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진화를 멈춘 인간

아이루다 2013. 5. 3. 10:57

 

약 200년 전쯤 영국에서 한 노학자의 저서로 출간된 한권의 책은 당시의 세계를 크게 진동시키며, 한마디로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 책의 이름은 '종의 기원에 대하여' 였으며 저자는 찰스 다윈이었다. 이 책은 후에 '종의 기원' 이란 좀 더 정제된 제목을 갖게 되는데 이후 우린 '진화론' 이란 추상적 이름으로 이 책을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보면 아마도 인류 문명에 있어서 가장 큰 의식의 변화, 즉 인류 문명이나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중대한 질문과 그것에 따른 변화를 요구한 사건중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충분히 들어가고 심지어 그 순위가 1위를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책이라는 것이 학계 다수의 의견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종의 기원이 가진 파급력과 또한 그로 부터 야기되는 파격적인 인식의 전환은 정말 드라마틱 한 수준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이에 필적한 수준의 자연과학사적 사건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우린 종의 기원을 통해 우린 오랫동안 생각해 온 우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외에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갖게 되었다. 원래 그것은 천년 가까운 시간동안 그 출처도 알기 힘든 단 한 권의 책에서 말한 흙으로 빚은 남자와 그 갈비뼈로 만든 여자에 대한 유대 민족의 민족신화를 통해 우리가 시작되었다고 믿어졌었다.

 

물론 2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다윈이 말한 진화론을 절대 진리화 시키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수 많은 연구를 통해 그 하나의 가설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적어도 방향성에 있어서는 옳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겠지만 또 언제가 우리가 전혀 모르거나 혹은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의 과거가 들어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가장 신빙성 있는 우리 존재의 자연과학적 입장을 담은 진화론을 무시할 필요가 없다. 진화론은 현 시대에서 가장 유력한 개체 발생설이며 또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 엄청난 종의 무리들을 설명하는 가장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이다.

 

진화론에서 진화가 이루어지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게 다뤄진다. 일단 생존을 위해, 종의 번성을 위해, 짝짓기를 위해 등등.. 종류는 다르지만 따져보면 그 원인 모두 뿌리는 같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진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종의 영생이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유전자라고 불리는 종의 특성 정보를 가진 특정 단위의 영구적인 보존 원칙이다. 그걸 위해 각 종은 끝없이 변화하고 환경에 적응한다. 그 덕분에 우린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보다는 힘들고 죽음을 코 앞에 둔 시기, 즉 종의 단절 혹은 유전자의 종말이 구체화된 시점에 필사적인 진화를 해 왔다는 것이 많은 연구 사례를 통해 알려져 있다.

 

우리 인류 조차도  500만년전 쯤 혹은 그전에 현생 유인원 류와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가지를 쳐서 나온 후 수백만년을 그냥 그 상태로 유지하다가 결국 빙하기에 들어 극한의 생존환경이 되자 거기서부터 급속한 진화를 이뤄 현생 인류로 발전을 해 온 것도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식으로 보면 결국 거의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조건에서는 나태하게 지내다가 생명의 연장이 매우 불투명하고 미래의 자손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이 희박해지면 절실하고 다양하게 적응을 해 단종이 되어 멸종하거나 혹은 타 종의 멸종을 계기로 더욱 번성하거나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을 뚫고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진화는 때로는 매우 느리게 혹은 너무도 급격하게 이루어지는데 우린 이제 겨우 수백년의 연구결과를 보고 진화론의 허구를 논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르고 있다. 솔직히 지구의 전체 역사를 보면 수백년은 도대체 얼마만한 시간일까? 아무튼 이 어리석은 진화론 부정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이제 진화 그 자체를 살펴보자. 그중에서도 과거의 진화해 온 역사가 아닌 미래의 진화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 말하고 싶은 내용은 과연 우린 앞으로 좀 더 진화할 수 있을까? 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두뇌 능력이 어느 임계지점을 넘은 순간 우린 결국 고대의 문명을 이루어내었다. 구석기, 신석기를 거쳐 동굴이나 움막에서 살던 인간 부족이 어느 순간 건물을 짓고 도시를 이뤄 거대한 공생환경을 만들어 낸 것은 몇가지 사건이 있어서 였는데 그것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작물', 즉 농사를 통해 정착된 식량공급처를 만들 수 있었던 능력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우린 한동안 반복적인 도시 짓기만 반복했을 뿐 초기 도시모델과 그로부터 몇천년이 지난 후의 도시모델은 큰 차이없이 지내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실제로 현대의 기술로 봐도 고대의 피라미드나 로마의 콜롯세움등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 몇백년 특히 20세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변화가 일어났다. 즉 20세기는 그전의 수천년의 시간에 이뤄낸 문명발달에 비하면 그야말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급속한 변화의 시기였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이 정도의 변화의 시기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떻게 이 시기에 우린 이런 발전을 이뤄낸 것일까?

 

* 이 시기에 우린 물리학, 화학, 생물학, 유전학, 의학 등등의 자연과학적 진화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그 결과로 인해 전기, 원자력, 컴퓨터, 인터넷, 유전자, 로봇, 휴대폰 등등의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분야를 보라. 우리가 인문과학적으로 무엇을 진화시켰을까? 거의 없다.

 

거기에는 당연히 지식의 공유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생각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계 각 지역에서 생성된 정보가 다양한 통신 수단을 통해 혹은 대량 출판의 기술을 통해 쉽고 빠르게 전파되어 나간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을 독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꼽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실제로 중세이후 유럽은 이 출판기술의 발달로 인해 좀 더 쉬운 정보 교류가 일어날 수 있었고 결국 그 결과로 인해 '종의 기원' 같은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 즉 정보의 공유가 갖는 진정한 의미가 뭘까?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인 지금, 인류는 인터넷이란 거대한 네트워크 망을 통해 정말 수 많은 잡다한 지식을 얻어낼 수 있다. 검색을 위해 최적화 된 구글이란 사이트, 수 많은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유튜브, 지인들의 사생활을 언제고 들여다 볼 수 있는 페이스북, 내가 하고픈 말을 짧게 담아 하루만에도 수백만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트위터, 언제 어디서건 내가 하고픈 말을 간편하게 전달 할 수 있는 카톡과 같은 채팅 툴 등등.. 이런 것들이 과연 정확히 무엇을 하는 도구들 일까?

 

답을 말하자면 이것은 정보의 공유도구이다. 물론 그것들에 속한 정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거나 혹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 어떤 것이든 정보가 아닌 것이 있는가? 카카오톡의 채팅 내용은 제 삼자에게는 쓸데없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에겐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정보란 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주체적 범위에 따른 구분은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세상 모든 사물 자체가 정보란 말에는 크게 틀림이 없다.

 

1900년대 후반만 해도 이 정보들은 대부분 인쇄되어 책, 신문들으로 공유되었지만 약 20년 전부터는 인터넷통신망을 통해 이란 디지털화 된 정보로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그 근본 원리는 동일하다. 원리적으로 보면 책이 있기 전에는 사람이 하는 말이나 벽에 그린 그림으로 그 정보를 공유했으며 여기에서 이 방법들의 가장 큰 차이는 단지 정보의 총량이 뿐이었다. 즉 말이나 그림의 정보량을 1이라고 치면, 책은 100,000,000 이 되고 현 시대의 인터넷은 100,000,000,000,000.... 구글의 말처럼 10의 100승일 수도 있다.

 

* 현시대의 사람들은 인터넷의 발전을 온라인 게임, 카톡, 페북, 유튜브와 같은 구체화 된 상품을 통해 느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전세계 정보를 이동없이 한자리에서 검색 가능하고 찾아 볼 수 있다는 기술적 방법이 의미하는 바는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다. 나는 단순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통해 감자 심는법, 탁자 만드는 법, 그리고 나무와 톱을 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익숙함은 언제나 찾아오지만 우리가 과거 30년 전에서 갑자기 이시대로 왔다면 우리는 정말 놀라서 서있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의 공유가 어떤 의미가 될까? 인류 문명의 발전은 왜 정보의 공유와 함께 해 온 것일까? 이것은 생각해보면 너무 쉬운 질문이다. 그래도 이것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할때 누군가 이미 다 연구해 놓은 것에서 출발하는 것과 처음부터 하는 것의 차이를 한번 상상해보자.

 

단순히 책상 하나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산에서 나무를 하기위해 나무를 짜를 도구를 만들기 위해 날카로운 돌을 만들고 그것으로 한달간 나무를 자르고 또 길이를 재기 위해 넝쿨로 자를 만들고, 책상 모양으로 다리를 만들고.. 아무튼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책상 만들기는 1년을 해도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내가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도구가 있고 책상을 만들 합판이 있다고 치자. 난 단지 재고 자르고 못을 박음으로서 단 하루만에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심지어 그냥 인터넷이나 근처 가구점에서 10분내로 살 수도 있다.

 

정보의 공유는 이런 의미이다.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으로 나는 더 추가적으로 더하면 된다. 인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로 일컬어지는 아인슈타인 조차 자신이 과거의 거인들의 어깨에 타고 있다고 표현을 했듯이 우린 그 어떤 것도 처음부터 하지 않고 이미 잘 만들어진 지식 체계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듯 정보의 공유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간에 그 시작 지점을 매우 높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린 현 시대를 집단 지능의 시대라고 부른다.

 

나 혼자 열심히 뭔가 만들어 내는 시대는 거의 지나갔다. 이젠 다수의 지능이 모여서 만들 때 그것이 경쟁력이 있는 시대로 접어 들었다. 그래서 이젠 리더의 시대가 된 것이다. 한명의 뛰어난 천재가 아닌 여러 사람에게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 장점을 뽑아내어 전체의 시너지를 일으켜 내느냐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근원적인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그것은.. 우리는 너무 우리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다가 우린 개인적 능력 극대화가 아닌 다수의 힘으로 발전하는 단계로 진입해 버려서 더 이상 하나의 잘난 개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 것이다. 즉 더 똑똑한 인간보다 좀 덜 똑똑하더라도 다수와 함께 잘 어울리는 인성을 갖춘 인간이 필요한 시대라는 말이다.

 

물론 아직 스포츠 분야는 개인의 신체적 능력이 중요한 분야라서 지금 이순간도 육체적인 진화는 이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정신적 능력은?

 

거기에 더해 냉정하게 말하면 자연계에서는 약자는 자동으로 그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도태되어 우린 늘 후손에게 가장 강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유전자만 내려보내는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약육강식이란 자연의 진리를 뛰어넘어 약자의 유전자 역시 후손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인도적이지만 유전자 입장에서는 재앙에 다름이 없다. 단절되어야 할 약한 유전자가 후손에게 계속 전달되어진다면.. 어떤 영화에서 처럼 미래는 정말로 멍청한 인간만 존재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똑똑한 이들은 아이를 적게 낳고 멍청한 이들은 아이를 생기는데로 낳는다면 말이다.

 

이 두가지 측면, 첫번째는 집단 지능에 의한 기술 문명이 너무 빠르게 발전해서 도대체 우리 유전적 진화가 필요한 시점에도 기술적으로 해결해버리는 상황과 두번째는 자연적으로 도태되어야 할 유전자가 미래에 전달되는 현상이 겹쳐지면 우리의 후손은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쉬운 예로 지구의 중력이 지금보다 20%정도 늘었다고 치자. 아마 자연계의 거의 모든 동물들의 첫 세대는 매우 힘들게 지내겠지만 수백년만 지나도 그들의 뒷다리 근육은 지금의 두배 이상 강하게 발달하고 또한 거기에 맞춰 모든 신체기관이 적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아마도 이 20% 늘어난 중력을 이겨낼 장치를 만들어서 개인별로 차고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기술발전 수준에 따라 상황이 다르겠지만 변화된 상황이 되었을 때 우린 신체적으로 적응하기 보다는 그냥 기술을 발전시켜 극복해 낼 것이란 의미다. 지구의 모든 얼음이 녹아 '워터 월드' 처럼 물로만 만들어진 세상이 되더라도 우린 아가미를 진화시키는 것이 아닌 물로 부터 호흡을 해낼 수 있는 호흡 장치를 개발해 낼 것이다.

 

처음에도 말했듯 모든 생물의 진화는 바로 우리를 괴롭히는 환경변화로부터 이루어진다. 환경이 척박해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변종을 만들어 내고 그 중 적응하는 변종이 그 종의 이후 존재를 책임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은 이 가장 근원적인 지구 생태계의 원리를 어긋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대로 가면 우리는 진화를 멈춘 생명체가 될 것이다.

 

참고적으로 현재 화성에 가서 살 화성주민을 모집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오직 편도이다. 즉 가기만 할 뿐 오지는 못하는 것이다. 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것 같은가? 화성에서 다시 우주선을 띄울 기술이나 연료가 부족해서? 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거기에서 기지를 짓고 10년 20년이 흐르면 언젠가 가능해질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불가능 하다. 그것은 바로 화성의 중력이 지구에 비해 현저하게 작아 거기에서 수십년을 보낸 인간은 골밀도가 줄어들도 근육량이 줄어들어 지구에 왔다가는 나이가 젊더라도 80살 먹은 골다공증에 시달리는 노인네가 되기 쉽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태어난 아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참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주에서 단 몇달만 있어도 우리 신체는 근육량이 50%까지 줄어들어 버린다. 초기 우주 경쟁시대에 우주에서 3개월을 보낸 소련의 승무원들이 지구에 귀환한 후 스스로 걷지도 못한 처지가 되었다는 것은 아주 유명한 실제 예이다.

 

지구의 환경은 느리지만 쉼없이 변해가고 있다. 과연 우리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어디까지 기술의 진화를 이루어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술의 진화는 생명체의 진화를 방해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물론 우리 역시 생명체이기에 아주 끈질기게 적응할 것이다. 우주시대가 되었어도 지구가 살기 불가능한 행성이 되었더라도 우린 어떻게든 우리 존재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미래는 완전히 예측 불가능 할 수도 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시련이 다가왔을 때 우리가 또 어떤 기술로 그것을 극복하냐에 따라 진화를 할지, 기술을 발달시킬지, 멸종하게 될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진화의 커다란 흐름에서 벗어나 버린 우리 인간이 그리 긍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사족으로 쓰자면 우리 인간의 비만은 진화와 기술발전이 가장 엇갈림의 예이다. 우린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풍요로운 식탁을 매일매일 차릴 수 있는 형편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은 자신이 언제 굶고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그것을 열심히 저장하고 있다.

 

실제로 우린 이 저장에 의해 수 많은 성인병과 운동 부족으로 인해 오는 노쇠까지 좋지 않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 만약 이 상황에 맞게 진화를 해야 한다면 우린 먹는 것의 대부분을 그냥 통과시켜 똥으로 내보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몸은 수천만년을 이어온 기근의 시대를 기억하고 있음이 문제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우리 몸이 좀 더 비효율적인 에너지 저장 체계를 갖추게 될까? 아무튼 현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이들이 진화된 사람들이다. 이게 자연스럽다면 아마도 이들이 미래에 다 많은 자손을 남겨서 결국 우린 비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갖춘 존재로 변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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