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팍스 아메리카나

아이루다 2013. 4. 8. 16:17

 

한 10년쯤 되었을까? 예전에 시오오나나미 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 여성작가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한참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냥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꽤나 디테일하게 기록한 해당 작품은 나로 하여금 로마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거기에서 나온 용어 중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은 것이 바로 '팍스 로마나' 라는 말이다. 해석을 하면 로마에 의한 평화, 좀 더 풀어 쓰면 지중해를 기반으로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가 주변국까지 모두 군사적 영향을 미치면서 큰 형 노릇을 하면서 작은 소국끼리의 잦은 분쟁을 중재하거나 혹은 강한 군사력으로 응징하여 전쟁을 막는 역사적 시대를 뜻하는 말이다.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로마인 이야기' 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소설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20세기를 지배했던 두개의 나라가 있었다. 미국과 소련. 서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라는 커다란 체제의 차이점에 의해 서로 엄청난 무력을 과시했던 최고의 경쟁자였으나 고르바초프의 소련 연방 해체로 인해 지금은 투톱이 아닌 원톱의 상황이 된지 벌써 수십년이 흘렀다. 그 후 통일 독일도 이루어졌고 중국의 자본주의 정책 수용도 이루어지면서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의 망령은 지금 우리와 총칼을 맞댄 우리의 동족인 북한에만 온전히 남아있는 형국이다.

 

아무튼 소련의 몰락은 실제적으로 미국에 의한 평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 를 세계를 상대로 펼치면서 그 강대한 국방력과 경제력으로 세계의 맞형 노릇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은 그것을 절대 놓치지 않고 있다.

 

보통 미국의 힘을 표현할 때 우린 대규모 함대와 첨단 전투기, 엄청난 규모의 핵무기를 떠올리면서 그들이 가진 군사력을 최우선 순위에 둘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미국의 힘을 좀 더 정밀하게 살펴보면 결국 미국의 진정한 힘은 핵폭탄이 아닌 세계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거대한 자본을 기반으로 한 경제의 힘이란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경제의 힘.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미국 FRB가 끊임없이 찍어내고 있는 달러? 월가로 지칭되는 천문학적 규모를 가진 투자은행? 전세계적으로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자국내 식량으로 자급자족 할 수 있으며 또한 수출이 가능한 축복받은 땅? 거기에 더해 석유와 같은 필수 지하자원 매장량?

 

일단 이것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하기 전에 미국이란 나라의 재미있는 경제적 현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보통 일반적으로 모든 국가는 1년 단위 예산을 세운다. 우리도 매년 연말이면 이 예산통과 때문에 국회가 매우 시끄러운데 이 예산이야 말로 1년간 한 나라가 사용할 모든 돈에 대한 내역을 망라한 것이기에 나라의 방향성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예산에 꼭 필요한 요소가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국가의 1년간 수입이다. 즉 다음 1년간 벌어들일 국가의 수입을 - 국민이 내는 수 많은 종류의 세금 - 기반으로 쓸 수 있는 돈을 정하는 것이다. 버는 것에 비해 많이 쓰면 적자예산이 되고 반대로 되면 흑자 예산이 된다.

 

흑자예산은 남는 장사니 그렇다고 치고 어떻게 적자 예산을 할 수 있을까? (집이라면 100만원 버는데 120만원 쓰는 꼴이다. 여기에서 부족한 돈은 은행에서 꾼다.) 그것은 바로 국가가 공식적으로 빚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들처럼 은행에 빌리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것이 채권, 즉 국채를 발행해서 그것을 충당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미국은 매우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도 매년 상황에 따라 적자예산을 꾸린다. 경제적 상황에 따라 국가 지출을 늘려야 할 때가 있어서 그런데 그리 좋은것은 아니지만 어떨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미국은 매년 적자 예산을 운영한다. 즉 매년 빚을내고 있는 형국인데 보통 상식선이라면 이런 나라는 곧 망한다. 즉 우리가 IMF로 부터 구제금융을 받듯 국가 모라토리엄, 즉 파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매년 적자 규모는 엄청나다. 오바마 정부 들어서 1년간 재정적자가 1조 달러를 매년 넘어서고 있다. 1조달러라.. 상상이 되는가? 우리나라 요즘 1년 예산 규모가 300조원을 조금 넘고 있으니 미국의 1년 적자규모가 우리의 예산의 세배를 넘고 있는 것이다 (1조 달러면 우리나라 돈으로 1000조가 넘는다)

 

좀 더 상대적으로 보면 미국의 GDP가 요즘 15조 달러 남짓하고 예산이 3조달러 수준이다. 그리고 쌓인 빚이 15조 가량 된다. 빚과 GDP의 비율을 보면 100% 수준인 것이다. (이 비율이 높아지면 그리스처럼 망하기 쉽상이다 - 그리스나 스페인등이 구제금융을 받을 때 이 부채비율이 150%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미국이 재정적자를 못 줄이고 이대로 쭉 나가면 15년 후엔 GDP 대비 200%까지 빚이 치솟아 정말 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론 미국이기에 다를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 얘길를 하겠다.

 

그렇다면 매년 1조달러의 빚이 늘어나는 미국은 어떻게 망하지 않고 버티는가?

 

나는 어릴때 우리나라가 돈이 없으면 돈을 한국은행이 찍으니 더 찍으면 되는것이 아니냐 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나이를 먹어보니 돈을 찍는 것이 그리 쉽지 않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물가 때문이다.

 

'원' 화를 쓰는 우리나라는 '원' 이란 화폐로 갖힌 일종의 닫힌 계이다. 즉 우리의 돈은 우리나라에서만 의미를 갖을 뿐 외국에 가면 그냥 종이쪼가리가 된다. 하지만 한 나라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 나라 돈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는데 그 힘의 기반이 바로 '망하지 않을 가능성' 이다. 즉 해당국이 돈을 가지고 있어도 그 나라가 망하지만 않는다면 딱히 그 돈이 휴지가 될 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좀 샜는데 아무튼 이 원화로 인해 닫힌 계에서 먄약 돈을 찍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시중에 돈이 더 풀리고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돈만 많아지면? 당연히 돈의 가치가 하락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물가가 상승해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크기가 고정된 그릇에 물을 부으면 그릇의 크기는 변함이 없기에 물높이만 높아지게 된다. 그릇을 나라의 경제규모라고 하고 담긴 물을 물가라고 하면 이해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또한 이것을 경제학적 용어로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최근 양적완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최근 미국은 3차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면 아무런 근거없이 달러를 찍어내겠다는 말이다. 그럼 어떤 현상이 추가로 발행할까? 바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처럼 자국 화폐를 마구 찍어내다간 일반적인 나라는 거덜이 난다. 그런데 왜 유독 미국만 거덜나지 않고 그 많은 빚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텨낼까?

 

우린 여기에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진실을 볼 수 있다. 과거 로마의 평화는 진정 로마에 의한 평화유지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미국에 의한 평화는 미국 화폐의 절대적 권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풀어서 쓰자면 미국의 화폐는 미국의 그 모든 역량이 집대성된 유일한 가치가 되며 미국은 이 화폐의 가치를 지키고자 모든 국가적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적으로 이라크나 이란을 억누르는 목적이며, 자국내의 막대한 자금으로 국제 경제를 쥐고 흔들거나, IMF, 세계은행, UN, WTO 등등 우리가 많이 들어 본 국제기구를 막후 조정해 세계의 각종 문제에 대한 자국의 입김을 마구 불어대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유도한다.

 

소련이 무너진 지금, 세계에서 미국의 의도를 거스를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미국의 뒤를 이은 두 경제강국 즉 유럽의 강호 독일과 아시아의 강호 일본은 이미 미국의 힘을 이용해 커온 나라이기 때문에 그 두 나라의 정권은 철저히 친미적이다. 이것은 미국이 2차세계 대전 후에 매우 치밀하게 준비해 온 세계 경영전략의 일부였다. 잘 생각해보나.. 2차대전을 일으켜 미국과 대항한 그 두 나라가 왜 지금에 와서 가장 강한 경제 대국이 되어 있는지를. 솔직히 말해 독일이나 일본이나..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두나라가 망하는 것은 순식간에 벌어질 수도 있다.

 

결국 큰 형은 앞에서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뒤에서는 온갖 구린 짓으로 자신의 역량을 벗어나려는 무리에 대해 철저하게 응징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달러'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지금 중국은 1조 달러가 넘는 채권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IMF 후 경험을 밑바탕으로 삼아 3천억 달러 수준의 외화자본이라고 쓰고 달러라고 읽으면 되는 돈을 가지고 있다.

 

내가 돈을 삼천만원 가지고 있는데 화폐가 더 찍혀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 나는 앉은 자리에서 돈을 손해보는 셈이 된다. 그런데도 우린 이 돈을 쥐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다. 왜냐면 달러가 없으면 우린 또 바로 2차 IMF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고? 국제 사회의 모든 거래는 모두 '달러' 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화폐를 '기축통화' 라고 부른다. (IMF는 우리나라 경제가 망해서 당한 경제 재난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당장 지불한 달러가 부족했을 뿐이고 그 원인은 아무런 준비도 능력도 없는 김영삼 정부가 덜컥 금융시장을 개방해서 일명 본진털리기에 당한 사건이다. 허약하기 그지없던 우리나라의 경제 뿌리는 국제적인 전문 사기꾼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어 결국 이후 우린 우리의 국부를 상당수 외국에 넘겨주는 바보짓으로 연결이 된다)

 

이제 답이 대충 나왔다. '기축통화' 인 달러는 국제적인 모든 거래의 기본 지불 화폐가 되고 이 돈의 안정성은 미국이 보장한다. 그리고 미국은 이 돈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수 많은 전략을 써서 자국의 확고한 위치를 늘 보여준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최근에 일어난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1단계 떨어뜨린 사건을 기억하는가? 웃기게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세계 경제가 들썩이게 되는데 이때마다 미국 채권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는다. 미국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미국의 달러가 세계에서 가장 안정한 화폐라고 믿는 국제 투자자들의 믿음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원화? 정말 국제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휴지조각이다. 언제든 그 가치가 반값으로 떨어질 수 있는 허약한 화폐이다. (환율이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오르면 우리나라 화폐의 가치가 반값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실제로 IMF도 일어났고 2008년에도 일어났다)

 

세계 경제 위기가 오면 누가 우리나라 화폐를 쥐고 있을것인가? 우리나라에서만 살면 되니 상관없다고?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주주 중 40%가 외국인다. 그리고 채권도 그렇다. 그들이 그것을 다 팔고 나가며? 주가는 폭락하고 채권금리는 하늘로 취솟는다. 채권금리가 올라가면? 당연히 우리나라가 돈을 빌리는데 더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된다. 또한 부동산과 같은 별 관계없어 보이는 상품도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화폐가치가 떨어지니 외국에서 사올때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하고 이것은 다수의 상품을 수입해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가져다 준다.

 

우리나라가 왜 돈을 빌리냐고? 안빌릴 수가 없다. 이미 빌렸기 때문에 만기가 다가오기도 하고 또 우리는 영원한 재정흑자일 것 같은가? 나라가 돈이 없으면 채권을 발행해서 예산을 집행한다는 말은 처음에 설명했다. 정부에 재정을 축소하면.. 정부가 추진하는 그 모든 사업이 영향을 받고 그것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던 수 많은 기업들이 다 흔들린다. 이것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마치 감기 바이러스라 퍼지는 것을 막기위해 혈관을 막아버리는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일단 이정도의 개론 수준에서 마무리한다. 차후 여유가 되면 돈의 속성이나 고환율 정책등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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