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또 하나의 가을이 온다

아이루다 2013. 9. 3. 09:55

 

아침에 눈을 뜨고 잠시 멍하게 천정을 바라 보았다. 잠시간의 혼란 끝에 오늘 일어난 이곳이 영월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시간에 상관없이 나는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 속 한구석이 편해짐을 느낀다. 회사 오가는 것이 그리 큰일도 아니고 부담스러운 것도 아닌데 난 왜 아직도 지난 시간동안 느껴왔던 출퇴근에 대한 부담을 기억하고 있을까? 사람에게 있어서 버릇이란 참 바꾸기가 힘든 것인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 온도계를 보니 23도를 가르키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반팔을 입고 잤고 이불에서 빠져나오니 피부에서 싸늘한 느낌이 드는 것이 그 정도의 온도가 맞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벌써 벽난로를 땔 시점은 아닌데 아무튼 슬슬 겨울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듯 하다. 하얀 눈으로 덮히는 이 영월의 아름다움과는 별도로 시골의 겨울은 그리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밤에는 11시쯤부터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서 촬영을 중단하고 잤기에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다지 별 기대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허탕친 것은 아니고 초저녁부터 몇몇 대상을 찍었기에 그것들을 볼 생각에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년 가을이 되면 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하나 있다. 원래 내 감성은 무디고도 또 일반 평균에 비해서도 더 무딘 편이라서 계절의 변화를 거의 무시하고 사는 스타일인데 이상하게 가을이 되면 가을을 느낀다. 특히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피부를 스칠 쯤 되는 9월 초쯤엔 늘 마음 속 한 구석이 이상하게 텅 빈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인데 뭐라고 설명 할 말은 없다.

 

굳이나 억지로 설명을 하자면 그것은 마치 매우 소란스럽고 흥분에 휩싸인 시끌벅적한 모임을 끝내고 조금 피곤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이는 늦은 밤에 혼자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들을 보는 마음이라고 할까? 설명하고 보니 우숩기 그지없다. 역시 이런건 말로 표현 안하는 것이 낫다.

 

시간은 분명히 인간이 정한 기준이고 봄,여름,가을,겨울이란 것도 분명히 우리 스스로 정한 용어이다. 자연은 그저 해가 뜨고 지고, 날씨가 따뜻하다가 추워지는 변화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가 정한 가을이란 용어에 집착을 보인다. 어쩌면 가을은 나에겐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계절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인간의 감수성은 줄어드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감수성은 그다지 큰 도움을 주는 능력이 아닌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린 기계처럼 냉정하고 단호하게 살아갈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우리가 이미 가진 것들을 지킬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라도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잦은 감정적 휘말림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감정을 억누르다보니 감수성까지 줄어들어 버리게 된다.

 

우리의 무뎌진 감수성은 결국 계절의 변화에 무관심해지고 각 계절별로 보여주는 자연의 다양한 변화를 최대한 무시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낙엽이 지면 쓸고, 눈이 오면 치운다. 우린 집에서 비가 오면 창문을 닫고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들을 꽉 묶어준다. 해가 뜨거우면 냉방기를 가동시켜서 온도를 낮추고 추우면 난방을 하여 온도를 높인다. 문명은 이렇게 늘 우리가 자연의 변화로부터 영향을 최대한 받지 않도록 진화해 왔기에 우리 개개인 그 자신들도 문명속에서 오래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변화로부터 최대한 무뎌지려 하나 보다. 물론 나만의 별 근거 없는 생각이긴 하다.

 

나 역시 그런 무뎌져가는 사람 중 하나로 내 삶에서 또 한번의 가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 조금 나아지는 것은 지금 느끼는 것들은 과거의 그런 종류의 감정보다는 좀 더 진지하고 깊어졌다는 것이다. 느끼는 것이 적어지니 이것을 나도 모르게 소중히 여기나 보다.

 

풀벌레들은 아직도 여름이 거의 다 지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늘도 작은 합창을 하고 있고 새로 돋아난 잡초도 곧 해가 짧아지고 추워지는 겨울이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렇게 이 가을이 지나면 또 한번의 겨울이 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2013년도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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