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나루 보내기 연습

아이루다 2013. 11. 19. 10:44

 

그제 밤부터 조금 증상이 이상하던 토끼 나루가 어제 집에 가보니 엄청난 설사를 해 놓았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토끼가 설사를 하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와 유진이는 순간 마음이 철컹했다. 걸어서 집까지 간 것이라서 꽤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근처 동물병원에 연락을 해 봤더니 초식 동물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강남에 있는 한 병원을 알려 주었다.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그쪽에 연락을 해보니 10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루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길이 자꾸 막혀서 마음이 다급하기도 했지만 이 녀석에게 정말 아무런 일이 없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갔다.

 

의사를 만나 나루를 보이고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일단 수액을 주입받았는데 아무래도 설사를 하는 동안엔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결국 기력이 딸려서 죽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영양분을 주입해 주었다. 그리고 입원 절차.. 우린 나루를 거기에 입원시켜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머리 속에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루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영월에 데리고 가 같이 지낸 일주일 그리고 며칠전까지만 해도 깡총깡총 뛰면서 그 활기차고 신나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녀석이 죽음 앞에서 서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 구석이 심하게 아렸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이 있었기에 견딜만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그쪽 의사와 통화해 본 결과 지난 밤 사이 증상이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까지 나루는 살아있긴 하다. 하지만 의사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은 정말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렇지만 나는 그리고 유진이는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아침에 유진이랑 이 이야기를 하는데 눈물이 자꾸 흐른다. 왜 일까? 이제 겨우 만나지 한달 된 녀석과 무슨 이런 깊은 인연이 맺어진 것일까? 마음 한구석에 녀석에 대한 미안함과 이렇게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것 밖에 못하는 내 무력한 모습이 동시에 나를 마냥 다운시키고 있다.

 

혹시나 기적처럼 녀석이 살아나 예전처럼 그렇게 영월의 앞 마당을 뛰어 다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가끔은 이런 기적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의 준비란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오늘 하루는 그져 이렇게 뒤숭숭한 기분으로 기적을 바라면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오늘 아침 블로그에 접속해보니 왼편으로 나루 사진이 보였다. 영월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건강한 나루. 지금 녀석은 계속 설사를 하면서 발이 온통 똥으로 뒤덮히고 늘 벌렁거리던 코 역시도 가만히 있다. 그런 면에서 토끼는 참 표현을 안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보기에 더 안쓰럽다. 만약 내일까지 호전이 되지 않고 나루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나는 녀석을 집으로 데려와 그 마지막을 함께 해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루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의식이 되리라.

 

하지만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한 생명이 사라져가는 것이 이렇게 바라보기 힘들 줄 내 어찌 알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처음으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심하게 정이 들었을까.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나루가 건강하게 되고 이 글이 그져 한바탕의 해프닝으로 끝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

 

나루가 결국 그 삶을 놓아 버렸다. 어제 오후에 급하게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그 병원으로 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지만 결국 병원에 도착해서 그때까지는 살아있는 나루를 보고 한줄기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탈진해버린 녀석은 점점 몸도 가누지 못하고 심장 박동수가 떨어지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마지막에 녀석이 부족한 산소를 흡입하기 위해 입을 벌려 숨쉬던 모습을 바라 보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녀석의 곁을 지켜 주었다. 그리고 오후 4시 반쯤 녀석은 영원히 잠이 들었다.

 

어젠 너무 상실감이 커서 너무 힘들어서 녀석을 데리고 집에 오는 동안 거의 반쯤 넋이 나간상태로 왔다. 지하철을 탈 용기가 안나 그냥 택시를 타고 왔다.

 

나루를 이렇게 보낸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그리고 많이 그리울 것이다. 겨우 한달간의 인연인데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

 

아프지 않은 곳에 가서 잘 살고 또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랜다.

 

가끔 녀석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미안해.. 나루야. 지켜주고 싶었는데.. 그 짧은 생이지만 다 살게 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능력이 부족하네. 그래도 살아 있는동안 한달간 행복했을 것이라고 믿어. 늘 밝고 명랑했던 너의 모습을 기억하며.. 내가 죽는 그날까지 널 기억할거야. 그리고 매년 11월 19일이면 널 생각해주께. 이것이 비록 아무 의미없는 짓이라고 해도 우리가 널 나루라고 이름짓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너는 우리에겐 특별한 토끼야.

 

널 위해 흘렸다고 우기는 나의 이기적인 눈물은 서서히 말라가겠지만 너에 대한 기억은 영원할거야. 그래.. 이젠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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