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큰 손해와 작은 손해

아이루다 2013. 12. 2. 12:32

 

회사 동료에서 최근에 두어번 만원을 꿔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좀처럼 이것을 갚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그런것 같지는 않고 돈을 꾼 사실 자체를 잊어먹은 듯 하다. 그런데 달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괜히 돈을 꿔줘서 마음만 불편해 졌다.

 

어떤 이는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소심한 마음에 달라고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사람도 있으며 또 다른 이는 돈을 꿔준 사실을 잊어 먹어서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면서도 작다.

 

작은 면에서 보면 우선 돈의 액수가 크고 작음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 만일 이 돈의 액수가 만원이 아닌 천만원 1억의 돈이었다면 여기엔 성격 같은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령 그 자신이 소심해서 돈을 달라고 못한다고 해도 주변에서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또한 절대 까먹지도 않는다. 천만원을 꿔주고도 까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갑부이다. 그러니 결국 이런 상황에 대한 차이점은 자신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큰 면에서 보면 손해에 대한 대응 방식의 차이이다. 어떤 이는 돈의 손해에 대해 단 1원의 손해도 안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이는 그냥 그런 만원은 안받는게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앞에서 말했듯 금새 까먹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성격적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절대 바꿀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가 되기도 한다. 어디까지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느냐는 정말 바꾸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노력이나 혹은 오랜 경험에 의해 변화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아주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작은 손해에 대범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돈의 가치보다 자신에 대한 상대의 대응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되기 때문에, 혹시 나를 우숩게 봐서 돈을 갚지 않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돈의 액수가 작다면 이런 생각 부분이더 크고 돈의 액수가 크다면 실제로 돈을 빌려간 상대가 이득을 보려고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종류의 이득과 손해에 대해 끊임없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것은 원론적으로 누구나 이득을 보려하기 때문에 그 이득의 수준을 어느 정도껏 만족시키면서 손해를 감수하는 개인별 판단 기준에 따라 결정이 되는데 생각보다 이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는 능력이 매우 크게 차이가 나며 많은 이들이 이것에 대한 잘못된 계산 방식을 배워 이득을 보는 듯 하지만 결국 손해를 보는 행동을 많이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진 자신이 명백히 손해를 보는 상황을 거의 못 참는다. 물론 소심한 성격 탓에 그것조차도 감수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지만 누가 명백한 천원짜리를 오천원에 사고 싶어 하겠는가? 설령 속아서 샀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바로 잡으려고 한다. 물론 방법이 있다면 말이다.

 

산다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평소에 손해를 보는 것들이나 반대로 이득을 보는 것들은 꽤나 명시적으로 들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법 적절하게 이것에 대한 처신을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결국 많은 이들은 자신의 손해를 최소화 시키고 이득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극대화 시키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서 자신의 삶이 적절한 이득을 얻고 살아간다고 믿게 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린 정말로 적절하게 이득과 손해를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 동작 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채택한 경제 운영 시스템도 역시나 자본주의 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우리나라의 부 편중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즉 이미 많은 돈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적게 가진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가진 이들이 미래에 있을 이득을 더 많이 챙겨가고 있을까? 물론 기본적으로 능력의 차이가 있다. 돈이 많은 이들은 실제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보다도 그 능력에 비해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돈은 바로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공유해야 할 이득 분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뇌물을 받은 공무원은 그 자신은 이득을 챙겼고 그리고 뇌물을 준 업체도 이득을 챙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손해를 보는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세금을 내는 다수의 국민들이다. 요즘 엄청나게 욕을 먹는 국회의원들 역시도 국민 전체에 대해 손해를 입히고 있는 존재들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뽑은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에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득을 취하고 있으며 반대로 다수의 국민들은 끊임없이 손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손해와 이득분에 대한 평가 기준은 매우 독특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천만원을 주려고 했지만 사정이 생겨서 못 주었다고 말하는 것과 당신이 가진 천만원을 내 놓으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두 경우 모두 천만원이란 돈이지만 이 두가지 상황에 대해 완전히 같은 가치를 느끼는가?

 

첫번째 경우엔 그냥 약간 섭섭하거나 아쉬울 수 있지만 두번째 경우에는 실제로 내가 가진 돈 천만원이 온전히 사라진 것이기에 절대로 그냥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첫번째와 두번째가 동시에 일어나면? 그러니까 천만원을 주자마자 바로 가져가면?

 

여기에서 잘 생각해봐야 할 점은 바로 돈 그 자체가 아닌 이 돈에 대해 어떻게 마음 속으로 받아 들였느냐에 따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돈이 내 통장에 입금되고 이 돈을 어떻게 쓸지 마음껏 생각 한 후 실제로 쓸려고 한 시점이나 실제 쓰고 난 후 다시 천만원을 되돌려 줘야 하는 경우와 돈이 입금되자마다 인지할 틈도 없이 빠져나간 경우는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런 인식적인 문제로 인해 우린 기대치 않은 어떤 이득을 얻었을 때 이것을 꽤나 쉽게 타인들과 나누게 된다. 즉 작은 금액의 복권에 당첨되거나 기대하지 못한 인센티브를 받을 경우 이것을 친구들에게 한톡 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이득분이 아직 제대로 그 자신에게 인식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그래서 쉽게 번 돈은 쉽게 쓰인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원리로 인해 새로 생긴 돈이 내 돈이라고 인지된 상태에서 천만원은 매우 아깝지만 이 돈이 내 돈이란 것에 대해서 인지를 못한 경우엔 크게 아깝지 않아 한다. 즉, 이 이야기는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는 돈이 아깝다는 절대적 사실처럼 인식되는 것 조차도 그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의 인지능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천만원이라는 절대 불변의 가치로 여겨지는 돈이 실제로는 내게 주어지는 상황과 그것을 인지하고 거기에 기대는 기대치 등과 현재 나 자신의 상태에 따라 꽤나 큰 가치적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천만원으로 사먹을 수 있는 붕어빵 개수는 정해져 있지만 이 천만원은 우리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온전히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이런 이득과 손해에 대한 인지 방식으로 인해 우린 실제로 정말 큰 손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 있어서 매우 무딘 반응을 보여준다.

 

자신의 돈 중에서 백만원을 훔쳐가 도둑과 나랏돈 수십억원을 훔쳐 쓴 비리 공무원 중 누구를 더 심하게 처벌하고 싶겠는가? 혹은 누구를 더 잡고 싶겠는가? 대답은 당연히 내 돈을 훔쳐간 도둑놈이 된다. 왜냐하면 공공의 이득을 훔쳐간 사람은 마치 통장에 스쳐 지나간 돈처럼 현실감도 없고 그것이 내 돈이란 인지도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엔 액수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잘못 사용된 돈이 수십조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된다.

 

우린 이런 인식능력 부족으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세금 수납률이 50%정도 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백 조 이상의 돈이 개인별로 착복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백 조로 잡았을 경우 국민 한사람당 200만원의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 된다. 거기에 실제로 걷힌 세금은 제대로 활용이 될까? 이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이 약 300조가 넘는다. 그런데 내 기준으로 보면 이 중 절반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사라져간다. 잘못된 사업에 투자되거나 실제로 해택을 봐야 할 사람이 받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이 이런 공적 자금을 소모한다. 또한 아무런 효과도 없고 실효성도 없는 대규모 토건 사업에 오용된 돈 역시도 엄청나다. 이런식으로 우린 막대한 돈을 매년 쓸데없는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런 원리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매년 개인별로 수백만원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손해를 입고 있는 셈이 된다. 하지만 정작 그 손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자신이 오늘 손해를 본 만원에 연연해 할 뿐이며 정말로 큰 손해에 대해서는 꽤나 관대하고 무관심 하다. 그리고 이 결과로 인해서 오늘도 약삭빠른 이들은 야금야금 눈 먼 돈을 챙겨가서 개인적인 부를 이룬다.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자신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 되었을 때와 아닐 때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인다. 만약 유아의 보육비 지원 정책이 새로 나왔다면 아이를 가진 부모는 그것에 귀가 쫑끗하게 되고 혹시 예산 부족으로 인해 이 제도의 지원 범위가 축소되기라도 하면 온갖 욕을 다하겠지만 아이가 없어서 해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일 경우 도통 여기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가 있는 부모라고 해도 원래 주지 않았다면 관심이 없는 것은 비슷하다. 관심이 생기는 때는 오직 지원을 하다가 중단하는 때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관심이 없는 영역에서는 국민을 상대로 고가 정책을 펴는 대기업과 정부와 유착해서 대규모 토목사업등을 벌이는 건설회사, 심지어 그 위험한 원자력 발전소에 가짜 부품을 납품한 회사와 그것을 뇌물을 받고 용인한 공무원들까지 다양한 부당 이익자가 존재한다. 이들이 실제로 우리에게 입힌 손해란 정말로 막심하지만 우리 사회는 나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인해서 그들을 쉽게 잊고 만다. 하지만 오늘도 우린 그 자신이 실제 삶에서 절대로 단 한푼의 손해도 입지 않으려고 오늘도 두뇌를 이용해 열심히 계산 중이다.

 

다수가, 어떤 경우엔 전체가 입는 큰 손해에는 매우 관대하고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작은 손해엔 절대로 참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는 지금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큰 손해가 최소화 되고 개인별로 당하는 작은 손해에 대해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생길 때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려서 뼈다귀를 물고 강을 건너던 개가 개울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물에 비친 뼈에 욕심을 내어 짖다가 물고 있던 뼈 마져도 빠뜨린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의 어리석음을 비웃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린 이 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내가 눈 앞에 벌어지는 손해를 절대로 용납하지 못해서 그 안에서 치고 받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그 밖에서 가끔 둘이 싸우도록 뼈다귀를 던져 주면서 그 자신은 너무도 맛있는 안심이나 등심을 구워 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기는 원래 그들의 것이 아닌 우리 전체가 같이 나눠 먹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몇명이 독점해서 먹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눈 앞에 보이는 뼈를 차지하고자 서로를 헐뜯고 욕하고 있으며 그 모습을 보는 기득권들은 우리가 개를 보고 했듯이 비웃고 있다.

 

이것은 결국 어느날 우리 스스로 이 뼈를 던져주는 존재들이 원래 이 뼈뿐만 아니라 그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고기가 우리 모두에게 돌아갈 것임을 깨닫고 그것에 대해 분노하며 옆에 있는 사람과 싸우기 보다는 힘을 합쳐 그렇게 부당하게 고기를 독점하고 있는 존재들에게 제대로 된 분노를 느껴야 하지만 그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이순간에도 큰 이득을 얻는 무리들이 원하는 세상이며, 우리가 그들의 의지대로 움직이면서 싸움에서 이겨 뼈를 얻어 낸 후 그 자신이 제법 똑똑한 개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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