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혼자 잘살기와 더불어 잘살기

아이루다 2012. 11. 1. 17:52

이기적 유전자 책을 보다보면 여러가지 인간 행동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 특히 기억이 남는 것은 바로 어떤 행동에 대한 상대적 행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무슨 얘기인가 하면 바로 내가 어떤 이에게 최초의 선의를 베풀었을때 그후 그 선의를 받은 이가 나를 포함한 또다른 이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그것이 전파되듯 구성단체로 퍼져나는 경우와 반대로 선의를 베풀었지만 그것을 받은 이의 이득으로만 받아들여저 결국 누구도 선의를 베풀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예이다. 물론 책의 실험에서는 정확히 이런 의미의 실험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호의적, 긍정적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 경우가 부정적,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경우보다 전체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내용은 있다.

 

인간은 끝없는 교류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관계성은 절대로 뗄 수 없는 가치이며 또한 누구도 버리고 살 수 없다. 우린 자연계에서 최상위 위치에 섰지만 우리가 관계성을 버리는 순간 우린 손발톱도 약하고 이빨로 무디며 체중도 적게 나가는 약하고 무기력한 동물일 뿐이다. 인간은 인간들 속에서 강해지며 인간이 만든 그 많은 물건들과 사상들로 부터 강해진다. 그래서 우린 표류가 되어 혼자 살더라도 적어도 쇠로 만든 칼을 하나 있어야 한다.

 

인간이 다수가 모여서 살아야 하기에 우린 우리를 공통으로 상식화 시켜주는 기준이 필요하다. 마치 파란불에 길을 건너야 한다는 공중도덕처럼 우리를 질서있고 평화롭게 만들어 줄 가치기준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기본적으로 문서화 된 이것을 우린 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법은 케이스별 처리가 아닌 원론적인 원칙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적혀있다고 해서 우리가 민주주의 공화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스스로 인정하거나 외부에서 인정받기 위해 우린 그동안 엄청난 피를 볼 수 밖에 없었고 현실도 그리 민주주의 국가 같지도 않은 형편이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의 다른말은 잘 사는 것이다. 잘사는 것은 오직 부의 증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그대로 잘 사는 것이다.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불행하고 힘들게 살고 싪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단순하게 우린 목적성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살수 있을까?

 

여기에서 부터 사람들의 생각이 나뉜다. 잘살아 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어떤 상태가 되어야 잘사는 것이란 목표지점은 다르다. 누군가는 내가 잘살면 잘사는 것이고 어떤 이는 모두가 잘살아야 잘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을 단순화 시키면 전자는 신자본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식 행복이고 후자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이은 유럽식 행복이라고 분류 가능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식 자본주의일때 행복한 소수의 사람들이 기득권으로서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면서 살아가는 나라이다.

 

요즘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무상이란 말을 많이 접하게 된다. 어떤 이는 무상 = 공산주의 = 빨갱이 사상 이라고 믿고 어떤 이는 이런 형태의 제도가 자리 잡아야만 우리가 다 같이 행복하고 또 미래의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무상의 다른 말은 세금이다.

 

자기가 가진 돈을 국가에게 내야 하는 세금을 좋아하는 국민은 아마도 없다. 세금은 자신이 가진 가치에서 마이너스이다. 그래서 누구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싫어한다. 그러니 무상이란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 나 역시 딴건 몰라도 반값 등록금엔 반감이 있다. 물론 등록금이 비싸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대학에 너무 많이 가는 이나라의 현상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결국 굳이나 대학에 갈 필요가 없는 이들을 위해 내 세금이 쓰이는 것엔 반대하고 싶다. 정말로 반값 등록금을 하고자 한다면 일단 일정수준의 학업능력을 갖춘 사람만 대학에 보내는 제도적 보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무상으로 표현되는 복지시스템은 많은 국가 예산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번 2012년 대선의 화두는 역시 '복지' 이다.

 

어떤 매체에서는 '복지' 를 가난한 이에게 부자가 베푸는 자비가 아닌 우리가 미래의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 제도라고 말한다. 결국 돈을 쓸 사람이 있어야 돈을 벌 사람들이 생긴다는 말이다. 100이란 가치를 10명이서 10씩 가지고 있을땐 계속 교류가 일어나지만 100을 단 한사람이 소유하면 9명은 결국 도태되어 없어지고 100을 가진 이는 100은 있지만 9명이 만들어 줄 가치를 얻지 못해 자신도 결국 도태되어 버리는다는 말이다.

 

콩나물을 재배하여 파는 이들이 모두 사라지면 과연 어떻게 콩나물을 재배할 것인가? 그리고 스스로 집에서 키운다고 해서 우리가 시장에서 사는 비용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콩나물은 그나마 낫다. 상추나 배추 같은 채소를 먹기 위해 모두 땅을 파 재배를 하겠는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유통을 하고 누군가는 시장에서 팔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씩 각자의 이득을 챙기고 결국 그 이득으로 또다른 제품을 살아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이득을 위해 시장상인이 10원의 이득도 못보게 해버리면 언젠간 그 시장상인은 망해서 장사를 하지 않게되고 그렇게 되면 나는 이제 유통업자를 직접 찾아가야 하게 된다. 그 유통업자 마저 망해서 없어지면 난 상추를 재배하는 농가까지 찾아가 사야한다. 물론 좀 더 싸게 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삽겹살을 먹을때마다 한시간씩 차를 타고 채소를 사러 갈 순 없지 않은가? 거기에 그 농부마저 일을 그만두면 그땐 난 어떻게 상추를 먹을 것인가?

 

복지는 이런 상황으로 풀어봐야 한다. 소득이 적어 소비를 할수 없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삶의 보존 장치제도를 마련해 지불하고 그들이 그 돈을 쓰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돈이 많은 이들이 만든 상품을 사고 또 그렇게 돈이 많은 이들은 돈을 또 벌게 된다. 그 중 일부를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은 다시 돈이 없는 이들에게 지불되어 또다시 상품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한다. 경제는 돈이 돌 때 활황이 된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돈을 가지고 쓰지 않으면 모두 굶어죽는다.

 

이 세상이 모두 구두쇠만 살아가면 우린 결국 모두 굶어 죽는다. 우린 각자의 영역에서 남들보다 더 낮은 자원을 가지고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전문가 시스템속에 살고 있기에 내가 직접 밀가루를 이용해 빵을 만드는 비용보다 남이 만들어서 이윤까지 더한 제품을 사는 것이 더 싸게 된다. 내가 상추를 직접 재배하는 것보다 남이 키운 상추를 생산자 -> 유통 -> 상인을 통해 계속 비용이 증가되어도 내 손에 들어와도 그 비용이 더 싸다. 그것이 바로 대량생산 , 유통의 힘이다. 또한 전문가의 지식으로 동일한 땅에서 더 많은 성공적인 상추를 재배해내는 각분야 전문가의 능력에서 오는 이득이다.

 

우리 개개인은 거의 모두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하고 오래동안 축척된 전문적 능력으로 이윤을 창출한다. 회계팀은 다른 일반인보다 세무처리가 100배는 더 빠르며 영업팀은 일반인보다 100배의 매출을 더 일으킬 수 있다. 나와 같은 프로그래머는 일반인은 전혀 이해못하는 컴퓨터 언어로 사람손으로는 평생이 걸릴 수 있는 일을 단 하루만에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누군가 어느날 갑자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 동일한 효과를 낼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린 전문가인 것이다.

 

이 효율성이 극대화 될때 우린 최저의 가격에 최고의 품질의 제품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프로그래머가 굶어 죽거나 회계팀 사람이 굶어 죽으면 누가 과연 그 일을 해줄 것인가?

 

복지에는 믿음이 기반해야 한다. 내가 선의를 베풀면 그 선의를 받은 누군가도 선의를 베풀것이란 희망적 상황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내 세금을 왕창내어 미래의 주역들이 등록금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무상교육을 해줬더니 그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내 일자리를 뺏으면 누가 다시 그런 노력을 하겠는가? 설령 내가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게되더라도 적어도 내가 일을 할 때 사회에 기부했던 수 많은 세금의 해택을 받지 못한다면 누군들 그것에 동조하겠느냐 말이다.

 

서로가의 배려, 믿음, 다같이 행복하게 살아가려 노력할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철학이 우리를 복지로 이끌어 준다. 하지만 절망적이게 대한민국은 이미 그런 가치를 모두 잃어버렸다. 우린 두레와 같은 좋은 공통체 문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사회에 너무 뿌리깊게 자리를 잡아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릴 아주 오래동안 괴롭힐 것이다.

 

성장과 분배.. 이것에 대해서도 아주 말이 많다. 우리는 아직 성장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성장에 의한 낙수효과를 말하지만 지난 몇년을 보면 결국 성장은 그 성장속에 속한 소수만을 배불렸을 뿐이고 나머지 다수는 겨우 유지하든지 더 나빠졌다. 그것이 바로 빈부격차이다.

 

쉬운 예로 고환률 정책은 수입품의 가격을 높힌다. 대한민국은 거의 모든 제품이 원료를 수입해서 만들기 때문에 당연히 수입원가가 높아지면 제품 가격이 올라가게 되어 있다. 반대로 수출업체는 호황을 누린다. 동일한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갖기에 외국에서 더 많이 팔아 이득을 많이 올릴 수 있다. 이번 정부들어서 가장 주가가 많이 올라간 기업이 어디일까? 쉽다. 현대와 삼성이다. 그 회사들은 모두 수출회사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번 돈을 다수의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두부나 돼지고기를 산 이들에게 되돌려 주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이들과 성과금 축제를 벌였을 뿐이다.

 

낙수효과는 없었다. 이 정부들어 추진한 거의 모든 경제활성화 정책은 소수의 배만 불리고 빈부격차만을 늘렸다. 이젠 우린 이것이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미래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청소년 자살률 1위의 나라의 오명은 현재 대한민국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부정할 수 없다.

 

한 마을에 도둑이 하나도 없다면 누구도 자물쇠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 한 마을에 도둑이 하나라도 생기면 모든 집은 자물쇠를 달아야 하며 도둑을 잡는 경찰도 생겨야 한다. 경찰이 생기면 경찰을 감독하는 감독기관도 생겨야 하고 또 시시비비를 가려 범죄의 경중을 판별하는 법원도 필요하다.

 

신의가 없어진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란 정말 무지막지할 정도로 많다. 우린 오늘도 그런 비용을 수 없이 지불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의 대부분이 그런 일을 하고 산다. 서로 믿으면 없어질 불필요한 일들을 한다.

 

물론 인간이 100% 신뢰사회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백명당 경찰이 한명 필요한 것 보다 만명당 경찰이 한명 필요한 사회가 비용을 1/100으로 줄일 수 있다. 조금만 양보하고 조금만 배려하고 조금만 신뢰하면 지금 사회에 들어가는 비용이 현젛하게 줄어들어 또 그것들이 좋은 곳에 투자되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기회를 우린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서로 총을 겨누고 누구도 그 총을 먼저 내려놓을 생각을 못하고 내려놓으면 상대가 나를 죽을까봐 밥도 서서 먹고 잠도 토막 잠을 자고 살아간다.

 

더 행복할 수 있는데 그냥 지금 조금 행복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어쩌면 너무도 불행한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많이 슬프고 분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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