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시간에 대한 짧은 소견

아이루다 2013. 1. 15. 19:56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수 많은 요소 중에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일까? 물론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인간이기에 필수 요소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면 실제로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들에 대해 간략히 써보자면 기본적으로 지구 행성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태양, 지구 그 자체, 중력, 산소를 포함한 대기, 생명체의 필수품인 물, 좀 더 디테일하게 써보자면 우리 인간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각종 채소나 고기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집과 같은 터전 등이 있겠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필수적 요소는 아닌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자체를 주관하는 듯 보이는 시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말하면 삶의 죽음 그 자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란 요소는 태양의 에너지와 같이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그 존재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그것을 이제 좀 생각해보자.

 

시간은 한방향으로만 흐른다. 물론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과거로도 미래로도 갈 수는 있다. 이론적으로. 하지만 그것은 갈 수 있다는 것이지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즉 예전에 봤던 수퍼맨 영화처럼 수퍼맨이 지구를 빛의 속도 이상으로 돌게 되면 지구의 자전 방향이 거꾸로 되면서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대 물리학 관점에서는)

 

그렇다면 왜 시간은 한방향으로만 흐를까? 우주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은 거의 쌍을 가지고 있거나 동전의 양면처럼 두가지 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 조차 반물질이 있으면 절대적으로 음전하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전자 조차도 양전자가 있다고 한다. 이런식으로 쌍으로 존재하는 우주의 기본 섭리를 보았을 때 왜 시간만 유독 양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한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생각할 꺼리가 매우 많다. 하지만 나는 오늘 온갖 지식을 짜집기한 생각을 써볼 생각이다.

 

꼭 나의 주장은 아니지만 내 생각에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간을 인간이 발명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다. 인간이 시계를 발명했을지는 모르지만 왜 시간을 발명했다고 하는가? 실제로 축구공을 만들었다고 해서 축구라는 스포츠를 만든건 아니지않는가?

 

그럼 조금만 생각해보자. 과연 시간이란 무엇인가?

 

예전 글에 나는 1초의 정의에 대해 썼었다. 현대 사회에서 1초는 세슘원자가 무척 큰 숫자만큼의 진동을 하는 시간을 말한다. 그리고 그 값에 맞춰 시간이 생기고 하루가 정의되며 또 지구가 태양을 정확히 한바퀴 도는 1년이 정의된다. 그렇다면 1초는 어디에서 온 개념일까?

 

그것은 바로 1년을 365일로 잡고 그것을 다시 각각 24시간으로 나눈 후 60으로 나누어 1분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다시 60으로 나누어 1초를 만들어 낸 것이다. 즉 1초는 바로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주기에 맞춰서 만들어진 단위이다. 아마도 우리가 화성이나 금성에서 태어났다면 1초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1초가 60개 모이고 또 60개 모여서 24개를 구성해 이것이 365개 모이면 1년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라는 점이 중요하다. 우린 1년을 맞추기 위해 그 밑의 단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식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았다. 원래 우주 자체엔 시간이란 개념이 없다. 단지 빛의 속도가 제한적으로 정의되어 있어서 어느 공간을 이동하기 위해 특정 시간만큼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좀 다른 관점에서 시간을 생각해보자. 1초와 같은 인간이 정의한 시간은 실제로 절대적인 의미을 갖는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1초는 모두 같은 시간이다. 물론 빠르게 움직일 때 1초는 다른 의미를 갖긴 하지만 지구상에서 아무리 빨리 움직여 봐야 그놈이 그놈일 뿐이기 때문에 정말 미약한 오차는 있겠지만 실제로 같다고 봐도 된다.

 

그렇다면 이 절대적인 시간인 1초가 늘 같을까? 답은 아니다가 맞다. 물론 인식자 기준이다.

 

이것을 지각시간이라고 부른다. 백미터를 달리는 선수에게 1초와 한참 낮잠에 빠진 사람에게 있어서 1초는 같을 수 없다. 이런식으로 우리에게 시간은 실제로는 절대 시간이 아닌 지각 시간으로 영향을 준다. 1초라면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1시간, 하루가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한시간과 연인과 달콤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의 한시간은 뭐 비교 불가이다. 한쪽은 너무도 시간이 느리게 가고 다른 한쪽은 너무도 시간이 빠르게 간다.

 

한국에서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은 국방부 시계라는 말을 많이 들어본다. 그것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결국 군생활이 너무 지겹고 힘들어서 나온 얘기가 된다. 이런식으로 우린 자신이 놓인 환경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가 발명한 시간이란 단위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시간을 통해 약속을 정하거나 뭔가 해야 할 일의 시간을 규정한다. 또한 시간이 모인 세월을 통해 나이를 먹고 그 나이를 통해 현재 우리가 해야 할일들을 대충 규정한다. 대한민국에서는 8살이 되면 학교에 가고 19세가 되면 투표권을 가지며 30대가 되면 대부분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절대적이지 못한 개념이다. 실제로 문화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8살에 학교를 갈지 모르지만 이웃 일본이나 중국은 또 다를 수 있다. 또한 결혼할 나이조차 같은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조금씩 느려지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냉정하게 말하면 시간은 그냥 우리가 어떤 개념을 임의로 나눠서 쉽게 계량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두 공간간의 일정거리를 재는 것처럼 단위화 시킨 개념일 뿐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계량하고 있는 것일까? 두 지점 사이의 거리는 분명히 공간을 계량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은?

 

우린 시간을 매우 절대적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시공간이란 개념을 말하듯 우린 시간과 공간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시공간이란 개념으로 얽혀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가 빨간색을 빨갛다 라고 정의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도대체 빨갛다는 말이 뭔가? 실제로는 우리 눈이 느끼는 파장의 길이일 뿐인데 말이다.

 

우주에 시간이란 것은 없다. 단지 우린 엔트로피를 느낄 순 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라고 해석될 수 있는 영어이다. 즉 얼마나 순서없어지느냐 라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데 쉽게 예를 들어 질서있게 정렬된 트럼프 카드를 그냥 허공에 던진 후 아무런 개입없이 다시 모았다면 원래 순서로 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원래대로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많이 낮다.

(내가 수학에 잼병이긴 한데 이 경우 원래대로 카드가 배치될 확률은 아마 1/52! 일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체가 점점 헌것이 되어가는 것도 엔트로피의 증가 현상이다. 즉 점점 무질서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증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주는 점차 무질서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인간 역시 태어남과 동시에 많은 에너지를 끊임없이 주입받아 성장하긴 하지만 결국 우리의 몸 자체의 무질서도가 증가해 죽고 만다.

 

영원할 것 같은 우리의 태양도 결국엔 다 타서 백색왜성이 되어갈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지구는 태양으로 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주입받아 엔트로피를 조금 줄이는 방향으로 갈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태양의 종말에 따른 에너지 주입이 끝나는 순간 지구의 생명체 역시 멸종하게 된다. 즉 태양의 에너지가 우리의 엔트로피를 부분적으로 낮춰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간단한 예를 설명해보자면 방을 청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린 방을 청소하기 위해 우리의 몸이 가진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원천은 태양으로 부터 온 것이다. 결국 우린 태양의 에너지를 이용해 방의 엔트로피를 낮춘것이다(정리). 또한 좀 더 직접적인 예로 보면 우리 몸이 형체를 이루어서 하나의 다세포 생물로 살아가는것 자체가 바로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일인데(자연상태라면 우리 몸은 이미 분해되어야 한다. 이렇게 고유 형태를 이루는 일은 엄청난 엔트로피 감소 현상이다) 이를 위해 우린 끊임없는 외부 에너지를 섭취해야만 한다. 멈추는 순간 우린 죽어서 썩는 엔트로피 증가 상태로 바뀌고 만다.

 

우린 이런 엔트로피 증가를 계량해서 시간이라는 단위를 만들었다. 물론 이것이 명백한 과학적 원리는 아니다. 나는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 그 자체가 매우 허공에 뜬 개념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1년을 보내고 나이를 먹고 그 나이를 통해 내가 더 나이가 많으니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보다 더 나이가 어린 이들로부터 양보를 받기를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나이가 과연 얼마나 절대적인 개념일까? 만약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생겼을 때 이 자리를 앉아야 할 사람을 결정한다면 과연 주민등록증에 나온 나의 태어난 연도가 중요할까? 아니면 실제로 측정된 육체의 노쇠도일까?

 

뭐 이것은 시간의 오용에 대한 아주 단순한 예일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발명해 그 절대적 의미를 부여한 후 그것에 완전히 귀속되어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우리의 실제 자화상이다. 필요해의해 만들어 놓은 단위에 눌려 우린 그 존재가 왜 생겼는지 조차 까맣게 잊고 산다. 스위스에서는 이 단위를 정말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한 시계들이 제작되고 세계 각국에 온갖 곳에 시계는 현재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은 그 시간이 의미하는 해야할 일에 허덕이면서 오늘도 시간이라는 절대자에 복종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침 6시가 되면 눈을 뜨고 씻고 출근하고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고 6시가 되면 퇴근할 준비를 한다. 물론 이것은 다수가 같이 살기 위해 매우 필요한 요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정말 이 시간이란 요소가 우리가 단지 이용만 하는 것인 절대 아니란 말이다. 우리는 1년마다 자신이 태어난 날의 위치와 지구가 동일한 장소로 돌아오는 날을 자신의 생일이라고 말하면서 축하하지만 실제로 우린 그 장소에 있는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린 은하수를 돌고 있기 때문에 10만년이 되야야 원래 그 장소로 되돌아 올 수 있다. 그렇다고해도 실제로 그 장소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 자체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내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연인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엄마에게 화를 내고 삐진다.

 

우주의 시간은 우리들 인간의 생에 비하면 거의 영겁의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100 단위로 놀지만 우주는 조단위로 논다. 즉 내 손에 놓인 백원짜리와 1조원의 돈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거의 무한대의 시간속에 눈깜짝할 사이도 안되는 우리의 삶에서 우린 유독 시간을 따지고 또 따지고 또 따지면서 살아간다. 마치 그것이 없으면 절대로 안될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또한 공동체의 삶을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우린 시간을 발명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0.1초도 틀리지 않는 시계덕에 우린 기계처럼 시간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간다. 실제로 시간이 우리를 노예화 시킨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시간의 노예를 자처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시간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끝없이 시간에 쫒겨 급하게 서둘러서 살아가다가 결국 최단 시간에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급하게 살아 갈수록 우린 더 급하게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인데.

 

스스로 만든 족쇄를 평생의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과연 이렇게 살려고 시간을 발명한 것인가 한번 심각하게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