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공감능력 그리고 이득관계

아이루다 2012. 10. 6. 09:38

 

며칠전 내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영화감독 한분이 예전에 좀 유행했었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을 두고 비판을 한 기사를 보았다. 이 책은 얼마전 내가 우연히 기사를 통해 알게된 책인데 서울대 김난도 교수란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한다. 뭐 물론 이런 종류의 책들은 워낙 뻔한 내용이라서 사서 보는 것이 돈을 버리는 길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냥 넘어갔었는데 그 영화감독도 나와 비슷했나보다.

 

내용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책은 대충 이런 내용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현재 느끼는 좌절과 희망없는 미래에 대한 고통을 보듬어 주고 그것이 그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 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고통 속에서 성공 혹은 미래의 희망에 대한 열매가 열린다는 내용을 아마도 자기의 힘들었던 과거나 혹은 그것이 없었다면 서울대 교수가 되기까지 과정을 섞어서 글을 채워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내용이라도 상관없다. 누군가 쓰고 누군가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내가 본 기사에 200만부 정도 판매되었다고 하니 베스트셀러다) 그만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이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 중 하나가 또 요즘 많이 읽히는 '멈춰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란 제목의 혜민스님이 쓴 책이다. 나도 이 책이 영월집 제 1호 기증책이기에 거기에 있을때 앞부분을 잠깐 읽었다. 참 좋은 내용이다.

 

공감은 인간이 가진 매우 우수한 치유능력이다. 물론 육체적인 치유는 아니지만 육체적인 것보다 훨씬 중요한 정신적인 치유에 있어서 탁월한 효과를 갖고있다. 우리가 자신의 고민과 고충을 누군가에게 말할 땐 바로 공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실천이나 행동을 은연 중 요구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냥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말이 또 내가 한 행동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알아달라고 칭얼대는 것이다. 당연히 성인이니 대놓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너무 유치해 보이니까 좀 포장해서 말하는 기술은 대부분의 성인들이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삐졌다' 는 표현을 '섭섭하다' 라는 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같은 감정이다.

 

그래서 공감에 대한 책은 시류를 잘 타면 또 적절한 화법과 문장 구사능력과 작가의 사회적 위치 또 그에 걸맞는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 곁들여 지면 소위 대박책이 나올 수 도 있다. 출판계엔 이런 책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런 공감과 치유에 관심이 많을까? 아마도 가장 첫번째는 내가 갖고 있는 힘든 것들이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내 잘못만은 아니란 것을 확이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또한 실제로 자신이 느끼는 고민이나 고통을 세상 누군가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나 극복한 사례를 보면서 일종의 희망을 얻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이다. 물론 이렇게 정확히 목적성을 지니고 읽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선물로 주었거나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띄었거나 광고나 타인의 추천에 의해 혹은 우연히 읽은 인터넷 기사에 붙은 댓글을 보고 구매해서 읽을 책인지도 모른다.

 

실연을 하게 되면 세상에 울려퍼지는 거의 모든 사랑에 대한 노래가 다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노래만 듣고도 펑펑 울게 된다. 하지만 그 어떤 작사가도 그 사람을 알고 작사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8월에 물가에 가면 위험하다고' 말하는 무당의 경고와 비슷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공감은 생각보다 매우 쉽다. 우리는 스스로 매우 복잡하고 또한 타인과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힘든 일을 당하면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자신에게 있는 것 마냥 느낄 수 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조금만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것을 해결은 못해줘도 이해하는 척만 해줘도 사람들은 매우 고마워한다. 그리고 책을 사준다.

 

좋은 글이 모이면 좋은 책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이들은 공감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거나 혹은 변화를 겪기도 한다. 어린 시절 읽은 단 한권의 책이 개인의 삶의 방향성을 바꾼 예는 꽤 있다. 그러게 세상은 흘러간다.

 

글쓰는 능력과 사회를 아우르는 공감 주제를 발췌하는 능력 그리고 현재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공감과 치유를 할 만한 책을 써내는 능력과 실제로 그 책을 쓴 당사자가 지는 철학적 가치나 혹은 진심이 없는 사업가적 마인드가 결합되어 있을 경우 도대체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글쓰는 능력은 실제로 개인의 자질이다. 어떤 생각이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글로 표현해내는 기술은 정말 쉽지 않다. 이것은 내가 꾸준히 글을 써봐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부러운 능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을 부유하게 살아온 어떤 사람이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에 대해 진정한 공감을 할 수 있을까? 공감하는 척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적당히 공감하는 책은 쓸 수 있겠지만 그 글의 진정성은 인정할 만 한 것인가?

 

나도 답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그런 종류의 책을, 고등학교 시절 각종 수필집을 읽으면서 어느날 깨달은 것이다. 그 책의 작가들이 말하는 것은 그냥 이야기일 뿐이란 것을. 물론 이런 것들도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마치 그것이 목적이 아닌것 처럼 그런 종류의 책을 쓰는 것이 보기 싫다고나 할까? 하지만 더 생각해보면 그것조차도 이해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려야 한다. 그것은 마치 부자가 가난한 이를 위해 천원 짜리를 하나 줬을때와 같다. 그래도 주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물론 거기에는 부자가 천원을 통해 자신이 얻어낸 이득에 대한 과정에 대한 스스로의 용서가 담겨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자리 잡고 있어도 말이다. 그리고 한푼도 안주는 부자들도 많으니 주는 사람이라도 좋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직업이 참 많다. 일단 거의 모든 종교 종사자들은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선물하고 거기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개인과 개인이 아닌 신을 중간에 끼어서 거래를 한다. 그래서 직접적이지만 또한 직접적이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엔 무당이나 점집을 하는 분들도 들어간다. 카운셀러나 혹은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강사들..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나 그것을 연출하는 감독들, 책을 쓰는 작가들, 음악을 작곡하고 작사하며 또 부르는 가수들도 간접적인 공감 거래자이다. 그리고 잘 보면 공감 능력이 어떻게 돈이 되어가는가 보인다. 그것은 지정한 인해전술이다. 이런 종류의 직업들은 모두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우리는 소소한 돈을 써서 공감을 얻고 공감 사업가는 다수의 사람에게 소소한 돈을 얻어서 많은 부를 이루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공감은 진심을 기반으로 하는 매우 중요한 인간의 치유과정인데 불구하고 그 내부적으로는 우리의 힘듬을 일으키는 원인 중 매우 높은 순위에 있는 '이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이나 상황들을 그냥 받아드려야 하는 능력이다. 이것을 비판하거나 혹은 인식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은 하되 비판하지 않는 관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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