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시간유희

아이루다 2012. 11. 12. 14:43

 

내가 한 300년 전쯤 이땅에 조선의 백성으로 태어났다면 과연 나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까?

 

양반의 자제로 태어났다면 과거시험을 보고 합격해 어디 지방에서 고을 수령을 하든가 좀 능력이 되었다면 중앙관직에 진출해 한자리 해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아예 출신양명을 하지못하고 집에서 지금도 글이나 읽으면서 자식 농사나 짓고 살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남겨준 땅에서 나오는 소출을 받아 먹고 살면서 말이다.

 

농민으로 태어났다면 한참 가을걷이가 끝나고 남은 잡일을 하거나 혹은 그조차 없어서 마을 주막이나 어느집 사랑방에 가서 막걸리 한사발을 하거나 새끼를 꼬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올해 겨울이 많이 춥지 않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농민들에게는 그나마 가을이 끝나고 초겨울까지가 먹을 것 걱정 좀 덜하는 시기니까 말이다.

 

쌍놈이라고 일컬어지던 가파치, 백정등의 집에서 태어났다면 오늘도 열심히 천한신분으로 짐승과 다를바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좀 슬프긴 한 일이다.

 

부자집에서나 쓰는 양초도 귀하고 밤에 호롱불 켜는것도 힘든 시절에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자야했다. 여름은 그나마 하루가 길지만 추운 겨울은 하루가 12시간도 안되는 것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7시넘어 일어나 6시전까지 저녁 해결하고는 곧 잠자리에 들어야 했을 것이다. 뭐 물론 어딘가 모여서 긴 밤을 보낼 이야기나 혹은 소소한 일거리를 찾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살아보지 않았으니 알길이 없다.

 

과연 몇 백년전 이 땅을 살던 우리의 조상은 일하고 자고 먹고나서 남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약 40년전부터 현대화가 시작된 우리나라는 60년대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독재적 경제발전에 전적으로 부흥하여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의 노동을 수출의 역군이란 타이틀로 감수하며 적은 임금에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는데 이때는 전기도 일반적으로 되어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지도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니 눈뜨면 일을 하기위해 출근하고 늦은 시간에 침침한 눈을 비비면서 퇴근해 잠자리에 드는 소위 월화수목금금금이 삶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열악한 업무환경과 공권력의 일방적 편들기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오직 이 순간의 고통을 참으면 차란한 자신의 미래가 열릴것이라는 실낫같은 희망속에 살게 했다. 그렇게 70년대 80년대가 지나가고 드디어 이땅에 한줄기 민주화라는 햇빛이 비쳐들게 된다.

 

90년에 들어서 현대사회는 우린 점점 기계의 힘을 많이 이용하는 산업형태로 발전해왔다. 특히 컴퓨터의 발전은 업무 효율을 엄청나게 높혀줘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되었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인구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왔고 그러다보니 불필요한 인력들이 증가하는 사태가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회사내 인력이 매우 불합리적으로 운영되고 또 업무시스템 부재 및 사람들 개개인의 과거에 업무를 하는 방식에서 바뀌지 못한 인식 문제로 인해 소위 잉여 인력이 양산되기 시작한다. 회사내의 고위직은 70,80년대를 거친 세대로 오랜 시간을 일하면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로서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 보다는 자기 눈으로 비치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자리에 앉아있는지를 감시하기 사작했다.

 

결국 총체적으로 줄어든 일량, 늘어난 인력, 과거의 업무방식, 그에 부흥하는 직원들이 합해져서 사내 잉여일력은 이제 어느곳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인력들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함께 일명 커뮤니티 사이트로 모이기 시작한다.

 

내 기억으로 초기에 가장 유명했던 사이트가 바로 DC Inside 였던것으로 기억한다. 디지털카메라 붐을 타고 만들어진 이 사이트는 후일 폐인이란 용어를 창출하면서 지금도 각종 커뮤니티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사이트에서 가장 크게 나타나는 특징은 바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올라오는 글과 그속에서 우연히 만들어지는 각종 한글파괴언어들 그리고 기본적으로 천단위를 넘어가는 조회수가 큰 특징이다.

 

특히 특정 이슈가 발생한 경우는 조회수가 수만에서 수십만까지 넘어가는데 이런 분위기는 각종 포탈싸이트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을 특정 용어로 칭하거나 타 사이트로부터 칭해기지도 한다. 나 역시 아는 지인이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 중 헝그리보드라는 보드 전용 사이트 및 SLRCLUB 이라는 카메라 전용 사이트에 과거에 많이 접속한 적이 있다. 요즘은 다음 아고라에 자주 접하는 편이지만 디아블로 때문에 접속하는 인벤사이트에도 오픈게시판이 있으며 거기에서 일베충이란 단어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가끔 놀라는 것이 거기에 상주하는 그 많은 이들이 매우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정신상태도 멀쩡한 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나보다 훨씬 좋은 직장에서 더 나은 연봉을 받는 이들도 많고 일명 '사'짜 붙은 직업군도 꽤 된다. 거기에 어떤 글들은 일반인 수준에서는 도저히 나오지 않는 아주 전문적인 지식도 보여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공공의 장소에 자신이 글을 쓰고 다른 이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것이 나쁜건 아니다. 난 단지 그들이 다니는 직장에서 어떻게 그런 시간이 나오는지 궁금하긴 하다.

 

어디 판매 매장에서 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직업을 가진 분들은 아마도 시간을 보내기 좋은 사이트일 것이다. 어느 회사에서 하루에 두어시간만 일하면 자신의 일을 다하는 능력좋은 이들이 시간을 보내기도 좋은 시간일 것이다. 지하철에서 출퇴근할때 쳐다보며 웃고 즐기는 곳으로도 좋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두 시간이 남아서 그 잉여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결론으로 보여지는것도 사실이다.

 

몇 백년전 추운 겨울 어느날 팔복이네 집에 모여서 화투나 투전판을 벌이면서 긴 겨울을 지내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이제 현대에 이르러서는 특정 사이트 게시판에 끝없는 링크와 퍼나름으로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 예상으로 미래로 갈수록 아마 인간이 노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50년이나 100년 후 우린 주 4일 근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면 주 3일 하루 5시간 노동의 날도 올 것이다. 그럼 누가 일을 하냐고? 한다. 우린 로봇을 만들어 우리를 대신하게 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생긴 극단적 효율성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적은 노동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 지구상에서 나느 식량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유전자 조작이나 혹은 품종 개량을 통해 생산되는 모든 식량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자연계에서 스스로 생존할 가능성이 10%인 어떤 어류들은 인간의 인공수정 및 양식에 의해 50%~ 100% 로 나아질 수 있다. 훨씬 적은 공간에서 10배 이상의 식량이 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규모의 경제학이다.

 

단일 품종을 수백만평에서 재배해 먹고 효율적인 운송수단과 적제적소에 모든 소비되는 물품을 배치시키는 경험적 분석력등은 지구상의 모든 소비자로 하여금 싸고 쉽게 물건을 구할 수 있게 해줄 것이 분명하다. 세상은 분명히 그런 방향으로 진화되고 있다.

 

그러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

 

바로 시간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행복보다는 고통을 줄지도 모른다. 시간은 남아 돌지만 그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다. 아니 시간을 보낼 방법은 많은데 행복하게 보내기가 힘들다.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휴식은 매우 좋은 궁합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우린 갑자기 허공에 뜨게 되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도 디시 인사이드가 있고 SLRCLUB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미디어 에서 볼꺼리가 생산되고 자극적인 기사가 늘 우리를 향해 포문을 열고 있을것이다. 우린 점점 더 많은 정보의 홍수속에서 끝없이 자극 받으면서 감당하기 힘든 유휴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기 보다는 이미 생각하기도 전에 머리로 밀려오는 정보들에 치여 뇌가 생각이란 것을 하지 못하고 오직 자극에 반응을 하는 곤충의 움직임 같은 형태로 퇴화될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며 주 6일이나 혹은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시며 사는 분들이 있다. 어떤 분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떤 분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서 어떤 분들은 정말 일이 좋아서 그렇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대에 어떤 분들은 하루 1시간도 일하지 않고 살아가며 그 나머지 시간을 대부분은 스포츠 사이트나 자신의 취미를 위해 골프웨어를 보며 지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상사의 눈을 피해 디아블로를 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여친이나 남친이나 혹은 자신의 친구들과 끝없는 채팅을 주고 받을지도 모른다. 또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등을 통해 세상과 교류하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올라오는 새로운 글을 보며 혼자 낄낄대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에도 이런 모습은 유지될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유휴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물론 개인이 모두 선택할 문제이다. 하지만 TV를 보다보면 중독되듯 대부분의 단순한 여가생활은 중독을 불러온다. 중독은 딴것이 아니다. 그일을 하기위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뺏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스스로 경계가 필요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몸은 생각보다 게으르며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멍청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우린 잘먹고, 잘자고, 잘입으면 기본적으로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일단 오늘 하루라도 자신의 일상을 점검하고 자신이 중독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상적 생활에 대한 좀 깊은 고민을 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것을 느껴야 할 사람은 이런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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