 연관이 되어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노후를 걱정하는 스님들의 이야기는 이 문제에 대해서 웃기지만 그 내면을 들어나 보이게 한다. 나 역시도 생계에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스스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지만 도대체 먹고 사는 일에 대한 부분은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다.

 

물론 운이 좋은 이들은 직장 생활 등을 통해 하고 있는 경제 활동이 자신의 성격과 아주 잘 맞아서 직장 생활을 통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판단에 이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엔 어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과 또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으로 인해 요즘 몇 년째 기껏해야 세 명 정도가 같이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일 역시도 거의 사무실 내에서만 하고 있으며 이 조차도 나름 유동성이 있어서 재택 근무를 병행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 업무 환경만 두고 보면 참 좋은 직장이다.

 

하지만 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 분야이며 보통은 누군가의 의뢰에 의해 그것을 개발해주는 업무이기에 소위 말하는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접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물론 내가 접하는 갑은 그리 포악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는 업무 진행 속도와 일정으로 인한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내가 하는 일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부분일 것이다.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은 일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함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 입장 말고도 많은 이들이 나보다도 훨씬 더 힘든 환경에서 일을 할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행운이 있는 편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바로 내가 아무리 나의 일상적이 삶에서 스스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바꾸면서 살아도 이 현실에 관련된 부분은 도대체 꿈쩍도 안 한다는 것이다.

 

즉 이 말을 다시 풀어서 말하면 먹고 사는 일을 제외한 나의 모든 삶에서 내가 스트레스 제거를 통한 행복한 삶이란 목표를 달성했다고 쳐도 먹고 사는 현실적 시간이 돌아오면 말짱 도루묵처럼 나는 상황에 종속되어 그 무게에 따른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한 때, 나 역시도 남들처럼 내가 택한 직업 군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과 희망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든 간에 내 자신이 매일 조금씩 실력이 있어진다는 뿌듯함으로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인 시간이 있었다. 아마도 나의 삼 십대 초 중반 까지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후로 거의 십 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 왜 나에게 일을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정말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을 안하고 산다고 해서 당장 굶어 죽는 형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 스님들처럼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나의 계획처럼 한 5년 후쯤 은퇴를 하게 되면 (희망사항이다 ㅎㅎ) 아마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많이 해결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실제로 일을 하지 않아서 얻게 되는 매일 8시간 이상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가 더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도 싶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에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도 든다. 스님들이 그렇게 평생 도를 닦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신도들이 보내오는 시주가 있고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절의 재산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만약 정말로 그 자신들이 먹을 것을 구체적으로 구해야 한다면(일을 해서 벌어야 한다면) 과연 이 혼탁한 세상 속에서 도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이 말은 완전히 '가정' 이므로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스님이 되기로 결정했다면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스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색의 욕망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도 있지만 깊이 책임져야 할 대상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도 클 것 같다.

 

태양에서 직접 먹거리를 얻어내는 능력을 가진 식물을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동물들은 말 그대로 식물에 기생해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 역시도 식물을 직접 먹거나 아니면 그 식물을 오랫동안 먹고 액기스만 모아 둔 다른 동물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얻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전체적인 과정에서 우리 인간은 결국 일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발전된 사회 시스템은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 굶어 죽지 않게끔 정도는 지원을 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결론적인 일 일뿐 결국 누군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일을 할 수 없어서 그런 분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 스스로 일을 충분히 할 능력이 된다면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나 역시도 이런 테두리 안에 속한 존재로써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기간 동안은 일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호화로운 삶도 아닌 현재 내 수준의 나름 소박한 삶을 사는 것조차 유지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결국 나는 생계를 유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뎌내면서 또 다른 입장인 나 자신만의 삶을 그려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두 개의 내가 충돌을 한다.

 

한 동안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아침에 출근길의 내 마음은 가끔 매우 맑고 좋을 때가 있다. 거기엔 잡다한 생각과 걱정거리도 함께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침 출근길의 상쾌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 속에서 잊혀지고 별 것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저녁 퇴근 길에 내 머리 속에서는 하루 종일 일 한 내용의 가득하다. 그래서 무겁고 피곤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나는 좀처럼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현실적 삶에도 조차 내가 나머지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과 행복함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도대체 답이 안 나온다. 아마도 유일한 답이 있다면 그것은 일을 그만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뭐 여기에 큰 불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일을 붙잡고 있는 것도 내 욕심 중 하나 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들과 내 자신에 대한 책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마냥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나는 조건에 상관없는 평화로움을 얻고 싶다. 그것이 이런 저런 조건에 의해 맞추진 것이라면 언제든 그 조건이 달라지게 되는 순간 내가 진실로 얻었다고 믿는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실제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내가 산책을 즐겨 하고 자연과 함께 산다고 느끼다가 어느 날 다리가 잘리거나 아니면 내가 사는 공간이 산사태가 나서 무너져 사라져버리고 나면 과연 그때도 나는 행복한 미소와 함께 내 삶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것이 안 된다. 그런데 미래의 나는 그러고 싶다. 그러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내려 놓아야 할까? 어쩌면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내가 행복 하려는 욕구를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많은 다른 형태의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도, 결국 행복도 욕망의 일종이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찾은 정답은 아니다. 그냥 한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것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을 때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단단한 기초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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