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비둘기 모이 주는 할머니

아이루다 2012. 10. 19. 10:45

 

성내천을 통해 출퇴근을 하다보면 가끔 물길을 따라 설치된 벤치에 앉아 있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을 본다. 특히 오늘처럼 걸어서 오는 날이면(요즘 운동 효과를 위해 자전거 반, 걷기 반으로 출퇴근한다) 그런 장면이 좀 더 선명하게 그런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걸어서 천천히 움직이니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듯 하다.

 

오늘 아침엔 어떤 할머니 한분이 손에 작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서 근처 비둘기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아닌게 된지가 꽤 되었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혐오새가 되어가고 있다. 나 역시 비둘기가 그리 탐탁하지 않는 탓에 비툴기를 보면 보통 피해다녔지만 오늘, 할머니가 떨어뜨리는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두마리가 쪼로로 달려오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그리고 익숙하게 모이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할머니 표정을 보았다. 사람은 총 3천가지의 표정이 있다고 했던가? 아무튼 내가 할머니 표정에서 느낀 공감은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떨어뜨린 과자부스러기를 먹는 비둘기의 모습에서 정말 작은 위로를 받는 모습으로 각인되어졌다. 그순간 난 할머니가 앉아있는 벤치를 지나 더이상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물론 고개를 뒤로 돌려 볼수도 있지만 굳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외로움'

 

보통 사람 혼자 있을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런데 정말 외롭다는 말에 담긴 의미가 뭘까? 사람에게 사람의 존재가 갖는 의미가 뭘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저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 아니 사람이 아니여도 좋은 그 어떤 존재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할머니도 언젠가는 엄마품에서 놀던 아이였으며 또한 시집을 앞둔 예쁜 처자였으며 또한 아이들의 엄마였고 손주들의 할머니 였을 것이다. 어떤 사연으로 인해 아침부터 그곳에 나와 비둘기 모이를 주며 누구나 별로 좋아하니 않는 그 새와 교감을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도 다른 많은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던 사람이였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쓸모가 줄어들면서 또한 같이 세월을 보내던 이들이 먼저 떠나면서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자신의 품을 떠나 자신만의 가족을 이룬 자녀들과 아무것도 모를때 자신의 품에서 앵앵거리던 손주들도 어느새 커서 자신들만의 세계속에서 살아가고 명절이나 겨우 그 얼굴을 잠깐 볼 수 있는 얼굴보기 힘든 존재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 친구가, 아내가, 남편이, 내가 낳은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은 누구나 갖는 경험이다. 하지만 세상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험은 아주 극소수이거나 혹은 나이를 많이 먹어버린 외로운 노인들 뿐이다. 그래서 그들을 공감하기가 참 힘들다. 하지만 나는 예상이 된다. 세상의 거의 모든 존재들은 자신과 어떤 조그마한 이득관계 (행복도 포함)가 없다면 그 존재는 자신에게 지나가는 비둘기만도 못한 존재일 뿐이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며 쓸쓸한 미소를 짓던 그 할머니에게 지나가는 다른 수 많은 인간들은 비둘기보다도 못한 반응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비둘기는 하찮은 과자부스러기에 관심을 보이며 행복하게 모이를 먹지만 지나가는 그 수 많은 인간들은 비둘기와 같은 관심을 보이게 하려면 수십만원의 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그들은 재빨리 다시 무심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또 혼자 있게 된다.

 

여자로서, 여자라면 가장 가치 있는 시기인 20대를 보내고 짝을 찾고 가정을 이루며 아이를 낳고 양육을 한다. 그 시절은 딱히 뭔가를 노력하지 않아도 남자가 자신을 찾고 남편이 자신의 밥을 먹어주며 아이는 자신의 젖과 자신이 만들어준 간식을 먹어준다. 손주가 생겨도 따로 모아둔 돈으로 유모차라도 하나 사주고 설날 세배하는 아이에게 세배돈을 건내며 덕담을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다. 그런데 언젠가 이렇게 거의 모든 인간은 혼자 있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 특히나 평생을 같이 하던 배우자를 떠나 보낸 후에는 그 어떤 존재에게 필요함을 당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이럴때 애완동물을 하나 키워보는 것도 좋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그 애완동물 조차 키우기 어려운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주변의 지인들과 유대감을 느끼며 또한 그런 관계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 정당성을 의심없이 받아드리고 또한 존재의 의미 역시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런 결과로 인해 자신에 대한 회의감 없이 살아 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자살을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나 성적이나 집단 따돌림에 의해 스트레스 받고 상처받아서 그 여린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홀로사는 고독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외롭게 한 구석에서 죽음을 택하는 독거노인들의 모습에서 우린 진정한 의미의 '외로움'을 보게된다. 과연 그들이 느끼는 그 외로움의 무게를 정말로 공감하고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내가 본 할머니의 표정은 오직 나만의 착각일 수 있다. 그 할머니 자신이 아니고서는 누가 그걸 제대로 알 수 있을건가. 내가 필요하고 내게 이득이 되고 내가 보면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진다. 누군가에게 그냥 공감하고 또는 그 깊은 절망을 이해하며 서로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관계는 너무도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도 한때는 영화에서, 소설에서, 드라마에서, 연극에서, 실제로 현실까지 그런 절망에 대한 공유가 많이 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들은 오래된 과거로 치부될 뿐이거나 혹은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뿐이다.

 

모두 그렇게 자신이 있어서 그런것인가? 죽는 그날까지 단 한번도 '외로움' 을 느끼지 않을 자신이 말이다.

 

나는 솔직히 두렵다. 내가 어느날 내가 소중히 여기고 또 나를 소중히 여기는 그 모든 사람들로 부터 단절이 될때 내가 느낄 그 무거운 감정이. 하지만 또 반대로 그런 상태가 되고 싶다고 하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스스로 타오를 수 있는 힘을 갖고 싶다. 꼭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만으로도 '외롭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의 여정을 끝내는 순간까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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