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국가와 지배자 그리고 투표

아이루다 2012. 12. 3. 17:29

 

역사를 공부하다가 보면 참으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는 원칙에 관한 내용인데, 그 방법론을 보면 매우 교묘하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뻔한 것에 대해 너무도 쉽게 휩쓸려버리는 피지배층의 단순함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임진왜란의 원인이 되었던 일본국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국내 통일을 이룬 후 사회적 불만세력과 갑자기 직업적 한계에 부딪힌, 오랜 내란의 시기에 누적되온 사무라이 무리들의 합당한 쓰임새를 위해 조선과 명국 토벌이라는 거대한 명분으로 7년여에 걸치 전쟁을 일으킨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임진왜란의 시작이 되었으며 조선에게 있어서 큰 시련을, 또한 쇠약해가는 명국에겐 거의 명줄을 끊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그 결과가 성공이었다면 히데요시는 일본국의 영웅이 되었겠지만 그는 결국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전쟁 중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도쿠가와이에야스는 히데요시와는 완전히 다른 정책으로 일본국의 진정한 지배자가 되었다.

 

내부 불만을 외부로 표출시켜 자국내 단합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비단 이 히데요시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아주 많은 지배자들이 이용해 먹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 날에도 미국이 중동의 이슬람 세력을 적대시하면서 미국내 여론을 호도했던 지난 부시정권의 모습이 기억에 충실하게도 남아 있다. 911 테러의 신빙성이나 혹은 각종 음모론에 상관없이 부시는 그 임기중 얻으려 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루어내고 떠났다.

 

1차 대전 후 패망한 독일의 무력함을 기반으로 천문학적인 배상금 요구한 유럽 연합에 '배째' 정신으로 대항한 히틀러는 자국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이는 6백만 유태인 학살이라는 전후무후한 인간 파괴 행동을 기록한 후 결국 패망 후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 이 역시 내적 불만을 외적으로 표출시켜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단순함 원리가 작용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은 이런 지배 원리를 위한 아주 훌륭한 적수가 이미 존재해 지배계급에게는 축복이 되어 주는 나라가 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빨갱이라고 싫어하는 북한이다. 북한은 실제적인 위험이되기도 하고 또한 북한은 북한을 아주 싫어하는 많은 국민들이 지지하는 정당을 유지시켜주는 이상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좀 아이러니함이 있다. 현재 북한의 덕을 가장 많이 보는 한국의 정당은 현재 새누리당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 많은 분들은 남북한 대립에 있어서 꽤 심각히 고민을 하고 산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하면 그것을 종북이나 빨갱이란 말로 표시 하면서 심지어 복지정책에 대한 이야기 조차 빨갱이 논리라고 밀어 붙이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 논리의 시발점이 과연 어디에서 오느냐이다.

 

아마도 대부분은 그들 스스로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심에서 또는 나와 나의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적인 보호의무에서 온다고 믿어 의심치않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정말 오랜 시간을 생각이란 것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것이다. 정말 지금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된다고 보는가?

 

내 생각에 북한이 정말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바로 너죽고 나죽자 심정이 되었을것이다. 만약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의 군사력이 부족하더라도 미국과 우리와 엄청난 교역을 하고 있는 중국이 이를 방관하고 있을까? 그래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완전 끝장을 보자는 것이고 그 이면엔 북한 정부 자체가 스스로 붕괴될 위험에 처했다는 이런 전쟁논리가 말이 된다. 결국 우리가 전쟁을 치루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쥐를 구석으로 몰면 안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쥐가 우리를 물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한의 정권처럼 북한의 정권 역시 똑같은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의 정권이 미국의 강한 힘에 의해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이라크의 몰락을 두고두고 되새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은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실제로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감당할 나라가 존재할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린 북한을 너무도 단순하게 본다. 아마도 북한 군인들이나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로 본다. 지금 북한 수뇌부가 말하는 인민을 위한다고 하는 소리를 믿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 역시 강력한 세뇌로서 그들의 지배계급이 말하는 지배논리에 춤추는 격이다. 그 어느 정부가 정말로 순수하게 피 지배계급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는가 말이다.

 

한사람 한 사람을 보았을 땐 선한 의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이익집단화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 개개인은 선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모인 국가는 타 국가에 대해 철저하게 배타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독도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 있지만 국가의 차원에서 보면 독도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국토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일본이 독도에 대해 침탈을 시도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전쟁을 불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렇게 독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우린 선거를 통해 정권을 뽑지만 그 뽑힌 정권은 모두 정권을 차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조금 더 국민을 위한다면 그것은 더 많은 표를 원하는 것이며 추후 다음 정권에서도 자신들을 지지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가 국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방향을 잡는 행위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그나마 충실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들을 뽑아줄 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정권의 순수성을 믿고 그들이 말하는 논리에 심취되어 마구 끌려다니는 일명 사상적 무장해제가 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언론이 정치인이 만들어낸 프레임 안에 완전히 갖혀서 그들이 주입하는 논리들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한다. 그리고 스스로 더 증폭시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난하면서 또한 그것을 같이 추종하는 무리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것이 정당하는 것을 누가 증명해줄 수 있을 것인가? 철저하게 정권에 의해 이용당하는 사람들, 그것이 마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으면서 우리의 주적을 향해 끝없는 이빨을 들어내야만 나라가 살아갈 수 있을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측은하기도 하지만 그들로 인해 정권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음은 가슴아픈 일이다.

 

기득권은 끝없이 그 밑에 있는 존재들에게 피를 빨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일을 저지른다. 그들은 필요하면 살인도 저지르고 각종 공작을 통해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에게도 죄를 뒤집어씌워 감방에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같은 경우엔 전쟁을 이르킬 명분을 위해 자국 국민을 스스로 살해하는 만주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일로 인해 일본은 전쟁의 명분을 얻었고 결국 중국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 그 당시 일본국 정부의 진위를 의심했으리랴. 그 국민들은 가미가제 전법이란 명목의 자살 특공대를 통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기득권에게 있어서 언론은 무소불위의 힘이다. 그들이 어떤 의도로 어떤 짓을 하든지 언론만 침묵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기사를 내보내 주면 국민들은 모두 그것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어한다.

 

끝없는 언론조작은 대한민국에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광주를 제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언론 재갈 물리기였다. 그 당시 많은 뜻있는 언론인들이 자리에서 쫒겨나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고 그 와중에 만들어진 신문이 바로 한겨레이다. 아무튼 전두환의 선택은 탁월했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그후로 완전 개판이 되어 지금은 조중동이라고 알려진 삼대 쓰레기 일간지와 그나마 언론의 역할을 담당했던 KBS와 MBC 마저 이 정부의 제 2차 통폐합 정책으로 인해 지금은 거의 어용 언론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언론의 순수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접하는 기사들의 진실성이 과연 얼마나 될지 정말로 심각하게 한번 고민해보기 바란다.

 

국가는 개개인의 재산과 안전을 지켜주는 거대한 공동체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편의에 의해서 구성되었다고 믿겠지만 오래된 과거로부터 보면 모든 지배층은 그 지배층의 이득을 위해 존재해왔을 뿐이다. 최근에 들어서 국민의 손으로 뽑는 민주적 절차가 확립되면서 그나마 조금 나아졌지만 지금도 과거의 지배계급의 작전은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남북 대치상황에 있는 우리나라는 어떤 의미에서 너무도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다.

 

기득권과 언론의 순수성을 믿는 사람들. 아마도 그 자신이 순수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그 입장이라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성공해서 기득권에 들어갈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위에 있는 기득권에게 일반인 수준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야 말로 제대로 된 멍청한 짓이다.

 

이미 온갖종류의 술수가 난무하는 이곳에서 올곧이 자신의 철학을 지키면서 성공까지 하는 사례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기득권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이 순수하지 않고 남을 깔아 눕힐 기술이 충분히 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순수성을 요구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말이 되는가? 물론 아주 소수의 그런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해 보이는 기득권은 아주 연기에 능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 대다수는 보통 나쁜 놈들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좀 돈 좀 있다고 하는 대 재벌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존경해 마지 않는 이른바 고시족 출신 고위 공직자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기득권은 보통 나쁜놈들이다. 그래서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특별히 더 나쁜 놈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최상위급에 올라서 최고의 이득을 본다. 그런데도 우린 그들의 순수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한다.

 

우린 위인전을 보면서 위대한 인간이 어린시절부터 혹은 나중에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위대한 정신을 가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위인들은 실제로 그런 인물들이 아니다. 전쟁에서 정말 제대로 용감히 싸운 군인은 대부분 전쟁중에 앞서다가 죽는 것이다. 뒤에서 비겁하게 있어야 목숨이 부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후 영웅이 되는 이들은 바로 뒤에서 숨어 있던 비겁한 사람들이다. 우린 그렇지만 그들을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럼 진정한 영웅으로 죽은 이들은 좋은 무덤에 묻어주고 가족에서 매년 일정의 돈을 주면 끝이란 말인가? 살아 남은 이는 평생에 걸쳐 온갖 영화를 다 누리면서 살아가는데 말이다.

 

끊임없는 편가르기로 뭉치지 못하게 분열을 시키며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정치인들에게 우린 과연 어떤 기대를 해야하는가? 정말 많이 냉정해져야 한다. 내가 믿고 의심치 않는 진리와 같은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한다면 스스로 되물어봐야 한다. 정말로 그들이 나라와 국가를 위해 일하는가? 라고 말이다.

 

우린 한장의 표를 통해 우리의 의지를 표출할 권리밖에 없다. 어쩌면 유일한 권리이다. 이것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냉철한 판단없이 누군가 주입시켜 놓은 논리에 휩싸여 막무가내식 판단을 하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스스로 먹이가 되는 것이다. 비판하고 감시해야만 그들은 조금 더 제대로 일한다. 추종하고 보호하면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해버린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이득을 다 챙겨먹는 놈들이 바로 기득권인 것이다.

 

제발 정치인들이 만든 프레임과 그것에 부화회동하는 언론의 프레임에 놀아나지 말자. 우리는 개개인이 민주국가의 시민이며 국민이다. 우린 그들을 평가하고 비판할 권리가 있으므로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자. 누구를 찍고 누구를 지지할지에 대해 제대로 된 고민을 하고 그들이 우리를 두려워해서 거짓된 약속과 명분으로 포장된 이득을 가져가는 모습에 철저하게 응징을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투표를 해야할 이유이며 또한 미래의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 행동이 된다.

 

누군가가 한 말처럼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고 전쟁에서 죽는 것은 바로 젊은이들이다. 누군가 앞에서 총대를 메고 사선에 서 있을때 누군가는 그것으로 많은 이득을 챙기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진 기득권으로 유지가 된다. 하지만 정작 나라가 망하면 나라를 버리고 새로운 지배자 앞에서 버틸 수 있는 자가 바로 누구인가? 우리를 전쟁터로 내몬 기득권인가? 아니면 끝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믿고 싸운 국민들이겠는가?

 

지난 일제시대를 돌이켜보면 이것은 너무도 쉽게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기득권의 조상들 대부분은 모두 일제시대에 그 부를 이룩하고 지배세력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또 다른 일제시대가 도래하면 똑같이 나라를 버리고 그들에게 붙어먹을 이들이란 것이다. 우린 현재 그들을 지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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