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탈출 프로젝트

계획에 없던 영월 방문

아이루다 2012. 12. 31. 07:57

 

이번주는 보름달이고 해서 영월에 가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토요일 아침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매형이 월요일 쉰다고 혹시 일/월 영월 하루 묵어도 될지 물어봤다. 방문 계획이 없었기에 약간 귀찮은 감도 있었지만 그 집에 가족 단위로 놀러온 분들이 없었기에 나름 긍정적으로 초대를 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눈발이 날리고 하면서 누나가 좀 걱정이 되었는 듯 다음에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 이미 가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서 마음을 쉽게 고쳐먹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유진이도 함께 가기로 해서 그냥 토요일 밤에 무작정 출발했다.

 

날씨가 좀 안좋았다. 눈발이 꽤 날려서 시야도 희미했고 또 길도 미끄러워 사고의 위험이 있었는데 특히 38번 국도는 차량 통행이 좀 뜸한 편이라서 평균시속 60킬로 정도로 조심히 운행했다. 결국 두시간 반 정도 걸려서 집에 도착했다.

 

도로와는 달리 집 앞 진입로엔 눈이 제법 와 있었다. 7~8센티미터는 온듯 보였다. 유진이와 난 또 어둠을 뚫고 머리에 찬 헤드랜턴을 불빛삼아 가방을 메고 먹을꺼리 담은 비닐봉투를 들고 400m 정도 되는 진입로를 천천히 걸었다. 이상하게 그렇게 걷는 시간은 좀 묘한 느낌을 준다. 꼭 세상으로 부터 분리되어 어떤 다른 세계로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눈으로 가득찬 요즘 영월집을 갈때 마다 드는 느낌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이 세상이 아닌것 같은 신비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수 많은 위기요소에 대한 두려움이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나는 온전히 그 집의 매력에 빠져들었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이 온 도로와 강추위속의 집은 여러가지 걱정꺼리를 만들어 준다.

 

먼저 두려움에 대한 이랴기를 하자면 도로가 미끄럽고 진입로는 거의 차량 통행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그리고 두시간 정도 운행을 할라치면 차들이 지나면서 만들어 낸 더러운 작은 물방울들이 차량 전체에 달라붙어 시야가 매우 좋지 않다. 워셔액을 뿌려가면서 겨우겨우 앞 유리 시야만 확보하지만 날씨가 추우면 워셔액조차 금새 얼어버려서 어떨 경우엔 차를 세우고 내려서 앞 유리를 손으로 닦아 줘야 할 경우도 있다.

 

집으로 향하는 진입로는 늘 눈으로 뒤덮혀 있어서 어제와 같은 경우엔 차량 바퀴가 헛도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물론 준비해 놓은 타이어체인이 있었기에 장착을 하고 거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늘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강추위는 집의 안전을 위협하는데 특히 수도와 보일러 동파 사고가 나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 사건을 될 수 밖에 없다. 여러가지 안정적인 보안장치를 해 놓아서 그런 사고를 예방해놓긴 했지만 일주일씩 늘 비워놓기 때문에 갈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한 감이 있다. 그리고 아직 나는 이 집에 대해 완전한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의 문제도 있다.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날 수록 신뢰는 높아지고 작은 사고 하나하나를 치루면서 그런것들이 별 것 아니라는 경험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늦은 밤에 도착했기 때문에 딱히 뭘 할 생각은 안하고 불피워서 집을 데우고 준비해 간 영화를 보았다. 영화 제목은 '타이타닉'. 유진이가 보고 싶다고 했다.

 

워낙 늦게 시작한 일정이라 그런지 영화 반도 못보고 잠에 떨어졌다. 그리고 8시쯤 눈을 떴다. 처음 눈에 들어온 풍경은 밖에 쌓인 눈의 높이였다. 간밤에 또 눈이 제법 내린 모양이다.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오래지않아 사라졌다.

 

파란 하늘에 하얀 눈이 덮힌 집이다. 정말 무슨 동화책에 나오는 듯 하다.

 

이젠 눈을 아예 치우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보일러실과 장작 보관한 곳 근처만 눈을 간단히 치웠다. 그리고 오전에 간단히 밥을 먹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지난번에 와서 잘라놓은 비닐 두개를 들고 집 뒤쪽 밭을 향했다. 그것은 바로 눈썰매를 타기 위해서이다!

 

가는 길에 동물 발자국이 수 없이 보였다. 토끼 같기도 하고 고란이 그리고 새 발자국까지 겨울을 보내는 그들의 배고품이 느껴지는 발자국이었다. 그정도면 눈으로 보일법도 한데 딱 한번 밤에 고라니를 마주친 후 그 후로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아무튼 그들의 행적을 보면서 쭉 걸어 올라갔다.

 

어떤 동물인지 모르지만 얼어붙은 배추를 뜯어먹은 결과물이다 ㅎㅎ 

 

하지만 푹신푹신한 눈에서 비닐을 이용해 탈수 있을 만큼 경사가 되지 못하는 슬픔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집 근처로 와서 경사를 급조해 10미터 정도의 미니 눈썰매 장을 만들어 한참을 탔다. 그렇지만 저렴한 속도 때문에 그리 신나지는 않았다. 아무튼 눈썰매를 준비해 가지 않은 것이 이번의 실수다.

 

점심은 떡국을 끓어먹고 타이타닉 후반부를 마져 보았다. 역시 유진이는 눈물.. 오는길에 얘기를 해보니 어릴때(중학교 때)는 남자 주인공 '잭' 이 죽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는데 오늘 보니 '로즈'의 이야기가 다 끝나고 할머니가 잠든 장면에서 보이는 사진 하나하나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왜 스스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달라졌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만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설명해주기 매우 힘든 것이기 때문일것이다. 마치 사랑을 설명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정리를 하고 차를 돌리다가 바퀴가 헛돌아 처음 체인을 껴본 경험도 하고 맑은 날씨 덕분에 도로의 눈은 거의 녹고 또 마르기까지 했지만 아무래도 눈이 온 흔적이 있는 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운행을 하면서 중부내륙을 타고 올라오다가 12월 28일 이 도로가 양평까지 뚫렸다고 해서 영동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쭉 올라와 양평까지 향했다. 그리고 양평을 거쳐 오는 길에 비빔국수를 먹고 집에 도착했다.

 

정말 예정에 없던 2012년 마지막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2012년 마지막 날 오늘은 집에서 쉬면서 이렇게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

 

시간이 쌓이는 것이 요즘처럼 좋은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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