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게임의 법칙

아이루다 2014. 1. 13. 09:43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가끔은 일명 보이지는 않지만 왠지 지켜야 할 것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무슨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는 좀 다르게 인간 스스로가 인간의 세계에 속해서 살아고자 할 때 다수에 의해 혹은 소수의 요구에 의해 정해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야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뭔가 찜찜한 것들을 말한다.

 

이것의 아주 쉬운 예는 바로 회사의 회식이다. 특히 회사의 회식 중에서도 1차가 끝난 후 2차, 3차.. 이 때 음주가무를 그리 즐기지 않는 이들은 생각 같아서는 여기에서 빠지고 집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이것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무엇인가가 그들의 행동을 막고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하고픈 대로 하겠지만 그 결과가 그리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과 이 글을 읽는 분들 사이에서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보이지 않는 않지만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지인이나 회사 동료의 경조사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자신의 경조사를 위한 투자로 인식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은 이것을 부담으로 느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관계성에 부정할 수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우리 자신을 그런 장소로 가도록 만든다. 여기엔 분명히 시간과 돈이 들게 되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참석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혹은 직장과 같은 장소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나 성의 정도로 아주 긍정적으로 해석해 줄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것들 중에서는 상당히 심각하고 실제로 초법적인 상황까지도 나타난다.

 

꽤나 예전에 투캅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비리에 빠지다 못해 비리를 주체적으로 저지르는 오래된 경찰과 이제 갖 경찰학교를 졸업한 소위 말하는 FM 경찰이 짝을 이루면서 벌어진 여러가지 소동을 그렸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끔 이 비리 경찰의 과거 모습 역시도 이 신참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표현 된다. 즉 그 비리 경찰 역시 FM 경찰이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변질되었던 것이다.

 

이런 예는 현실에서도 무척 자주 보게 된다. 우리 사회는 정말로 안 썩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의 모든 공공조직에는 비리가 만연하다. 물론 아주 가끔 이것에 대해 표출이 되고 사회적 관심이 쏟아진 적이 있지만 이것은 마치 바퀴벌레가 가득한 방에 장판을 깔아 놓은 격이다. 그래서 어딘가를 들면 거기에서는 온갖 바퀴벌레가 다 튀어 나온다. 우린 단지 이것을 걷어낼 능력과 용기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비리에 놓인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물론 그런 이도 있겠지만 우린 어려서부터 열심히 도덕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배우게 되며 또한 양심이란 것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엔 나름 도덕적인 인간으로 출발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곳에 있는 선배들의 일명 '관행'에 대항하지 못하고 점차 젖어들다가 결국 그 자신 역시도 그런 무리들 중 하나로 변해가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우린 '게임의 법칙' 이라고도 한다.

 

게임의 법칙은 아주 이해하기 쉬운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명절이나 기타 심심할 때 즐기는 '고스톱' 이란 게임을 생각해보자. 여기엔 약간은 복잡하지만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규칙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게임에 참가한 모든 이는 게임이 사전에 정한 규칙을 준수해야만 한다. 만약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게임을 계속 할수도 없으며 그 사람은 그 게임을 안하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나타나는 게임의 법칙은 이런 게임보다 훨씬 은밀하며 명확하지도 않다. 즉 참가 유무를 가용하지도 않고 참가했더라도 그 규칙을 반듯이 지키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참가하지 않기도 무척 힘들며 만약 참가한 후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함을 통해 그것에 대한 제제를 가한다.

 

최근에 본 영화 '변호인'을 보면 주인공 송우석 시선에서 본 그 사건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독서 모임에 참가 중인 이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한달 아니 두달이 가까운 시간동안 가족에게 통보 한번도 없이 어딘가에 가둔채 자행된 엄청난 폭행, 그리고 그 고문을 통해 자백한 진술서만이 유일한 증거인 일명 '국가 보안법 위반 사건'

 

여기에서 법에서 말하는 인권은 사라지고 법에서 말하는 정의로움이나 사람의 가치는 모두 부정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많은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이것은 공안 사건이야' 라는 말이다.

 

영화 속에서 말해진 공안 사건은 바로 국가 보안법에 엮인 사건을 말하며 이것은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법을 초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일명 공안통들이 말하는 게임의 법칙이다.

 

아마도 게임의 법칙이 가장 잔인하게 적용될 수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다른 게임의 법칙은 인간관계나 혹은 돈에 대한 탐욕으로 벌어졌다면 이 공안사건을 주도한 이들이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법칙은 바로 국가 지배 권력의 목적을 위한 무자비하고 비 인간적인 공권력 행사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개인의 인권이나 사회적 합의 그리고 가치 등은 모두 깡그리 무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법의 심판을 내려야 하는 가장 중립적이고 정의로와야 할 법정에서 버젓히 그 존재감을 그득하게 들어내면서 악마같은 이빨을 들어내어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협박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봐라, 나는 언제든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조작 해 낼 능력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가 정한 게임의 법칙에 대해 오직 복종만을 요구한다.' 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게임의 법칙에 자발적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이들은 '모양새가 빠진다든가', '적당히 잘 해보자든가', '이것은 국가 보안법 사건이야' 라고 말을 하면서 빠르게 그리고 적당하게 마무리 짓길 원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한 사나이가 그것이 틀렸다고 그리고 그 피고인들은 무죄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이 재판은 그들이 국가 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인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를 입었는지를 가려야 하는 자리라고 외친다. 그 게임에 참가한 모두가 법칙에 순응 해야만 한다고 말 할 때  단 한명의 사람만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법칙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

 

회식자리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1차,2차,3차를 따라 다녀야 할 규칙은 없으며 잘 알지도 못하는 직장 동료의 돌잔치에 꼭 가야할 필요가 없다. 직장 선배들이 해왔던 잘못된 관행을 굳이나 그 자신이 똑같이 해야 할 의무도 권리도 없다. 우리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 아닌 정말 오랫동안 낙엽이 비에 젖듯이 그렇게 변해간다. 이것을 조심하지 못하면 결국 그 자신도 신입때 봤던 그 선배 직장인들의 모습 그대로 변해갈 뿐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선진국이 되어 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아마도 국민소득 4만불을 선진국의 기준으로 삼고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도 그렇긴 하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날이 올까? 국민소득 4만불은 국민 소득이 4만불이 사람들이 다수가 존재할 때 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100만불의 소득을 올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만불의 소득을 올려 단지 평균치만 4만불이면 우리는 선진국이 되는 것일까?

 

이것은 4만불의 시대만을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현재의 국민 소득은 2만불을 넘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4인가족 평균 소득이 8천만원 이상이 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소득 8천만원이 되는 가정은 소득 순위상 50%지점 쯤에 있을까? 아니다 이들은 최소 20%지점 이상에 존재하고 있다. 왜 이렇게 부의 분배가 이토록 심하게 치우쳐 있게 되었을까?

 

그런데 이것이 4만불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바뀔 것인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가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수많은 게임의 법칙에 의해 보이지 않는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수에게 아주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들은 그 게임의 규칙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거나 혹은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

 

결국 2014년 대한민국은 1980년대 초반 변호인이 법정에서 그 청년들을 변호하던 그 시대와 달라졌을까? 과연 그 시대의 안기부가 했던 짓들과 현재의 그 후속 기관인 국정원이 하고 있는 일과 다를까? 이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이제 사람을 가두고 때리는, 물리적 증거가 남는 짓을 안 할 뿐이다. 이젠 그들은 음지에서 컴퓨터를 켜고 여론을 조작하고 심지어는 대통령을 뽑는 대선에 개입했다.

 

하지만 국민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것의 심각함을 인식할까? 국가 기관, 그것도 국가의 대내외적 모든 정보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은 기관이 자신들의 이득과 관련된 특정 정치 세력을 위해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활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오늘도 포탈의 검색어는 연예인 관련 소식들이 즐비하고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와 야구 이야기가 거의 모든 화제로 등장한다. 그리고 2014년도에서도 우린 늘 빨갱이란 말을 듣고 살아 간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에게 먹이를 주는 존재들을 위해 또 다른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 내어 지배하고 있으며 이것은 1990년대 그 공안통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고문 형사들이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시간에 사람을 패다가 가슴에 손을 올리고 그 자신이야말고 진정한 애국자라고 우겨대는 그 상황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의 국민 소득이 5천불에서 2만불까지 변해올 때 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그 모든 유효한 가치관의 총합은 그리 변하질 못했다. 우리는 더 잘살게 되어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 넓고 편한 공간에서 쉬면서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그 좋은 가치들은 더욱 더 망각해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계속 인정하는 동안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사회 곳곳에서 변호인 송우석이 그 게임의 법칙은 허구라고 부정했던 그 용기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변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겨우 하는 짓이 내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옳다고 우겨대던 그 법칙들을 할 수 있는 한 부정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쓰러지지 않게 버티는게 한계여서 결국 남들에게는 어떤 용기도 못내고 있는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이 정도도 많이 힘들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자신이 송우석 변호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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