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눈에 얽힌 추억들

아이루다 2012. 12. 10. 14:03

 

지난 주 서울에 10cm 가량 눈이 왔다. 그리고 금/토에도 약간의 눈이 내렸었다. 그 시가에 나는 영월에 가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 어느정도 눈이 왔는지 모르지만 영월엔 제법 와서 5cm 정도는 되는 듯 했다. 밤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난로안에서 장작이 타고 있는 소리를 듣는 느낌이란..

 

나는 어려서부터 눈을 참 많이 좋아했다. 내 고향이 서해안에 있는 군산인 까닭에 어린 시절 그곳엔 눈이 참 자주 왔던 기억이 난다. 원래 기억이란 기능이 남기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챙겨놓기 때문이겠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겨울은 늘 눈과 함께 했었다고 내 머리는 지금 기억하고 있다.

 

내 고향인 군산엔 월명공원 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원이 하나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월명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에 놓인 멋진 산책길이었다. 나는 세계에서 세상의 모든 공원이 다 그런줄 알고 있다가 서울에 와 보라매공원같이 넓은 광장형 공원을 보고 이게 무슨 공원이냐며 툴툴대던 기억도 난다. 아무튼 산에 놓인 산책길이다보니 겨울에 눈이 오면 울창한 숲으로 둘러쌓인 그 길에 눈은 거의 녹지도 않았고 또한 눈이 오면 차량 통행이 거의 불가능 하여 차도 다니지 않았었다. (그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차 한대가 다닐만은 했다) 그덕에 겨울의 월명공원 산책로는 최고의 썰매타기 구간이 되어 주었다. 산으로 향해 오르다 다시 도심을 향해 내려오는 끊임없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무동력 썰매를 위한 중력의 위대한 힘을 통해 우리에겐 어느곳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놀이터가 되어 준 것이다.

 

아무튼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이 되면 나는 동네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아침에 가서 오전내내 스키나 썰매를 타고 놀고 점심 먹으로 집에 온 후 후다닥 밥을 먹고 다시 오후내내 가서 놀았다. 보통의 아이들은 썰매를 만들어서 탔지만 나와 친구들은 PVC 파이프를 실톱으로 반으로 쪼개어 앞부분을 촛불로 부드럽게 해 꺽은 후 대나무 스키처럼 이용했다. 대나무스키는 너무 빨리 달아서 오래 쓰지 못하지만 이 PVC 파이프 스키는 겨울내내 사용할만 했다. 그러니까 보통 아이들은 나무로 만든 썰매를 타고 앉아서 탔고 우린 두발로 서서 스키를 탔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스키를 처음 탈 때 어렸을 때 탔던 PVC 파이프 스키 실력을 믿었다가 낭패를 본 기억도 난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겨울 방학을 하고나서 새벽에 선잠을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반쯤 깬 상태로 요강이 있는 곳에 가다가 창문밖에 하얗게 눈이 와 있으면 너무도 설래이던 추억이다. 눈이 오기 시작하면 내가 다녔던 월명공원의 산책로는 그야말로 군산시내의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동산이 되었다. 심지어 그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눈이 오면 물을 퍼다가 붓기까지 했다. 그렇게 되면 중앙에 설매길을 따라 완전한 빙판이 만들어졌다.그 빙판이 어느정도 미끄러웠냐 하면 그냥 맨몸으로 타도 정신없이 미끄러져내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따로 썰매도 필요가 없었다.

 

아무튼 이런 겨울 놀이 덕분에 겨울방학이 되면 나와 동네 친구들은 모두 모여서 스키를 만들고 또 썰매를 만들면서 눈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나는 그곳에 더이상 가지 못했다. 일단 동네 아이들과 학교가 갈리면서 같이 놀지 못했고 그땐 또 다른 놀이에 빠져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눈을 무척 좋아하는 성격이 된 것이 바로 그때의 기억인 듯 하다.

 

눈에 대한 두번째 기억이 남는 시간은 바로 군대에 있을 때였다. 나는 일명 철책에서 근무를 했는데 요즘 가끔 별을 보러 다녔던 수피령 근처에 있는 부대였다. 화천과 철원에 걸쳐 있는 이 부대에서 나는 정확히 29개월을 복무했다. 그리고 정말 어마어마한 제설작업을 했다. 지금도 가끔 나오지만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이다. 내가 신병 교육때 행군을 하면서 봤던 온도계의 온도가 영하 20도가 넘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겨울 평균 수준일 뿐이었다.

 

1월에 입소한 나는 신병교육대에서 6주 내내 눈만 치우다가 훈련을 마쳤다. 뭐 좀 해볼려고 하면 눈이 와서 연병장 눈치우기를 해야 했기에 끊임없는 제설작업만이 유일한 훈련이었다. 결국 신병교육이 끝날때 찾아오신 부모님들에게 보여드릴 분열도 취소되고 말았다. 그리고도 두번의 겨울이 나에게 지나갔다. 그 다음 해 겨울엔 나는 GOP근무에 들어가 있었기에 북한땅을 바라보면서 눈을 치웠다. 내가 있던 곳은 해발 800미터가 넘는 고지라서 겨울엔 물조차 먹기 힘들었다. 그리고 부식차량도 올라오기 힘들어서 나는 끊임없이 눈을 치워야만 했다. 어찌나 눈이 많이 오든지..

 

세번째 겨울엔 나는 어느새 병장의 지위에 있었고 좀 편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거기에 부대 정문에서 주간 위병근무를 섰기에 거의 모든 작업에서 열외가 되어서 제설작업은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첫해 둘째해 눈을 보면서 이를 갈았지만 세번째 겨울엔 다시 눈이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사람 마음이 그리 간사하다.

 

제대 후 대학교에 복학하고 또 졸업 후 서울에 와서 놀랜,  눈에 관한 것은 사람들이 눈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다닌 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나 역시 우산을 쓰기도 하지만 그 좋은 눈이오는 날 우산을 쓰고 오는 눈을 막고 불필요한 존재로만 여기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서울 사람들의 생각이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눈의 더러움을 알고 나서는 이해한다.

 

세번째 눈에 관한 추억은 스키장을 갔을 때였다. 서울은 너무 눈이 오지 않아 겨울에 스키장에 가야 눈을 실컷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 초년병인 시절에 난 매년 겨울에 스키를 타러가곤 했다. 물론 그것도 몇년 가지 못했지만. 아무튼 스키를 타는 것은 참 즐거웠던 추억이었다. 어린시절 PVC 파이프를 쪼개서 타던 스키에서 제대로 된 모양의 수십만원 대 장비를 가지고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 내려올 때 그 느낌이란..

 

그 후로 10년이 넘은 시간 동안 나에게 눈은 그냥 겨울에 한두번 오는 행사에 불과했다. 서울이 워낙 눈이 안오기도 하고 또 눈이 와바야 금방 녹고.. 물론 화이트 크리스마스란 행사를 위해 눈이 오길 바란적은 있지만 솔직히 눈은 내가 세상에 살아가는 과장에서 거의 지워진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제 네번째 눈의 추억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월집 때문이다. 이번 방문에서 과도한 제설작업으로 인해 며칠이 지난 지금도 몸이 쑤시긴 하지만 그 영월이란 공간에서 본 눈은 또 오래 기억을 가져갈 듯 하다. 기억으로도 남고 또 사진으로도 남는다.

 

눈은 빗물이 얼어붙어 생긴 하얀 결정체이다. 자세히 보면 육각형의 구조가 대부분인데 그 모양도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그 색이 하얗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모두 덮어버릴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은 눈을 좋아한다. 밟으면 뽀드득 소리를 내며 귀를 즐겁게 하고 뭉쳐서 눈싸움을 하거나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새 해가 떠서 비추면 언제 있었는지 모르게 사라져버리곤 한다. 금새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눈이지만.. 역시 겨울엔 눈이 와야 제맛이다. 비록 그 눈으로 인해 차량이 미끄럽고 또 더러워지고 위험해지긴 해도 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을 따라 살아왔기에 타인과는 공감할 수 없는 추억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군산의 어린시절이 그런 추억이다. 하지만 얼마전 군산시 홍보페이지에 올라온 월명공원에서 찍은 사진 한장을 보니 그곳엔 아직도 사람들이 나와 같은 추억을 쌓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의 이 해맑은 미소가 과거 30년 전 내 모습과 닮았다고 느끼는 건 그냥 착각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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