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기술과 정보에 대한 의무

아이루다 2012. 11. 17. 09:40

 

요즘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부를 보면 참 많이 바빠 보인다. 실제로 바빠 보이는 수준이 아니고 정말 바쁘다. 최근에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분이 아이를 낳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행복하기도 하지만 또 힘들어 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그래도 내 생각엔 아이에게 많은 신경을 쓰는 부부는 아니라서 그정도 인듯 하고 좀 심한 부부는 정말로 매일매일이 육아정보와의 전쟁이 아닌가 싶다.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아이가 돌 될때까지 하루 단위로 정보가 있을법도 하다. 태어난지 88일이 되면 홍역 예방주사를 맞춘다.. 그런식으로.

 

하지만 우리 윗세대가 보기엔 요즘 젊은 세대의 육아법이 좀 황당하기도 할 것 같다. 왜냐면 솔직히 나의 경우만 봐도 어려서 그 흔한 예방주사 한번 맞아본 적이 없었고 놀이방도 없었고 선행학습도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때 나는 정말 정확히 내 이름 석자로 한글만 쓸 줄 알았다. 그리고 ㄱ,ㄴ,ㄷ은 학교에서 배웠다. 학교를 다니는 중에도 학원은 딱 한번 갔는데 공부하러 간건 아니고 컴퓨터 배우러 다녔다. 그 덕에 그걸로 요즘 밥 벌어먹고 살긴 한다.

 

나는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지 못했기에 정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겠다. 이 얘기는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부부 역시 나와 비슷할 것이란 말이다. 아이를 조만간 가질 계획인 부부야 좀 신경써서 정보를 챙기겠지만 아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이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 반대로 아이를 낳은 부부는 기하급수적으로 아이에 대한 정보가 축척된다. 요즘 같은 시대는 인터넷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검색할 수 있고 주변에 아이를 이미 키운 사람들의 조언과 실제로 아이가 현장 실습을 도와주기에 몇달만 되어도 알아낸 정보량이 아주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 아이들에게 그러한 정보들이 모두 좋은 것일까? 엄마를 바라보면서 다닐 수 있는 유모차, 영양분이 검증된 이유식, 각종 예방주사, 아이 행동 패턴에 따른 통계적 대처법.. 물론 초보엄마는 불안하다. 처음 해보니 불안하고 혹시나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걱정이 많아서 적어도 마음이라도 편하기 위해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하려고 한다.이것이 소위 유아 비지니스의 대상이 된다.

 

또다른 예로 보면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들어온지가 이제 만 3년이 되간다. 내 아이폰이 만 3년이 되가니 그게 맞을 것이다. 3년만에 우린 스마트 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대화 전용 앱인 카카오톡은 국민앱이란 말을 들으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다. 나 역시 문자에 비해 돈도 안들고 또 그룹대화등이 지원되기에 매우 애용하면서 썼다.

 

카카오톡 대화창엔 독특한 정보가 있다. 바로 읽지 않은 사람의 숫자를 표시해준다는 것이다. 1:1 대화 같은 경우라면 1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면 상대가 읽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바로 상대가 나의 대화를 아직 읽지 않았다는 말이되고 만약 0인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대답이 없다면 상대는 현재 나의 대화를 소위 말해 씹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기존의 메신저가 못해준 서비스이다.

 

인간은 깃발이나 봉화와 같은 단순한 수단을 이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던 기술을 요즘과 같은 작은 기계속에서 훨씬 정밀하게 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그로 인해 우린 한층 편하고 쉽고 또 빠르게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얻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그 정보를 보지 않을 자유를 잃어버리고 있다.

 

휴대폰이 없는 시대엔 모두 집 전화를 썼다. 물론 그전에 삐삐라고 불리던 제품이 있었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유선 전화기 역사가 그 동종류에서 가장 길다. 집전화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편지. 나의 10대에도 이런 문화가 있었다. 편지지를 사고 펜으로 글을 쓰고 우표를 사서 붙여 빨간 우편함에 넣었다. 그것이 언제 상대에게 갈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2~3일 정도가 지나면 갔을 것이고 그후로 또 며칠이 지나면 우리집 우체통에 편지가 꽂혀 있었다. 답장이 온 것이다. 한번 정보를 주고 받는데 일주일이 걸렸던 시절이다. 물론 전화가 있었기에 전화를 통해 이야기 할 수 있기도 했지만 전화는 집안 전체 공용이다.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고 집안의 주도권이 전혀 없는 아이들은 쉽게 전화기 사용도 힘들었다.

 

다행인 점은 밖에 나가서 놀다보면 전화가 와도 반드시 받지 받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어느날 하교 후 집에 들어가는 길에 우체통에 꽂힌 편지를 발견하는 행복도 있었다. 물론 요즘엔 전자 메일과 휴대폰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때의 감성은 없다. 물론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가고픈 마음도 없지만 말이다.

 

나는 한번도 다니지 않은 학원을 아이들은 초/중/고 동안 참 열심히 간다.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옆집 아이가 다니기 때문에 간다. 학교에 가면 거의 대부분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니 방과 후 같이 지낼 친구도 없다. 차라리 학원을 가야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모두들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기에 자신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안그랬다간 교류에서 도태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전화가 없던 시절엔 한달이 넘게 걸리던 편지로 소식을 전했고 그전에는 또 무슨 수단으로 소식을 전했는지 모른다. 과거 기원전 그리스에서는 승전을 전하고자 어떤 병사가 41.195km를 달려 왔기에 그를 기념하여 말아톤을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술이나 수단이 생겼을 때 우린 그것을 편하고 더 쉽게 이용하지만 또다른 관점에서 우린 기 그술과 정보에 종속되어 모르면 그냥 지나갈 일을 불안함과 두려움에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휴대폰은 길에서 전화를 받고 걸수 있게 해줬지만 직장인들에게 퇴근 후를 사생활을 침범해 버렸다. 심지어 주말에도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이 온다. 업무 메일은 끝없이 날라오고 이건 밤낮도 없다.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상품들에 대한 정보나 몸에 좋다는 먹거리들은 수많은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이거저거 다 빼고나면 먹을게 없는 세상이다. 모르면 그냥 행복하게 먹고 살 것을 알아서 먹으면서도 찜찜하다.

 

이것이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른 우리의 첫번째 의무이다. 이제 두번째를 살펴보자.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정말 어마어마한 정보를 얻을 수단을 얻었다. 요리기술, 가구제작과 같은 단순한 정보에서 부터 핵폭탄이나 로켓 제작에 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다. 그러다 보니 이걸 버리고 취할때 많은 고민과 혼란을 느끼게 된다. 어떤 정보들은 정말 필요하고 어떤 정보들은 그저 그렇지만 어떤 정보들은 사기나 혹은 제품을 팔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그걸 우린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상황이니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에 유리한 정보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건설회사는 우리나라 주택이 얼마나 부족한지 분석하고 앞으로 주택가격이 얼마나 오를 것인지를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 보도자료로 배포한다. 제약회사는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병에 걸릴지를 분석하고 알려준다. 의사들은 몸에 어떤 이상을 느낄때 절대 간과하지 말고 꼭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한다. 애견병원은 몇달을 주기로 심장사사충 예방주사를 꼭 맞춰야 한다고 한다. 미용이나 건강에 관련된 곳에서는 우리가 외모를 통해 어떻게 경쟁력을 높이는지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실제로 연구 결과도 나온다.

 

이런 것들이 틀린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목적이다. 과연 그 기업들이 정말 걱정스러워서 그런 정보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스마트폰이 없으면 애가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학교 생활에 적응 하기 힘들다는 분석기사가 과연 정말 아이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까?

 

얼마전 우리나라 감기 진료 후 받은 처방전을 가지고 외국의 병원 의사들에게 보여준 짧은 기사를 보았다. 모두들 왜 감기에 약을 먹는지를 의아해 한다. 감기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고 그저 집에서 푹 쉬어야 하는 병이니 약을 먹으면 오히려 몸에 악영향을 줘 치료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의사들이 그런 말을 할까? 아니다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 역시 감기엔 약과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에 그렇게 집에가서 쉬라고 하면 욕을 할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우리가 가진 정보란 것에 대해 의문을 한번쯤은 품어봐야 한다. 내가 발전된 기술을 통해 빠르게 습득하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정보는 과연 누가 생산하고 또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기에 소위 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솔깃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구가 바로 기업에서 나오는 것임을 연결시키기는 좀 힘들 것이다. 소위 산학연구라고 불리는 영역이다. 산업자본이 학교의 연구 영역에 들어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연구 성과에 따라 돈을 받는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교수들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나오기도 한다. 불쌍한 대학원생들은 이렇게 자신이 하고픈 연구보다는 교수가 수행하는 프로넥트 뒷치닥꺼리나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우린 어느대학교 어느 교수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그러다보니 이제 빨리 뭔가를 해야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나는 인생을 아주 잘못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물론 반론적 정도도 꽤 된다. 우리를 지배하는 커다란 담론을 거부하는 생각들도 가끔 보인다. 마치 동물원에 가 다들 즐거워 할때 누군가는 동물의 자유를 뺏은 인간의 비정함에 대해 토로한다. 하지만 거대 담론은 쉽게 극복될 상대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를 지배하는 빨갱이론이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 중 하나이다. 박정희부터 써먹은 북한에 대한 공포심은 대한민국을 통치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빠진 개개인은 과연 그것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담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빠져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그 반대 정보가 훨씬 더 많은데도 말이다.

 

정보는 아주 교묘하다. 거기에 요즘 같은 인터넷이 발전한 시대에서 정보는 정말로 빠르고 쉽게 개개인에게 전파된다. 하지만 그 정보들의 대부분은 자연발생적인 것들이 아니고 매우 의도되어 있다. 누군가의 이득과 누군가의 목적이 있는 정보들이 마치 순수한 모습으로 자신를 발견해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정보들의 정체로 제대로 밝혀내어 보는 방법은 오직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린 한계가 있어서 자기의 주 분야를 제외하고는 잘 모른다. 그러니 더 많이 넓게 알고 그 고리들을 끼워 맞춰바야 한다. 안그렇고 단순히 하나의 정보를 하나의 정보로써만 분석하고 처리하게 되면 당연히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결과만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엔 정보의 습득뿐만 아니라 정보를 연결하는 생각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를 분석하고 연결하는 생각의 시간임을 잘 새겨놔야 한다. 결국 이것이 개개인이 그렇게 바라는 자신의 이득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득을 바라면서 실제로는 그렇게 손해를 보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좀 흥미롭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