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커피 먹는 남자

아이루다 2012. 11. 5. 10:33

비록 불을 켜고 끓이는 방식은 아니지만 전기포트에 물을 1L 정도 붓고 스위치를 켠다. 물이 1L란 것은 전기포트에 친절하게 눈금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만약 전통적인 주전자였다면 나는 아마도 물의 높이로 대충 경험식으로 판단할 것이다.

 

물을 끊이는 과정이 커피를 먹기 위한 단계 중 가장 오래 걸리는 시간이라서 커피를 먹고자 한다면 우선 물을 끓이는 것이 효율적이다. 물을 올린 후 나는 이제 커피를 갈기 위해 원두를 담아 둔 작고 투명한 용기의 뚜껑을 돌려 연다. 이 작은 용기는 내가 외부 공기와 단절이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실제로는 그 성능에 대해 증명받은바 없는 원두 전용 용기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밀봉이라고 믿으면 되는거지.

 

원두는 보통 두 수픈을 뜬다. 한 스픈에 10g인데 1인분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나 혼자 먹더라도 1인분을 내리면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나 혼자 먹을때라도 2인분을 내린다. 그래야 내리는 맛이 있다.

 

원두를 갈기 위한 그라인더는 온전히 손의 힘으로 동작된다. 충격식 방식 기계도 있었지만 그걸로 하니 커피맛이 영 별로 인것 같아서 안쓰다가 지금은 영월집에 가져다 놓고 쓰고 있다. 손으로 원두를 가는 일은 꽤 귀찮은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커피는 마시기 위한 과정 중 가장 중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원두가 갈리는 동안 물은 점점 소리를 내며 끓어간다.

 

원두를 다 갈고 나면 윗부분을 두어번 '탁탁' 소리내어 친다. 그러면 그라인더 칼날 틈에 낀 작은 원두 부수러기가 떨어져고 이때 몇번 더 돌려주면 거의 깨끗하게 갈린다. 이것은 생활의 지혜이다!

 

이제 필터지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 아 그전에 드립퍼와 드립서버, 드립포트를 준비해야 한다. 원두를 갈아 내려서 드립커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두개의 도구, 삼각형으로 생긴 세라믹을 만들어진 필터지와 원두를 담는 그릇을  드립퍼라 부르고 그 밑에 떨어지는 커피물을 담아두는 실험실에서나 쓰게 생긴 눈김이 새겨진 그릇이 있는데 이것을 그립서버라고 한다. 그리고 물을 담아 조심스럽게 물을 내리는 주전자를 드립포트라고 한다. 어려운 용어이다.

 

드립서버를 밑에 열이 전달되지 않는 패드를 깐 후 그 위에 올린다. 그리고 드립퍼를 올리고 잘 접은 필터지를 최대한 넓게 편 후 막 갈은 원두를 부어 넣는다. 그 후 드립퍼를 살짤 들어 앞뒤로 흔들어 원두 가루가 평편하게 배치되도록 한다. 그래야 나중에 물을 부울때 잘 부어지기 때문이다.

 

이때쯤 되면 물을 끓이던 전기포트가 '딱' 소리를 내면서 꺼진다. 100도에 다다른 것이다. 전기포트를 들어서 드립포트라고 부르는 좁고 높은 주전자에 부은 후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한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두개의 동작으로 나뉜다. 첫째는 뜸들이기. 둘째는 실제 내리기. 뜸은 뜨거운 물을 원두가루에 살짝 적시는 수준으로 부어주고 약 30초 정도 기다린다. 이때 투입할 물의 양은 드립서버로 한두방울 커피가 떨어질 정도지만 좀 과하거나 좀 못해도 큰 상관이 없다. 지금껏 커피를 마시면서 느낀 것은 원두가 커피맛의 80%이상이다. 즉 좋은 원두가 있으면 커피는 대충 내려도 맛나다는 말이다.

 

신선한 커피는 처음 뜸을 들일때 많이 부푸러 오른다. 둥글게 부푸러오른 원두의 모양은 냄새도 모양도 매우 먹음직스럽다. 만약 커피가 그 냄새만큼만 맛있다면 커피는 정말 최고의 기호식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부푸러오르던 커피는 30초쯤 지나면서 다시 꺼지고 그때 물을 붓기 시작한다. 방향은 시계반대 방향으로 둥글고 가늘게 모기향 모양으로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돌리면서 진행시킨다. 주의할 점은 원두와 커피가 만나는 지점, 즉 경계지점은 최대한 물이 직접 닫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의 커피는 그 층이 매우 얇아서 그냥 맹물이 내려갈 수도 있다.

 

물은 잠깐씩 쉬면서 세네번 정도 내린다. 그리고 난후 드립퍼를 제거하고 물을 적당히 섞는다. 이때 물의 양이 커피를 진하게 먹을지 연하게 먹을지 결정하는데 나는 보통 100ml 원액을 내리고 물을 300ml ~ 350ml 정도 추가한다. 이렇게 하면 두잔이 가득 나온다.

 

혼자라면 한잔을 먼저 따른 후 들고 컴퓨터 방에가서 내 블로그를 켜고 글을 보거나 쓰고픈 글을 쓴다. 둘이라면 이쁘지는 않지만 작은 소반에 올려놓고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한다. 이야기 주제는 매일매일 천차만별이다.

 

내가 원두를 갈아서 내려먹는 방식, 즉 드립커피라고 부르는 커피를 먹기 시작한 것은 한 2년 정도 되었다. 나는 원래 이런 종류의 커피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계속 믹스커피만을 먹어왔는데 건강에 안좋다고 해서 먹다 안먹다 했었다. 가끔 녹차를 즐기기도 했었는데 아는 지인이 갑자기 커피에 빠진 후 나중엔 직접 원두를 볶는 수준까지 발전해서 나에게 커피 먹기를 강요했다. 그래서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먹으면 시중에서 사먹는 말도 안되는 커피 가격에 비하면 10%수준도 안되므로 딱히 믹스보다 비싸지 않기에 그냥 먹기로 했다. 그래도 처음엔 써서 시럽을 타서 먹었다.

 

한 1년 넘게 그냥 먹은 듯 하다. 그래도 꾸준히 먹은 이유는 유진이가 원낙 이 커피를 좋아해서 집에서 같이 먹다보니 먹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6개월 정도가 흐르니 이제 약간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고의 전환인지 혹은 노력인지 모르지만 커피를 내리는 과정 자체를 즐겨보려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늘 그런것은 아니고 어떤땐 매우 귀찮을 때도 있다. 그래도 결국 이 귀찮은 과정이 최종 결과물인 커피를 먹는 것만큼이나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는 있다.

 

'다도' 라는 동양의 차문화가 있다. 사람마다 그 범위가 많이 다르겠지만.. 차를 심고 키워서 말려 물을 끓여 마시는 모든 과정이 다도로 보면 맞을 듯 하다. 얼마나 귀찮은가? 차를 사서 먹기는 너무 쉽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차를 재배해서 먹으려면 정말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그 노력이 최종적으로 내 입으로 들어가는 차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는건 아닐까?

 

얼마전부터 식빵을 만드려고 매우 노력중이다. 벌써 한 6번째 했지만 여전히 실패중이다. 도대체 발효가 너무 어렵다. 식빵을 만들려면 만드는 시간만 족히 3시간 이상 소요된다. 그런데 빵가게에 가면 1분도 안되어 내가 만든 빵보다 훨씬 맛이고 모양이 좋은 빵을 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만든 빵이 더 싸냐? 아니다. 내가 만든 빵이 더 돈이 많이 든다. 그렇다면 왜 나는 빵을 만드는 걸까?

 

지금은 결과물이 좋지 않아서 빵을 만드는 과정이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좀 더 익숙해지고 발효에 대한 지식이 쌓인다면 빵만드는 과정을 아주 즐겁게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어떤 결과물이든 그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결국 그것은 즐기는 것이 아닐거란 생각이 든다. 쉽게 얻어진 결과물은 만족도가 높기가 힘든 것이다.

 

돈도 모으는 재미가 있고 공부도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재미가 있다. 모든 일은 점차적으로 조금씩 목표지점으로 가는 행복감이 존재하며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훈련이 된 자만이 진정한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과정의 행복을 안다면 결과의 실패가 그리 두렵지 않을 것이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먹는 짧은 순간에도 나는 이런 많은 잡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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