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산책 그리고 사색했던 잡생각들

아이루다 2012. 9. 22. 09:29

 

글 제목은 산책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산책 수준이 아니고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겠다. 올 봄부터 시작한 걷기 운동은 무더운 여름 동안 중단한 후 지난 주 부터 다시 시작했다. 역시나 발이 많이 고생이고 아프지만 하루에 2시간 정도의 걷기 운동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또한 즐거움을 준다.

 

처음에 걷기를 시작할 땐 2시간이란 거대한 시간이 나에게 꽤 부담이 되었었다. 실제로 힘들다는 생각만 계속 자리 잡았던 듯 하지만 요즘 가을 날씨 덕분인지 아니면 새로 산 신발이 잘 맞아서 그런지 조금씩 생각에 집중하고 있다. 사정상 월요일 하루를 빼고 화요일 저녁, 수요일 아침, 목요일 저녁, 금요일 아침 총 네번 걷는다. 나머지는 자전거를 탄다. 왜 이런 순서가 되었는지는 사정이 좀 복잡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일주일에 네번의 걷기 네번의 2시간이 나에게 주어진다.

 

생각해보니 걷는 시간만큼 온전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화장실에 있을때도 우린 뭔가를 본다. 책을 보거나 스마트 폰을 본다. 자전거를 탈 때는 그 빠른 속도 때문에 계속 주변을 살펴야 한다. 운전도 그렇다.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고 또 그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우리에겐 많이 익숙해져 있다. 지하철 출퇴근 시간엔 주로 책을 보거나 역시 스마트 폰을 본다.

 

그런데 걷는 시간은 이런 행위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걷기 운동을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걷기 그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조금은 신경 쓰이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 덕분에 주변보다는 생각에 잠겨서 가도 큰 문제가 없다. 이 부분이 걷기 운동 혹은 산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으로 보인다.

 

어떤 일로 인해 혹은 새롭게 알게된 어떤 정보로 인해 내가 우울해질 때나 혼란스러워졌을 때 난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한다. 과연 정말 그런 것들이 나에게 관계된 일일까 하고 말이다. 정치인 누군가 하는 이상한 짓이나 말, 공정치 못하게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 기타 많은 나를 자극하는 것들로 부터 해방이 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 세상의 매우 많은 부분은 나와 관련이 있지만 반대로 관련이 거의 없기도 하다.

 

이번주엔 안철수씨가 대선에 나온다고 선언을 했다. 이 사건이 나와 관련이 있는가? 물론 있다. 하지만 또한 없다. 다음 대선에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가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물론 새누리당 대표가 되는건 거의 왕짜증나는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안될건 뭔가. 그들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내 주변이 바뀔것도 없다. 현재 대통령이 멘붕씨께서 20조를 들여 4대강 한건 무척 짜증나는 일지만 그 공사가 내 집앞에서 벌어진 것이고 또 내돈을 가져간 것도 아니질 않는가? 그리고 실제로 그 돈을 복지에 썼다고 해도 나에게 돌아올 건 단돈 10원도 없다.

 

그렇다면 왜 나는 멘붕이를 싫어하고 닭여사께서 대통령이 되는것이 싫을까?

 

잘 생각해보면 싫어할 필요도 아니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나는 그냥 나에게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내 삶을 내 스스로 잘 채워서 가야 한다. 과연 나에게 남의 삶에 대해 평가하고 또한 관여할 권한이나 의무가 있을법이 없질 않는가.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 말은 혹은 행동은 대의를 말할지라도 실제로는 다 자기 이득을 기반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아주 소수만 세상을 걱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게 뭔가? 우리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그냥 이기주의 유전자를 가진 동물일 뿐이다. 좀 더 우호적이냐 좀 더 배타적이냐 정도만 왔다갔다 한다. 누구도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내놓지는 못한다.

 

요즘은 다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약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그 사람을 알턱이 없다. 정말 깨달음을 얻었다면 사람들 앞에서 떠들 이유가 없다. 완벽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이 결국 깨달음이다. 타인과의 관계나 우리 삶의 목적 혹은 환경 등에 관심이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 오직 나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질때 그것이 진정한 해탈이고 깨달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처도 깨달지 못한 존재이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 제자를 가르치고 불교를 만들었단 말인가.

 

내가 어떤 것을 완전히 믿게 되면 타인의 의견이나 검증이 전혀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자체로 진실인데 왜 타인을 설득하려 하겠는가. 우린 자신이 믿는 믿음이 부족하기에 타인의 의견과 반응을 끝없이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를 믿지도 않지만 만약 정말 예수의 존재를 믿는다면 성경책을 읽을 필요도 교회가 나갈 필요도 없다. 그리고 빨리 천국으로 가는게 좋다. 기왕이면 자신의 장기를 모두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가면 좋겠다.

 

모든것이 불확성때문에 일어난다. 나의 이런 글도 역시나 내가 완전히 믿질 못하기에 쓰고 있는 것이다. 내 스스로 나를 확신한다면 굳이 타인에게 보이는 글을 쓸 필요조차 없게된다. 뭐하로 내일 태양이 동쪽에 뜨는 이유를 적고 있을까? 물론 쓸 수 있다. 왜냐면 태양이 영원히 동쪽에서 뜨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137억년의 우주 역사 속에 인간은 고작 100년을 살아가는데 그나마 우리에게 영원처럼 느끼는 존재는 우주뿐이다. 하지만 그 우주조차 영원성을 가지진 못하는 역동적인 존재이니 우리가 과연 어떤 것을 100%확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안전한 존재이다. 존재 자체가 확률로 탄생했고 생명도 확률도 얻어졌다. 그리고 세상을 사는 동안 그 의지로 되지 못하는 일이 수도 없이 많고 또한 의지적으로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금메달을 하나 따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온 어떤 운동선수가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딸 가능성이 100%라고 해도 경기 전날 먹은 음식이 체하면 끝이 난다. 누가 그걸 예측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산으로 간다.

 

하지만 또 어떤 의미로 '순리'를 생각해본다.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나뭇잎을 띄워 움직이는건 정말 쉽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나뭇잎을 움직이게 하려면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하다. 또한 나뭇잎 자체가 찢어질수도 있다. 그만큼 순리와 역리의 차이는 대단하다. 그래서 세상은 순리대로 살아가야 쉽게 이루어진다. 의지적으로 하려고 하고 또한 뭔가 절대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목표는 거의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나보다.

 

나이를 먹을 탓인지 요즘 들어 예 성현의 말들이 차곡차곡 마음에 들어는 것 같다. 많은 철학자들이 했다는 산책과 순리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정말 젊었을 땐 관심도 없었던 것들인데 말이다 ㅎㅎ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답은 없다. 그냥 내가 가진 것들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서 그나마 할 것을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결과를 놓고 자신의 삶을 또 타인의 삶이 대단했다든가 혹은 실패했다든가 하는 평가 자체가 의미없는 짓이다. 사는것은 사는 것이고 그것이 끽해야 100년 갈 뿐이고 죽으면 죽는 것이다. 사후에 명성을 얻고 역사에 기억이 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가. 자손이나 득을 볼것이지만 자손조차 남기지 않는 사람이람이라면 그것이 정말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 순 없다. 뭔가 기준점이 있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것이 답이 없는 질문인 것은 명백하지만 그래도 그 답을 알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혹자는 우리 인간이 정신을 가지고 또 신을 믿는 것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유일한 것이며 그래서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이말을 생각해보면 그 유치함이 한이 없다. 내가 인간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동물과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내 정신이 존재하고 또 영혼이 존재하고 또 신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내가 있음으로 세상이 있다는 교만함과 어리석음이 한껏 표출된 말이다.

 

우리 인간 개개인은 정말 티끌과 하나도 다름이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만 기억해줄 뿐이며 지나가는 고양이,개는 그 어떤 유명한 인간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또한 수천년을 살아온 나무 역시 그 많은 시간 동안 존재했던 그 어떤 인간의 이름이나 업적을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기억하고 우리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자화자찬 중이다.

 

이해는 한다. 얼마나 자신이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지. 나 역시 그렇다. 나 역시 의미있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사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내 의견을 말하고 이런 글도 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실제로 의미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죽고 내 주변사람들이 다 죽고 이 글이 저장된 서버의 디스크가 고장이 나서 데이터가 날라가면 내 글도 죽는다. 어느날 지구에 핵전재이 일어나 모든것이 파괴된 후 우리를 기억해줄 존재가 과연 누가 있겠는가.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스스로를 위대하고 의미있다고 우기는 은하 변두리에 태양 주변을 도는 세번째 행성에 살다간 그들.. 그 정도만 누가 기억해줘도 우리는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다.

 

가끔은 주제를 정하고 쓰는것 보다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적는것도 좋은것 같다. 물론 읽는 사람은 좀 짜증날 듯 싶다.

 

커피가 맛있다. 원래 커피를 거의 즐기지 않았는데 주변에 커피를 볶는 사람이 생기면서 하나씩 얻어먹기 시작한 이후 한 2년쯤 되니 이제 커피를 즐기는 수준이 되어간다. 하지만 지금도 커피맛은 잘 모르겠다. 그냥 이런 토요일 아침에 먹는 커피가 좋다.

 

오래간만에 주말에 영월을 가지 않았더니 시간이 여유가 있다. 하루 잘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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