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남자가 본 여자

아이루다 2013. 5. 13. 18:23

 

일단 이 글을 쓰는 나는 생물학적으로 남자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남자로써 자랐고, 지금은 성인이 된지 한참이 된, 나이로 보면 전체 세대의 허리쯤에 온 세월만큼을 살아왔다. 그냥 대충 먹은 나이를 이용해서 숫자로 우겨보자면, 이제 좀 보고 듣고 느끼고 대충 사는것이 뭔지 알만한 나이가 된  셈이다. 아무튼 나이를 그냥 먹지는 않았는듯 요즘 남자들과 여자들의 삶을 보면 뭔가 일반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이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남자와 여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이면서도 또한 우리 사회가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성 역할에 대한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남자로 태어난 난 가끔 여자가 부럽다. 하지만 또다른 면으로 보면 여자의 공동체적인 역할에 대해 좀 아쉽기도 하다.

 

이 글은 좀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남자가 본 여자, 여자가 본 남자는 아무래도 편견이 섞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일년 여자로서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현실상 불가능해서 나는 결국 남자의 시선에서 여자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당연히 여자를 완벽히 이해하고 쓰는 글은 아니다. 그냥 남자로서 부러운 점과 여자에게 바라는 점을 적고 싶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나의 이해이며 온전히 내 희망이다.

 

 

대한민국 여자의 삶을 말하기 전에 나는 대한민국 남자의 삶을 이야기 해야겠다. 일단 내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이 반대측면에 있는 삶을 조명하면서 여자의 삶을 이해하는것이 더 수월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는 일단 남자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남자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 두 조건이 만족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자라지 못한다. 당연하고 우숩지만 이건 중요하다.

 

일단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나의 과거를 돌으켜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로 끝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받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부모님이 나에게 남자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정확히 말하지는 않으셨지만 이것은 여자 애들이나 하는 짓이란 말은 한적은 있다. 그리고 그 말은 내 친구들, 동네 형들에게도 들어봤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가끔 나온다. 나는 어린 시절 누나들이 하고 있던 인형놀이에 끼어보고 싶었지만.. 결국 누나들은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결국 늘 밖에서 남자인 동네 친구들과 놀아야만 했고 거기에서 남자로서 자랐다.

 

결국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의 구별에서 남자로 태어났기에 남자가 해야 할 일들을 나도 모르게 주입받고 자란 셈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란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그것은 매우 일관적이며 또한 관념적이다.

 

나는 일단 가정을 이루고 그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내 생각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내가 그렇게 키워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 한번도 누군가와 결혼해서 집에서 애를 키우면서 살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다. 물론 요즘은 좀 달라진것 같긴 한데.. 그것은 정말 요즘이나 그렇고 예전엔 대학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정년퇴직 한는 그날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집안의 남자로서 부모님의 노후를 함께 할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거기다 외아들인 탓에 그 책임감은 매우 자연스럽다. 물론 사정에 따라 또한 부모님의 입장에 따라 이것이 바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역시나 집안 일이 있을때 부모님을 챙기는 것은 늘 내 몫이 되며 나는 부탁을 통해 누나들에게 부모님 챙기는 것을 맡길 수 있다. 누나들 역시 자신의 남편의 부모를 챙기면서 산다. 그러니 또한 누나들이 친정 부모님까지 챙기면서 사는 것은 참 힘들다. 나는 그런 누나들한테 시부모님 챙기지 말고 부모님 챙겨야 한다고 말 할 수 없다. 그것은 남자로서 내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으로 느낀다.

 

나는 대한민국의 남자라서 군대를 다녀와야 했고 실제로 다녀왔다. 이것은 그냥 내 운명과 같다. 나의 20대 황금같은 시기가 그렇게 단절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그것을 받아 들이고 있다.

 

나는 여자와 함께 길을 나서야 할때 늘 운전대를 잡는다. 그것은 내 몫이며 내가 할때 마음도 편하고 그리고 불만도 없다. 그리고 이런 일은 참 많다.

 

크게 남자로서 나의 삶을 이야기 했다. 그럼 이제 여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내가 보는 관점에서 여자는 참 행복하게 사는 존재들이다. 적어도 획일화된 잣대로 삶을 평가받지 않고 의무감 보다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동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로 부터 사회로 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교육받기 보다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지 가르침을 받는다. 물론 그것이 안되더라도 친구를 통해, 선배를 통해 알게 된다. 물론 여자들 역시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또한 직장내에서도 인정받기, 진급하기 등등도 매우 중요한 관심사이다. 그래도 주변엔 '취집' 이란 절차를 통해 전업주부가 되는 친구들이 있기에 그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언제든 경제력 있는 남편을 만나면 집에서 가정생활에 충실하게 살아도 될 '선택의 자유'는 있다.

 

물론 이건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잃어버린 경제권은 그 스스로 자유의 날개를 꺽게 만들어서 가정의 심각한 불화가 생겨도 이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결혼은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에게 힘이 드는 일이다. 특히 시부모님의 존재는 여자에게 수 많은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여자들이 제일 부러운 점은.. 그녀들은 기본적으로 행복하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그리 많이 고려하지 않는 점이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맛난 음식을 먹기위해 많이 노력하고, 예쁘게 꾸미고 그것으로 인해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칭찬을 들을 수 있으며 그래서 또 행복해 한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누군가와 술을 먹지 않아도 오랫동안 이야기 할 수 있으며 굳이 만나지 않아도 몇시간이고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 대화는 그녀들의 아픔을 안아주고 풀어내어 준다.

 

누군가의 변화를 늘 주시하고 알 수 있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그것을 알아주고 안아주는 따스함도 지녔다. 괜히 혼자 한쪽 구석에 쳐박혀서 지지리궁상도 떨지 않고 아프면 아픈데로 좋으면 좋은데로 누군가와 나눌 줄 아는 현명함을 지녔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 곁에 있고 싶어한다. 비록 늘 운전기사를 하고 또 열심히 경제생활를 하는 스트레스가 있어도 남자들은 자신의 여자 옆에서 평화로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남자들끼리의 모임은 사납고 무감정적이다. 누군가의 아픔은 그냥 '쪼잔하게' 혹은 '남자답지 못하게' 라는 한마디로 정리가 되며 그 덕분에 아픔이 있어도 상처를 입어도 죽을 것이 아니면 그냥 넘겨야 한다. 그래서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상처를 입은 남자는 골방에 쳐박혀 나오질 않는다. 그리고 이런 남자를 다독이고 감싸주는 것은 결국 여자 몫이 된다. 결국 남자는 여자를 통해 삶을 바라 볼 여유를 가진다.

 

뭐 그냥 보면 여성 예찬론인 것 같지만.. 실제로 맞다. 여자들은 길을 모르면 그냥 물어본다. 남자처럼 괜히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헤매다가 결국 길을 잃거나 몇시간을 길에서 낭비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빵구가 나면 할줄도 모르는 타이어 교체를 시도하려 하지 않고 그냥 보험회사를 부른다. 그래서 훨씬 빨리 해결을 해낸다.

 

남자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여자들에 비해 너무 멍청하다. 즉 지혜의 부족이 늘 느껴진다. 특히나 남자 특유의 숫컷 경쟁심은 그것을 바라보는 여자로 하여금 그들의 죽음까지 불사하는 어리석음에 한없는 한심함을 느끼게도 한다.

 

물론 남자들의 행동엔 또 다른 면이 있긴 하다.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누군가에게 절대적 위기의 순간에 닥치면 결국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해주지 못하기에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타이어가 빵구가 났는데 전화도 안되는 어느 산골이라면 서비스 센터를 부를 수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남자의 본능은 늘 최악의 상황을 향한다. 왜냐하면 결국 자신의 가정의 최후의 보루는 자신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남자는 평소 생활에 바보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매우 단편적인 사건이다.

 

여자들 역시 이런 장점 뒤에는 단점이 존재한다. 일단 가장 큰 단점은 행복 지향의 삶으로 인해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사회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하다. 특히 사회를 지배하는 많은 부조리에 대한 무관심은 남자들의 미련한 관심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도 반대적인 입장의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의 관심에 그냥 약간의 동조만 하면서도 그 스스로는 관심을 갖질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회,정치적 문제들은 우리 삶에 대해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냥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괜히 속상하고 답답하기만 할 뿐이니 행복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행복에 대한 무한 추구는 상대적인 평가로 인해 나쁜 방향성을 갖기도 하는데 결국 이건 부러움을 넘어 질투와 시기의 단계로 진행되기 쉽다. 그리고 이것은 면전에서는 웃은 얼굴을 뒤에서는 상대의 단점을 끊임없이 이야기 해대는 일명 뒷담화 현상을 가져오는 이중적인 태도를 일반화 시키고 또한 이것에 대해 동조하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로 이중화 시켜 편가르기의 대왕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도덕심 부재의 행복감은 어떤 경로를 통하더라도 결론적으로 행복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불러와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공동체의 삶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 일종의 양심부재의 상황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런 가치관을 자신의 가족에게 주입함으로서 남자들을 막후 조정해 공동체 삶의 파괴를 주도하기도 하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을 앞둔 여자들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자기 자신을 상품화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절대 행복론에 근거한 것으로 어떤한 경로를 통해서라도 결국 자신이 돈 많은 남자를 만나면 삶에 있어서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결국 젊은 시절 뭔가를 위해, 미래를 위해, 꿈을 위해 투자하기 보다는 지금 당장 자신의 입에 들어갈 음식과 자신의 몸을 감싼 천과 가방에 많은 욕심을 내고만다. 물론 모든 여자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이 영향에서 완전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특히나 대한민국 특유의 여자 특성이 하나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무한한 가족 이기주의이다. 거기에 더해 자녀에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일명 '올인' 하는 도박과도 같은 삶을 선택하는 무모함이 있다. 또 언젠가 이런 우리나라 여성 특유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특성은 정말 좋지 않다. 아이들을 쥐어짜고 경쟁에 밀어붙이는 소위 '치맛바람' 의 기반이며 또한 국제 사회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원정출산, 기러기 가족을 생산해낸다. 이것은 대한민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

 

 

현시점의 인간의 사회는 분명히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존재한다. 남자는 모험적, 사회적 역할에, 여자는 안정적, 가정적 역할에 집중한다. 그리고 점차 이 둘은 이 역할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는데 그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남자와 사회 부조리에 맞서 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자들이 점차로 많아 지면서 사회는 더 건강해지고 있다.

 

나는 전형적인 남자로서 교육받고 자란 존재로서 점점 더 여자의 역할을 받아드리려 한다. 나는 요리를 하고각종 집안일을 내 일이라고 여기면서 또한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으려 노력한다. 물론 이로 인한 단점을 갖지 않고자 무한정의 행복추구나 내가 가진 의무감을 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나에게 남자로서의 장점을 유지하고 여자의 장점을 잘 받아들여서 부드러우면서도 그리 쉽게 꺽이지 않는 유연함을 키워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많이 좋을 것 같다.

 

여자들은 기본적인 역할에서 보면 남자보다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여자들이 더 오래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들 역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의 몸 하나 지키기가 쉽지 않아 밤길을 조심해야 하고 각종 강력한 사건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삶 자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버려 정말로 기구한 인생의 질곡을 경험하기도 한다.

 

뭐 더 말해서 무엇을 하랴. 이 순간 나는 그저 내가 남자로서 갖은 그 어리석음을 좀 버리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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