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고양이와 토끼

아이루다 2013. 11. 7. 08:39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스스로 키워본 동물은 딱 두 종류이다. 하나는.. 고양이, 다른 하나는 얼마 전부터 나와 동거 중인 토끼이다. 그런데 확실히 고양이와 토끼는 다른 동물이다. 아마도 워낙 개성이 강한 고양이와 개성이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이는 토끼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르지만 토끼를 키워보니 토끼에게는 내가 전혀 몰랐던 몇가지 특징적인 모습이 있다.

 

내가 고양이를 키운 것은 지금부터 벌써 13년 전쯤인 듯 하다.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던 전시회가 삼성동 코엑스에 있어서 한 주간은 거기로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날 사장님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오는 중 그 넓은 16차선 도로에서 차들이 갑자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탄 차 역시 앞차가 서서 어쩔 수 없이 멈췄는데 앞 유리를 통해 보니 정말 주먹만한 새끼 고양이가 차 길을 이리저리 헤매이고 다니다가 결국 내가 탄 차 오른쪽 타이어 앞에 숨어 버렸다.

 

차를 움직이면 고양이가 깔려 죽는 상황. 그렇다고 뒷차가 있는데 마냥 기다릴수만 없는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보조석에 타고 있던 내가 문을 열어 손을 뻗어보니 고양이가 잡혔다. 그래서 그대로 차 안으로 집어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고양이를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키운 동물인 고양이 빙고와의 인연이다. 빙고라고 이름 지은 이 고양이는 꽤나 성질이 더러운 편이었는데 키우는 동안 늘 나를 약간 경계하듯이 대했다. 아무래도 어릴 때 겪은 트라우마가 이 아이를 매우 조심성 있게 만들어서 그런 듯 한데 아무튼 겁쟁이기도 했고 그만큼 작은 일에 크게 놀라는 반응을 보여서 웃기기도 했다.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동물은 참 사랑스럽다. 어떨 땐 차가운 도시의 여자처럼 새침하기도 하고 또 재밌는 장난을 칠 때면 아이처럼 천진난만 하기도 하다. 특히 작은 곤충류를 발견하고 뛰어 다닐땐 그 이상한 폼과 열정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기도 했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물체에 매우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아무래도 사냥을 했던 과거의 자신의 조상의 피가 흘러서 그런 듯 아무리 풍족히 먹을 것을 줘도 이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었다. 그래서 가끔 묶은 공이나 길다란 줄을 이용해 빙고와 놀곤 했었다.

 

고양이는 모래만 잘 관리해주면 똥/오줌을 아주 잘 가린다. 단지 이 모래 관리를 자주 해줘야 하는데 이것이 꽤나 귀찮다. 그리고 털이 무척 많이 빠지며 그 때문에 고양이 털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거의 근처에도 못온다. 그래서 고양이는 아무나 키울 수 있는 동물이 아닌 셈이다.

 

곧잘 고양이는 개와 비교되곤 하는데 충성스러운 개와 도도한 고양이의 각기 다른 매력 때문에 더욱 서로의 특징이 부각되기도 하고 사람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 고양이를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다. 나는 개보다는 고양이가 더 좋다. 빙고는 나와 6년을 같이 살았다. 하지만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방생을 해주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 한구석이 안 좋다. 평생 죽을 때까지 키워주고 싶었는데..

 

그 후로 나는 한참을 아무런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물론 내가 애완동물을 키우는데 어떤 큰 흥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기에 그렇기도 하고 솔직히 동물을 키우면 좀 귀찮은 면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길에서 토끼를 주었다.

 

이 토끼의 이름은 나루로 지었다. 그리고 나루는 지금 나와 함께 영월에 와 있다. 처음에 집에 온 나루는 꽤나 조용히 준 풀만 먹었는데 시간이 갈 수록 생각보다 매우 활기차다. 특히 이 녀석은 숫놈인듯 한데 집안에 온통 자신의 똥을 싸고 다닌다. 알아보니 그것은 토끼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행동이라고 하는데 숫놈에게 나타난다고 했다. 솔직히 나루를 뒤집어 봐도 암놈인지 숫놈인지 알 길이 없었는데 행동으로 보아 숫놈이 분명하다.

 

토끼 똥은 거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둥글둥글하고 조금만 지나도 딱딱해져서 청소하기는 쉽다. 하지만 치우면 와서 싸놓고, 치우면 싸고를 반복해서 그것이 좀 귀찮다. 그냥 다 자기 땅이라고 우겨도 인정해주고 싶은데 꼭 그렇게 똥을 싼다.

 

토끼를 키울 때 가장 심각한 냄새는 바로 오줌이다. 꽤나 역한데 이것도 화장실을 잘 만들어주면 거기에다가 싼다. 똥도 거기에 싸는 경우가 있긴 한데 문제는 똥은 다른 용도로 이용하기 때문에 거기에다만 싸는 것이 아니다.

 

토끼는 고양이와 다르게 소리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 매우 적다. 특히 소리의 경우엔 거의 반응을 안하다가 큰 소리가 날 경우에만 크게 놀래서 펄쩍 뛴다. 그리고 움직임에 대한 반응도 거의 없는 편인데 그래도 처음과 달리 요즘은 가끔 나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용도로 나를 따라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키우는 생명체가 나를 인식해주니 고맙긴 하다.

 

두 동물 중에서는 토끼가 고양이보다는 키우기 편하다. 일단 토끼는 가둬나도 그리 스트레스 받지 않아 보여서 잘 땐 방에 가둬놓는다. 한번은 그냥 풀어 놨더니 이불에 오줌을 싸서 그때 부터는 잘 땐 방 하나에 가둬 놓고 거기엔 최대한 물어 뜯는 것을 없애 놓았다.

 

고양이는 발톱을 갈기 위해 여기 저기 흔적은 남기고 토끼는 이빨을 갈기위해 여기 저기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생각보다 이런 저런 흔적들이 남는다.

 

확실히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냥 사는 것보다 귀찮은 일이 많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즐거움과 유대감은 또 다른 행복 요소로 있다. 나는 이번 주간동안 영월에 혼자 와서 있는데 나루가 같이 있어 줘서 그나마 좀 덜 적막하다. 그리고 여기에 오니 토끼가 소리를 낸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흉내내긴 힘들지만 너무도 작은 소리라서 이렇게 조용한 곳에 오니 들린다.

 

지금 영월집엔 나루 똥이 사방에 깔렸다. 이 집 전체가 그 녀석의 공간이다. 그리고 오늘은 밖에 산책도 나갈 생각이다. 나도 행복하고 나루도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

 

휴식 중인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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