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스스로 정의하는 자신의 가치

아이루다 2012. 12. 29. 10:44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이 직장생활 중에 느끼는 불만 중 꽤 상위에 올라 있거나 혹은 부동의 1위가 될 가능성이 큰 요소가 바로 연봉이다. 직장인에게 있어서 연봉은 어떤 의미에서 회사에 나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며 삶의 근간을 반영하는 항목으로 봐도 된다.

 

이 연봉은 남녀가 만날때 혹은 사회적으로나 작게는 친족의 평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말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회사에 다니는 것을 사람들이 좋게 평가하는데에 있어서는 그 회사가 보통 지급하는 연봉이 높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많은 취업 준비생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 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 차이가 아마도 연봉일 것이다.

 

이 '벌이'에 대한 부분은 비단 직장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영업자 역시 1년 벌이에 매우 민감하다. 그것은 너무도 당여한데 원래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재미나 혹은 행복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것은 이미 다른 수단의 호구지책이 있거나 벌이 자체가 이미 쏠쏠하게 보장되기 때문이이라.

 

아마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장은 일이 행복하고 돈도 많이 받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개개인은 자신에게 적당한 연봉을 어떻게 계산할까? 원래 이런건 딱히 기준이 없다. 회사가 파는 제품들이 이익률이 높아서 많은 돈을 번다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라면 낮은 연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높은 연봉을 받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일단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판단 후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갈까?

 

자신 스스로가 평균보다는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하던 A씨가 동창회에 갔다가 최근에 성공한 몇몇 친구를 봤다고 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지난 몇년동안 일군 성과를 부풀리고 꾸며서 얘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서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이야기를 들었던 그 장소에 모인 다른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이 받고 있는 충분히 만족할 수준의 연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관심을 갖게된 연봉에 대한 기사가 거의 매일 신문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래저래 기사들을 읽다보니 실제로 자신이 받는 연봉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님을 알게된다. 왜냐면 기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원래 남들과 다르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남들만큼 수준의 사람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벌이 규모 자체가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어제의나 와 오늘의 나는 변함이 없는데 내가 기대하는 자신의 가치는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이래저래 생각해보니 내가 현재 받고 있는 수준의 수입이 그리 탐탁하지 않고 혹시나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면 좀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것도 이미 이직에 성공해 연봉이 높아진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드는 생각일 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쉽게 연봉을 통해 개개인이 어떤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정하고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렇다면 연봉만이 이렇게 작용할까? 물론 대부분 돈이 중요한 요소라는 공통점은 있다. 자 이제 이런 스스로 정의법이 어떻게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 알아보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적 자기와는 좀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클수록 사람은 불행하게 되며 그 차이가 실제로 느껴지는 순간을 잘 못견뎌한다.

 

어느정도 살이 찐 젊은 여성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면 매우 화를 낼 경우가 있다.하지만 그 여성이 살이 찌지 않은건 아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살이 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남이 그것을 지적하여 '살이 찐' 자신의 모습이 확인되는 순간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과 실제적인 자신의 차이가 정확히 인식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마 그런 그녀에게 가장 크게 작용하는 분노의 원인은 '나도 아는데 왜 그것을 그 순간에 그것을 나에게 또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인식하게 했는가' 일 것이다.

 

삶을 함께 할 여자나 남자가 배우자를 찾는 조건 역시 이런 맥락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와 실제 자신의 가치가 있지만 상대를 찾을 땐 늘 자신의 생각하는 수준으로만 상대를 바라본다. 즉 실제 자신의 가치는 무시해버리고 자신이 꿈꾸는 자신의 가치기준에 맞춰 상대를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주로 중매로 이루어지는 맞선이나 인맥을 통해 이루어지는 소개팅에서도 번번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런 만남이 거의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런 만남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입거나 심지어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하는 가치와 자신의 실제적 가치가 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불편함인데 그것이 큰 사람일수록 그 불일치로 일어나는 열등감으로 인해 대화를 나눌 때 선택되는 어휘가 매우 상대를 기분나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가 그리 들어보지 못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말에 '그런 회사도 있어요?' 라고 묻는 등의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한다. 실제로는 자신이 그 회사에 다녀본적도 혹은 그 회사를 모르는 것이 자신의 무식함을 표현하는 말인줄도 모르는 것이다.

 

이쯤에서 정리하면 반복적으로 나온 자신에 대한 스스로 정의한 가치와 실제적 가치 차이를 우린 열등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정의한 가치가 완전히 상상속 산물은 아니다. 그것을 실제로 느껴지게 하는 순간은 인생에 걸쳐 몇번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가치가 되어 버린다.

 

예쁜얼굴, 일 잘하는 능력, 똑똑한 머리, 매력적인 성격 등등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에 과거에 예쁘다는 말을 한번이라도 들어봤던 여자나, 일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남자 등은 그 순간을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실제적인 정의로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농구장에서 한번 던져 한골을 넣었다고 해서 우리가 마이클조던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반복적으로 평가되야만 온전히 실제적인 자신이 됨에도 불구하고 몇번의 경험으로 인해 그것을 자기의 실제로 느끼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욕구가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자신에 대한 큰 기대가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들으면 매우 불행한 사람처럼 들릴수 있다. 자신에게 기대가 없는 삶이라..

 

하지만 결국 자신의 평가와 실제적 평가가 거의 같다면 내가 내 자신이 받는 타인들의 대접과 평가에 있어서 상처 받을 일이 있겠는가? 누가 뭐라고 하든 그것이 실제로 나인데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이 정말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능력이 더해져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매우 중요하고 또 실제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마음을 비울때, 즉 자신에 대한 미련한 기대를 접을 때 우린 행복할 조건을 하나 갖출 기회를 얻는 것이다.

 

정의된 나와 현실의 나의 차이에 대한 대처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들은 매우 힘든 노력을 그것의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그래서 실제로 좁히기도 한다. 타고난 머리가 떨어지는 어떤 이가 정말 성실하게 노력해서 사회에서 성공하거나 자신의 외모를 수술로서 고치는 사람들이다. 물론 후자는 노력이라기 보다는 돈을 쓰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그것을 노력해서 극복하기 보다는 그것을 잊고 살려고 한다. 머릭속에서 그것이 생각나지 않도록 머리속 생각을 비운다. 또한 그런 차이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은 피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지인들을 만나서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동조해주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내가 친구를 위로해야 내 친구도 나를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어떤 사람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좀 웃기는 상황도 있다.

 

인간으로서 이것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우리가 무리지어 사는 한 우리는 이런 운명속에 살아야만 한다. 나이를 먹어 스스로 세상으로 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경험속에 자신이 살아야 할것 같은 자신이 정의되어 있다. 또한 자신이 타인들로부터 대접받야 할 적절한 가치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금 현명하게 이 문제를 작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 평가를 냉정하게 내려 현실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매우 힘들고 기분 나쁘고 거기다가 비참해진다. 그리고 의욕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한 후 조금씩 자신을 바꿔보려고 해봐라. 이것은 일종의 발전이다. 자신이 정의한 수준을 벗어난 매우 갖기 힘든 진보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록 인생이 매우 행복해질 수 있다. 자기인정이란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결국 그로인해 훨씬 더 행복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바로 노력하는 것이다. 정말 힘든 노력을 해서 남자라면 몸에 식스팩을 만들고 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몸매를 만든다. 혹은 영어회화 쯤은 너무도 쉽게 해내는 능력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일단 평소 삶이 매우 고단하다. 또한 노력을 극복이 안되는 것이 반드시 있다. 그것은 외모나 혹은 육체적 능력적으로도 피아노를 잘치고 싶은 자신의 모습과 같은 것들이다. 머리가 좋고 나쁨에 있어서도 명확히 구분이 된다. 판검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사시에 합격할 수 있는것이 아니란 말이다.

 

실제로 첫번째 방법이 내가 추천하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자아비판을 열심히 해야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신은 실제적 자신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정말로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 매우 열심히 생각하고 판단하고 냉정해져야 한다. 남들의 그냥 그런 평가들은 넘기고 왜 그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옷이 딱 어울리네요' 라고 말할때 그 말을 한 사람이 옷매장의 점원이라면 이 말은 절대 신뢰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 말을 회사에서 들었다고 해도 그 말을 한 사람이 조만간 나에게 업무협조를 구할 예정이라면 의심해야 한다.

 

그래서 주변에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해 줄 사람이 하나 있는게 좋다. 내 모든것을 칭찬만 해주는 친구가 아니라 나의 단점을 좀 냉정하게 그리고 사심없이 해줄 친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그런 친구를 만나고 나면 기분이 나빠져서 점점 멀어지게 될 위험은 있다.

 

이 모든것을 무시하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이 방법이 인간의 99.99%가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냥 그렇게 타고난 대로 느끼고 분노하고 행복해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의 희노애락이며 또한 평범한 삶이기도 하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것이니 이 글을 읽었다면 한번쯤 고민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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