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가을 산행

아이루다 2013. 10. 20. 08:04

부산한 준비는 아니지만 정말 오랫만에, 아니 나 개인적인 것인 아니지만 유진이와는 정식으로 함께하는 산행을 처음 같이 하는 산행을 위해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서 가방을 꾸렸다.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은 시간도 아니고 해서 따뜻한 커피, 집에 있던 과일, 간단하고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가방에 다 넣고 나니 꽤나 묵직하다. 언제 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반포 지하상가에 인테리어 물품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사게 된 등산가방. 그 가방을 산지 적어도 반년 이상 지난 시간이 되어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원래 9시쯤 출발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늘 그렇듯 시간은 죽죽 늘어진다. 유진이는 10시가 넘어서 왔고 나는 기다리면서 망원경 글을 마무리 하고 우연히 찾은 만화 한편을 보다가 울었다.

 

유진이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커피 한잔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손을 뭔가 숨기고 있는데 갑자기 꺼내 놓은 것은 통장과 현금 카드였다. 아무튼 한동안 나는 말을 잊지 못하고 아주 오랫만에 닭똥같은 눈물을 주룩 주룩 흘렸다. 시점이 좋지 않았다. 그 전에 만화를 보고 한참 감정에 빠져 있던 나에게 그녀는 통장 가득히 하고픈 말을 적어 두었다.

 

11시쯤 출발 한 것 같다. 그리고 목적지인 하계산, 부용산으로 가기 위해 양수역으로 갔다. 가는 길은 꽤나 막혔다. 특히 하남 IC를 나와 팔당대교를 넘어가는 코스는 심하게 막혔다. 그래서 거의 한시간 반 이상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한 듯 하다. 거리는 20킬로미터 약간 더 되는데, 안막히면 30분이면 갈 거리이다.

 

양수역 근처에 차를 주차 시키고는 일단 점심을 간단히 먹었다. 잔치국수와 우동 그리고 만두. 그 맛은 정말 정형적이라서 배만 채웠다. 그래도 유진이는 이 정형적인 맛이 좋다고 하면서 맛나게 먹는다. 나 역시 그럭저럭 먹을만 하긴 했다.

 

찾아 놓은 정보를 활용 해 양수역 2번 출구로 나가 목적지로 향했다.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아 반대쪽으로 가다보니 길이 막히고 학교 입구가 보였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 조심스럽게 길을 찾았다. 역시나 유명하지도않고 워낙 낮은 산이라서 그런지 입구를 찾기가 좀 힘들었다.

 

산 언저리까지 도착하는데는 평탄한 도로였는데 주변에 전원주택이 몇 채 있었다. 한가해 보이기도 하고 거리상 좋아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작은 표지판이 정말 가문에 콩나듯 있어서 입구를 찾아 갈 수 있었다. 오늘 방문할 하계산과 부용산은 높이가 4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야산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성향과 유진이의 체력을 알기에 최대한 힘들지 않는 산을 골랐다.

 

400미터의 산이긴 해도 워낙 낮은 곳에서 출발하는 터라 가는 길이 거의 한시간 반 걸린 듯 하다. 경사는 심하지 않지만 능선을 타고 꽤나 오래 걸었다. 물론 전문적으로 산을 오르는 분들이 보면 우숩겠지만.

 

유명하지 않은 산이고 워낙 낮아서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그래도 뜨믄뜨믄 아줌마 아저씨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보인다. 그들은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중간에 잠시 쉬면서 가져간 오이도 먹고, 하계산 정상인 전망대로 올라 가져간 사과와 커피를 먹었다. 트로트를 틀어 놓고 쉬고 있는 아저씨 한명이 있어서 좀 성가셨지만 아무튼 전망대의 전망은 꽤나 좋았다. 특히 두물머리가 보이는 시야에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것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겨울에 눈이 쌓였을 때 또 여기에 오면 꽤나 괜찮을 듯 하다. 하얀 눈으로 덮힌 이곳이 상상된다.

 

산행을 하는 동안 계속 산내음이 코를 시원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이름 모르는 야생화와 신기하게 생긴 곤충,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멋진 까마귀의 활공, 먹을 것을 찾아 헤매이고 있는 다람쥐와 입속에 밤을 물고 있는 청설모 두 마리도 보았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의 소음만 빼면 정말 고요한 공간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산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무들과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의 부산함이 가득이다.

 

오늘 코스는 원래 하계산을 거쳐 부용산까지 가려고 했는데 둘의 귀차니즘은 역시나 이쯤에서 마무리 하자고 했다. 배도 고프고 시간도 꽤나 걸렸다. 천천히 산을 내려와 오늘의 두번째 코스를 향해 갔다. 그것은 여름에 방문했던 '화니핀 야생화 찻집' 에 다시 가는 것이다.

 

그때와 달리 여름이 아니라서 팥빙수는 안먹었고 샐러드와 고르곤졸라 피자를 먹었다. 샐러드는 큰 특징이 없었는데 역시나 고르곤졸라 피자는 어디에서 먹은 맛보다 낫다.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를 채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노을이 진다. 서쪽 하늘로 붉은 노을이 그 멋진 모습을 보여주다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라진다. 지구는 참 빨리 도는 모양이다.

 

오늘 길에 동석이에게 마플 메시지가 온다. 집에 있냐고 묻는 것을 보니 놀러올 생각인가 보다. 아마도 정희가 시골에 간 듯하다. 집에 도착해 씻고 누군가 글에 질문을 달아 놓아서 생각하다가 답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8시가 다되어 유진이도 씻고 오고 동석이도 왔다. 같이 커피와 맥주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10시쯤 피곤해서 다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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