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꼰대정신

아이루다 2013. 3. 2. 10:19

 

오래되지 않는 과거에 무릎팍도사란 TV 프로그램의 섭외자로, 과거 유명했던 중국 액션배우 성룡씨가 나왔던 모양이다. 어제 영월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데 그 방송분을 본 동석이가 차안에서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토막토막 자기의 생각을 곁들여서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성룡이라면.. 80년대 대한민국 극장가를 주름잡던 왕년의 대배우이며 또한 헐리우드까지 진출해서 꽤 큰 성공을 거둔 배우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재산이 조단위라고 말하는 그런 그가 꽤나 검소한 생활을 하는듯 하고 또한 우리나라에 대한 기억으로 정말 오래전 우리가 그리 살만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현재 이정도 먹고 사는 정도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석이는 그것을 꼰대같은 말이지만 공감간다고 표현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얼마나 멋진가. 가진 돈이 일반 사람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조' 단위인데 정말로 그렇게 너무도 당연한 생활의 일상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니. 이것은 마치 작고한 애플의 전설 스티븐 잡스의 일년 연봉이 겨우 1달러였다는 것이나 혹은 현대의 왕회장으로 불린 정주영씨의 집에 있는 TV가 20년이 훌쩍 넘긴 골동품이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 서민들이 좋아하는 수준의 것들이였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돈이 많다고 흥청대며 쓰는 것은 아니며 또한 돈에 모든 삶을 걸지는 않는다. 차라리 꿈에 모든것을 걸었던 사람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동석이가 표현한 '꼰대' 라는 말은 요즘 흔히 사용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가 갖은 의미는 충분히 이해한다. 이 '꼰대'는 일종의 매우 고집스럽고 견고한 가치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좀 부정적인 표현에 속한다. 어른들 중에서 결혼은 꼭 해야하고, 애는 꼭 낳아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를 일종의 꼰대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말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혹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모두 그것을 못하는 이유가 천차만별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무조건 주장하는 단면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우연히도 차안에서 이 '꼰대정신'과 함께 또하나의 다른 이야기꺼리는 바로 '88만원 세대' 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공식적으로 현재 20대의 실직률이 20%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하지만 정말 직장같지도 않는 직장들에 대한 비중과 될지 안될지도 막연한 각종 시험을 위해 오늘도 도서관에서 공부에 정진하고 있는 그 나이대 청년들까지 모두 통계속으로 끌어들이면 거의 40%가 실직자로 분류될 수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에서 30에 초반에 이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었다.

 

그들의 입장이 아닌 어떤 사람들은 이들에게 당연스럽게 직장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다. 공장에 가면 취직자리 널렸다고 하고 어떠한 고생을 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이겨낼 정신력만 있으면 못할게 뭐냐고 그들의 부족한 정신력과 되먹지 못한 인간성을 비난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 88만원 세대는 당신의 시대 정신으로 우리를 재단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왜 2000년대의 사회현상을 '잘살아 보세' 한마디에 전 국민이 삽을 들고 나선 70~80년대 사고방식으로 판단하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의 주장은 영원한 평행선이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이 세대에게 충고하는 50대 이상의 사람들의 주장을 일종의 '꼰대정신'으로 본다.

 

실제로 기득권에 속하는 50대 이상의 나이대분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매우 합리적으로 옳다. 어찌되었건 나이가 차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립을 해야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고 거기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는 정말로 이후 10년 20년을 어떻게 보내게 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심지어 어딘선가 들어본 이야기는 하루에 2시간 자고 알바만 해서 억단위 빚을 다 갚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난 왜 이분들의 주장이 꼰대정신으로 보일까? 맞긴 하지만 부정적으로 평가된다는 뜻이다.

 

우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해보자. 물론 부지런한 성격의 사람은 실제로 별 이유없이도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모든 세상사람들이 부지런한건 아니니 평균 수준에서 보자.

 

제일 중요한 이유는 행복이다. 그것을 해서 행복하냐? 아니면 그것으로 인해 나중에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 이런 원초적인 욕구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보면 희망이다. 실제로 희망은 현재의 불행함을 이겨낼 수 있는 매우 커다란 힘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봐도 힘들고 불행할 것 같은 일을 꾹꾹 참고 이겨내며 묵묵히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 이 행복이나 희망에 대한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과거에 비해서 말이다.

 

70~80년대 대한민국은 현재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살기 힘들었다. 그당시 우리나라엔 살인적인 노동현장이 있었고, 말한번 잘못하면 어딘가로 끌려가야 했으며, 지금은 흔하디 흔한 한끼 쌀밥 먹는 것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두 근면하게 열심히 열심히 일했고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결혼하고 삯월세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개인 공간도 없이 살아야 했고 먹꺼리 입을꺼리 모두 지금 기준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것들을 소비하면서도 그때 국민들은 행복과 희망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았다. 소득은 훨씬 적었지만 아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낳았고 태어난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과외한번 받지 않고 대학 입학까지 했다. 그땐 누구나 열심히 살면 남들보다 더 잘살고 현재보다 더 잘 살수 있다고 모두들 믿었다.

 

그때 세대들이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얼까? 그것은 바로 출발지점이 거의 같았기에 누구나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위안을 얻고 공감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출발이 같고 상황이 같다면 단지 내가 지닌 능력을 극대화 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그것이 내가 선택하는 최고의 선택이 되고 또한 그로인해 삶을 후회할 필요도 또 어떤 길을 가야할지 많은 고민도 필요없었다.

 

결혼은 하면 되는것이고 아이는 생기면 낳았다. 이렇게 일종의 결정론적 삶은 사람을 많이 편하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만약 이것이 잘 안되면 그냥 운명이고 팔자였다. 결혼을 잘못해서 배우자를 잘못만나도 참고 또 참고 아이가 이혼한 부모의 자식이 안되게 하겠다는 일념하에 살았다. 이 단순하고 획일화된 삶의 방식은 삶을 매우 단조롭게 만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 시절엔 딴 생각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수 있는 힘이 되어준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바쁘고 고생하면 선택하고 고민할 여력이 없다. 그건 그냥 사치일 뿐.

 

하지만 현 시대를 보라. 이미 그 출발지점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수준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시대를 거쳐 각종 반칙과 음모가 난무하는 비도덕적 시대와 융합되면서 대단한 시너지를 발휘하여 지금의 우리는 거의 최고수준의 빈부격차, 삶의 질 격차, 인식 격차의 시대를 살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미 출발부터 차이가 나 버리고 그래서 재벌 2세의 시작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삶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간다고 해도 절대로 동등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희망없음' 이 네글자를 의미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본 누군가의 삶을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또 어떻게 어떤 목표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게된다. 거기에 풍족하게 자란 환경은 아이들의 자의식을 약화시켰고 심지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틈을 노리는 기생적 삶을 추구하는 아이들까지 양산시키고 말았다.

 

약한 삶에 대한 욕구는 희망없음 현상과 함께 역시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심한 경우에 자신의 삶 자체를 포기해버리고 혼자만의 공간에 쳐박혀버리는 은둔형 외톨이까지 양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서로의 삶 속에 존재하는 다른 시대, 다른 정신, 다른 문화권에 속한 세대가 다른 이들이 한쪽은 한쪽의 냐약함을 비난하고 다른 한쪽은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낸 기득권층을 비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팽팽할 것 같은 이 논리의 대결장에서 그나마 젊은 층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젊은이들이 각종 핑게꺼리를 만들어 그들만의 세계속으로 침잔될 상황을 바로 현재의 기득권 완성시켜줬다는 원죄론적 입장이 있어서 이다. 물론 먹고 살아야하기에 타인을 밟아야만 살아가는 시대였던 과거를 관통해서 살아온 그들의 삶을 온통 부정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살만큼만 욕심내고 살지 못하고 더 많은 욕심에 부동산 투기, 과도한 사교육, 최대화된 특권활용, 공공의식 부재, 도덕심 부족 등의 그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 커다란 과오들이 현시대의 삶과 가치관을 지배하는 돈 만능주의 환산되어 버렸고 젊은이들은 직업이 주는 가치엔 관심이 없고 직업이 벌어주는 돈에만 온통 모든 가치를 부여해버리고 있다.

 

왜 사는가는 어느 누구의 머리속에서도 남아 있지 않는 질문이며, 어떻게 많이 벌어서 어떻게 많이 소비하는 것이 행복할까만을 고민하는 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꼰대들은 오늘도 삶에 대한 치열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하루 10시간을 일해서 일당 5만원을 받아 한달 꼬박 일해 150만원을 가져가고 누군가는 하루 8시간 출근해 7시간을 노닥이고 1시간을 점심을 먹으면서 한달에 천만원이 넘는 돈을 합법적으로 받아가고 있는 것이다.

 

뭐 나 역시 이런 사회를 만들어내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유구무언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 꼰대들처럼 자신이 만들어 낸 진흙탕 속에서 노는 아이들이 왜 온몬에 흙을 묻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하진 않는다.

 

2013년 대한민국은 분명히 이런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시점에 와 있다. 구세대가 만들어 놓은 거품은 이제 하나둘씩 터질 징조를 보이고 있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거품에 빠져 허우적대는 젊은이들은 그 거품이 터지는 그날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아마도 내 생각에 가장 큰 거품은 부동산이 아닌가 싶다. 5억 정도는 훌쩍 넘어가는 서울의 아파트들. 오래살수록 그 가격이 더 높아지는 이상한 생산물인 그 50년짜리 소비재는 거품속에서 거대한 가격상승을 불렀고 사람들을 탐욕의 늪으로 빠뜨리는 일등공신이 되어왔다. 실제로 서울에서 아주 평범한 사람들조차 재산을 불리는데 있어서 아파트 구입은 너무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최근 몇년간 징조를 보이면서 허물어지고 있고 내 예상으로는 앞으로 20년 이상 서서히 꺼져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거품이 줄어가는 고통속에서 서로에게 더욱 이빨을 들어내며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려 애쓸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까? 아이는 줄어가고 인구도 줄어가고 일할 사람이 줄고 늙은이는 늘어가고 자산은 줄어가는 세상이 오면 우린 과연 무엇을 행복이라고 부르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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