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감동은 짧고 현실은 길다

아이루다 2014. 2. 16. 06:44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접하든 아니면 누군가의 추천으로 인해 알게 되든 간에 상관없이 우린 가끔 어떤 이들이나 혹은 동물들에게 까지도 연장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는 꽤나 감정적으로 동조를 하게 된다.

 

그것은 안타까운 사연일수도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일 수도 있으며, 어떤 상황은 그것에 대해서 분노나 짜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은 이 중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거나 강한 감동을 주는 상황들을 접하게 될 때 보통 우리가 하는 행동 방식에 대해 적어 보기로 하겠다.

 

요즘은 동계 올림픽이 한참이다. 그래서 이 맘 때가 되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열심히 나라를 위해 운동을 했고 그 성과로 세계적인 대회에 나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그들 중 메달을 따는 이가 나올 경우, 그 메달 중에서 황금색 메달을 딸 경우 그 선수의 부모, 형제동네 친구나 어른들 심하면 학교 선생님들까지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소개가 되곤 한다.

 

또한 만약 이 선수에게 남들과 다른 좀 어려운 환경이 있었거나 혹은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매우 어려운 상황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리고 사회 각계 각층에서 후원금이 도착하고 이런 미담은 한 동안 신문과 방송의 기사 꼭지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서 이 행사를 중계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 스스로 어떤 격렬한 감정적 상태에 빠져 목이 쉬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경계를 중계하는데, 이것을 얼마나 절실하고 진실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했느냐에 따라 시청률이 달라지고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면 결국 이것은 다음 이런 세계 대회에 다시 그 사람이 중계자라 나설 때 몸 값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스포츠 대회의 이면을 좀 냉정하게 보면 실제로 각 선수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운동을 했고 그 결과로 국위선양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마치 처음부터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개념으로 운동을 해 왔다는 것처럼 그것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요즘 시대에 누가 과연 자신의 이득과 상관없이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는가? 만약 그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믿어도 좋지만. 아무튼 그곳에서 운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뤄나가는 선수나 그 모습을 중계하는 방송인이나 모두 공통으로 흐르는 것은 바로 성공과 그것에 따른 이득 보장이다.

 

아무튼 그것들에 숨겨진 진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던 간에 우린 선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그것을 목이 터져라 중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도 모르게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감동을 느끼는 감정 만큼은 그 순간에 진실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과연 이 감동을 느낀 마음은 얼마나 지속적인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지 한 두 시간을 가는 사람도 있고 하루를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평생을 걸쳐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기억일 뿐이지만.

 

얼마 전 우연히 읽은 한편의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왔었다. 그것은 바로 동계 올림픽 경기 중 사람들에게 꽤나 생소한 종목인데 바로 '컬링'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컬링 종목을 좀 흥미 있어 했었기에 (스마트 폰 게임으로 개발을 하려고 했었다) 이 게임에 대해 이 기사를 접하기 전에 약간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약간의 성과를 보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 선수들이 올림픽 선수촌의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군사 정권 시절 스포츠 국력이라는 일종의 집단 최면 효과를 노린 체육 엘리트 키우기의 일환으로 국가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릴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을 모아서 일명 숙소 생활을 시키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이들 선수들에게 선수촌 입촌은 꽤나 나름 의미 있는 것이며 거기에 더해서 그 안에서 받는 체계적인 훈련과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접하기 힘든 전용 경기장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돈을 내어서 국가를 대표하는 엘리트 스포츠 선수를 키워내고 있는 것이 된다.

 

비록 단체 급식이라고 해도 이런 육체적 활동이 매우 중요한 선수들이 모인 선수촌의 한끼 식사는 꽤나 좋다고 한다. 실제로 그곳을 방문한 기자들도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 하는 정도로 좋다고 하는데, 아무튼 내 예상으로는 그 식당의 한끼 제공 량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선수촌 안에 있는 모든 선수가 식사 시간에 그곳에서 모두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었던 상황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 결국 제한을 두게 되는데, 이럴 경우 보통적 상황이라면 뽑기를 하거나 해서 처리를 해야겠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한 모양이다. 그것은 바로 비 인기종목과 메달 가능성이 낮은 선수들에 대한 차별인데, 결국 컬링 같은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이 한끼 식사는 그저 다른 선수들이 먹는 모습만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

 

물론 그 선수촌 관계자를 말을 보니 외부에서 식사를 하라고 식대는 지불하는 모양이다. 한 끼당 얼마나 책정했는지 모르지만 주변 식당의 평균 값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선수들은 일반인과 칼로리 소비가 심하게 차이가 난다. 심한 경우 하루에 만 칼로리를 소비하는 선수도 있다고 하는데.. 과연 일반인 수준의 한 끼 식사로 이들의 하루 연습량을 챙길 수 있을까?

 

이 기사의 결론은 21세계 대한민국에서 나라를 대표하여 출전하는 선수들이 공식적인 식당에서 밥을 못 먹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참 돈이 없긴 한가보다. 아니, 실제로는 그들에게 가야 할 예산이 어디론가 쉼 없이 새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수 십 년간 식당 하나 더 짓기가 그리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스포츠 엘리트주의를 매우 싫어한다. 이것은 국위선양이라는 일종의 국민 마약 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전개되는 전 국민 우민화 정책의 일종으로 시작된 것이며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형태의 삶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원흉이 되고 있다. 즉 일단 운동 선수로 삶을 출발한 사람은 초등학생은 이후로 자신의 진로를 재설정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먹을 것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대형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동보다는 그 속에 숨겨진 슬픈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내 마음 속에 오래 남는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보통 이런 행사가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서히 잊혀진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평소처럼 열심히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또한 그 사이 또 어디에서가 어떤 불합리함이 벌어지고 안현수 선수처럼 그 안에서 결국 튀어나가 외국으로 귀화를 하는 사람들이 나오거나 정말로 귀화를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기업에 걸쳐진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정권과 결탁해서 만들어 놓은 수 많은 스포츠 관련 협회들은 모두 그 자신들의 사회적 명성과 안정적이고 진정한 의미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히 그런 협회를 만들고 국가에서 지원을 할 때는 그 안에 소속된 선수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만들어 줬건만 그들의 입장에서 선수들은 단지 국민의 관심만 받을 수 있는 성적을 올릴 능력만을 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린 스포츠가 매우 순수한 의미의 가치이며 이것을 통한 진지하고 진실한 감동을 전달받는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 이 감동은 봄에 내린 눈처럼 금새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 안에 숨겨진 나도 도대체 예상도 못하고 과연 얼마나 썩었을지 모를 이 현실적 상황에 대해서 또 누가 얼마나 알고자 할 것이며 또 누가 얼마나 그것을 바꾸고 싶어 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린 이런 것들은 모두 숨겨두고 일단 대회가 열리면 그 안에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고 대한민국 태극기가 세계 어느 도시에 시상대에 걸리며 애국가가 나오는 장면과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감동만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린 정말로 행복하기 위해서 두 눈을 질끈 감고 사는 것을 너무 잘한다. 그래서 우린 결국 감동을 얻어내지만 늘 감동은 짧고 그 감동 뒤에 숨은 현실은 길기만 하다.

 

나는 요즘도 가끔 2002년 월드컵 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정몽준과 노무현 두 사람이 후보 단일화를 했었던 해프닝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나 역시도 그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거의 물과 기름을 가지고 둘이 섞으라고 한 격이 된다. 그것은 그 후 그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후보 단일화라면 비슷한 성향이어야 했지 않는가?

 

이것은 아마도 월드컵이란 대형 국가적 행사를 갓 치룬 감동에 가득 찬 대한민국의 국민이 보여준 최고의 감정주의 현상이 아니었나 싶다. 대한민국 축구가 4강에 갔다는 이유로 축구 협회장을 맡은 어떤 사람을 대선 후보로 밀어주는 이 사회에서 스포츠가 주는 감동은 단지 감동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계산이 빠른 이들은 이것에 숨겨진 진정한 이득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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