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초파리의 기억

아이루다 2012. 8. 12. 19:16

이 책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일단 내가 산 책은 아니고 아는 지인으로 부터 추천받아 읽기 시작한 책인데 최근에 있었던 몇가지 사건들과 함께 나의 흥미를 많이 자극했던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급으로 주로 언급되는 사람은 '시모아 벤저' 라는 초파리 연구에 대가이다. 그는 원래 물리학자로 학계에 발을 딛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생물학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고 유전자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게 된다.

 

벤저박사가 연구를 하던 시기에 생물학사에서 다윈의 진화론 발표에 필적할 만한 일이 일어나는데 바로 그것이 DNA 이중나선 고리를 밝혀낸 왓슨과 크릭의 연구 발표였다. 모두들 그 존재에 대한 이론적 상상만을 가졌던 유전자 내부구조를 밝혀낸 것이다. 그리고 벤저박사 역시 유전자의 모습을 초파리 유전자 조작을 통해 지도화 시키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책의 저자는 '조너던 와이너'라는 사람이다. 과거 '핀치의 부리' 라는 책을 써서 퓰리쳐상까지 수상한 유명한 과학저술가이기도 하다. 실제 이책은 1999년에 쓰여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에 첫 번역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묘한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적어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이 묘한 부분은 오직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왔다.

 

이 책의 감수를 한 분이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의 최재천 교수이다. 내가 몇 달전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게 봤던 '다윈'에 관한 EBS 강의를 하신 분이다. 거기에서 나는 그 교수님의 지도교수 였다는 '윌슨' 교수나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 (며칠전 내가 이 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이중나선고리를 발견해 낸 왓슨과 크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책에 그런 내용이 모두 나온다. 과학교양서적을 읽으면서 이렇게 뭔가 구체적으로 관계성이 느껴지긴 처음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주 많은 과학서적을 읽은 훌륭한 독자는 아니지만 말이다.

 

'다윈', '슈뢰딩거', '왓슨과 크릭', '윌슨', '최재천 교수'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 무려 6명이나 언급되어 진다. 물론 '파이만'도 나온다. 잠깐.

 

몇년 전 나는 누나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만약 미래에 사람이 하는 행동이 모두 유전자로 부터 야기된다면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한 사람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 법적 처벌을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단지 유전자를 그렇게 타고난 셈인데 말이야'

 

그 당시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을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의문은 계속 머리에 남아 있었는지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벤저 박사의 가장 큰 호기심은 바로 '행동이 유전되는가?' 이다. 벤저 박사 뿐만 아닌 그와 함께 헀던 많은 연구원들 역시 의문을 가졌던 질문이며 이에 대한 많은 공격을 받기도 한 주제였다. '인간이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모든 행동이 야기된다면 과연 우리가 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또는 내 머리를 맴도는 질문인 '타고난 대로 저질렀다면 어떻게 죄를 물을 수 있는가?' 에 대한 걱정이 많은 이들로 부터 받은 공격이다.

 

머리가 좋은 부모가 나은 아이는 머리가 좋을 수 있다. 노래를 잘하는 부모가 낳은 아이는 노래를 잘 부를 가능성이 무척 높다. (그렇지 않다면 한쪽 배우자가 바람 피었을 가능성도 높다 ㅎㅎ) 그렇다면 내가 밥을 먹을 때 왼손을 바닥에 집는 행동 특성이 있었다면 나의 아이도 커서 그렇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처음 시작한 습관이라면 말이다.

 

이 책은 그 행동 역시 유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벤저박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이 초파이의 기억인 탓에 책에는 엄청나게 많은 초파리 연구사례가 기술되어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초파리의 실험이 아닌 그것을 증명하기 까지 있었던 실험실내의 사건들 그리고 갈등들 또한 외부 환경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우 세밀하게 기술된 벤저박사 연구 일대기로 봐야 할 것이다.

 

책을 다 읽긴 했지만 실제로 머리속에 많은 것이 남지는 않는다. 그냥 보통 사람과 조금 다른 생물학자들의 소리없는 전쟁터 기사를 읽은느낌이다. 하지만 느낌은 매우 좋다. 내가 아는 이들이 연결이 되어서 좋고 또 내가 믿고 있는 여러가지 것들이 사실으로 판단되어 좋다.

 

모르겠다. 책에서는 미래의 어느날 부유한 집은 선별적 유전자 선택에 의해 오점없는 유전자가 선택이 되고 가난한 집은 그렇게 하질 못해서 계속 하자가 있는 유전자를 생산하게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지금도 역시 빈부차에 의해 교육을 받는 여건이 달라 부의 세습이 이루어지는데 미래엔 더욱 직접적으로 그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예전에 본 영화 '가타카' 가 생각이 났다. 유전자를 선별해서 완벽한 아이를 얻어내는 세상에 자연 임신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커서 우주로 가려는 꿈을 키우는 이야기..

 

유전자는 학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주제이고 의사의 입장에서는 부를 가져다 주는 기술이겠고 의학/제약관련 회사에서는 노다지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금맥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몇년 전 서울대 황교수 사건이 있었듯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나 복제 기술과 같은 연구는 순수성 말고도 그 연구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 대해 걱정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대상이다.

 

미국의 멘하턴 프로젝트(원자탄 개발 프로젝트) 를 지휘했던 오펜하우어 박사의 경우처럼 연구와 그 연구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말 심각한 고민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행동유전학은 아마 수십년 후 그 실체가 모두 밝혀질지도 모른다. 우린 범죄자를 잡아 유전자 치료를 해서 교도소가 아닌 병원에서 교화시킬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것은 아닌가 싶은 걱정도 된다. 뭐 나야 그때쯤엔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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