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공간이동, 불가능한 도약

아이루다 2012. 11. 4. 10:36

이책의 원제는 Telepotation : The Impossible Leap 이며 작가는 데이비드 달링, 번역은 박병철이란 분이 하셨다. 지난 주말에 잠실 교보문고에 들러 산 세권의 책 중에 가장 먼저 고른 책이었고 또 제일 먼저 읽었다.

 

얼마전 뉴스기사에서 양자컴퓨터에 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조금 놀랐던 것은 나는 양자 컴퓨터같은 것이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그 기사를 보니 완전히 양자 컴퓨터의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기업인 SK에서 양자 암호화를 이용한 보안통신에 대한 시험을 이미 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고 갑자기 현실감이 무척 심화되는 것을 느꼈다. 멀지도 않은 우리나라의 기업이 이미 양자 암호화을 적용한 기술을 시험중이라니..

 

그 후로 몇번 양자컴퓨터니 혹은 공간이동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솔직히 공간이동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인간의 몸을 양자수준으로 쪼갠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정보가 필요할지 생각하다가 그러다보니 엄청난 데이터 처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고 현재의 컴퓨터로는 계산 불가능하다는 어렴풋한 가정이 되었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공간이동을 하려면 양자컴퓨터 같은 형태의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정보처리 기계가 나와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 그럼 간단히 양자컴퓨터에 대해 알아보고 글을 이어나가도록 하자.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컴퓨터를 반도체 컴퓨터라고 칭할수 있겠다. 반도체.. 전기가 통하기도 하고 안통하기도 하는 도체와 비도체사이의 중간 형태이다. 물리적으로 이 특성을 이용하여 우린 0,1 두가지 형태의 정보중 하나를 저장하고 또한 이것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정보 단위를 bit 라고 부르며 binary digit의 약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이것이 100개 모이면 2의 100승 개의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 즉 n개가 모이면 2의 n개의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며 n개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정보를 표현하는 것과 정보를 저장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1bit는 0이나 1을 표현가능하지만 거기엔 0과 1중 하나만 저장가능하다)

 

양자컴퓨터는 저장가능한 것에 대한 혁신적인 개념변화를 기반으로 한다. 양자는 상태를 중첩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원리때문이다. 즉 양자컴퓨터의 1bit는 0과 1을 동시에 저장 가능하다. 한 공간에 두개의 다른 정보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양자컴퓨터의 1bit (실제로는 1qubit 라고 부른다) 의 능력이다.

 

따라서 2 qubit는 총 8개의 정보 표현이 가능하며 4개의 정보를 저장 가능하다. 이런식으로 확대해나가면 n개의 qubit는 2의 2^n 의 정보를 표현가능하며 2의 n승개의 정보를 저장가능하다. 즉 300개의 양자비트만 있어도 2의 300개의 정보를 저장 가능하다. 2의 300개 정도 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글에 다가선다. 구글은 10의 100승을 의미한다. 아마도 google은 아주 크다는 의미로 이 단어를 이용해 회사를 만들었겠지만 미래의 어느날 구글은 현재의 100의 의미도 안될 수 있는 작은 수가 될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설명을 적는다고 해서 내가 양자 컴퓨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밥벌이도 먹고 사는 현재 사용중인 컴퓨터의 제대로 된 하드웨어적 원리도 이해못하고 있다.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은 이런 시대를 혹시나 보고 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있다.

 

이 책의 초반부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들이다. 특히 내가 과학사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롭게 보는 1890년도부터 1930년대쯤 과학의 비범한 천재들은 다 모인 그 시절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맥스웰과 톰슨의로 부터 촉발된 빛의 고유특성에 대한 천재적인 과학자들의 접근이 이후 양자역학까지 흘러가고 거기에 반대하는 고전물리학의 대표적 수호자 아인쉬타인과 양자역학의 세계로 가려고 하는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간의 역사에 길이 남을 논쟁은 나같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참 재미 있는 역사이다. 비록 그분들은 자신의 평생 연구를 걸고 했던 치열한 논리전쟁이었지만 미래의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모두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뜸금없지만 참고로 내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사진이다. 양자의 확률적 이론에 대해 매우 불편해 했던 아인슈타인의 공격과 보어의 반론으로 어쩌면 양자역학에 있어서 가장 기념비적인 시간으로 알려진 1927년에 열린 솔베이 컴퍼런스이다. 우연히 컬러 버전을 발견해서 링크해본다. 여기 사진에 나오는 29명 중 17명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한다.

 

고양이로 유명한 슈뢰딩거,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한 하이젠베르크, 프랑크 상수를 발견한 프랑크, 배타원리를 발견한 파울리,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보어,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까지... 물리학 역사상 가장 멋진 사진이 아닌가 싶다.

 

 

공간이동책에 왜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는 글을 읽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양자역학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이론인지 설명하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다.

 

우리가 파도나 연못에 돌을 던저 퍼지는 그런 형태의 현상을 '파장' 이나 '파동' 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어 소리를 전달하는 원리도 역시 공기를 진동시켜서 파장을 일으켜 이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빛은 고전적으로 두가지 형태의 해석이 있었는데 하나는 빛은 연속적인 파장이란 설이며, 또 하나는 빛은 불연속적인 입자이다 라는 것이다.

 

즉, 빛은 소리처럼 진동하여 전달되는 물질이거나 혹은 물질을 이루는 원자처럼 작은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설이란 이론이다. 그런데 실험을 통해 놀랍게도 빛의 파동설이 완벽히 설명된다. 그것은 바로 '회절' 의한 '간섭' 효과 관측이다.

 

회절 현상은 빛의 장애물을 만나서 파장에 변화가 생기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두개의 파장이 회절을 통해 서로 간섭을 일으키게 되면 음영이 생기게 되어 만약 어떤 것이든 이런 현상이 관측되면 그 어떤 것의 고유 성질이 파장이란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빛의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이런 현상이 관측되면서 빛은 바로 파장이다 라고 믿어 의심치않게 된다. 적어도 아인슈타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서 이 과정을 모두 적진 못하지만 결국 아인슈타인은 빛의 양자설을 증명하는데 이것은 바로 빛 자체가 불연속적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린 빛이 끊임없이 보이기 때문이 이것이 불연속이란 말을 전혀 믿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놀라운 문제가 생긴다.

 

빛은 분명히 '광자'라고 명칭된 양자로 이루어진 물질인데 파장의 대표적 성질인 '회절/간섭' 이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왜 입자로 이루어진 존재에게서 파장인 '회절/간섭' 이 나타날까?

 

거기에 더욱 놀라운 것은 단 하나의 광자만을 이용해서도 간섭을 일으킬수 있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관측된 것이다. 간섭은 말 그대로 두개 이상의 존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단어이다. 그런데 어떻게 단 하나만의 광자가 간섭을 스스로 일으킬까? 거기다가 도대체 두개의 도착지점 중 어느곳에 도착했는지 알려고 계측기를 설치하면 순식간에 간섭 현상은 없어지고 계측기에는 두개의 슬롯 중 어느곳을 통과했는지가 명확하게 표시된다. (이 실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림도 있어야 하고;; 아무튼  궁금하신 분은 별도의 서적을 통해 따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혹시 나중에 이에 관한 글을 써볼지도 모르겠군요)

 

파장처럼 보이던 빛이 인간이 관측을 하는 순간 순식간에 빛의 파동적 성질이 사라지고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아주 기가막히고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를 위해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나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연산법이 나왔고 결국 결론적으로 보면 양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입자는 확률로서만 존재하며 그것의 명확한 위치와 속도를 알려고 시도하는 순간 확률은 무너지고 순식간에 익숙한 고전물리학적인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도 잘 이해못하는 것을 설명하려니 너무 어렵고 이쯤해서 넘어가도록 하자.

 

책의 지은이가 말하고 싶어하는 공간의 이동의 키는 바로 '양자 얽힘' 현상이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보어를 필두로한 양자역학 지지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언급했던 현상이기도 하다.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A와 B란 양자가 있다. 둘은 어떤 이유로 인해 서로 얽혔고 (이 부분은 솔직히 잘 이해가 안간다) 그리고 이후 A는 서울에 B는 부산으로 이동되었다. 이때 A와 B 모두 관측이 이루어지지 않은 확률적 상태이다. 그리고 원리상 A와 B는 반드시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을 해야 한다고 가정하자(이 가정이 바로 얽혔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A가 B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을 해야 한다는 것만을 알지 각자 어떤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관측을 하지 않았으니 알길이 없다. 둘 모두 시계방향이나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할 확률이 바로 50%란 것만 알고 있다. 이 상태에서 서울에 있는 A의 관측을 시도했다. 그래서 A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B는 어떤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을까? 당연히 시계반대방향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B를 관측도 하지 않고 회전 방향을 알수 있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것이 관측을 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이점을 파고들어 빛보다 빠르게 전달되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 우주 양끝에 양자얽힌 상태로 존재하는 두개의 양자의 한쪽을 관측하다고 해서 반대편의 양자의 상태가 갑자기 관측된 상태로 변화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읕 틀렸다. 그것은 정보의 전달이 아닌것이다.

(이 양자적 얽힘상태에서 두개의 얽힌 양자가 왜 저런 연관성을 갖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듯 하다. 단지 실험을 통해 증명은 되었다)

 

아무튼 이 양자적 얽힘을 이용하면 양자를 멀리 공간이동 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나도 정확히 이해는 못하지만 간단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책에 나온 예이다.

 

1. X양자를 이동하기 위해 A,B 두개의 별도 얽힌 상태에 있는 양자를 준비한다.

2. B는 X가 이동할 곳에 위치한다. (앞의 예를 보면 부산에 보내진 것이다. A는 여전히 서울에 있다)

3. X와 A 측정한 후 그 결과를 B가 있는 곳에 전달한다. (이 정보 전달은 고전적 방법을 이용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 정보 내용은 알지 못한다)

4. 3에 의해 A가 측정됨과 동시에 B는 결정되어져 있다.

5. X의 상태를 전달받은 후 B를 X와 정확하게 같도록 변형시킨다.

 

결국 원래 X는 그 고유성을 잃고 새로운 양자인 B가 X가 된 것이다. 이해가 갈듯 하면서도 안가는 대목이다;; 특히 5번은 일종의 관측행위로 보이는데 어떻게 관측전 X와 같다고 여기는 걸까? 아무튼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 양자 하나가 먼곳으로 이동되었다. (이동되었다기 보다 재생산 되었다)

여기엔 몇가지 고려할 부분이 있다.

 

첫째, 양자얽힘은 거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지만 3번의 정보전달 과정은 필수 이므로 절대 빛의 속도 이상 더 빠르게 이동할 수는 없다.

 

둘째, X 의 정보이동은 이 실험에 참가한 어떤이들도 그 정보를 모른채 이동해야 한다. (아는 순간 내가 말한 관측행위가 된다) 하지만 가는 도중 그것을 파리가 알아챈다면!

 

세째, 이동한 X는 절대 과거의 X가 아니다. 즉 우리 인간이 공간이동 된다면 이동된 곳에서 나타날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여기에서 아주 많은 철학적 문제와 함께 윤리적 판단이 나타날 수 있다.

 

이후 책은 아무 많은 실험과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솔직히 10%로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졸면서 본탓도 있지만;;

 

아무튼 이 책은 나중에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또다른 흥미로운 부분은 양자 암호화부분인데 그것은 관측되면 변형되는 양자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상용화 될 듯 하다. (관측되면 변형된다는 말은 누군가 중간에 해킹을 시도하면 해당 메시지는 즉각 변형되어 원래 메시지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원본 메시지는 파괴될수는 있어도 누군가 원치 않는 존재에게 그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하지는 않는다)

 

공간 이동을 위해 파괴되는 나, 공간 이동 후 새롭게 만들어진 나. 어쩌면 인간은 이 기술로 인해 영생을 누릴지도 모른다. 기억에 관련된 뇌만 남기고 언제든 과거의 내 데이터로 돌아갈 수 있는 날도 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인간은 아마도 후손을 만드는 일을 멈출지도 모르겠다. 영생을 얻었는데 자식을 뭐 때문에 낳겠는가?

 

그때 또 종교지도자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린 몸은 7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원자로 바뀐다고 한다. 또한 내몸을 이루는 탄수원자들은 최소 5억년내로 약 5백만개의 생명체를 거쳐온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를 이루는 탄소원자는 과거에 벌레였으며, 공룡이었으며, 식물이었고, 개였다가 고양이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7년전 나는 지금 나와는 완전히 다른 원소로 구성된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금 나를 절대적으로 나로 믿는다. 0.00000000000000000001%의 의심도 없다.

 

내가 나임을 아는 것은 오직 과거의 기억 뿐이다. 그렇다면 그 기억을 잃는 순간 나는 무엇일까? 아무튼 공간이동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는 꼭 나중에 따로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간만에 재미있는 주제를 읽어서 기분이 좋다. 물론 이해를 하긴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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