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유행과 개성

아이루다 2012. 11. 15. 11:31

 

몇해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에서 살아가는 '누' 라고 불리는 초식 동물의 삶을 본 적이 있다. 생긴 모양이 소 같은데 소 치고는 좀 날씬한 몸을 가진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상상하면 보통 타잔 같은 영화에 나오는 밀림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아프리카의 많은 영역이 사막이나 풀이 겨우 자라는 초원이며 이 적은 먹이와 부족한 물을 먹기 위해 초식동물들이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누 역시 그런 이동하는 동물 중 하나로 1년에 걸처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먹고 짝을 이루고 새끼를 낳고 키운다. 그런데 정말 놀라웠던 것은 수십만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면서 새끼를 날때 거의 하루동안 임신한 암컷이 동시에 새끼를 낳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만 그런것은 아니자만 그곳은 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즉 밀림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란 말이다. 사자, 치타, 하이에나들은 늘 그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며 갓 태어난 새끼는 육식동물에게는 더 없이 훌륭한 식사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당연히 초식동물에게는 태어난지 하루 이내의 새끼들이 가장 연약하고 쉽게 목숨을 잃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만에 거의 동시에 출산을 한다면?

 

육식동물의 위장은 한계가 있다. 하루에 아무리 많이 먹어봐야 한마리도 먹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저장하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하루 잡아 하루 먹고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누의 출산 전략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동시 출산의 전략을 통해 가장 약한 시기의 새끼를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내는 것이다. 물론 사자나 하이에나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전략이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듯 군중속에 숨은 하나하나의 개체는 생존률이 높아진다. 바닷물에서 뗴를 지어 유영을 하는 물고기들도 역시나 마찬가지라서 돌고래 같은 포식자들은 가장 먼저 무리를 분리하는 일을 하면서 사냥을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도 여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영화관 같은데서 불이나면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도 앞사람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이동한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고 본능적이면서 그래야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자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 앞사람도 그 방향이 맞는지 모를것이 뻔하지만 그냥 모두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한뱡향으로 움직여 간다. 그리고 보통 그 방향대로 나가면 살 가능성이 높다.

 

우리사회에는 유행이란 것이있다. 개인들이 하는 상점도 과거에 노래방, 찜질방, 피시방 같은 큰 유행이 있었고 게임도 스타크래프트나 요즘 애니팡 같은 큰 유행을 불러온 것들도 있다. 그리고 가장 민감한 패션은 매년 다른 유행을 보이면서 여자들의 지갑을 연다. 어그부츠 같은 겨울철 전용 유행도 있고 패딩과 같은 아웃도어 열풍이 몇년 전부터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뭐 유행에 대한 예를 들자면 아마 수백 페이지를 써도 모자를 것이고 이해못하는 사람도 없을테니 이쯤에서 마무리 해본다.

 

그렇다면 유행에 따른 심리를 한번 생각해보자. 제일 먼저 생존형 유행이다. 즉 영화관에서 앞사람을 따르는 본능이나 혹은 노래방 같은 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는 소규모 사업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겠는가? 당연히 대세를 따르면 생존하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이난 영화관에서 처음 방향을 잡는 사람이나 처음으로 노래방 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이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쪽박이거나 대박이다. 즉 방향을 잘못잡아 제일 먼저 죽거나 (이 사람이 죽으면 뒷사람은 다른 길을 찾게되고 그러 죽을 가능성이 적어진다) 혹은 사업하다가 크게 흥해서 많은 돈을 벌거나 혹은 몇달만에 망해서 사라질 것이다. 최초의 모험적 시도를 한 이는 그래서 일종의 도박을 벌이는 셈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대세를 따라 사는 이들은 이런 위험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이 오늘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유도 된다.

 

두번째는 문화적 유행이다. 게임류나 혹은 요즘 대다수의 한국인이 소통의 방법으로 쓰는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들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관계를 계속 이어지는 역할을 한다. 물론 게임 자체가 재미있고 채팅이 재미도 있겠지만 친구들과 같이 즐기는 게임이고 또 누구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능이 되기에 크게 유행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 하는 게임이라도 해도 또 그것을 즐기는 누군가와 공통된 주제로 대화가 가능하기도 하니 이런 문화는 개개인에게 즐거움과 관계성 유지라는 두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하게 해준다. 특히 관계성 유지는 어떤 면에서는 생존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번째 패션과 같이 자신을 꾸미는 유행이 있다. 보통 자연스럽기 보다는 산업 전반적인 목적, 즉 상업적 목적에 의해 흐름이 생기긴 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따라와 줘야 하므로 오직 그것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아무튼 드라마에서 어떤 연예인이 하고 나왔다고 해서 유행하기도 하고 실제로 좋아서 유행하기도 한다. 여자들은 보통 옷과 가방과 같은 아이템에 남자들은 전자기기에 열광하면서 유행을 따른다. 일단 유행은 제품의 가격을 다운시켜 주기도 하고 제품의 기본적 신뢰를 높여주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쓰는데는 이유가 있을테니까 말이다. 딱히 자신이 어떤 분야에 센스나 지식이 없는 경우엔 유행을 따르는 것이 무난하다. 그럼 군중속에 묻혀서 튀어보이지도 않지만 그덕에 눈에 띄지도 않으니 말이다. 사냥감으로 따지면 뛰어난 골격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냥 무리 평균 몸을 갖는게 제일 낫다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유행은 내가 판단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에 대해 타인들이 선택하는 방법으로 적용시키는 일종의 전략이기도 하다. 실패률을 낮추는 장점이 있는 반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유행을 따르다가 손해를 보거나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유행을 만들어 내는 이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팔랑귀가 되기도 쉽다. 우리나라에서 발렌타인 데이 초콜렛이나 빼빼로데이가 그런 전형적인 예이다. 물론 본인도 즐기니 뭐라 할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여기에서 개성이란 단어를 생각해보자. 개성은 말 그대로 개체 하나하나 만의 고유한 성질을 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개성이 있길 바란다. 왜냐하면 자신 스스로가 몇백만마리 속에 속한 누가 되어 누가 누군지도 구분되기 어려운 존재가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물론 우린 얼굴과 신체라는 타고난 개성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면 누구나 가진 개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개성은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만약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면 포식자에게 잡혀먹을 가능성이 높다. 모두 누런색 털을 가진 누인데 흰색 털을 가진 누가 사자의 눈에 더 잘 뛰어서 죽기 쉽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런 정글의 법칙에서 살지 않는다. 더욱이 개성은 개인의 사회적 경쟁력을 높혀주는 경향도 많기에 생존에 더 유리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이유를 갖고 싶어한다. 누군가에게 너는 부모님이 밤일해서 우연히 낳았고 그래서 컸고 살다가 죽는다 라고 말하면 기분나빠한다. 우린 동물이 아니다. 그냥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린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고 그 중에 남들과 다른 나를 찾고 싶어한다. 그것이 바로 개성이다. 이렇게 보면 개성은 약육강식이란 자연의 법칙을 벗어난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고양이나 개가 자신만의 개성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좀 웃기는 일이란 생각이 들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물론 개개인의 존재 이유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지만 그것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냥 좀 더 이야기를 해본다.

 

유행을 따르는 것은 개개인의 이득을 높여서 생존 가능성을 높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특히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은 많은 이득을 얻는다. 반대로 개성을 추구하는 것은 개개인의 존재 가치성을 높이고 경쟁력도 높혀줘서 결국 또 생존 가능성을 높게 만든다. 유행과 개성은 반대지점에 서있긴 하지만 또 같은 목적성을 가졌다. 물론 근본적인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개성은 또 어떤 유행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마치 김연아의 개성이 많은 피겨스케이팅 꿈나무를 만들어 내듯 말이다.

 

유행에 민감하다는 말은 무리속에서 재빨리 환경에 맞춰 변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개성이 있다는 말은 그 존재가 눈에 띄기 쉬워 잡혀먹을 가능성이 없는 인간 사회에서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많이 풀고 또한 경쟁력도 갖춘 사람이란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개개인이 선택할 일이지만 기왕이면 나는 개성을 택하겠다. 그것이 그래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습성이니까 말이다. 수십만 마리의 누가 새끼를 동시에 낳는 유행은 그들 세계에서는 현명해 보이긴 하지만 나는 별로 땡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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